# 62
화산천검 3권(12화)
5장 첫 번째 준비(2)
“크윽∼”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었다.
단전 쪽에서 무언가 진기와는 다른 것이 치고 올라오자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매화작보로 파고들자 복면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매화작보보다는 무언가 다른 것에 놀란 듯 보였다.
‘내 알 바 아니지.’
지금은 이들을 제압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랜만에 써 보는 장천수.
다행히도 실수 없이 순식간에 척으로 맥을 끊고 제압했다. 그리고 막 움직이려는 복면인에게 시선을 집중해 염력으로 옭아매며 달려들었다.
몸이 잘 안 움직이는 것은 치명적이다.
싸우는 것보다는 도망치는 것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눈 깜짝하기도 전에 복면인의 앞에 도달하며 검병으로 머리를 찍어 누르고 혈도를 제압했다.
“후우∼”
우승빈이 숨을 내쉬며 복면인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
네 명의 복면인들이 무언가 단단한 결심을 한 듯 굳어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자아, 쥐새끼들. 이제 너희들이 알고 있는 것을 불을 시간이야. 거짓말을 하는 것은 죽음. 아, 어차피 죽는 것도 뭣도 상관하지 않을 녀석들이니 거짓말을 한다면 고문이겠군. 아무튼, 거짓말은 안 하는 것이 좋아. 맞는 것은 고개를 끄덕이고, 틀린 것은 고개를 저어. 알았냐?”
복면인들은 계속해서 굳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 우선은 첫 번째.”
우승빈이 제일 왼쪽에 있는 복면인의 혈을 풀어 주었다.
“첫 번째 질문, 이곳 우가장에 일 년 전부터 있던 것이 맞나?”
복면인은 혈이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이런, 이런. 그렇게 하면 곤란하다고.”
우승빈이 고개를 젓더니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조금만 나가 있어 봐. 이런 것은 고귀한 화산파의 제자가 보기에는 곤란하다고.”
갑작스런 축객령.
하지만 우승빈의 말에 순순히 따라 주었다.
바깥으로 나오자 조그마한 신음 소리가 안쪽에서 계속해서 들렸다.
그렇게 해가 조금 질 때까지 서 있자, 안쪽에서 우승빈이 나를 불렀다.
“어이, 들어와. 다 끝났어.”
들어가자 한 복면인만이 조금 풀린 눈으로 앉아 있었다.
“음? 나머지는?”
“아아, 협조를 안 해 줘서 조금 멀∼리 보내 줬어. 이 녀석은 전례가 있다 보니까 잘 대답해 주더라?”
아무리 봐도 협조가 아닌 듯하지만…… 상관없지.
“그래서 어디까지 알아냈지?”
“비.밀.이다.”
“……뭐라고?”
“끝나면 알 수 있을 거야.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야.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도, 무언가가 떠나가는 것도, 무언가가 탄생하는 것도,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도. 모든 것은 때가 있지. 그리고 그 때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해. 모든 것은 그 때를 기준으로 시작되거든.”
“요점은?”
“한마디로 말해 주기 싫다는 거다.”
“그렇다면야 뭐…….”
내 일이 아니다.
지금 내가 고라는 것을 눈치채서 이렇게 되었기는 하나, 이곳은 우가장, 우승빈의 집안 사정이다.
그리고 내가 알려고 하는 것은 이 우가장의 치부.
우가장 장주의 장자로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도 솔직히 놀랄 일이다.
“의외로 쉽게 수긍해 줘서 고맙군. 아무튼, 조금씩 행동에 들어가 볼까?”
“행동?”
“그래, 먼저 무력이 필요해. 우리는 둘이지만 저들은 이 우가장 전체거든. 하지만 내가 보기에, 고수라는 것은 전황을 한 번에 뒤엎어 버릴 만큼 강력한 능력이 있더라고.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수야. 먼저 초풍도객에게 가 보자고.”
“초풍도객?”
“아아, 그래. 대충 예상이 가는 것이 있거든. 그 늙은이가 흑검대 대주를 이길 수 있는데도 쓰러진 원인을 알 것 같아.”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이래 봬도 이곳 장주의 아들이라고 했잖아? 그 정도 정보는 그냥 우가장 안의 누구에게 물어봐도 다 알려 줘.”
“그렇군.”
우승빈의 말에 조금씩 대꾸를 해 주며 의원이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周家醫院
“이 근방에선 유명한 곳이야. 우리 우가장의 사람들 대부분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지.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봐 온 사람이 의원이라 그런지 믿음이 안 가. 돌팔이야.”
우승빈의 설명을 들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한 방의 안.
한약 냄새 가득한 방에서 주태(周泰)라는 의원과 만났다.
“오랜만이구나, 승빈아.”
“오랜만입니다, 돌팔이 의원님.”
“일 년 만인 것 같은데, 대체 왜 이렇게 네 소문이 자주 들리는 건지 모르겠구나. 성격은 별로 변한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말이다.”
“돌팔이 의원이라 그런지 감도 나쁘시군요. 아무튼 우가장에서 한 외부인을 맡겼죠? 좀 봐야겠습니다.”
“안 돼.”
“에? 왜 그러십니까?”
일어나려는 우승빈을 주 의원이 어깨를 누르며 막았다.
“우가장에서 환자를 극비로 안전하게 치료하라고 했었다. 아무리 너라고는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지. 사람은 신용이 중요한 것이다. 상인이든 아니든 그것은 각자의 거래에서 무척이나 중요하지.”
“그래서 안 보여 주시겠다…… 이 말씀입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이봐요, 돌팔이 아저씨. 그런다고 내가 들을 놈으로 보입니까?”
주 의원과 우승빈의 눈이 마주쳤다.
사이에서 불꽃이 튀듯 두 남자 모두 강렬한 눈빛이었다.
주 의원이 눈을 돌리며 말했다.
“후우∼ 그래, 내가 언제 널 이긴 적이 있더냐? 그래, 가 봐라.”
“고마워요, 돌팔이 아저씨.”
“그 말 좀 그만할 수 없겠느냐? 아무튼 절대 말하지 말거라.”
“알았다고요.”
우승빈이 손을 휘휘 내저으며 방을 나갔다.
“쯧쯧. 눈은 흔들리고 마음은 불안해. 대체 뭘 하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힘들어 보이는구나.”
“힘든 일이기는 하겠지요.”
이렇게 우가장이라는 곳 깊이 파고 들어오는데 우승빈을 빼고는 아무도 모를 정도면 무척이나 위험한 일일 것이다.
“잘 도와주시오. 저래 보여도 무척이나 연약한 아이이니.”
“알겠습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 봐야지.
바깥으로 나가자, 왼쪽의 복도 끝에서 막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우승빈이 보였다.
나 또한 복도의 끝으로 가서 문을 열고 초풍도객이 있는 방의 안으로 들어갔다.
온몸에 작은 금침(金針)이 꽂힌 초풍도객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우승빈도 보였다.
“뭐하는 거야?”
“잘 봐봐. 너도 알 거야.”
우승빈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옆에 섰다. 그리고 우승빈의 시선을 따라 초풍도객의 하복부로 시선을 돌렸다.
꿈틀! 꿈틀!
“이게 뭐야?”
초풍도객의 하복부가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금침이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혈을 더욱 깊게 눌러가고 있었다.
“위험해, 이러다 죽을 수도 있어. 어서 돌팔이 아저씨를 불러와야 돼.”
우승빈이 굳은 얼굴로 재빠르게 신법을 전개했다.
좁은 공간에서의 신법 전개.
무척이나 위험하나 그 재주에 맞게 능숙하게 방 안을 빠져나가는 우승빈이다.
나는 그런 우승빈을 놔두고 초풍도객의 단전에 계속해서 시선을 두었다.
밀려 들어가는 금침과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하복부.
‘단전이다.’
고의 영향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부위에서만 이런 이상한 일이 생긴다는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초풍도객의 하복부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금침이 있다 보니까 위험할 수 있어서 장심을 올려놓지는 못한다.
‘기를…….’
몸의 안에서 기를 흘려보내자 강하게 반응이 왔다.
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계속해서 기를 빨아들이려 용쓰는 초풍도객의 단전이다.
‘커졌군.’
내 단전에 있던 고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흡수력이다.
‘나로서는 불가능이다.’
염력으로는 상대의 외부에 자극을 주는 것밖에는 하지 못한다.
나의 내부는 상관없지만 남의 내부에, 그것도 단전이라는 곳에 자리 잡은 고를 잡는다는 것은 아직 나의 능력 밖이다.
지금으로서는 우승빈이 빨리 오기를 빌 수밖에는 없다.
“어서, 빨리 봐 달라고요.”
“알았다, 재촉하지 말거라.”
벌컥 문을 열며 주 의원과 우승빈이 들어왔다.
주 의원이 초풍도객의 하복부를 보더니 눈에 띄게 얼굴을 굳히며 다가왔다.
“잠시 비켜 주시오.”
주 의원이 나를 밀쳐 내곤 초풍도객의 몸을 훑어보았다.
“나가시오, 조금의 움직임도 있어선 안 되니 어서!”
주 의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우승빈과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후∼ 돌팔이 의원 아저씨, 저렇게 굳은 얼굴은 정말 처음 보네.]
[그만큼 위험한 일이라는 뜻이지.]
말소리가 들리면 안 되기에 우승빈과 전음으로 대화했다.
[저거 내가 보기에는 늦었어. 돌팔이 아저씨의 실력이 너무도 좋아서 기적적으로 살아나기를 빌어야겠네.]
[그래야지.]
[아, 그건 그렇고. 눈치챘어?]
[지금 잡을까?]
[아냐, 너는 움직이지 마. 내가 잡을 테니까 너는 이곳을 지켜.]
우승빈이 말하곤 몸을 움직였다.
순식간에 희미해지는 기척과 함께 움찔움찔하는 다른 기척이 느껴졌다.
그렇게 우승빈이 복면인들의 혈도를 제압해서 주가의원 밖의 구석진 곳에 모아 두었다.
“이놈들은 뭔가 다른데?”
우승빈이 복면인의 복면을 모두 벗긴 뒤에 복면인들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
“뭐가 다른데?”
“이것 봐, 느낌이 다르잖아. 아무리 봐도 이놈들은 별채에서 잡았던 놈들과는 달라. 눈을 봐봐.”
“눈?”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잘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우승빈의 옆에 앉아서 복면인들의 눈을 쳐다보았다.
이자들도 모두 굳은 결심을 한 듯 보인다.
하지만 무언가 달랐다.
별채에서 잡은 복면인들과는 달리 눈에 정광이 깃들어 있었다.
“정도의 무인?”
“그런 것 같아. 대체 뭘 주워 먹고 싶어서 이곳에 숨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골치 아프게 됐네. 이걸 놓아줄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고.”
우승빈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혈을 풀어 보지? 정도의 사람이라면 자살을 할 리가 없을 테니까.”
“그래 볼까?”
탁! 타다닥!
아혈을 풀자마자 대뜸 중간에 있던 복면인이 말했다.
“칫, 이런 곳에서 너희 같은 인물들을 만날 줄이야…….”
“이봐요, 아저씨. 난 그런 거 관심 없으니까 이곳에 온 이유나 말해요.”
대뜸 말을 잘라 버리며 우승빈이 말하자, 중간에 있던 복면인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말해 줄 수 없다.”
“흐음∼ 이건 뭐일까나?”
“그…… 그것은…….”
우승빈이 언제 빼냈는지 복면인의 물건인 듯한 조그만 패(牌)를 들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대도문(大刀門)? 우와∼ 이것 봐라. 사천에서 놀고먹을 대도문의 분들이 어째서 이곳에 계실까나?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