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61화 (61/175)

# 61

화산천검 3권(11화)

4장 고(3)

키이잉∼

“크윽!”

너무 오랫동안 염력을 집중했던 것인지, 머릿속 한쪽에서 소리가 나며 상단전이 울렸다.

[키에에엑∼]

그에 맞춰 단전에 자리를 잡은 고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커다란 비명을 질렀다.

‘아니?’

그리고 단전에서 느껴졌던 기운이 사라졌다.

‘죽은 건가?’

잘 살펴보자 그건 아니었다.

단전의 구석에 조그맣게 몸을 웅크리고 있는 고가 느껴졌다.

하지만 염력을 없애 보아도, 진기를 집중시켜 보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죽었다면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죽은 것은 아니었다.

‘잠든 건가?’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꼭 잠이 든 것만 같았다.

‘뭐, 다행이지. 현재로서는 저것을 없앨 방법이 없으니.’

잠재적인 위협은 사라졌다.

일단 현재로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펼쳤고,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을 정도의 결과다.

마지막으로 고를 건드려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바로 앞 탁자 위에 앉아 있는 검은 인영.

“흐음∼ 재밌네.”

어느새 왔는지 우승빈이 와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를 하고 있는 무인을 건드리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은 알고 있을 텐데?”

“운기도 하지 않았으면서 무슨. 어차피 건드려도 상관없었잖아?”

“이봐, 장난이 아니다.”

“알았어, 알았어. 장난이야. 난 호법을 서 준 거다.”

“호법은 무슨.”

“지금쯤이면 느꼈을 텐데? 내가 괜히 호법이란 얘기를 꺼낸 줄 아는 거야?”

“…….”

방금까지만 해도 깨어나 활동을 했던 고.

그것과 우승빈의 얘기.

무척이나 불길한 관계가 있을 것만 같았다.

“아아∼ 아직까지도 모르는 거야? 눈치를 챌 만한 상황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아직도 모르다니…… 아아, 모르면 됐어. 나도 귀찮으니까. 언젠가 알게 되면 얘기하라고.”

우승빈이 탁자에서 일어나 나를 등지고 걸어갔다.

“기다…… 려.”

“응? 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우지 않고 계속해서 말하는 우승빈.

그것으로 조금씩 알 수 있었다.

‘고는 가루 상태로 내 몸으로 들어와 단의 형태로 하단전에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그 가루는 대체 내가 어디서 흡입한 것일까?’

조금씩 조금씩 내막으로 다가간다.

우가장의 내막으로.

더욱 깊은 곳으로 정신을 침잠시키며 집중한다.

‘이런 가루를 얻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지. 첫째, 코를 통한 흡입. 둘째, 입을 통한 섭취. 첫 번째는 아니라고 판명되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가 원인이지. 입을 통한 섭취,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지. 내가 먹은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마신 것은 있었지. 시비가 놓아준 녹차.’

거의 다 왔다.

‘그전에는 느껴지지 않았으니 시기적으로 맞는다. 그래, 가루가 몸 안으로 들어온 때는 그때야. 그리고 장주의 건물에서 느껴진 상단전의 예감, 멀리서 혈호가 말했던 불길한 느낌과 안으로 들어가자 느껴진 음습한 한기. 답은 거기다, 장주의 건물.’

추리를 끝내고 눈을 뜨자 우승빈이 크게 대소했다.

“하하하하! 이제야 알아낸 거야? 진짜 둔하단 말이야. 화산파의 인물이라더니 추리 능력은 별것 아니구먼?”

“…….”

무시하는 발언이지만 상대할 필요를 못 느낀다.

지금 묻고 싶은 것은 고에 관한 내용이다.

“그래, 묻고 싶은 것이 있는 거지? 말해 봐. 친절히 대답해 주지, 선검수 나으리.”

우승빈의 눈이 기이하게 흔들리며 열기를 뿜어내는 듯 보였다.

5장 첫 번째 준비(1)

“어떻게 된 거지?”

“이봐, 이봐. 내가 대답을 해 준다고는 했지만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얘기를 하면 안 되지. 내가 무슨 점쟁이인 줄 알아? 네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다 알게? 정확히 요점을 집어서 말하란 말이야. 알아듣기 쉽도록. 알겠어?”

“알았다. 이 우가장, 내막이 있는 거냐?”

“그건 네가 더 잘 알 텐데?”

“그래. 그렇다면 이 하단전의 고, 너도 알고 있나?”

“그럼, 당연히 알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렇게 너와 대화를 하겠어? 모든 시작은 그 고에서부터였어. 내가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도, 일 년 전부터 내가 이곳에서 망나니가 된 것도 말이야.”

“그렇다면 물어보지. 첫째, 이 고가 어째서 하단전에 있는 거지?”

“장소를 생각해 봐. 그리고 네가 마신 것을 생각해 보고.”

“……알았다. 그렇다면 이 고가 단전에 있는 무인의 수는?”

“흠∼ 수는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해 주지. 이곳에 있는 사람들 전체다.”

“전체…… 라고?”

“그래, 전체. 이곳 사람들 모두. 이곳에 들렀던 사람들도,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말이야.”

모두.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우가장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이 고를 가지고 있다는 소리다.

“너도 말인가?”

“흠, 기인(奇人)을 만나서 말이야. 그분이 이 고라는 것을 알려 주셨고, 나를 치료해 주셨다.”

“기인? 누구인지는 알고 있나?”

“몰라, 그저 매우 무서운 인상이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어. 음…… 예를 들자면 산적이랄까?”

“산적이라고?”

“그래, 산적. 아, 얘기가 샜군. 아무튼 일 년 전쯤 그분에게서 치료를 받고 나서 이곳의 내막을 알았다. 한 가지 물어보지. 너는 무언가가 바뀐다는 것을 어떻게 안다고 생각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거지?”

“예를 들자면, 내가 아는 것이야. 내가 아는 것이고 평생 동안 느꼈던 것인데 어째서인지 이상하게 느껴져. 그렇다면 이것은 바뀐 것일까? 아닐까?”

“이상하다고 느껴지지만 그것은 한순간의 느낌일 수도 있지. 상황과 장소, 그리고 마음가짐의 변화에 따라서 느낌이 다를 수 있으니까. 평생 동안 느꼈던 것이 그 한순간에만 다르게 느껴졌다면 그것은 아닌 것이겠지.”

“아니, 바뀐 거야. 이미 내가 다르게 인지한 이상 그것은 다른 것이지. 그리고 모습이 같으니 바뀐 것이고.”

“아무튼, 그렇다면 그게 지금 얘기랑 무슨 상관이지?”

“아아, 잘 들어 봐. 난 이 고라는 것을 알고 난 뒤로 이 우가장이 다르게 느껴졌어. 내가 아는 우가장이 아니야. 예를 들자면, 거미가 뽑아낸 실, 거미줄에 걸린 곤충같이 느껴졌다는 얘기다.”

“거미줄? 그렇다면 거미는?”

“그건 아직 못 알아냈어. 예상은 가지만 믿고 싶진 않아서 말이야. 아무튼 두 번째 질문은 있나?”

“있어. 두 번째, 이 우가장의 내막은 일 년 전부터라고 했지? 그리고 네가 일 년 전부터 망나니가 되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뭐지?”

“흐음, 내가 말했을 텐데? 이곳이 내가 아는 우가장이 아니라고. 나는 말이야, 변화가 두려워. 무언가가 바뀌고, 무언가가 달라지면서 내가 따라가지 못할까 봐 두렵다고. 그렇기에 이렇게 술이라는 것과 반항이라는 것으로 현실을 도피하는 거지.”

“그 얘기가 아니다. 네가 우가장을 거미줄이라고 표현했지? 그리고 그 거미가 누구인지 대충 예상이 간다고도 했고. 그렇다면 네 그런 행동이 그 거미에게 경각심을 심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 텐데?”

지금의 우승빈.

무척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는 잠룡(潛龍)이었다.

그런 자가 망나니짓을 한다면 어떻게 될 줄을 아는데 그렇게 행동한다?

이유가 있지 않고는 그럴 리가 없었다.

“아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이상한 데서 예민하네. 아무튼 알았어, 얘기해 주지. 난 기회를 노릴 뿐이다.”

“기회?”

“그래, 기.회. 거미줄을 잘라내 거미를 고립시켜 죽여 버릴 그 기회를 말이야.”

우승빈이 냉랭한 표정으로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다면 그 기회가 언제가 될지는 알고 있나?”

“흠, 머지않았어. 늦어 봐야 이틀 후야.”

“왜지?”

“너도 있고, 저 녀석도 있고 말이야.”

“저 녀석?”

갑자기 무슨 말이지?

근처에는 아무도 없건만 우승빈은 누군가가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아아, 기다려 보라고.”

“……?”

우승빈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아니, 갑자기 공중으로 뛰어가더니 순식간에 기척을 감추었다.

‘역시 잠행술에 뛰어났던 거군.’

움직이는 것은 보여도 기척이 희미하다.

처음에 느꼈던 것이 맞는 듯싶었다.

잠시 후, 우승빈이 무언가 커다란 것을 들고 내려왔다.

“그건 뭐지?”

“쥐새끼.”

우승빈이 툭 내뱉더니 그것을 던졌다.

“음?”

얼굴로 추정되는 곳에 있는 동그란 두 눈.

온몸이 검은색이라 눈이 무척이나 괴상해 보였다.

‘이자는…….’

내가 보았던 흑풍, 철검파의 분타에서 보았던 그 남자와 유사했다.

“정말로 귀찮아서 말이지. 바스락바스락대는데 얼마나 시끄럽던지. 얘기하는 데 집중을 할 수가 없잖아?”

“바스락바스락댔다고?”

“그래.”

“그걸 들었다고?”

“귀는 좋아서 말이야.”

난 그저 조그마한 동물인 줄 알았다.

매우 조그만 기척, 그리고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기에 그렇게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우승빈은 소리를 듣고 그것이 무엇인지까지 알았다.

이런 쪽에선 엄청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이 녀석 나는 자주 본 녀석이야. 일 년 전부터 나를 감시했어. 맞지?”

우승빈이 물어보는데, 녀석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아, 맞다. 혈도를 제압했었지. 자, 말해 봐라.”

우승빈이 복면을 걷어 내고 아혈을 짚자 녀석의 입술에서 순식간에 피가 흘러내렸다.

순식간에 눈이 풀리며 복면인이 쓰러졌다.

“아이고, 실수했다. 이런 녀석들은 자살도 불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자살한 건가?”

“그래. 보고도 몰라? 이런 녀석들은 아혈을 제압하고 목 부분의 혈도만 풀어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는 것으로 대답하게 했어야 했는데, 실수했어.”

“그런데 이 녀석을 잘 알고 있어?”

“그래, 일 년 전부터 나를 감시하던 녀석이야. 이런 녀석들이 각 건물마다 다섯 명씩은 있어. 그것이 내가 일 년 동안 주변을 잘 살펴본 결과야. 잘 찾아봐. 지금 도망치려 하는 것 같으니까. 준비∼ 시작!”

우승빈이 음흉한 미소와 함께 조그맣게 말하고는 순식간에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우승빈의 말에 나 또한 조금 이상한 기척을 느낀 곳을 향해 암향표 신법으로 몸을 날렸다.

중강검을 빼어 들고 별채의 지붕을 뚫었다.

그러자 무언가를 꿰뚫은 듯한 기이한 고동이 검을 타고 손으로 느껴졌다.

‘잡았다.’

검을 빼내며 벽을 박차고 뛰어오르자, 몸을 빼내려는 세 명의 복면인들과 내 검에 어깨가 꿰뚫려 비틀거리는 한 복면인이 보였다.

그리고 한 복면인의 옆으로 은밀하게 몸을 움직이는 우승빈이 보였다.

우승빈이 순식간에 목을 잡아채고 혈도를 짚자, 다리를 땅에서 떼어 놓은 자세 그대로 복면인이 굳어 버렸다.

우승빈이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순식간에 다른 복면인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그것을 모두 지켜보며 한 복면인을 제압했다.

잠행술에만 뛰어난 것인지, 무공 실력은 별 볼일 없던 듯 순식간에 제압당해 버린 복면인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복면인에게 달려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머리가 아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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