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화산천검 3권(5화)
2장 우가장(3)
‘그래, 총관으로서 이런 말은 모욕적일 테지. 실수했다.’
자신이 몸담은 곳에 치부가 있다, 게다가 자신은 그것을 모르고 방치해 뒀다. 이것만큼 치욕적인 일은 없다.
게다가 아닐 수도 있는 일을 이렇게 함부로 말했으니 화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우 총관은 그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감정 조절에 대단히 능하군.’
무례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웃는 표정, 확실히 범상치 않은 남자였다.
“이틀 후까지 무엇을 하실 예정이십니까?”
“숙소는 당연히 준비되어 있겠지요?”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렇다면 됐습니다. 그거면 충분해요.”
“설마 이틀 동안 그곳에서 두문불출하실 예정이십니까?”
“안 되나요?”
나의 말에 우 총관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 될 것도 없지요, 각자 사정이 있는 법이니.”
“그럼 숙소는 어디입니까?”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보통 이런 것은 하인이 안내해 주지 않나요?”
“화산파에서 오신 분인데 예의가 있지요. 하인에게 안내를 부탁하기에는 거물입니다.”
“아니, 그래 봤자 선검수인데…….”
“이런 중요한 일에 그저 그런 선검수를 보낼 리가 없지요. 분명 특별한 무언가가 있으신 분이지 않습니까?”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만들고, 말실수를 하지 않는다.
뛰어난 말솜씨였다.
“자, 도착했습니다.”
장주가 있던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 별채.
커다란 정원과 가산(假山), 그리고 조그맣지만 매우 맑은 연못.
무척이나 아름답고도 고풍스러운 별채였다.
“이런 좋은 곳을 제 숙소로 내줘도 됩니까?”
어차피 안에 들어가서 이틀간 훈련만 할 것이니, 그저 조그만 암자 정도여도 괜찮은데.
“사양하지 마십시오. 그건 그렇고, 마음이 깊으시군요. 보통은 당연하다는 듯이 들어가시는데…….”
“나이도 어린데 이런 것을 당연히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지요.”
“하지만 자신의 직위를 잘 생각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화산을 대표하여 오셨다면 그에 걸맞게 행동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지 사양만 하시는 것은 자신을 얕보이게 만드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럼요, 그것이 무림입니다. 약육강식, 그것이 무림의 법칙이자 진리지요. 먹히지 않으려면 강해져야 되고, 강해졌다면 그에 걸맞은 위치에 올라야 합니다.”
“그런데 저에게 그런 얘기를 해도 됩니까?”
말 그대로 약육강식이라면 나에게 이렇게 알려 주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인데?
“화산파와 저희 본 가장을 다르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장주님의 말씀입니다. 최대한 많은 호의를 봐주고, 도와 드릴 수 있는 것은 물심양면으로 돌봐 주라는 뜻이지요.”
“장주께서는 화산파에 매우 많은 호의를 가지고 계신 것 같군요.”
“장주께서는 화산파에 속가제자로 들어가 매화검수에 오르셨던 분입니다. 그 이후로 본래의 꿈에 따라 장원을 꾸리셨지요.”
“매화검수셨다면…… 유명하셨을 텐데, 존성대명이 어찌 되시는지요?”
“강호에 별호는 잘 알려지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 실력에 비해 강호에서 활동을 잘 하시지 않으셨거든요.”
“그렇습니까?”
말하기 싫다는 뜻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알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 일단 들어가시지요. 그리고 불편하신 점이나 필요한 부분은 하인을 통해 보고하시면 됩니다. 바로 준비해 드리지요.”
“알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겉과 마찬가지로 매우 고풍스러운 내부다.
장주가 있는 건물이 별채고, 이 건물이 장주가 있는 건물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아니, 본래는 그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연무장으로 쓸 곳이 없어서 어쩌냐…….”
바깥은 정원, 하지만 연무장으로 쓸 곳이 없었다.
보통은 조그마한 공터라도 있을 법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조금 상식을 벗어난 곳이었다.
“몸으론 움직이지 못하니 머릿속에서 움직여야 하나?”
어차피 지금의 경지면 몸으로 움직이나 머릿속에서 움직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상상의 자신이나 현실의 자신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점점 경지가 높아질수록 몸으로 움직이는 훈련은 별 효과가 없다. 육신에 얽매이지 않고 정신의 세계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몸으로 움직이는 것이 더 편하기는 한데…….”
화산의 안에서 상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보단 직접 움직이며 훈련을 한 적이 더욱 많았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뭐, 어차피 익숙해져야 할 일이니 이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흐음,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누구냐!”
뒤쪽에서 들리는 갑작스런 목소리에 황급히 검을 뽑아 들며 몸을 돌렸다.
“이런, 이런. 위험하다고. 화산파의 선검수 나으리.”
손을 위로 들어 올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침입자.
“누구냐고 물었다.”
검을 겨누고 천천히 걸어가자 그가 말했다.
“이거 너무 박한데? 이런 곳에 들어올 정도의 사람이면 당연히 우가장에 관련된 사람이라는 것은 알 것 아닌가?”
“살수들이라면 가능하지.”
“살수가 이렇게 능글맞아?”
“…….”
확실히 할 말을 없게 만드는 발언이었다.
“그 검부터 치우라고. 난 그냥 화산파의 제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러 온 것뿐이라고.”
“그렇다면 그 기운이나 거두고 말해.”
“…….”
나의 말에 녀석의 얼굴이 굳어 갔다.
“흠, 역시 구파라는 건가? 난 내 또래 중에선 눈치챌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미안하지만 자만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나와 비슷한 경지의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
예를 들자면, 마진천과 유혁 사형, 장일 사형 등이다.
“그래? 뭐, 상관없어. 아무튼 그렇다면 거둬 주지.”
속으로 갈무리되는 내력.
‘범상치 않군.’
그에 맞춰 검을 천천히 거두었다.
“휘유∼ 이거 무서워서 어디 다니겠나?”
“그렇게 다가오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하진 않았을 거다.”
아니, 그것보다도 나의 기감을 피해서 이렇게 접근을 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암행술에 재능이 있는 건가…….’
“흠, 그건 그렇고 대단하군. 조금밖에 느껴지지 않는 기이건만 호승심이 들 정도라니…….”
녀석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장난스럽게 얘기했다.
“진심인지 아닌지 모르겠군.”
“난 거짓말은 안 해.”
이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다.
‘누굴 닮은 것 같은데…….’
“흐음, 그런데 세 자루 검이라…… 특이한데? 구파의 제자면서 낭인(狼人)처럼 하고 다니는 거야?”
‘누구랑 닮았더라…….’
“그렇게 들고 다니면 불편하지 않나? 쌍검도 특이할 정도인데, 검이 세 개라면 정말 특이한 건데. 그런데 검 세 자루는 어떻게 쓰나? 입으로 물고 다니기라도 하는 건가?”
‘떠오를 법도 한데…… 저 경박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는 느낌…….’
“이봐, 내 얘기는 듣고 있는 거야? 어이!”
팍!
“윽…….”
등에서 느껴지는 화끈함에 정신이 들었다.
“이제야 보는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면전에서 그렇게 딴생각을 하면 안 되지. 떠들고 있는 사람 무안하다고.”
나의 등을 친 저 손바닥과 그 주인.
녀석을 노려보자 녀석이 피식하고 웃었다.
“생각해 보니 각자 자기소개도 안 했군. 난 우승빈이라고 한다.”
“신분은?”
“말해 주기 곤란한데…… 뭐, 특별히 얘기해 주지. 우가장주의 하나뿐인 아들이다.”
“우가장주의 아들이라고 하면…….”
“다음 대 장주지. 뭐, 별로 시켜 줄 것 같지는 않지만.”
고개를 으쓱하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우승빈.
그제야 떠올랐다.
‘마진천…….’
그를 닮았다.
“이봐, 이제 네 소개도 해 보라고.”
“화산파의 선검수, 청우라고 한다.”
“청우라고? 도문인가?”
“화산파는 도문과 검문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아. 그저 화산파일 뿐이다.”
“흐음, 정말? 네가 바라는 것은 아니고?”
날카로운 말.
화산파 내의 사정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뭐, 상관없지. 아무튼 청우라고 했지? 나이도 비슷한데 친하게 지내자구. 어차피 너도 철검파 분타의 공격에 지원을 하러 온 것 아니야? 그렇다면 나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고.”
“왜지?”
“이봐, 분타의 공격은 우리 우가장이 도맡아서 해. 그러니 그 우가장의 장주의 아들과 친하게 지내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
나를 뭘로 보는 것인지.
대답하지 않고 냉랭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녀석이 웃었다.
“하하하. 뭐야? 못 믿겠다는 거야? 뭐, 물론 내가 이곳에서 망나니로 취급받고 있기는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다음 대 장주라고. 내가 널 보호해 주라고 시키면 당연히 보호해 줄 것이고, 살아날 확률이 높아진다고.”
“그 말의 대상이 누구인지 잘 생각해 봐라.”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여 지적해 주었다.
녀석이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딱! 하는 소리를 냈다.
“음, 그렇군.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너는 구파 중 화산파의 제자였지. 실언을 했군, 미안하다.”
“이제라도 알았다면 다행이군.”
“좀 봐 달라고? 그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한 말일 뿐이니까.”
“…….”
“이봐, 정말이라고.”
별로 믿음이 가는 말이 아니다.
“이거 참, 말 한마디 잘못한 거 가지고 되게 꽁해 있네. 됐어, 내가 피곤하다.”
녀석이 몸을 돌리고 바깥으로 나가려던 찰나,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잠시만…… 엇! 여기 있었구나!”
“쳇, 들켰군.”
들어온 사람은 우 총관이었다.
우 총관이 왼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짓누르며 말했다.
“골치 아프군. 어째서 여기에 있는 것이냐?”
“형이야말로 골치 아프다고. 어째서 매일 나를 찾아다니는 건데?”
“야, 이놈아. 장주님께서 저렇게 아프신데 네가 그렇게 행동하면 어떡하자는 거냐!”
우 총관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우승빈이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저었다.
“아, 시끄러워.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내 인생 내가 이렇게 살겠다는데 뭔 상관이야?”
“그래도 이놈이!”
“아야야, 아프다고. 나도 나이가 있으니 좀 부드럽게 대해 달라고.”
“내가 널 아기 때부터 봐 왔는데, 부드럽게 대하면 더 기어오르는 놈이야, 넌. 그러니 이렇게 확실히 잡아 놔야 돼.”
갑작스런 상황에 어안이 벙벙하였다.
당황스런 얼굴로 쳐다보는데, 우 총관이 정신을 차렸는지 우승빈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우승빈의 귀를 잡던 손을 놓고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승빈이가 실례를 했는지 모르겠군요.”
우 총관이 귀를 만지작거리는 우승빈의 고개를 눌렀다.
“아, 정말. 나 사고 안 쳤다고?”
“네 말을 어떻게 믿어? 아무튼,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그저 조금의 사건밖에는 없었습니다.”
“역시…… 어서 빨리 사과하지 못해!”
“아이씨…….”
우승빈이 투덜거리며 내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것 참, 미안하게 됐수, 선검수 나으리. 아니, 청우. 오랫동안 봐 왔는데도 나를 믿지 못해 나에게 이렇게 사과를 시키네. 일단 표면적으로는 사과를 해야 하니 이렇게 사과할게.”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하는 우승빈이다.
우 총관이 미소를 띠며 나에게 다가와 우승빈의 고개를 푹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