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화산천검 3권(4화)
2장 우가장(2)
“화산파에서 왔소.”
나의 말에 문지기들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지금 커다란 장포를 화산파의 도복 위에 걸친 상태다.
화산파의 상징인 매화 무늬가 없으니 의심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
겉에 입은 장포의 소맷자락을 걷어 안에 입은 도복의 매화 무늬를 보여 주었다.
그러자 두 문지기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자가 문지기와 함께 나의 앞으로 달려왔다.
“화산파에서 오신 선검수, 청우 님이 맞으십니까?”
“예, 맞습니다.”
밝게 빛나는 두 눈에 깃든 정광과 나이 든 얼굴이지만 수려한 외모.
어떤 직위의 남자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저는 우가장의 총관 우문혁이라고 합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나이 어린 나에게도 깍듯이 대하는 태도와 그에 걸맞은 움직임.
‘대단하시군.’
철검파 분타의 공격을 맡은 장원의 총관다웠다.
“지금 우가장은 철검파 분타에 대한 공격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몇 명의 무사밖에는 보이지 않아 그에 대해 물어보자, 우가장 총관 우문혁의 대답이었다.
“그렇군요.”
“화산파 본파에서 직접 연락이 온 만큼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임무이지요. 장주께서도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시고 있으십니다.”
“예.”
“아, 다 왔습니다.”
외원을 넘어 내원으로 들어가,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도착한 우가장의 심처.
커다란 정원이 있고, 그 안으로 조그마한 건물이 있었다.
‘……?’
그런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느껴지기는 하는데 너무도 미약하여 보통의 민초들보다도 못한 기운이었다.
우가장의 심처이니 안에는 장주가 있을 것이 당연한 일인데 보통의 민초들보다도 못한 기운이 느껴지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조금만 더 들어가시죠.”
정원의 입구에서 멈춰 선 것이 이상했던 듯 우 총관이 고개를 갸웃하며 나에게 말했다.
“아, 네.”
‘가서 보면 알겠지.’
그를 따라 조금 더 들어가서 도착한 건물.
우 총관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장주님, 총관 우문혁입니다.”
절도가 있고 존경심이 깃든 말투.
장주의 운영력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들어오게.”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
우 총관이 문을 열고 들어가고 내가 뒤따라 들어갔다.
촤르륵!
치렁치렁한 주렴(珠簾)을 걷어 내고 들어가자 건물의 내부가 보였다.
커다란 탁자가 가운데에 떡하니 있으며, 벽에는 산수화가 걸려 있고, 도자기나 비싼 물건 같은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산수화들도 보통의 화가들에게 살 수 있는 싸구려 물품이었다.
‘소박하군.’
장주가 있는 곳은 장원의 얼굴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꾸며 놓은 것으로 보아 매우 소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장주께서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저 앞에 붉은색의 휘장 너머로 조금씩 검은 인형이 움직인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장주인지는 몰라 물어보자 우 총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주님, 화산파의 사람이 오셨습니다. 그만 나오시지요.”
“몸이 피곤해 움직이지 못하겠구려.”
“또 병이 발병하신 것입니까? 약은 언제 드셨습니까?”
“약을 먹어도 이 병에는 통하지 않는가 보구려. 이렇게 주기적으로 발작을 하는 것을 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 더 이상 우기지는 말게.”
총관과 장주의 얘기를 들어 보니 장주는 심한 병에 걸린 것 같았다.
그렇기에 저 휘장 너머에서 누워 있는 것이고.
“몸이 편찮으시다면 그렇게 대화해 주십시오. 저는 개의치 않으니 편하신 대로 있으십시오.”
“그래 주겠나? 정말 고맙구려. 본파에서 귀한 손님이 왔는데 이렇게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만 몸이 좋지 않아서…… 쿨럭!”
“괜찮습니다, 병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이해해줘서 고맙구려. 쿨럭! 쿨럭!”
목소리를 들어 봐도 무언가 병에 걸린 것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침울한 목소리와 점점 작아지는 말소리.
게다가 가끔씩 기침까지 하고 있어 그 느낌은 확연했다.
우 총관이 휘장의 앞으로 걸어가 탁자의 앞에 섰다.
나 또한 탁자로 걸어가 의자를 빼 앉았다.
“먼저 현재 상황을 알려 드리지요.”
“예.”
소검파와 철검파의 현재 대치 상황.
소문을 듣지 않은 관계로 이런 것은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먼저 소검파와 철검파는 대치 중입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여러 번의 싸움이 있은 관계로 힘을 쏟아붇기에는 두 문파 모두 힘에 부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동안 소검파는 많은 패배를 당했습니다. 가지고 있던 많은 사업체들을 빼앗겼고, 도와주던 문파들 모두 힘에 부친다는 것을 알고 뒤로 빠졌습니다. 소검파의 많은 고수들이 패배했기 때문이지요.”
“전통의 소검파인데 고수들이 패배한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아무리 황신이 있다고는 하지만 황신이 여러 명 있는 것도 아니고, 많은 고수들이 패배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먼저 철검파의 부대를 얘기해 드리지요. 일단 철검파는 흑검대(黑劍隊), 적검대(赤劍隊), 비검대(秘劍隊)의 삼 부대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정보 조직으로 흑영대(黑影隊)가 있지요. 각 부대에는 한 명의 대주와 두 명의 부대주, 그리고 사십여 명의 무인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요?”
그것과 이것이 무슨 상관인가?
“잠시만 더 들으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각 부대의 대주들과 부대주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무공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검파의 고수들은 모두 그들에게 당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각 부대의 대주나 부대주들 중에 당한 사람이 있습니까?”
“두 명 있습니다. 그것도 세 공격 부대 중 가장 약하다는 흑검대의 부대주 둘입니다.”
“그 정도입니까…….”
황신만 조심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각 대의 무인들도 조심해야 되는 것이다.
아니, 황신이라는 고수가 투입될 정도면 그 문파도 나름대로 강할 것임은 당연한 일.
그걸 예상해 내지 못한 내가 이상한 것이다.
“각 부대의 무공이나 대주의 무공과 같은 것은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일단 흑검대는 흑의검법(黑義劍法)이라는 무공을 씁니다. 부대주와 대주의 무공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적검대는 적의검법(赤義劍法)을 씁니다. 마찬가지로 부대주와 대주의 무공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비검대는 비의검법(秘義劍法)을 씁니다. 마찬가지로 부대주와 대주의 무공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흑의검법, 적의검법과 비의검법이 무엇입니까? 강호에는 알려져 있지 않은 무공 아닙니까?”
“예, 본래 철검파라는 문파 자체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문파이지요. 하지만 비매각에서 보내온 정보로는 그 세 가지 검법은 철검파가 이렇게 성장하기 이전부터 있었던 검법이라더군요. 하지만 어째서 그전부터 성장하지 못했던 것인지 찾아봤더니, 이 세 가지 검법이 예전과는 다르게 변했더군요. 그리고 이 세 대주와 여섯 부대주들도 하늘에서 떨어진 듯 어떤 과거의 행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변화한 무공, 그리고 아홉 명의 인물의 과거 행적…….”
무공이 변화했다?
그건 믿을 수 없다.
나의 무공이 변화했다고는 하나 우연에 의한 일.
이렇게 한 문파에서 세 가지 무공이나 변할 리는 없다.
그렇다면 그 무공을 고치거나, 새로운 무공의 이름을 그 무공의 이름으로 했다는 것인데…….
‘게다가 세 명의 대주와 여섯 명의 부대주들.’
이들은 과거의 행적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황신이 있던 곳에서 보낸 것 같았다.
‘마인이 있던 곳이기도 하지.’
왕정치가 그분을 위해서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마인인 왕정치가 그렇게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와 비슷한 마인들이 없을 리 없다.
‘마인들이라…… 아니, 그렇다면 알려졌을 테지.’
마인들의 얼굴은 무척이나 유명하다. 각자 저지른 파렴치한 행각들이 무척이나 독특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나타났다면 분명 강호에 알려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인들이 아니란 얘긴데…… 아니, 새로운 마인일 수도 있지.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마인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생겨나니 말이야.’
그렇다면 정파에 위협적인 마도의 고수가 탄생되었다는 얘기다.
‘그것도 정파에 숨어 들어온 마도의 고수이니 더욱 어렵겠지.’
어차피 방법은 한 가지다.
이번 철검파 분타의 공격을 시작으로 고수들을 처치하는 것.
철검파 본타로의 진격만이 이 문제의 해결법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얘기하자, 우 총관이 고개를 숙이고, 휘장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격은 이틀 후이니 그때까지 잘 준비하시게.”
“걱정 마시지요.”
말하며 싱긋 웃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얘기하는 데 얼굴조차 못 보여 줘서 미안하네, 잘 준비하게나.”
보이진 않겠지만 포권을 취하고 바깥으로 나서자 우 총관이 나를 따라왔다.
“장주께서는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일단 장주가 어째서 일반인보다도 미약한 기를 가지고 있는지는 판명되었다.
남은 것은 어째서 장주가 저런 병에 걸렸냐는 것.
“잘 모르겠습니다. 고명한 의원들도 모두 고개를 저으시니…….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발작을 하는데,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장원이 풍비박산이지요. 그렇기에 장주께서 발작을 하는 날에는 휘장의 뒤에 누워 몸을 속박하십니다.”
“몸을 속박하다니요?”
“일단 오선 중 약선님께서 장주님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중얼거리시더니 일주일 후에 약을 건네주시더군요. 이것을 먹으면 육 일간은 안전할 수 있다고.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발작을 하는 겁니다. 아, 그리고 발작을 하면 장주님의 고절했던 무공이 발현되지요. 저희들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저런 병이 쉽게 걸리는 것은 아닌데……. 독이나 고(蠱)일 경우는 생각해 보셨습니까?”
“생각해 본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장주님께서는 병에 걸리시기 전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저희 장원의 기록부에도 누가 우가장을 방문하여 장주께 모셨다는 기록이 없고요. 그렇기에 저희들이 이렇게 한숨을 내쉬는 겁니다.”
“원래 살수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정문으로 들어올 리는 없지요.”
“장주의 근처에는 본래 스무 명 남짓 되는 직속 호위대가 존재합니다. 지금은 명령에 의해서 다른 곳으로 급파된 것이라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뛰어난 존재지요. 살수가 왔다면 절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아니, 황신이 있는 그 비밀집단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지.’
하지만 저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
알려 줘 봐야 믿지도 않을 테니 말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내부의 적일 수도 있지요. 예를 들어, 장원의 음식을 담당하는…….”
“그만, 됐습니다. 그렇게 의심하다가는 끝이 없습니다. 지금은 그저 장주께서 괜찮아지시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그리고 화산파 본파의 명령도 있는데, 그들을 찾는 데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