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화산천검 3권(3화)
1장 적은?(3)
우우우웅∼
유혁 사형과 비슷한 크기의 검명을 내뿜는 장일 사형의 검.
“하아앗!”
기합성을 내뱉으며 장일 사형이 검을 움직였다.
‘음?’
못 보던 초식이다.
아니, 나는 장일 사형의 조화검 중 마지막 초식만을 보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저것이 장일 사형이 배운 조화검의 마지막 초식.
조화검과 낙화검법의 마지막 초식이 부딪쳤다.
번쩍!
커다란 섬광과 함께 승자가 결정되었다.
유혁 사형은 검을 늘어뜨리고 손목을 잡고 있었고, 장일 사형은 검을 놓쳐 버렸다.
“쳇, 또 졌군.”
장일 사형이 말했다.
“이번엔 질 뻔했다. 역시 만만하지 않군.”
“당연히 만만하지 않아야지. 옛날에는 내가 너보다 뛰어났었는데 말이야. 언젠가는 뛰어넘을 거다, 유혁.”
“얼마든지.”
유혁 사형이 피식 웃자 장일 사형이 유혁 사형에게 다가왔다.
“누가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이제야 눈치챘나? 느리군.”
조그맣게 들리는 소리.
집중을 한다면 들을 수 있는 소리지만 나는 그 소리에 집중할 수 없었다.
‘마지막 섬광…….’
그사이의 일을 나는 두 눈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유혁 사형의 낙천화가 내리꽂히고, 장일 사형의 검이 움직였다.
거센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움직임.
막히자 순식간에 변화하여 굳건한 방패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꿰뚫리면 또다시 변화하여 노도와 같이 뻗어 나간다.
하지만 아직 성취가 모자란 듯 마지막 찌르기에서 낙천화에 밀려 버린 조화검이다.
‘장일 사형의 성취가 조금만 뛰어났더라면…….’
그랬다면 승자는 누가 되었을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연속적으로 계속해서 변화하는 그 초식은 정말 대단했다.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이 내가 숨어 있는 풀숲을 유심히 쳐다보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나와라!”
목소리가 귓전을 크게 울렸다.
‘음? 들켰나?’
검을 내가 있는 풀숲을 향해 겨누고 있는 유혁 사형.
입맛을 다시며 앞으로 나갔다.
“너는…….”
“오랜만입니다, 사형들.”
포권을 취하자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이 다가왔다.
“오랜만이군, 청우.”
“많이 컸군, 우리의 비무를 훔쳐볼 정도라니.”
말없이 웃자 유혁 사형이 말했다.
“그건 그렇고, 온 목적이 뭐지?”
“일 년 전의 사건에 대해 알아보려 왔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의 얼굴이 굳어졌다.
장일 사형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래, 생각해 보니 너에게 알려 주지 않았구나. 네가 가장 궁금해했을 텐데.”
“아니, 어차피 저도 시간이 없었습니다.”
“음…… 뭐부터 얘기할까?”
“먼저 상대의 인상착의에 대해서 알려 주십시오.”
“일단 적은 다섯 명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겐 한 명씩 붙었고, 무진 장로님에게는 세 명이 붙었지. 강적이었다. 우리 둘 다 마지막 초식이 아니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그건 그렇고, 무진 장로님은 정말 강하시더군. 우리가 겨우 이긴 그 복면인을 무진 장로님은 단신으로 세 명이나 가뿐히 물리치셨으니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다섯을 물리치고 앞으로 가는데, 누군가가 앞을 가로막았다. 똑같이 다섯이었지.”
으드득!
장일 사형이 이빨을 갈았다.
그만큼 원한이 크단 얘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두 명이 우리에게 달라붙었어. 무진 장로님에게는 똑같이 세 명이 달라붙었지. 하지만 우리 둘은 지쳐 있기에 상대하기 벅찼다. 게다가 무진 장로님에게 붙은 한 명은 정말로 강했다. 일곱 개의 묵색 창을 쓰며 무진 장로님을 압박했지. 하지만 무진 장로님보다는 약해 보였지만, 두 명의 복면인이 있었기에 무진 장로님 또한 힘들어하셨지. 게다가 우리 둘까지 보호해 주시느라 결국 그 묵색 창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마지막에 무슨 일인지 서로 말을 주고받더니 도주하더군.”
“그것이 끝입니까?”
“그래, 그게 끝이다.”
‘일곱 개의 묵색 창. 황신…….’
생각나는 남자는 이 남자뿐이다.
황신.
종남파와의 합동훈련 때 나를 일격에 쓰러뜨리고, 마진천에 의해 물러갔던 그 남자.
그 남자를 빼고는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강호에 수많은 고수들 중에 묵색의 일곱 창을 들고 다닌다는 고수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남자는 그 남자뿐이니 아마 내 예상이 맞을 것이다.
‘황신…….’
그때 그에게 일격에 패배한 이후부터 뛰어넘으려 노력했었다.
‘그를 쓰러뜨릴 이유가 하나 더 생겼군.’
으드득!
“그런데…… 보니까 떠날 예정인가?”
귀신과도 같이 알아맞히는 유혁 사형이다.
고개를 끄덕이자 장일 사형이 말했다.
“복수를 위해서냐?”
“그렇기도 하고, 개인적인 이유도 있지요.”
황신을 쓰러뜨리는 것.
복수이자 나 자신의 개인적인 목표다.
“일단 한마디 하자면 무리하지 마라. 우리가 상대해 봐서 아는데,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철검파, 위험해.”
“예, 그래서 저 혼자 행동하진 않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그 심정은 이해가 간다만 무리하지는 말고, 성급하게 행동하지 말아라. 사부에 이어 제자까리 쓰러지면 그게 무슨 망신이냐?”
“그렇지요, 그러니 절대 지지 않습니다.”
꽉 쥔 주먹에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이 눈길을 주곤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언제 떠날 예정이냐?”
“내일 아침 동이 트면 떠날 예정입니다.”
“그래, 잘 갔다 와라.”
툭툭 어깨를 쳐 주고 사형들이 등을 돌렸다.
어깨에 느껴지는 온기에 손으로 잠시 매만지고 나 또한 등을 돌렸다.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악연으로 만났으나 모두 변한 착한 사람들이다.
‘황신…….’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에 의해 알아낸 내가 복수할 사람이다.
하지만 그를 찾을 방법은 없다.
‘어차피 철검파다.’
소검파를 지원하러 가던 중 사부가 습격을 받은 것이니, 비매각의 추측대로 철검파가 배후가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철검파에 쳐들어가면 그 심처에 그가 있겠지.
적어도 그가 보통의 평무사이진 않을 것 아닌가?
‘물질적인 준비는 마쳤고, 남은 것은 마음의 준비다.’
내일이면 출발이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 긴장이 되진 않지만 내일이 되면 실감이 날 것이다.
너무 들뜨는 것도 좋지 않고, 너무 가라앉은 것도 좋지 않다.
냉정하게, 평소와 같게.
“후우∼”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쉰다.
연무장의 휴신석에 앉아 대자연의 기운을 몸에 들이고 다시 내뱉으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얼마 남지 않았다.’
동이 틀 때까지 몇 시진 남지 않았다.
운기를 하고 있으면 금세 지나가 버릴 시간.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안 돼, 일러.’
기운을 중단전으로 휘돌리며 진정시켰다.
‘후우∼’
점점 안정되어 가는 마음.
동시에 점점 시간도 흘러갔다.
어두웠던 하늘이 개어지고, 밝은 태양빛이 눈꺼풀로 뒤덮여 있는 눈에 내려앉았다.
“아침이군.”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저 멀리 태양이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 가자.”
검을 한 번 튕기고 몸을 움직였다.
2장 우가장(1)
“오랜만이에요, 사부.”
커다란 방의 안, 침상에 누워 있는 사부가 보였다.
옆으로는 많은 약과 탕들이 보이고, 그 옆으로 오랜만에 보는 성의가 보였다.
하지만 성의에게 인사를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사부를 보자 가슴이 북받쳐 올랐다.
주름살 하나 없으시고, 하얀 머리카락 하나 없으셨던 분인데, 어느새인가 이마에는 주름살이 생기셨고, 머리카락은 점점 하얗게 변해 가고 계셨다.
게다가 사부는 눈도 뜨지 않고 계셨다.
그저 숨을 내뱉으며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 줄 뿐이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다치신 거예요…….”
일 년 동안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말이 터져 나왔다.
오면서 울지 않기로 다짐했건만 눈물이 났다.
소리 없이 떨어지는 눈물이 앞섶을 적셨다.
사부의 옆에 앉아 소리 없이 오열하고, 잠시 후 마음이 진정되자 성의에게 정신이 미쳤다.
“오랜만인데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드려 죄송합니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구나. 그때 완벽히 치료를 하지 않았었는데, 알아서 잘 치료해 다행이다. 역시 무림인들은 민초들과는 달라.”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언제쯤 일어나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까?”
성의가 대답했다.
“이 상태라면 아마도 일 년에서 이 년 정도면 정신을 차릴 것 같구나. 물론 안정이 필요하겠지만…….”
“일 년에서 이 년…… 아직 많이 남았네요.”
“짧은 시간이지. 너희 무인들로 치자면 무공을 수련하고 있으면 어느샌가 지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짧은 시간이라…….”
손을 매만지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이렇게 온기가 느껴지고 숨을 쉬고 계시는데 어째서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가?
어째서 나에게 호통도 치지 않고, 나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는가?
그 사실에 가슴이 무척이나 아팠다.
큰 칼로 가슴을 난도질당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누워 있는 사부를 보는 것이 이렇게나 슬픈 일인 줄 몰랐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장포 자락으로 눈을 문질러 눈물을 닦고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울고자 온 것이 아니다.
사부가 일어나실 때까지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 안에 사부의 복수를 해야 한다.
그렇게 결심하고 오지 않았던가?
“다음번에 봬요, 사부. 치료 잘 부탁드립니다.”
“나에게 치료를 받은 사람 중에서 죽은 사람은 없다. 걱정 말고 가거라.”
성의에게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바깥으로 나섰다.
목적지는 우가장, 그리고 목표는 철검파.
‘황신…… 절대 가만 놔두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며 우가장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며칠 후 도착한 커다란 장원. 커다란 대문, 그 앞에 두 명의 문지기가 서 있었다.
날카로운 눈초리와 뿜어져 나오는 기세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 수준을 알 수 있었다.
“대단하군.”
아무리 문지기가 그 문파의 얼굴로서 무공이 뛰어난 자를 배치한다지만, 이 정도면 가히 수준급이었다.
일개 장원 정도가 아니었다.
화산파 속가제자가 세운 장원이라고 하던데, 그 속가제자가 누구였는지 궁금해졌다.
이 정도의 장원을 세울 정도면 한 장원을 꾸려 나갈 운영력은 물론이고 그 무공 또한 뛰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세간에 소문이 날 것은 당연한 일.
세간의 소문은 조금 부풀려지고 뒤틀려진 감이 없지 않아 우가장에 대한 소문을 잘 들으려 하지 않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잘못 생각했었던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우가장에 대한 소문은 실제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정문으로 다가가자 한 문지기가 창으로 문을 가로막았고, 옆에 있는 다른 한 문지기가 나에게 말했다.
“지금 우가장은 손님을 들일 수 없소이다. 죄송하지만 다음번에 와 주시면 감사하겠소.”
굽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곧지도 않다.
적당히 예의를 차리며 축객령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