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51화 (51/175)

# 51

화산천검 3권(1화)

1장 적은?(1)

“아직 멀었구나.”

발검(拔劍).

검을 빼는 기술.

발검의 극의(極意)는 바로 극쾌(極快)다.

현란한 변화, 힘으로 찍어 누르는 중을 속도만으로 제압하는 극한의 쾌.

그것이 발검의 극의다.

그리고 그것이 쾌검술을 단련하는 무인들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후우∼”

숨을 내뱉자, 긴장으로 떨리던 몸이 점점 안정되어 갔다.

주변은 아수라장이었다.

크디큰 아름드리나무가 줄기 부분에서 예리한 무언가에 베인 듯 매끈한 단면을 내보이고 있고, 공터의 흙들에는 깊은 족적(足跡)이 새겨져 있었다.

이런 흔적은 한 가지.

검무(劍舞)다.

‘아직인가…….’

매화검로, 일 년간의 수련으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 한 가지 초식의 극의조차 제대로 체현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매화초개는 발검이 주(主)다. 발검의 극의는 극쾌. 아직은 무리인가…….’

무음의 검은 이미 예전에 이룬 경지다.

반년 전에는 빛살과도 같은 속도, 분광검법과 비슷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보다도 빠르게 검을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아니다.

이것은 매화검로 일 초, 매화초개의 극의가 아니다.

‘그 어떤 것도 통하지 않는다. 방어는 헛수고, 모든 것을 꿰뚫는 첨예한 창의 극쾌의 일격. 그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다.

지금과 같은 속도도 만족하지 못한다.

강호에는 무수한 무공이 있다.

그리고 기인이사(奇人異士)도 모래알만큼 많다.

그중에는 나의 발검보다 빠른 속도의 검술을 펼치는 무인이 있을 수 있다.

나는 그 사람들도 뛰어넘어야 한다.

‘…….’

스윽∼

다시 한 번 시도한다.

검병을 꾹 쥐고 왼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세 개의 검 중 사부가 준 청운검의 검병이 느껴졌다.

목표는 앞의 아름드리나무.

‘마지막 한 번이다.’

집중하자, 주변이 느려져 갔다.

출렁출렁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저것이 기(氣)다.

대자연에 충만한 만물의 근원, 기.

그 흐름이 눈에 보이는 상승의 경지에 들어선 순간.

‘지금!’

앞으로 일보 내디디며 검을 뽑았다.

철컹!

청운검이 검집에 들어갔다.

앞으로 다가가 아름드리나무를 밀었다.

쿠웅!

커다란 굉음과 함께 쓰러지는 나무.

‘역시 안 되는군.’

이번에도 실패다.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돌아서려는 순간,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건…….’

예리한 단면이나 조금 그을려 있었다.

‘……뭐지?’

매화종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단면이 그을려 있었다.

‘아니, 조금 다르다.’

매화종지의 단면은 번개에 맞은 듯한 타들어 감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그을려 있는 형태다.

‘다르나 비슷하다.’

매화종지는 기의 틈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뇌(雷)의 기운을 띤다.

그러나 지금의 매화초개는 뇌에 가까운 화(火)의 기운이다.

‘다른 발전이군.’

원했던 것은 극쾌다.

하지만 얻은 것은 화의 기운이다.

발전한 것이기에 좋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만족하면 안 된다.

“후∼”

온몸이 땀범벅이다.

앞머리가 얼굴에 달라붙어 기분이 나빴다.

일 년에 가깝게 자르지 않은 머리이다 보니 나의 앞머리는 코를 넘어 인중 근처까지 내려와 있었다.

“잘라야겠지?”

취운암에서 옷을 챙기고 계곡으로 향했다.

촤아아∼

시원한 계곡물이 뜨거운 열기를 가라앉혔다.

다 씻고 나와 옷을 갈아입고, 계곡물을 거울삼아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치렁치렁한 앞머리, 별 상관은 없지만 싸울 때에는 방해가 될 뿐이다.

스릉∼ 사아악∼

검을 뽑아 베자 잘린 앞머리가 바람을 타고 날았다.

자른 상태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따질 때가 아니다.

검을 환집하고 취운암으로 돌아왔다.

연무대는 엉망진창, 취운암은 오랫동안 쓰지 않고 있다 보니 먼지가 쌓여 있었다.

“마지막일 수도 있는데 정리해야지…….”

내가 기약한 날짜, 일 년.

이미 거의 가까워졌고, 나도 대충 걸맞은 실력을 가꾸었다고 자부한다.

떠날 수 있다고 하면 바로 떠날 바, 마지막 날인데 이렇게 더럽히고 나갈 수는 없다.

연무장은 어쩔 수 없지만 취운암은 치울 수 있지 않은가?

안으로 들어갔다.

사부가 수련 도구를 꺼내던 궤, 차가운 침상. 그리고 사부와 같이 앉아 밥을 먹던 식탁.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먼지가 쌓인 추억의 물품들이다.

일각 정도를 움직여 깨끗이 닦아 내고 밖으로 나왔다.

해가 지려 하고 있지만 장문인께 가는 데는 늦지 않은 시간이다.

찬찬히 길을 따라 걸어 상궁의 매화각으로 향했다.

가던 길, 누군가를 만났다.

“오랜만이군. 날 기억하나?”

분홍색에 가까운 붉은색의 도복. 그리고 말투에서 드러나는 급한 성정.

“은우?”

“아직 기억하고 있군.”

아직 말투에 그 성정이 남아 있지만 그때와는 다른 여유 있는 웃음을 짓는 은우다.

“변했군.”

좋은 변화다.

은우가 나의 말에 피식 웃었다.

“사람은 원래 변하는 법이지. 게다가 도문을 지향하는 이상 이 변화는 필연적인 일이다.”

“그건 그렇지.”

“일 년 동안 두문불출하더니 무슨 바람이 불어 이렇게 나왔나?”

“때가 되었다.”

“때? 아, 그 일 말인가?”

“음? 알고 있나?”

무진 사부에 대한 일은 그날 이후로 연화를 빼고는 누구에게 얘기도 하지 않았다.

연화가 그런 얘기를 떠들고 다닐 애는 아니니 아는 사람이 없어야 당연한데?

“구파 중 일익, 화산파의 장로님이 당한 일이다.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이지.”

“그건 그렇지만…….”

“뭐, 네 실력을 알기에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 철검파에 쳐들어갈 생각을 하다니, 그 실력을 너무 믿는 것 아닌가?”

은우의 말에 그저 싱긋 웃어 주고 그의 옆을 지나갔다.

“얘기가 끝나면 선검수의 훈련 장소로 와라, 모두 기다리고 있다.”

은우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일 년 전에 악연으로 시작한 인연이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 은우는 달라져 있었다.

그전과는 다른, 조금은 부드러워진 성격.

은우의 말대로 일 년 동안 두문불출하였기에 누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모른다.

알고 있던 인연, 이렇게 이어 갈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 이후로 얼마간을 걷자 매화각이 보였다.

‘이건 익숙해지지가 않는군.’

매화각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기운.

화산파 장문인의 기운은 대단했다.

이렇게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되건만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강렬한 기운이다.

사부와는 다른, 또 다른 천외천(天外天)의 경지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안에 있던 기운들이 살며시 움직였다.

‘매영…….’

장문인의 직속부대, 매화의 그림자들.

그전에는 그저 숨어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정확히 어디에 숨어 있다는 것은 모르지만, 그 기운은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움직이기만 한다면 대충 어느 지점에서 움직이는지는 알 수 있을 정도다.

“들어오거라.”

장문인의 허락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부드럽게 열리는 문과 눈앞에 보이는 매화각의 내부.

예전과 똑같다.

책상 가득 높이 쌓여져 있는 문서들과 천천히 붓을 움직이는 장문인.

포권을 취하자 장문인께서 고개를 들으셨다.

“흐음…….”

기묘한 탄성을 내지르는 장문인이시다.

“어떻습니까?”

저 정도의 실력이라면 나의 경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게다가 내가 숨기고 있지 않고, 나의 기운을 줄기차게 내뿜고 있으니 더욱더 나의 경지를 알기 쉬울 것이다.

“조금 모자란 감이 있기도 하지만…… 일단은 합격이군.”

장문인께서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합격…….’

합격, 철검파에 복수할 수 있다는 소리다.

“이미 비매각에서 정보는 잡아 놓았다. 내일 하산하여 우가장(禹家藏)으로 향하도록. 속가제자가 세운 장원이고, 또한 이번 철검파 분타의 괴멸 작전을 이행할 장원이기도 하다. 그들과 같이 행동하도록. 우가장의 철검파 분타 공격은 칠 일 후다. 사 일 안에 도착하도록. 그래야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네. 그리고 명령을 이행한 후에는 비매각을 통해 또 다른 지령이 올 것이다. 지령을 따라 행동하도록.”

“알겠…… 습니다.”

화산파의 명에 의해서 움직여야 한다.

사부의 복수이니 내가 혼자 움직이고 싶지만 철검파는 화산파의 적이다.

이미 무진 사부를 공격한 이상 철검파와 화산파는 완벽한 적이다.

그리고 그 제자인 나라 할지라도 철검파에 대해서 개인 행동은 용납하지 못한다.

아쉽기는 하지만 무진 사부의 제자이기 전에 화산파의 문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고 포권을 취한 뒤 밖으로 나왔다.

‘하아…….’

안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위했지만 나오자 속이 쓰렸다.

“아쉬움은 털어야지…….”

변할 수 없는 일이면 그에 대한 감정은 털어 내야 된다.

“할 일은…… 그래, 선검수들의 훈련장.”

은우에게 들은 말이 있다.

모두들 모여 있다는 그 말.

가벼운 발걸음으로 몸을 움직였다.

선검수들의 훈련장.

오행진인께서 계셨던 전각과 처음으로 은우와 배운정, 금정일과 육언, 패경욱과 악소군을 만난 연무장.

이미 선검수들의 수업은 끝난 지 오래다.

전각 안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연무장에서는 많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일 년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진 일곱 사람.

은우와 배운정, 금정일과 육언, 패경욱과 악소군, 그리고 연화다.

연무장의 안으로 들어서자 떠들고 있던 일곱 남녀가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제 왔냐는 표정의 금정일.

가면을 집어 던진 육언.

냉막한 인상의 패경욱과 악소군.

부드러워진 은우와 비슷한 배운정.

그리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연화.

“오랜만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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