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50화 (50/175)

# 50

화산천검 2권(25화)

9장 사부(3)

스걱!

악소군은 허벅지다.

깊게 베어 들어간 검, 악소군의 왼발은 마비다.

최소 이 주의 요양은 필요한 정도의 상처다.

하지만 의원에 가면 일주일도 되지 않아 치료는 끝나겠지.

‘그렇게는 안 되지.’

“크윽…….”

발로 차자, 악소군이 얼굴을 악귀와도 같이 일그러뜨렸다.

검으로 목을 찔러 들어갔다.

챙!

또다시 누군가가 막아섰다.

어떻게 이렇게 누군가를 죽이려 할 때마다 앞을 막는가.

내가 누군가를 베는 것을 하늘이 막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점점 마음속의 분노가 흔들린다.

“이번에는 누구냐?”

말을 하며 그 상대를 쳐다봤지만 검을 겨눌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친구, 연화였기 때문이다.

“죽이면 안 돼. 맘에 들지 않아도 같은 문파의 사람이야.”

같은 문파의 사람.

그렇다. 녀석들은 같은 문파의 사람, 죽이면 안 된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들리지 않는다.

“녀석들도 어차피 검문과 도문으로 나뉘었어. 이미 같은 문파의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거다. 어차피 저 녀석들도 인정하지 않는데, 내가 사정을 봐줄 이유가 없지.”

연화의 몸을 밀어내고 악소군의 앞에 섰다.

“크윽…….”

내상을 입었는지 악소군의 입술에서 계속 피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왼쪽 허벅지에 깊은 상처.

일주일 정도의 상처가 한 달 정도의 상처로 변해 있었다.

‘이 정도로도 안 되지.’

그 정도로는 참지 못한다.

내 마음은 더 큰 것을 원하고 있었다.

퍽!

배를 누르고 검을 아래로 내리쳤다.

캉!

또다시 막는다.

이번에는 연화라도 참지 못한다.

검을 타고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보지도 않고 검을 휘둘렀다.

콰앙!

커다란 반탄력.

“네 녀석…….”

연화는 아니었다.

금정일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거리낄 것이 없다.

이미 자색으로 물든 시야, 보이는 것은 흐릿한 윤곽일 뿐이다.

쾅! 캉!

앞의 두 녀석과는 다르다.

내 공격을 차분하게 막는 녀석이다.

이런 실력이라면 금정일을 빼면 한 녀석뿐이다.

‘육언.’

그렇다면 실력을 더 숨길 필요가 없지.

진기를 극성으로 끌어 올리자, 검에 깃든 자색의 기가 더욱 짙어졌다.

휘익∼ 스걱!

“…….”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검.

화끈한 통증이 온몸을 휘달렸다.

쾅! 콰앙!

육언은 역시 강했다.

초식을 펼치지 않고는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쾅! 턱!

검을 맞부딪치고 맞댄 상태로 손을 놓았다.

“무슨…….”

갑작스런 상황을 이해 못하는 육언.

손을 내려 중강검을 뽑아 들었다.

매화초개, 극쾌의 발검이다.

스걱!

가슴을 베어 들어가는 중강검.

‘들어갔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진 못했다.

그래도 타격은 있다.

가슴을 벤 것은 치명적이다.

왼손으로 앞섶을 찢어 내는 육언.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매화검로 이 초 매화부석을 전개했다.

카가가가강!

“크윽…….”

가슴이 베였고, 틈을 노렸는데도 막아서는 모습의 육언은 가히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이후의 연격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매화검로 이 초에서 삼 초 매화번복이다.

우우우웅!

벌 떼가 날아오는 듯한 검명이 울렸다.

터져 나갈 듯 부풀어 오르는 소매와 부르르르 진동하는 검신.

그것에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육언이 얼굴을 굳히며 검에 기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녀석의 검신도 진동을 했다.

이번으로 끝을 내려는 듯 전력을 다하는 육언이다.

그 경력에 전율이 일었다.

콰드드드득!

땅을 뒤집는 강렬한 위력, 매화번복이 발현되었다.

콰아아아앙!

맞부딪치는 검.

그와 동시에 자색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사이로 볼 수 있었다.

경악한 표정의 육언과, 자색의 검과 맞부딪쳐 점점 실금이 퍼져 나가는 육언의 검을.

파아앙!

검이 깨졌다.

아직도 힘을 잃지 않은 자색의 검은 육언의 가슴을 향했다.

콰아앙!

모래 먼지가 시야를 뒤덮고, 잠시 후 바람과 함께 모래 먼지가 날아갔다.

“크윽…….”

들끓는 내력, 가슴이 뜨겁다.

“어째서…….”

검은 육언의 옆에 박혀 들어갔다.

아까의 폭음과 모래 먼지는 그것 때문이다.

“큭…….”

갑작스럽게 기를 제어하느라 단전이 들끓었다.

심각하지는 않지만, 재빨리 운기조식을 해야 할 만큼의 내상이었다.

“…….”

조용히 육언의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행했다.

전력을 다한 검을 비껴 낸 것이라 생각보다 내상이 컸다.

재빨리 들끓는 내력을 움직여 몸으로 휘돌리며 제어해 나갔다.

그렇게 대충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몸을 일으켰다.

앞은 연화와 금정일이 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허벅지를 다친 악소군과 등을 베인 은우, 그리고 검신이 깨져 검병밖에 남지 않은 검을 들고 있는 육언이 보였다.

“아, 괜찮아?”

내가 일어난 것을 보고 연화가 말했다.

그러자 다들 내가 운기를 끝냈다는 것을 알았는지 나를 쳐다보았다.

“후우∼”

나의 청운검은 아직도 땅에 박혀 있었다.

너무나 깊게 박혀 뽑아 드는데 몸이 휘청했다.

“조심해.”

내 몸을 받쳐 준 연화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육언을 보았다.

육언의 얼굴은 기괴했다.

“어째서 마지막에 초식을 끝까지 전개하지 않았지?”

기괴한 얼굴의 이유는 이것이었다.

“……죽일 수는 없으니까.”

“죽일 각오로 덤빈 것이 아닌가?”

이미 가면은 집어 던졌다.

인자한 표정 대신 진지한 얼굴이었다.

“물론 그전이야 그랬지. 저 녀석 덕분에 막고 있던 감정이 폭발했거든.”

은우를 노려보자, 은우가 고개를 숙였다.

“그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우리들이 조금 심했던 것은 사실이니까.”

금정일이 말하길, 육언은 인자함이란 가면을 쓴 사기꾼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가면을 벗고 보니 달랐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생각이 있는 자였다.

금정일과 마찬가지로 다른 자들과는 다르게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느꼈다.

“아무튼 그것 때문에 끓어오르는 살기에 몸을 맡겼었지. 솔직히 나는 죽일 작정이었다.”

그것에 악소군이 뭐라 하려 했지만, 육언이 막았다.

“하지만 말했듯이 연화가 막고, 금정일이 막고, 계속해서 누군가의 검이 막자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너와 부딪치고, 너희들이 계속해서 막는 이유가 생각났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전개하지 않은 거지, 죽이면 안 되니까.”

“어째서? 나라도 죽일 것 같았는데…….”

금정일의 말이다.

내가 어째서 정신이 들고 죽이지 않자고 작정을 했냐고?

그전까지는 정말로 죽이려고 했으면서?

파벌을 나누는 사람들은 모르는 이유.

연화와 나나 보평제자들은 알고 있는 이유.

지금 말한다.

어째서 내가 이들에게 실망을 하고,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던 것인지를.

“우리는 검문과 도문이 아니야.”

갑작스런 나의 말에 육언이 고개를 들고, 금정일이 나를 쳐다보았다.

“너희와 같이 파벌을 나눌 필요가 없어.”

나의 말에 악소군이 앞으로 나서며 손을 내저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틀렸다. 화산은 검문과 도문이 합쳐진 문파다. 두 파벌은 서로 협력자면서 경쟁자야.”

“맞는 말이지만, 틀렸어.”

“무슨 소리지?”

“우리는…… 화산파다.”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닌가?”

아직도 이해를 못했는가?

아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몇 년 동안 그렇게 생활을 했으니 그것이 머리에 박혀 들었겠지.

“우리는 화산파다. 검문과 도문이 아니야. 내가 마지막에 너를 죽이지 못한 것은 그것 때문이야. 검문과 도문을 떠나 우리는 화산파라는 같.은. 문파의 제자다. 죽일 수는 없지.”

나의 말에 육언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금정일의 얼굴이 굳어졌다.

저들은 어째서인지 모르고 있던 것.

이것이다.

검문과 도문을 떠나, 우리는 화산파의 문하다.

이렇게 싸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알았으면 난 간다. 할 일이 많아서…….”

그렇다, 나는 일분일초가 모자라다.

단기간에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떠드는 시간도 솔직히 아깝다.

물론 필요한 일이기에 말하기는 했다만…….

“같이 가.”

연화와 함께 취운암에 도착했다.

“이제 말해 줘. 무슨 일이야?”

“사부가 쓰러졌대.”

“무진…… 장로님이?”

“응, 그래서 내가 불려간 거야. 의식이 없다고 했어.”

“그렇다면…….”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도 다쳤어. 하지만 사부만큼 심하지는 않다고 하더군.”

“아니, 그것보다도 무진 장로님과 두 평검수를 그렇게 만들 정도면 정말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고수라는 건데…….”

“철검파가 그 습격자들의 배후 같대.”

“그럼 너도 철검파로 가는 거야?”

“아니, 불가능하다고 했어.”

“그럼…….”

“하지만 방법은 있지. 장문인께서 강해지라고 했어. 강해진다면…… 가능할 거야.”

주먹을 꾹 쥐었다.

연화가 그것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일부터는 그럼 선검수 훈련엔 나오지 않는 거야?”

“응,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훈련을 해야 돼. 저곳에서 한가히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련을 할 수 없어. 계속해서 몸을 움직여야 돼.”

“알았어, 그럼 난 가끔씩 올게.”

“응, 가 봐.”

연화가 떠나고 난 뒤에 나 혼자 남은 취운암.

차가운 바람이 몸을 휘돌았다.

그 느낌에 부르르 몸이 떨렸다.

‘사부가 쓰러졌다…… 강한 자들일 거다.’

철검파는 약하지 않았다.

소검파에 싸움을 건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해지면 된다.’

저들을 이길 수 있도록 강해지면 된다.

장로님들과 비견될 수 있도록, 무진 사부를 습격한 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계속해서 정진해야 된다.

‘시간이 오래 걸려선 안 돼.’

화산파가 전력을 다한다면 철검파는 일 년, 아니 반년도 넘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무진 사부가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탐색을 할 것이다.

그 탐색을 삼 개월 정도로, 그리고 일개 문파에 전력을 다할 수는 없을 테니 조금씩 압박을 가할 것이다.

그렇게 어림잡아 일 년.

이것도 많은 것이다.

일 년 안에 엄청나게 강해져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그러기 위해서는…… 매화검로다.’

이미 그 위력은 무진 사부의 검과도 비견된다.

그저 내가 그 위력을 온전히 이끌어 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 위력을 이끌어 내고, 그 여파로 몸이 더욱 빨라지면 된다.

그렇다면 이길 가능성이 있다.

내가 복수를 할 수 있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도 이르다고 했지. 일 년이다, 그 시간만 참으면 돼.’

삼백육십오 일.

수련을 하고 있으면 빨리 지나갈 것이다.

‘나는…… 강해진다.’

검병을 꾹 쥐는 손에 강한 힘이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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