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49화 (49/175)

# 49

화산천검 2권(24화)

9장 사부(2)

“청우, 당장 상궁의 매화각으로 가거라.”

“예? 무슨 일로…….”

왜 갑자기 나에게 얘기가 넘어오는 것인가?

“어서! 급한 일이다.”

굳어진 얼굴에 진지한 말투.

심각한 일이라는 생각에 나 또한 얼굴을 굳히며 바깥으로 나가 암향표를 전개했다.

나무들이 뒤로 빨려들듯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전과는 다른 속도다.

마음의 변화가 이렇게 큰 변화일지 몰랐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매화각.

안에서 거대한, 하늘을 찌르는 듯한 기가 느껴졌다.

‘검선…….’

대 화산파의 장문인이시다.

전에 만났을 때는 몰랐던 거대한 존재감이 매화각 바깥으로 줄기차게 뻗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안에서 장문인과는 다르게 음습한 기운이 느껴진다.

사부에게 들은 적이 있는 자들, 매화의 그림자[梅影].

장문인의 명령만을 듣는 화산파 매화의 그림자들이다.

전각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잠시 후에 잔잔한 물결과도 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누구인가?”

“선검수, 청우입니다.”

“들어오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백미백염의 장문인이 보였다.

그리고 근처에 숨어 있다는 것만 알 수 있는, 정확히 어디에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그림자들이 느껴졌다.

“왔구나, 앉거라.”

전과는 다르다.

서류가 쌓여 있지도 않고, 그저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리에 앉자, 장문인이 나에게 말했다.

“먼저 놀라지는 말도록.”

고개를 끄덕이자, 장문인이 말을 이었다.

“네 사부인 무진 장로가 습격을 받아 의식불명의 상태네.”

“……예?”

무슨 소리인지.

갑자기 왜 무진 사부의 얘기가 나오는 거지?

“이해하지 못했나? 소검파의 지원 임무를 이행하려 소검파로 가던 중에 습격을 받아 쓰러졌다는 소리네. 유혁과 장일 또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지만, 무진보다는 괜찮아서 비매각을 통해 알려온 소식이네.”

“…….”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마음속 깊이 무언가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내려앉았다.

주변이 차가워지고, 심장이 느릿느릿 뛰어간다.

머리가 뜨거워지고, 머리에서 핏기가 가신다.

무진 사부가 졌다?

나에게 하늘을 느끼게 하는 그 엄청난 무위의 사부가 누군가에게 습격을 받아 쓰러졌다고?

나의 또 하나의 아버지, 그분이 의식불명이라고?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무슨 소립니까!!”

사문의 장문인에 대한 예의가 생각나기에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중단전이 늘어났어도, 마음의 밭이 단련되었어도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겠다.

그저 불같이 뻗어 나가는 분노와 허탈함뿐이다.

장문인께서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시 말하지, 무진이 습격을 받아 쓰러졌네.”

“어째서…… 어째서…….”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쓰러지듯 앉았다.

덜덜 손이 떨린다.

“철검파, 만만치 않았었나 보네. 이렇게 화산파의 장로를 쓰러뜨릴 정도라면 말이네. 습격의 흉수가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지만, 철검파라고 보고 있네.”

“흉수가…… 철검파입니까?”

“그렇게 보고 있네.”

“……보내 주십시오.”

“보내 달라고? 자네 사부가 쓰러졌네. 자네라고 이길 것 같은가? 오행 진인이나 도오연 장로를 보내야 상대가 맞아.”

“아닙니다, 저는…… 저는…….”

나도 안다.

나는 아직 장로님들보다 약하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가장 강했던 사부가 쓰러졌다.

나는 이기지 못할 것을 안다.

하지만…… 하지만……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나는 그저 소식을 알려 주려 했을 뿐이네. 그런 마음은 먹지 말게.”

내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정확히 마음을 찌르는 말이다.

“하지만 제 사부님입니다! 그 복수를 해야 됩니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도 늦지 않네. 실력이 되지 않으면 속으로 삭여야지. 그게 무림이네.”

“…….”

“무인으로 검을 들어 검에 성했으면 검에 무너지는 일도 있는 법. 유감이지만, 자네는 그저 화산에 있는 것이 도움이네. 자네 사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하고.”

“안…… 됩니다…….”

그렇게는 안 된다. 이렇게 가만히 있으라니…….

“자네 사부도 원치 않을 것이네. 어제부터 선검수들의 훈련에 나갔다고 하던데, 그만 나가고, 취운암에서 마음이나 삭이도록.”

“…….”

“어서 나가게. 나도 할 일이 많은 사람, 이제는 소검파와 철검파의 싸움이 아니네. 화산과 철검파의 싸움인 바, 이후의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네.”

“저도 그곳에…….”

“안 된다고 했네. 그렇게 되고 싶으면 실력이나 쌓게.”

“…….”

할 말이 없다.

실력이나 쌓아라.

내가 실력이 되지 않아서 그렇다.

내가 약해서 사부의 복수를 허락받지 못한다. 나는…….

‘어찌해야 되는 건가?’

“어서.”

계속된 축객령에 포권을 취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나는 어찌해야 되는가, 사부의 복수를 하지 못하고 이렇게 있어야 하나?

약하기에, 능력이 없으니 취운암에 가만히 있어야 하나?

나는…….

“방법은 있네. 계속해서 말했듯이 강해지면 되는 일.”

매화각의 안에서 바깥으로 크게 울리는 목소리.

‘강해……져?’

화아악 밝아지는 머릿속.

그것이다, 내가 할 일은 그것이다.

장문인은 화산을 위해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그렇게 냉정하게 말한 것이 아니다.

내가 당장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것을 원치 않기에 그렇게 냉정하게 말한 것이다.

사부와 제자 모두 당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나에게 방향을 제시해 준 장문인.

깊게 읍하고 뒤돌아 취운암으로 향했다.

가던 중에 선검수들의 전각을 지나가게 되었다.

‘내가 강해지는 방법은 뭐가 있지? 심법? 초식? 그래, 초식이다. 심법은 아까가 끝이었어. 매화검로를 통해 내 몸을 단련해야 된다. 육 대 사의 비율로 수련을 한다. 초식이 육, 심법이 사다. 짧은 시간 안에 강해져야 한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걷는데, 누군가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청우야, 무슨 일이야?”

“연화……야…….”

연화였다.

“그건…….”

말하려는데, 누군가가 또 내 앞으로 다가왔다.

“뭐야, 그 침울한 얼굴은? 대체 무슨 일이냐.”

금정일이었다.

그리고 그를 따라온 두 명, 배운정과 패경욱.

타다닥∼

또 그 뒤로 따라오는 도문이라 칭하는 녀석들.

“네놈, 오행 진인께서 오셨기에 싸우지 못했다만, 지금은 아니지. 어서 덤벼라!”

소리치는 은우.

퍼석!

그것에 지금까지 수련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막아 놓았던 마음속의 댐이 무너졌다.

“네놈들 지금…….”

금정일이 내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나는 그의 어깨를 잡아 뒤로 넘기며 앞으로 나섰다.

“너…….”

이번엔 연화가 막아섰다.

“청우야, 조금만 참아. 마음을 가라앉혀…… 응?”

연화의 말은 무시할 수 없다.

눈을 감고 꾹 참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려는데, 은우의 말이 들렸다.

“뭐야, 여자의 뒤에 숨어서 싸울 셈이냐? 그렇게 내가 무섭나?”

‘저 녀석…….’

뭉클뭉클 가슴속에서 찐득한 무언가가 솟아오른다.

기운을 타고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청우야, 잠시만…….”

“막지 마. 더 이상은 못 참아.”

검을 뽑아 들었다.

주먹, 장천수는 쓰지 않는다.

정말로 죽일 각오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그에 맞춰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매화검로를 처음 펼쳤을 때와 마찬가지다.

살기가 깊은 곳에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끓어올랐다.

“기다려, 정신 차려라.”

“막지 말라고 했다. 베어 버리기 전에 비켜.”

“너…….”

금정일, 어제 만난 녀석이라고는 하지만 마음에 들기는 한다.

이 녀석도 베어 버리고 싶지는 않다.

내 적은 저 녀석이다, 은우. 그리고 그 뒤의 도문이라 칭하는 녀석들.

진인들을 모욕하는 그 행동도 참을 수 없고, 이렇게 사람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참을 수 없다.

그리고…… 사부의 일 때문에 심란한 나를 도발하는 것도 참을 수 없다.

어차피 풀어야 할 감정이다.

이렇게 남에게 푸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칫…….”

은우가 얼굴을 굳혔다.

내가 정말로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아는지 순식간에 검을 뽑아 들고 나에게 겨눈다.

녀석이 진기를 끌어 올리자 나의 살기가 조금 주춤했다.

하지만 조금일 뿐이다.

화아악∼

순식간에 다시 피어오르며 더욱 무겁게 녀석의 몸을 압박한다.

“크윽…….”

“덤비라고 했었지? 소원대로 해 주지.”

팡!

매화작보로 달려들자, 녀석이 일그러진 얼굴로 검을 위로 들어 올렸다.

텅! 파아아∼ 콰앙!

매화검로 일 초 매화초개.

터져 나가듯 뿜어낸 발검에 녀석의 검이 뒤로 튕겨 나갔다.

몸을 빙글 돌리며 앞으로 주먹을 찔렀다.

핏!

녀석의 볼에 혈선이 생겼다.

“큭…….”

매화삼릉검을 펼쳐 내는 은우.

하지만 나 또한 배웠던 검법이다.

그 초식을 아는 이상 파훼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오른쪽으로 일보에 허리를 꺾는다.

사악∼

바로 앞으로 검이 스쳐 지나갔다.

매화표천.

카앙!

자색의 매화가 승천하며 녀석의 검과 부딪쳤다.

하늘로 몸을 띄우며 빙글 돌아 회전력을 얻고 낙추.

따앙!

“읏…….”

은우의 손이 검과 함께 부들부들 떨렸다.

계속해서 손목에 부담이 가는 공격을 막고 있으니 당연한 일.

반탄력으로 몸을 띄우며 아래로 검을 내리쳤다.

콰아앙!

“커억!”

이번엔 막았다만 피해가 클 것이다.

온 힘을 다해 내리친 검이다.

실력 차이도 나고, 내공에서도 차이가 난다.

막아도 막은 것이 아닐 것이다.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가는 은우.

날아가는 것보다 빨리 앞으로 달려가 녀석의 등을 점했다.

“덤비라고 한 것은 너였다.”

스걱!

등을 베어 들어간 검.

이어서 발로 녀석을 차 버렸다.

“크억!”

검에 상처가 난 곳을 발로 차 버렸다.

고통이 클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 된다.

녀석의 의해 둑이 터져 버린 이상, 이 정도로는 참지 못한다.

매화작보로 달려가 녀석의 몸을 양분하려 검을 내리쳤다.

이것을 맞는다면 녀석은 정말로 죽을 것이다.

캉!

누군가가 나의 검을 막아섰다.

고개를 들자 악소군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그래, 어제도 네놈들이었어.”

어제의 두 녀석이 모였다.

은우를 벤 이상, 이미 이 도문을 사칭하는 녀석들과는 원수다.

어차피 싸워야 될 것, 이런 기분으로 싸우는 것도 나쁘진 않다.

“너…… 윽!”

말은 듣고 싶지 않다.

말을 할 기회도 주지 않고 달려들어 검을 내찔렀다.

기를 극성으로 끌어 올리자, 자색으로 물들어 가듯 변해 가는 검신.

청운검에 자색의 기운이 깃들었다.

콰앙! 쾅! 퍼억!

“컥!”

그전부터 상대가 되지 않던 녀석들이다.

더 강해진 이상, 그리고 어제와는 달리 일대일이니 가소로울 뿐이다.

처음엔 매화검로를 펼쳤다만, 싸우다 보니 그런 것은 필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저 검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이길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더 괴로울 것이다.

초식에 의해 당한 것이 아닌, 그저 휘두르는 검에 당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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