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화산천검 2권(23화)
9장 사부(1)
챙! 채챙!
둘의 싸움은 가볍게 움직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맞부딪치나 기가 들어 있지 않은 간단한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싸움이 분위기가 점점 고조됨에 따라 살벌해졌다.
쾅! 쾅! 콰앙!
내력이 깃들자 검끼리 맞부딪치며 폭음이 울렸다.
빛이 모여들었다가 분산되고, 기가 터져 나갔다가 다시 모여들었다.
검에 깃드는 하얀색의 빛무리.
검기가 피어오르고, 더욱더 거세지는 싸움이다.
‘둘을 모아놓으니까 비교할 수가 없군.’
처음 볼 때부터 둘의 성격과 실력이 비슷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비무를 하니까 그것이 맞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은우가 오른쪽으로 찌르면, 배운정이 막아선다.
배운정이 찌르면, 은우가 막아선다.
서로 실력이 비슷하다 보니 서로 한 번씩 공격을 하고 방어를 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챙! 콰앙! 쩌엉!
그렇게 맞부딪친 검격이 이십 초가 넘어갈 때, 은우의 오른팔에 얇은 혈선이 생겼다.
“큭…….”
은우가 당황하자, 흐트러지는 은우의 검로.
“걸렸구나!”
배운정이 눈을 빛내며 재빨리 흐트러진 틈 사이로 검을 찔러 넣었다.
“읏!”
은우는 몸을 비틀어 피해 냈지만, 배운정은 기세를 타고 있었다.
앞으로 나서며 계속해서 베어 가는 연격에 은우가 맥을 못 추고 뒤로 계속해서 밀려났다.
‘끝났군…….’
둘은 실력이 비슷하다.
막상막하(莫上莫下), 오십 대 오십인 것이다.
그런데 한쪽에 일이 넘어갔다.
사십구 대 오십일.
그것이 점점 늘어나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버린다.
지금이 그런 상태다.
은우는 점점 무너져 가고, 배운정은 점점 살아나고 있었다.
“하앗!”
카앙! 탱그랑!
땅으로 떨어지는 검.
비무에서 검을 놓친다는 것은 패배를 의미한다.
싸움의 승리자는 배운정이었다.
목에 겨눈 검에 은우가 입술을 깨물고 부들부들 떨었다.
“승리자는 나군.”
배운정이 피식하며 비웃자, 은우가 크게 소리쳤다.
“이 녀석이!”
“멈춰라, 은우.”
‘다음은 저 녀석인가…….’
앞으로 나선 사람은 악소군이었다.
배운정을 향해 걸어가지만, 노려보고 있는 것은 나였다.
무심히 흘려 넘기자, 녀석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악소군보다도 배운정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져 있었다.
“악소군, 이건 은우와 나의 비무인데?”
비무는 끝났고, 더 이상 싸우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차륜전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비무의 예도 차리지 않고, 화산파 문도들 사이의 이런 살벌한 비무는 원래 계율상에서 금지하고 있다.”
‘어이가 없군.’
어제의 그 행동은 어떻게 된 것인가?
살벌한 비무를 계율상에서 금하고 있다며 나오는 것은 뭔가?
어제의 그 행동을 생각하자 정말 어이가 없었다.
“장로님들도 안 계셔. 옛날부터 암묵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이런 비무인 것은 알고 있을 텐데?”
“난 계율을 너무나 정확히 지키는 사람이라서 말이다.”
“헛소리를 너무나 잘하는군.”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처억!
검을 겨누는 배운정의 뒤로 패경욱이 나섰다.
배운정과 은우와 마찬가지.
또다시 비슷한 두 사람이 만났다.
“뒤로 물러서라, 배운정. 저 녀석은 나야.”
아예 그냥 맞수끼리 하나하나 싸우기로 작정을 했는지 어느 샌가 나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두 파벌들 간의 살벌한 분위기가 연무장을 가득 채웠다.
“이거, 이거. 그럼 안 되지. 경욱아, 조금만 물러나.”
“정일…….”
또다시 싸움이 일어나려 하는 때, 금정일이 나섰다.
금정일이 시원스런 미소와 함께 앞으로 나서며 악소군의 앞을 막아섰다.
“그만하자고, 이렇게 우리끼리 싸워 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목적은 저 녀석인 것으로 아는데?”
“…….”
“너희들은 원한이 있는 것 같고, 나는 저 녀석이 마음에 든다.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렇게 크게 만들 필요는 없잖아? 그렇잖아도 살벌했는데 말이야.”
“맞는 말이군.”
악소군이 검을 내렸다.
은우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검을 환집했고, 패경욱와 배운정은 금정일의 뒤에 나란히 섰다.
“이런 일은 우리끼리 풀어야지. 나와라, 육언.”
금정일의 말에 싱긋 웃고 있던 육언이 앞으로 나섰다.
쿠우웅!
육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자, 그의 기운이 무겁게 사위를 압도했다.
‘……이 정도인가?’
천류검협의 제자.
오행 진인과 마찬가지로 도가의 자랑인 장로의 제자.
그 무거운 내공이 가히 방금 전의 나와 비슷할 정도였다.
‘강하군…….’
솔직히 내가 조금 더 강할 줄 알았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의 나와 비슷한 경지다.
지금은 내가 이기겠지만, 아까의 나였다면 방심하고 졌을 것이다.
백분지 백, 확신할 수 있었다.
‘나만 강한 게 아니야…….’
여기서 하나 더 깨닫는다.
나는 매화검로가 변한 기연을 얻었고, 예전에 은인인 공천패 덕분에 자격이 되지 않았는데도 상단전을 뚫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것에 조화를 이루어 강해졌고, 내가 느끼기에는 가장 강한 장로님인 무진 사부의 아래에서 사사를 받았다.
나는 화산에 있는 내 또래 중에선 내가 가장 강할 줄 알았다.
하지만 화산은 역시 구파다.
나 정도의 인물은 많지는 않아도 몇 명 정도는 있는 것이다.
‘더욱 정진해야 돼.’
너무 나태했었다.
나와 비슷한 경지의 내 또래를 보자 마음이 굳게 다잡아진다.
그리고 금정일, 저 친구도 만만치 않았다.
금정일이 육언의 기세를 맞받아치자 두 사람의 사이에서 바람이 휘몰아쳤다.
다들 그에 영향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대단했다.
“왜 나오라고 했소?”
인자한 웃음을 띠우는 육언이다.
하지만 금정일에게 들은 바로는, 저것이 사람들을 속이는 가면이라 했다.
그렇기에 처음과는 달리 별로 친근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네 두 친구가 저 녀석과 원한이 있나 본데. 나는 저 녀석이 맘에 들거든? 그냥 타협하는 게 어떨까?”
“저 두 친구의 의견이 중요하지 내 의견이 중요하진 않다네.”
“그 말투 짜증 나는군. 아무튼 헛소리는 그만해라. 네 말 한 마디면 죽는 시늉도 할 녀석들인 거 잘 알고 있어.”
금정일의 말에 두 녀석의 눈썹이 꿈틀했다.
하지만 선검수들의 두 파벌 간의 대장이다.
같은 나이지만, 나서기에는 후환이 두려울 것이다.
노려보는 두 사람에 금정일이 씨익 하고 웃어 주었다.
“그렇게 원한다면 말해 주지요. 어떤가? 타협을 할 건가?”
뒤돌아 서 있기에 어떤 표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녀석이 처음에 움찔한 것으로 봐선 인자한 가면이 아닌 것 같았다.
‘사이비 도사…….’
두 녀석이 고개를 젓자, 육언이 빙글 돌며 또다시 인자하게 웃었다.
“싫다고 하는구려.”
“연기하는 거 지치지도 않나? 아무튼, 그렇다면 어쩌자는 거냐? 이렇게 싸우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닌데.”
“남의 은원 관계에 뛰어드는 것은 강호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지. 이곳이 문파의 안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똑같이 적용된다. 네놈들이 비키는 것이 예의다.”
악소군의 말에 패경욱이 말했다.
“다수가 한 명을 핍박하는 주제에 강호의 법도를 논하다니, 정말로 대책이 없는 놈들이로구나.”
“…….”
패경욱의 말에 할 말이 없는 듯 악소군이 입을 다물었다.
“자아, 너희들은 조용히 하라고. 분위기만 좋지 않게 만들 뿐이니까.”
금정일이 손을 휘휘 내젓자, 악소군과 패경욱이 뒤로 물러났다.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어떻소?”
“당사자한테?”
“그렇소. 당사자한테 우리와 싸울 것인지, 아니면 자네들의 틈에 붙을 것인지 결정하라고 말이오. 자네들에게 붙으면 우리는 관여하지 않소.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를 건드릴 것이고, 자네들은 가만히 있는 것이오.”
“흠, 그거 좋군.”
어느새 내 얘기로 넘어왔다.
금정일이 빙글 몸을 돌리며 나에게 얘기했다.
“자아, 어쩔 거야? 우리에게 붙을래?”
답은 어제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하나다.
“아니, 싫어.”
단호하게 말하자, 육언이 말했다.
“허허, 그렇다면 우리와…….”
“그것도 싫어.”
“…….”
육언이 입을 다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그렇다면 어쩌자는 거야?”
“그냥 갈래.”
연화의 어깨를 잡으며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러자 뒤쪽에서 금정일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 걸작이군.”
그것과는 반대로 육언이 소리쳤다.
“뭐하는 건가! 나를 무시하는 건가!”
“난 무시한 적 없어. 그저 싸우고 싶지 않을 뿐이지.”
“허, 겁먹은 것인가?”
“겁먹진 않았다. 말 그대로 싸우고 싶지 않을 뿐이야.”
싸우고 싶지 않다는 말 그대로다.
금정일이 앞으로 나오고 나를 도와주려고 한 그때부터 감정은 많이 괜찮아졌다.
그래도 한 명이라도 제대로 된 녀석이 있다는 것에 말이다.
물론 파벌을 나누는 것과는 별개지만.
아무튼 그렇기에 지금 싸우고 싶지는 않다.
그전까지 싸우던 것은 전부 기분이 나빠서다.
지금은 괜찮으니 싸울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저 녀석들이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이렇게 습격을 하는 것이고.
‘쯧…….’
뒤에서 느껴지는 스산한 기운에 몸을 돌리며 옆으로 흘렸다.
스윽∼
연화에게는 아무 피해가 없도록 움직였다.
육언이 얼굴을 굳히고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를 무시하지 말게나.”
“가면은 좀 벗어 던지지 그래?”
“…….”
“본래 성격을 가면으로 덮고 남에게 가짜를 보여 주는 것에 지치지 않나?”
내 말에 육언이 말없이 검을 뽑아 들었고, 금정일이 나섰다.
“저 녀석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니 다시 원점이군. 난 막는다.”
“그렇게 마음에 들었다면 맘에 들진 않지만 도와주지.”
금정일이 움직이자, 그 뒤에 서 있던 녀석들도 움직였다.
나의 앞을 가로막는데, 뭔가 기분이 묘했다.
이렇게 나를 위해 싸운다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 자체가 맘에 들지 않는다.
“결국 이렇게 될 거, 처음부터 싸웠으면 좋았잖아?”
배운정의 말에 금정일이 씁쓸하게 웃었다.
“저 녀석이 걸작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럴 줄은 몰랐지.”
“뭐, 네 맘에 든 놈이니 오죽하겠어? 아무튼 그럼 싸우자고.”
기가 끓어오른다.
두 무리에서 끓어오르는 기세가 연무장에서 맞부딪쳤다.
그리고 막 격돌하려던 찰나, 누군가가 연무장으로 들어왔다.
커다란 목소리와 거대한 기파.
“뭣들 하는 거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보이는 사람은 장로님, 오행 진인.
금정일과 육언의 얼굴에 난감하다는 표정이 그려지듯 점점 퍼져 나갔다.
“어서 해산하지 못할까!”
오행 진인의 말에 두 무리의 사람들이 주춤주춤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단 한 명도 이 자리를 떠나가진 않았다.
“어서!”
결국 오행 진인의 목소리가 연무장을 크게 울릴 때야 비로소 녀석들이 이곳을 떠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자들이 있으니, 육언 패거리와 금정일 패거리였다.
“너희들은…….”
장로님의 미간에 내천(川) 자가 생겨났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저 녀석들과는 관계가 없는데, 저희들이 움직여서 끼어든 것이죠.”
술술 거짓말을 해 대는 패경욱.
오행 진인은 더 뭐라 해도 계속 저런 답변을 할 것을 알고 있는지 별말을 하지 않고 나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