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47화 (47/175)

# 47

화산천검 2권(22화)

8장 금정일(3)

“…….”

속가제자들은 직전제자들과는 다른 압력이 있었다.

사부가 좋기는 하다만, 그래도 성과가 있어야 된다.

직전제자들은 더욱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 사부의 은에 보답하기 위해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며 받는 압력을 감수해야 한다.

속가제자들은 유명한 무가나 상가의 자제이기 때문에 그들끼리의 파벌이 있을 것이다.

호북은 호북끼리, 강남은 강남끼리, 이렇게 말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 수장이 있겠지.

그렇다면 그 수장은 아래의 사람들의 압력이 있는 것이다.

그 지역의 사람들의 위신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는 것이다.

‘속가제자도 힘들겠군.’

“흠? 좀 늦었군.”

밝아오는 새벽.

비쳐 오는 여명에 점점 주변의 어둠이 그 힘을 잃어 갔다.

“어차피 자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

“아, 그건 그렇고, 이곳은 네 연무장인가?”

“화산의 안에 있으니 화산파의 연무장이겠지. 하지만 네 말대로 하자면 내가 쓰는, 나의 연무장이지.”

“미안하다.”

갑작스럽게 들어온 것에 대한 사과다.

“그렇게 사과할 필요는 없다. 그냥 내킬 때 오면 돼. 난 네가 맘에 들거든.”

“고맙다.”

“고마워할 것까지야…….”

가볍게 인사하고 취운암으로 향했다.

하지만 너무 천천히 걷다 보니 취운암으로 가는 중에 이미 선검수들의 훈련시간이 다 되어 갔다.

“들리지 못하겠군.”

방향을 바꾸어 전각으로 몸을 날렸다.

집에는 늦어도 되지만, 훈련에는 늦으면 안 되는 것이 문파의 계율이니까.

그렇게 전각에 도착하자 아슬아슬하게 지각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제와 마찬가지.

무공을 연습하면서 보냈다.

하지만 어제와 조금 달라진 것이 있었다.

‘뭐지?’

몸이 변한 것은 아니다.

내공에도 변화가 없다.

그렇다고 또다시 초식이 변화하는 것도 아니다.

달라진 것은 내 마음이었다.

후련하다.

무공을 펼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

무공을 펼치면 펼칠수록 상쾌한 청량감이 온몸을 휘돈다.

그리고 그 마음에 초식이 반응한다.

말했듯이 초식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뻗어 나감이 달랐다.

휘두르면 후련하고, 찌르면 통쾌하다.

초식을 펼칠수록 내 마음이 상쾌해지는 것이다.

‘어째서일까?’

나는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변한 것은 왜일까?

‘금정일 때문인가?’

그는 시원스러웠다.

파벌을 나누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원해서 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호탕한 말과 상인 집안의 장자라는 것에 어울리지 않는 시원스러운 성격이 내 마음에 영향을 준 것이다.

매화검로와는 다르게 마음에 차지 않던 초식들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속에 깊이 들어온다.

“후우∼”

어제와는 다르다.

초식을 하나 전개하는 데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이것만 봐도 변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초식을 펼치자 기분이 상쾌해졌다.

사부에 대한 불안감도, 이 파벌들에 대한 짜증도 싹 사라진 것이다.

자리에 앉아 운기를 했다.

마음이 변했다.

마음의 밭은 중단전이다.

중단전이 커지진 않았지만 굳건해진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에 비례해 하단전도 변화했다.

꿈틀꿈틀 맥동하고 있었다.

매화검로를 펼치고 나서 응혈을 뱉었던 것과는 다르다.

변화하기 위한 맥동인 것이다.

파아악∼

사지백해를 뚫고 지나가는 청량한 기.

뚫려 있는 혈도를 굳건히 하고, 뚫리지 않은 혈도를 그 여파에 의해 뚫리게 한다.

그리고 하단전으로 돌아와 하단전에서 폭발하듯 움직였다.

쿠웅!

머릿속이 울린다.

그리고 그 울림과 비례해 하단전도 점점 커져 갔다.

물이 흘러넘치던 그릇이 점점 커져 물을 모두 담아 냈다.

그러자 진기가 맥동을 멈추고 하단전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느낄 수 있다. 아니, 알 수 있다.

매화검로를 펼쳐도 진기가 폭주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저 응혈을 뱉어 내며 나의 몸을 가다듬을 것이다.

이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을 뜨고 일어서는데,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라?”

자세히 보니 그들은 모두 운기를 하고 있었다.

오행 진인께서 나에게 전음을 날렸다.

[뭐하고 있느냐? 어서 운기를 하거라.]

오행 진인의 말에 자리에 앉아 운기를 하며 생각했다.

‘뭐지? 왜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거지?’

단전이 변화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론 그런 현상이 일어나면 최소 다섯 시진 정도를 운기한다.

그런데 내가 운기를 하기 직전과 상황이 똑같았다.

다섯 시진은커녕 일각에서 이각 정도가 지난 것이다.

‘뭐, 그저 마음이 변한 것이었으니까.’

그것에 대한 여파로 단전이 커졌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일단은 변한 몸의 상태를 확인한다.

운기를 하며 확인하자, 이미 뚫려 있던 혈도는 단단해졌다.

그리고 그 근처의 막혀있던 혈도들.

내가 몰랐던 혈도들이 뚫려 있었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막혀 있던 혈도가 뚫렸다는 것은 무공 실력이 상승했다는 것과 일치하니까.

그리고 단전의 용량.

그렇게 많이 커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비교될 정도로 커졌다.

더 많은 진기를 담아낼 수 있다.

중단전도 마찬가지다.

더욱 많은 진기를 유통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기의 속도가 빨라졌다.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온몸을 휘돈다.

그리고 다시 하단전으로 돌아오는데, 마치 자연지기가 몸의 안으로 들어온 듯 온몸이 시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 선검수들이 일어났다.

“오늘은 이걸로 끝이다.”

오행 진인께서 말하고 연무장을 나갔다.

본래 이렇게 수업이 끝나는가 보다.

조금 무책임한 것 같지만 할 일은 다하고 나가는 거다.

그렇게 오행 진인께서 나가시자 어제와는 뭔가가 달랐다.

하루하루는 원래 다르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생활을 했다면 그 변화는 본래의 생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은 크게 벗어났다.

두 쪽으로 몰려 있는 두 세력.

검문과 도문.

도문의 녀석들이 나를 씹어 먹을 듯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청우야…….”

연화가 다가왔다.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가자.”

그렇게 말하고는 연화의 어깨에 손을 걸치며 뒤돌아서자, 뒤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멈춰!”

무시하고 계속해서 걷자, 말을 한 누군가가 앞으로 달려왔다.

그 누군가가 나의 앞을 가로막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역시나 은우였다.

“네놈, 나를 무시하는 거냐!”

“도가를 표방하고 있으면서 네놈이라니, 정말 너무하는군.”

또다시 신랄하다.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어제와 비슷한 상황인 것이다.

기분이 좋지만, 연화가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기분은 나빠지는 것이다.

“보평제자 연화, 옆으로 빠져라.”

오만한 말투.

연화가 잠시 은우를 째려봤다.

“뭐냐? 지금 보평제자가 직전제자에게 눈을 부라리는 것이냐!”

그것에 연화가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일보 나서며 방심하고 있는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퍼억!

“컥!”

지이익∼

뒤로 밀려나는 녀석.

연화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또다시 걱정스런 표정이다.

지금 녀석을 친 것에 대한 걱정이다.

“걱정할 필요 없어.”

연화를 진정시켜 주려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 이 자식…….”

비틀비틀 일어나는 모습이 괴상했다.

“너, 아니 선검수 중에서 도문을 표방하고 있는 놈들, 방관할 수가 없다.”

“무슨 헛소리냐!”

“덤벼라. 말이 통하지 않는 녀석.”

나의 말에 은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참아 주고 싶었건만 참아 줄 수가 없다.

직전제자라고 보평제자보다 고귀한 것은 아니다.

그저 화산 장로의 제자여서 조금 무공이 뛰어날 뿐이다.

그런데 보평제자가 선검수의 직위다.

경탄하여 존경해 주진 못할망정 저런 싸늘한 눈초리라니.

금정일의 말이 맞았다.

저 녀석들보다는 차라리 검문의 사람들이 더 도문의 사람들 같았다.

은우가 달려들었다.

하지만 어제 악소군과 이 대 일로도 이기지 못했다.

홀로 나를 이길 수 있겠는가?

타오르는 불속으로 날아드는 부나방일 뿐이다.

이미 투로는 파악했다.

어느 곳으로 공격을 할지, 빠른지 느린지까지도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막아서며 반격하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멈춰라, 은우!”

쩌렁쩌렁 연무장이 울린다.

그 목소리에 은우가 싸늘한 눈초리로 그를 돌아봤다.

검문의 행동대장, 배운정이었다.

“네놈은 신경 꺼라! 이건 도문과 이 녀석의 문제야.”

“도문이 아니라 도문을 표방하는 선검수들이겠지. 아무튼, 그렇다면 더 안 되지.”

싸울 때를 놓쳤다.

은우에게 달려들기도 뭐하고, 가만히 서 있기도 뭐하다.

연화와 함께 옆으로 물러서 배운정이 은우에게 올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배운정이 어깨를 쫙 펴고 은우에게 걸어갔다.

그것을 보는 은우의 표정이 더욱 변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금정일이, 녀석이 맘에 들었다고 하는데?”

씨익 웃으며 하는 말에 은우가 움찔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역시 네 녀석도 돈이 좋은 거냐?”

“난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젓자, 은우가 배운정에게 고개를 돌렸다.

“말했듯이 금정일이 맘에 들었다고 한 거야. 저 녀석의 의사랑은 관계가 없지. 뭐, 대장의 의사가 저 녀석의 의사가 될 테지만.”

“그러면 우리랑 싸우자는 거냐?”

“우리가 아니지. 화산파의 계율상 일 대 다수는 불가능하거든.”

“그렇다면?”

“너와 나다.”

배운정이 씨익 웃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래, 네놈과는 어차피 언젠가 실력을 겨뤄야 했었지.”

스릉∼

차가운 검광이 두 사람 사이를 비추었다.

스산한 공기가 감돌았다.

“덤벼라. 도문의 어리숙한 녀석.”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호칭은 변하지 않는군. 식상해.”

번쩍이는 빛과 함께 두 사람의 격돌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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