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화산천검 2권(21화)
8장 금정일(2)
신류퇴 승추(昇錐).
뻐억!
“컥!”
턱을 맞은 은우의 몸이 흔들렸다.
빙글 몸을 공중에서 회전시키며 신류퇴 낙추.
땅!
막은 것은 또다시 악소군의 검이었다.
입술을 깨물고 있는 악소군.
반탄력으로 몸을 띄우고 지면으로 사뿐히 내려왔다.
“너…… 큭!”
말할 시간은 주지 않는다.
미친놈에게는 매가 약이란 소리가 있다.
이놈들이 아무리 다른 장로님의 제자라고는 해도, 이런 성정인 것을 알고 있으면 이런 일은 그냥 넘겨주실 것이다.
대 화산파의 장로로서 그런 것은 당연한 것일 것이다.
폭풍과도 같이 몰아치는 연격에 악소군이 맥을 못 추었다.
하지만 은우와는 다르게 맞아도 스칠 뿐, 정확히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
‘은우와의 실력 차이가 크군.’
은우는 대응하지도 못하고 맞았다.
하지만 악소군은 냉정하게 대처하며 최소한의 피해로 나의 공격을 막아 냈다.
물론 반격은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차이가 컸다.
‘그래 봤자다.’
그래도 악소군과 은우가 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턱! 빙글∼
악소군의 검 면에 손을 대고 인(引).
기를 끌어 올려 막아 낸다고는 하지만, 나보다 정심하지 못한 내공에 나보다 적은 내공으로는 무리다.
끌려오는 악소군.
턱! 파앙∼!
척으로 끊고 반.
“큭!”
악소군이 뒤로 날아가듯 튕겨 나갔다.
공중에서 몸을 뒤집으며 지면으로 내려왔다고는 하지만 피해가 커 보였다.
악소군과 은우의 표정.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제야…….’
분노는 사라졌다.
아니, 미약해졌다.
그것을 넘어선 경악이 그들의 마음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더할 건가?”
“……칫.”
악소군이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말했다.
“네 녀석, 실력이 대단하군.”
“그 정도 안목도 없으면서 그렇게 오만했던 건가?”
“할 말은 없군. 하지만 네놈이 내일도 그렇게 오만할 수 있는지 보자.”
“무슨 소리지?”
“네놈이 아무리 강해도 육언보다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너는 이기지 못하니까 대장을 불러오겠다 이거냐? 이거야 원, 꼬맹이들도 아니고.”
은우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네가 그렇게 말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네놈이 검문의 녀석들에게 들어가는 것보다는 낫지.”
“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아니, 나는 검문이나 도문엔 들어가지 않는다.”
“그것도 때에 따라서 다르지. 도를 싫어하고, 금을 좋아하는 놈들도 많거든. 네놈이 그런 놈일 수도 있다.”
“……역시 말은 통하지 않는군.”
어차피 저 녀석들을 때리면서 가슴이 조금은 후련해졌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도 점점 가라앉고 있고.
더 때려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보다는 지금의 상태로 끝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몸을 돌려 취운암으로 향했다.
“내일을 기대해라.”
씹어뱉듯 중얼거리는 말은 무시했다.
취운암에 도착하고, 침상 위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후우∼’
오면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지금 한 일이 잘한 일이었나?
답은 ‘아니다’였다.
그 당시 너무나 심란했다. 그리고 그것에 비례해 화가 났다.
그렇기에 신랄한 말만을 내뱉고, 싸움으로 몰아갔다.
지혜롭게 해결할 수도 있었던 상황인데, 그렇게 해결한 것에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
후회해 보았자 과거를 바꿀 순 없다.
그저 나중에는 그것보다 더욱 지혜롭게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아무튼 그것보다도 내일을 기대하랬지…….’
무시했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별로 두렵지는 않지만 아까의 일을 후회하고 있다 보니 조금 거북했다.
‘분명히 싸울 것인데…….’
행동대장과 군사를 쓰러뜨렸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남은 것은 대장.
인자한 웃음을 띠우던 육언이라는 녀석이 덤빌 것이다.
‘이기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또 문제가 생긴다.
보평제자 때와 같다.
특출 난 자는 시기와 질투를 받는 법.
뒤에 커다란 배경이 있지 않는 한, 그것은 바꿀 수 없는 법칙과도 같다.
‘후우∼ 알아서 되겠지. 아니, 잘되어야겠지…….’
일단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는 없다.
지금 고민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
‘운기조식이나 하자…….’
아직 불안한 마음은 남아 있다.
사부에 대한 불안함.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계속해서 사부를 믿는 수밖에는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 나의 마음을 다스린다.
운기를 하자 점점 마음이 가라앉았다.
고요하고 잔잔하다. 그리고 포근하다.
운기를 끝내고 일어섰다.
어느새 밤이었다.
운기로 시간을 다 때웠다 보니까 잠도 안 오고, 할 일도 없었다.
“화산이나 둘러볼까?”
할 일도 없다. 초식을 수련해 보았자 성과도 없다.
운기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
그냥 산보를 하는 것이 제일 좋다.
조용한 산을 걷는 것도 수련에는 좋다.
마음의 수련이다.
조용한 사위, 들려오는 벌레 소리에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는 곳에 도착하고 말았다.
“여긴…….”
조용한 것은 같다. 하지만 사방이 탁 트인 것이 공터였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것이 연무장인 것 같았다.
“흠…… 연무장이라…….”
갑작스런 호기.
검을 뽑아 들자, 월광에 검이 번뜩였다.
시리도록 차가운 빛을 뿌리는 청운검.
사 년 동안 써 온 검이다.
손에 착 감기는 검병과 처음 받았을 때와 차이가 없는 예기.
명검이다.
검신을 쓰다듬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곳을 쓰던 주인일 거라는 생각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허, 누가 있나 했더니 너였군.”
호기심 짙은, 마치 신기한 물건을 보는 듯한 얼굴.
금가장 장주의 장자, 금정일이었다.
“…….”
말없이 몸을 긴장시켰다.
조금씩, 조금씩 기를 끌어 올리며 습격에 대비했다.
“이런, 그렇게 긴장하지 말라고. 나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니까.”
“그걸 어떻게 믿지?”
“멍청한 도문의 녀석들이 건드렸었나 보지? 나는 그렇지 않아. 정말로 너에게 하루의 시간을 줄 테니 안심하라고.”
의외로 마음을 진정시키는 목소리다.
그 말을 따르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
‘금가장의 장자라 그런가?’
금가장은 상인의 집안이다.
상인은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직업이니, 그 집안의 장자라고 한다면 이 정도 재주는 당연한 것이겠지.
아무튼 그런 느낌에 일단은 긴장을 풀었다.
하지만 언제든지 방어할 수 있도록 기는 계속해서 사지백해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도 날 못 믿는 건가? 뭐, 도문의 녀석들이 심했을 테니 이 정도는 당연한 건가?”
“도문의 녀석들이 심해?”
“음…… 넌 오늘 처음 왔으니 모르겠군. 저 녀석들은 정말로 악질들이야. 나도 내가 그렇게 좋은 녀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저 녀석들은 더하지. 차라리 내가 도문의 사람이라고 하면 믿을 정도야.”
“대체 얼마나 심한 거지?”
나 정도는 그냥 협박인가? 아니면…….
“그 녀석들, 상인인 나도 감탄할 정도로 사기꾼 기질이야. 아래에 있는 두 녀석, 처음엔 협박을 하지. 그러면 대부분 넘어와. 왜냐고? 강하니까.”
“그렇지, 강하긴 하지…….”
가볍게 이겼다만, 그 녀석들은 솔직히 강한 편이다.
“그래, 하지만 그래도 통하지 않는 녀석들이 있지. 강함에도 굴복하지 않는 그런 녀석들이 있지? 그런 녀석들은 통하지 않아. 그럼 육언이 나오지. 그 가짜 도사 녀석이 말이야.”
“가짜 도사?”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그래, 그 녀석이 정말로 사기꾼이야. 그 인자한 미소가 사람들을 속이는 겉의 가면이니까. 아무튼 그 녀석은 그 얼굴로 굴복하지 않은 녀석들에게 다가가지. 그리고 며칠 동안 같이 다녀. 그러면 끝이다. 그 녀석은 상인 집안의 장자인 나보다도 말에 재주가 좋은 녀석이야.”
“그런가…….”
그렇다면 은우와 악소군 같은 녀석들을 그 아래로 두고 다니는 것이 이해가 된다.
진정 도를 추구하는 도문의 사람이라면 그런 녀석들은 교화를 시킬지언정 같이 다닐 녀석들은 아니니까.
“아무튼 그러니까 어때? 우리 검문에 들어오는 것이?”
갑작스럽게 파고든다.
교묘한 화술에 보통은 넘어가겠지만 나는 아니다.
“아니, 싫어.”
“왜 그러지? 지금까지 얘기로 보아 도문보다는 검문이 낫지 않나?”
“아니지. 나는 도문의 녀석들에게 검문에 대한 얘기를 듣지 못했어.”
미미하게 굳어지는 얼굴.
하지만 금세 싱긋 웃으며 금정일이 말했다.
“하하. 한 마디 하자면, 녀석들이 말하는 것들은 전부 가짜일 거다. 나는…….”
“그렇게 말해도 믿음은 가지 않지.”
“……까다로운 녀석이군. 그건 그렇고…… 넌 어떻게 된 거지?”
“뭐가 말이냐?”
“내가 아까 말했다시피 은우와 악소군은 협박을 하거든. 그리고 안 될 시엔 무력행사도 마다하지 않지. 그런데 넌 아무런 상처도 없어. 말끔해.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거다.”
“쓰러뜨렸다.”
간단한 내 말에 금정일이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그런가? 하하. 걸작이겠군. 그 오만한 녀석들이 당했다라…… 큭큭. 내일이 기대되는군.”
“나는 별로 기대되지 않는다.”
육언이라는 녀석과 한판 할 생각을 하면 별로 마음이 편하진 않다.
“그러니까 우리 검문에 들어오라니까? 육언이 나서면 내가 나서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 두 무리는 서로 싸우진 않아.”
“두 무리인가…….”
“응? 무슨 소리냐?”
“넌 알 것 없다.”
고개를 저었다.
녀석은 아마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해하지 못하겠지.
어째서 두 무리라고 했을 때 내가 이렇게 고개를 저었는지.
“아니, 말을 돌린 건가? 아무튼 어서 결정하라고. 어차피 약관이 되면 결정해야 될 일이야.”
“정말로 약관이 되면 결정해야 되나?”
“응? 당연하잖아, 그것은. 그전에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우리들처럼 도문과 검문의 싸움이 심하니까 말이야. 제자부터 두 무리로 나뉘고 있다고.”
“잠깐만. 그렇다면 제자들은 수뇌부 측의 영향으로 이렇게 변한 건가?”
“당연하잖아. 그렇지 않다면 오행 진인께서 왜 방관하시겠어?”
“…….”
수뇌부 측에서부터 이 일을 진행한 거라고?
‘어떻게 이 간단한 이치를 모르고 편을 나눌 수가 있지?’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의 문제였다.
“이봐, 그렇게 심각한 표정 짓지 말라고. 이것도 하나의 변화일 뿐이니까 말이야.”
‘그 변화가 좋은 변화가 아니니 문제지…….’
휘휘 고개를 젓자, 금정일이 피식 웃었다.
“별난 놈이군.”
“너야말로.”
“하하.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놈은 네가 최초일 거다. 육언조차 나에게 이런 말은 하지 않는데…….”
“어차피 같은 선검수다. 이렇게 말해도 별로 문제될 것은 없는데?”
“큭큭. 녀석들은 내 뒤를 보거든. 금가장이라고 하는 곳을 말이야. 아무튼, 네놈 걸작이야. 더욱 맘에 들어.”
“나도 네놈이 맘에 들긴 한다만, 그렇게 파벌을 나누는 것 때문에 친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하. 그렇다면 친하게 지내는 것은 무리겠군. 나는 우리 금가장과 속가제자들의 압력을 동시에 받으면서 이 일을 진행하는 거라 빠질 수 없거든.”
“속가제자들의 압력?”
“아아, 호북 상가들의 자제들의 압력이지. 제대로 말하자면 기대야. 하지만 나에겐 압력이니 그렇게 말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