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화산천검 2권(18화)
7장 선검수, 도문과 검문(2)
‘사부에게도 이유가 있겠지…….’
사부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엔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는 자신만의 이유가 있을 터.
사부가 말하기 전까진 내가 궁금증을 가질 필요는 있어도, 답을 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 잡생각이 너무 많았네.’
오행 진인께서 내 앞으로 걸어와 말했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네 사부인 무진 진인은 지금 소검파로 가 있다고 들었다. 그동안 수련을 하기 위해 온 것이더냐?”
“예.”
직설적인 말.
그렇다면 나도 직설적으로 대답해 주어야겠지.
“그래, 괜찮다.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바로 시작하여도 무방하다.”
“예.”
“가자꾸나.”
붓을 놓고 일어서는 오행 진인.
같이 바깥으로 나가 연무장으로 갔다.
연무장은 엄청나게 넓었다.
잘 깔린 청석 바닥에 딱딱한 벽.
연무를 하기 위한 장소인 만큼 매우 단단했다.
그 위에 선 선검수들이 보였다.
“저건…….”
“매화삼릉검(梅花三凌劍)이다. 너도 배웠으니 알지 않느냐?”
“예, 알고 있죠. 그런데…….”
저건 뭔가 다르다.
매화삼릉검인데, 뭔가 모르게 매화삼릉검이 아닌 것 같다.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냐? 어서 따라오거라.”
의문을 접고 오행 진인의 말에 따라 그의 뒤를 따라갔다.
“핫!”
붕∼ 슈웅∼
공기를 가르는 검의 소리.
그리고 그 소리를 만드는 검의 주인.
그들의 절제된 행동과 기도에 전율이 일었다.
‘이자들…….’
하나하나의 실력은 나보다 뛰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두들 일류고수 소리는 들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들.
그런 사람들이 모여 같은 행동을 취하는 것을 보니 전율이 인 것이다.
“잠시 멈추거라!”
쩌렁쩌렁 연무장에 울리는 목소리.
바로 옆에 서 있는 나는 머릿속이 울리는 느낌에 재빨리 내공을 끌어 올렸다.
‘이건…….’
음공인가?
‘아니야, 도가의 진인이 음공을 배울 리가 없지. 그렇다면 저건 심후한 내공의 발현인 건가?’
그것이 더 가능성 있었다.
새삼스럽게 장로들의 강함이 느껴졌다.
‘아직 멀었구나…….’
사부보다는 약하다고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그 무력이 약한 것은 아니다.
나 정도는 간단히는 아니어도 그래도 이길 수 있는 무력은 가지고 있는 것이 한 문파의 장로다.
‘이 정도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벽에 막힌 나.
그 벽을 뚫기 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에 이곳에 오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절도 있게 말하는 앞에 있는 한 선검수.
“알려 줄 것이 있다.”
오행 진인께서 나에게 손짓하자, 선검수들이 나를 주시했다.
‘음…….’
좀 많이 부담된다.
나를 보는 시선 중의 하나인 연화.
놀라움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살포시 미소 지어 주고 앞으로 나섰다.
“선검수, 청우라고 하오.”
포권을 취하며 말하자, 사람들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저 눈빛…….’
나를 아는 것 같은 눈빛이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나?’
삼 년 전의 합동훈련 때에 두각을 드러낸 나.
삼 년이나 지났으니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모두들 기억하고 있었다.
‘좋은 거겠지?’
이곳에 온 목적 중 하나는 연화 말고도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동안은 무공 수련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
나에게 관심을 주니 좋아해야 마땅한 일이다.
“자, 그만!”
또다시 소리치는 오행 진인.
이번엔 대비하고 있었기에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저자들…….’
삼 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강해진 나에게 머리를 울리게 하는 심후한 내력을 발산하는 오행 진인.
그런 오행 진인의 목소리에 아무도 동요하지 않고,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강하구나…….’
나만 강해진 것은 아니었다.
이들 또한 살을 파고, 뼈를 깎는 고련을 통해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청우, 너도 매화삼릉검은 알고 있을 터다.”
“예.”
“저 아이들과 같이 서거라.”
길을 비켜 주는 선검수들.
그 길을 타고 어느 한 자리에 멈춰 서고,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럼, 시작하거라!”
“핫!”
커다란 기합 소리와 함께 검이 움직였다.
매화삼릉검.
선검수 때 배우는 화산파 절기 중 하나다.
삼장구초로 이루어져 있는 화산파 절기.
육합검법에서 시작되어 압축하고 압축되어 남은 세 장.
그것이 바로 매화삼릉검이다.
‘이건…….’
빠르다.
다른 아이들과 속도를 맞추지 못하겠다.
나 혼자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조금만 느리게…….’
마음이 일자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내력에 이끌려 점점 몸의 움직임이 느려져 갔다.
아이들과 속도를 맞추고 그 상태를 유지했다.
‘어째서지?’
매화삼릉검을 펼치며 생각해 보았다.
본래 이런 것은 불가능하다.
초식을 백련을 거쳐 눈을 감고도, 잠을 자면서도 벌떡 일어나 펼칠 수 있을 정도로 숙달되지 않으면 이렇게 초식을 펼치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그런데 나는 백련을 거치지 않고도 가능하다.
매화검로와 함께 상승한 나의 무공.
대충 형을 기억하고 조금씩만 신경을 써 주면 이런 것도 가능할 정도였다.
‘어째서 이렇게 빠른 거지?’
나는 그냥 쉽게 편안한 마음으로 펼친 것이었다.
그런데 너무 속도가 빨랐다.
아니, 나는 빠르다고 느끼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내가 빠르기에 그렇게 생각한 것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들 열심히 펼치고 있다.
어떤 아이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까지 정성스럽게, 정신을 집중하여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이의 속도가 저 정도.
그런데 나는 그냥 가볍게 펼쳤는데 그들의 두 배 정도의 빠르기다.
‘매화검로…….’
답은 이것으로 귀결된다.
나의 무공이 상승한 이유도, 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특출 나게 강해진 것도 모두 이것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문제의 답이기도 했다.
매화검로를 펼치고 나서 들끓던 내력.
고통과 함께 뱉어 내는 응혈들.
그리고 조금씩 내 몸이 바뀌어 간다고 느꼈던 감각.
그것 때문이다.
계속 매화검로만 펼치다 보니, 다른 무공도 매화검로의 속도로 펼쳐 버린 것이다.
각 무공은 각 무공에 맞는 속도와 특성이 있다.
그것을 빠른 매화검로에 맞추다 보니 이런 속도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속도가 매화검로와 같은 엄청난 빠르기인데도 매화삼릉검의 정확도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초식의 한계…….’
사부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초식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나에 맞게 초식을 바꾸고, 나의 의지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그렇게 되면 초식이 어떤 모습이건, 어떤 속도건 상관없이 그 무공의 특성을 잃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그 정도의 경지인가…….’
사부가 있었을 때와 내가 혼자 훈련할 땐 몰랐다.
사부는 너무나 강했고, 내가 훈련할 땐 혼자라 비교할 수 없었다.
이렇게 비교 대상이 나타나자 확연히 나의 실력이 나타났다.
‘잘 온 것 같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나를 알아야 한다.
급속도로 성장하는 것도 좋지만, 나를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나 강해졌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계속해서 정진했다면, 그것은 퇴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이런 것도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이지…….’
무에 대한 공부를 심후하게 만드는 깨달음은 아니지만, 나를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된다.
‘끝났나?’
생각이 너무 많았던 것일까?
어느샌가 모두들 움직이던 검을 내리고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크게 숨을 들이켜면 커다란 자연지기가 몸을 휘돌고, 숨을 길게 내뱉으면 그에 맞춰 탁기가 바깥으로 나간다.
그러면 끝이다.
그것으로 나는 피로가 말끔히 가신다.
‘이 정도야…….’
매화검로를 펼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쉽다.
그렇기에 이 정도의 휴식만으로도 몸의 피로는 거의 싹 가셨다.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는 선검수들.
호기심이 담겨 있는 눈빛이다.
‘다행이다.’
모르고 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호흡이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것과 처음에 빠른 속도로 매화삼릉검을 펼쳤던 것을 모르고 있다.
내가 제일 뒤에서 펼친 것도 있거니와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좋은 일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특별하다는 이유로 관심을 받고 싶지는 않다.
내가 보평제자 때에 유상필을 쓰러뜨려 특별하다는 이유로 관심을 받아 친구들이 멀어지지 않았던가?
그런 것은 더 이상은 사양이었다.
다가갈 것이면 평범하게 다가가고 싶었다.
다음으로 태을미리장, 희이검(希夷劍), 양오검(養吾劍), 구궁검법(九宮劍法)과 같은 것들을 펼쳤다.
그렇게 모두 펼치는데도 조금 호흡이 흐트러진 것 빼고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그것도 다른 아이들과 같이 운기조식을 취할 필요도 없이 그냥 가만히 서서 호흡을 조금 고른 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어차피 피곤하다 하더라도 운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그릇이 꽉 차서 더 이상 내용물이 들어갈 공간이 없으니까.
그래도 오행 진인의 말에 따라 운기를 하고 몸을 일으켰다.
형형한 안광들.
그리고 운기를 하느라 피어오른 그들의 진신내공.
연무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성, 따라오거라.”
그 한마디를 끝으로 선검수들의 훈련은 끝났다.
이들은 모두 이미 보평제자들과 같이 다 함께 모여 훈련을 하며 실력을 키울 경지는 지났다.
이렇게 모두 모여 훈련을 하는 것도 아까 남으라고 한 제자와 같이 틀린 부분을 장로님이 바로잡아 주거나, 조금의 조언을 받기 위해 모이는 것이다.
훈련이 끝나고, 연무장에 남은 선검수들.
친한 아이들끼리 서로 모여서 떠들거나,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런 제자들 사이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연화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뭐가 무슨 일이야?”
대체 뭐가 무슨 일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했으면 알아들어야지. 아무튼, 여긴 왜 온 거야?”
“훈련하려고.”
“네가 그런 이유 때문에 이곳에 올 이유가 없잖아? 혼자서도 잘하면서.”
“나도 막히는 부분 정도는 있다고. 게다가 사부도 없잖아? 나에게 조언을 해 줄 사람이 없어. 이런 곳에서라도 깨달음을 얻어야 해.”
“벽이야?”
“응, 벽이야. 막혀 버렸는데 방법을 모르겠어.”
“그렇구나, 그렇다면 막을 순 없겠네…….”
“응? 뭘 막아?”
“아니야, 그런 게 있어. 어차피 그 녀석들도 너에게 별로 큰 관심은 없는 것 같으니까.”
조용히 중얼거리는 연화.
나한테 들리지 않도록 말하는 것 같았지만, 입 밖으로 낸 이상 나에게 들릴 수밖에 없다.
“그 녀석들은 뭐고?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거야?”
뭔가 이상한 것이 엮여 있는 것 같았다.
연화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윽, 젠장. 판단 착오다. 오고 있어.”
연화가 힐끔 쳐다보는 곳.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몇 사람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