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화산천검 2권(14화)
5장 대결(3)
“문후 장로와 거기 있는 화산파의 후예. 거물과 거물이 될 자격이 있는 자는 살려 두고 싶지 않으나, 네가 있는 한 힘들겠군. 피해가 크겠어. 게다가 시간도 많이 지체되었고 말이다. 더 이상 싸우는 것은 안 좋겠지. 돌아간다.”
황신이 뒤의 복면인에게 손짓했다.
어느새 검을 뽑고 지혈을 마쳤는지 복면인이 조금은 나아진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겠지? 흔적은 남기지 않는다.”
“존명!”
복면인이 말하며 무언가를 꺼냈다.
퍼어엉!
“무슨……!”
문후 장로님의 목소리.
나 또한 당황했다.
연막(煙幕)이었다.
까만 연막이 피어오르고 있어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귀찮군…….”
마진천이 중얼거리며 검을 휘둘렀다.
후우웅∼
검풍(劍風).
연기가 검풍에 쓸려 가고, 시야가 트였다.
“이런…….”
복면인들의 시체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아니, 사라져 가고 있었다.
붉은색의 물로 변해 가는 복면인의 시체.
“화골산(化骨酸)인가?”
사마외도의 무리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질 때 쓰는 독.
시체를 없애는 강한 독성을 지닌 독이었다.
부글부글 끓는 뜨거운 물로 화한 복면인들의 시체와,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열한 명의 화산파와 종남파의 후기지수.
거기에 정신이 미친 듯 문후 장로님이 외쳤다.
“살아 있는 자가 있는지 살펴라! 그리고 현파, 너는 전각 안으로 가서 영풍 장로의 생존을 확인해라!”
주변이 어수선해졌다.
손목에 손을 대 생존을 확인하는 제자들.
눈물을 흘리며 죽은 동료를 애도하며 이동시키는 제자들.
가슴이 막혀 왔다.
모두 친하지는 않아도 얼굴을 알고 있는 자들.
그들의 죽음이 가슴을 짓눌러 왔다.
그리고 또 하나, 곤혹스러운 일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일단 저들을 돕거라. 청우와 마진천, 그 사정은 나중에 듣도록 하지.”
문후 장로님이 나를 쳐다보며 말하였다.
아직 분노가 가시지 않은 듯 이글거리는 눈빛.
눈을 돌리고, 다른 자들을 도와 뒷정리를 하였다.
죽은 자들을 애도하며 표국을 시켜 화산파와 종남파로 이동시키기로 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총검문의 의당(醫堂)만으론 모자라서 마을로 나가 의원에서 치료하기로 했다.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심각하게 다친 종남파와 화산파의 후기지수들.
죽은 자도 절반이나 된다.
게다가 종남파의 영풍 장로가 죽었고, 문후 장로는 중상이다.
구파로서의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흉수가 누군지도 모른다.
종남파의 비조각(飛鳥閣), 화산파의 비매각(飛梅閣)의 정보력으로도 조금의 정보밖에는 얻지 못했다.
섬서의 남부를 통해 호북으로 넘어갔음. 이후로는 추적불가.
화산파와 종남파.
구파의 약세라고는 하나 정도의 지주라고 하는 구파다.
화산과 종남의 일이라고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머지 칠파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난세.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시대가 끝나고, 난세가 도래하기 시작했다.
중원무림 전체가 들썩였다.
혹자는 무림맹을 발동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흉수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무림맹을 발동하는 것은 무리인 듯, 화산파와 종남파는 그저 서로 연계하여 정보를 교환하기만 하였다.
정체불명의 집단의 인물들과 싸운 종남파와 화산파의 후기지수들.
아직은 총검문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곳의 지객당(知客堂), 치료를 마친 문후 장로님, 마진천과 함께 그곳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자단목(紫檀木)의 은은한 향이 느껴졌다.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탁자, 산수화가 벽에 걸려 있고, 정면으로는 용사비등한 필체로 글자가 쓰여 있는 한 족자가 보였다.
벽에 붙어 있는 탁자 위로는 고풍스러운 도자기가 놓여 있었다.
“앉거라.”
문후 장로님의 말에 의자에 앉았다.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문후 장로님이 중얼거렸다.
마진천은 조용히 팔짱을 끼고 앉았고,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궁리하고 있었다.
잠시의 침묵 후, 문후 장로님이 말했다.
“사소한 얘기를 먼저 하는 것보다는, 문파의 일부터 하는 것이 좋겠지.”
문후 장로님이 마진천과 나를 한 번씩 쳐다봤다.
“그 복면인, 누구인지 아느냐?”
“저는 잘…….”
“제대로 말해야 한다.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불어.”
강렬한 눈빛이다.
얼버무릴 수가 없었다.
고개를 숙이자, 마진천이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저, 이번 합동훈련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대비했을 뿐.”
“이상함을 느껴?”
마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삼백 년 전의 혈천의 겁난. 그 이후로 화산파는 무당과 소림을 빼고는 그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으려 했죠. 그런데 갑작스레 회담을 했습니다. 그리고 합동훈련을 한다고 공표했죠.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아니요, 무언가 사건이 있기 전에는 이런 일이 벌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삼백 년이나 이어져 온 감정입니다. 쉽게 끊어질 리가 없죠. 많이 희석되었다고는 하나 이렇게 갑작스럽게 끊어질 리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의심했습니다.”
“일리가 있군.”
문후 장로님의 말에 마진천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영풍 장로님과 문후 장로님이 우리의 실력을 본다고 앞으로 나서서 무공을 펼치게 했던 날, 저녁에 발견했습니다. 빼어난 실력을 보인 후기지수들에게 어느 순간부터인가 붙은 그림자를요.”
“그런…….”
문후 장로님은 몰랐던 듯 당황한 표정이었다.
“청우와는 첫날 인연이 있어 알게 되었죠. 그리고 그에게 붙은 그림자를 발견하였고, 공격하여 떼어 냈습니다. 그리고 추적에 성공하였죠.”
“어떻게 되었나?”
단서가 잡힌다고 느꼈기 때문인지 문후 장로님이 재촉했다.
“녹청산에서 발견했습니다. 비겸독지주 왕정치, 아십니까?”
“비겸독지주?”
문후 장로님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마인이 어째서?”
“저도 모릅니다. 그에게서 알아낸 것은 왕정치가 어떤 자에게 패배한 후에 그의 수하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가 왕정치라는 마인을 복종시킬 만큼 강력한 무력을 지녔거나, 악독한 심성을 지닌 자라는 것도요.”
“집단인가, 아니면 개인인가?”
“개인이었다고 해도 누군가를 수하로 받아들였다면 집단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지요. 집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그렇군.”
“왕정치는 죽였습니다. 위험했으나, 청우 덕분에 살았지요.”
“후기지수가 잡을 만한 실력자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네만?”
문후 장로님이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말했다.
“습격의 날, 보셨을 텐데요?”
마진천의 말에 문후 장로님이 ‘그렇군’ 하는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잡은 후에 돌아오는 길에서 그의 수하와 마주쳤고, 격돌했습니다.”
“결과는?”
“벽력탄을 쓰더군요.”
“벽력탄이라…… 일이 더 심각해지는군…….”
벽력탄.
벽력마장의 일생의 역작으로, 반경 십여 장 이상을 초토화시킬 정도로 강력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혈천 이전에 있던 무림의 공적.
마지막 혈산평의 전투에선 이백여 명의 정파고수와 함께 자폭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벽력탄의 위력은 뛰어나다.
그랬기에 내가 그렇게 다쳤던 것이고…….
“그것에 청우가 다쳤습니다. 아, 그리고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그 당시 어째서 하루 만에 추궁을 그만둔 것입니까?”
마진천이 물었다.
문후 장로님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말할 필요가 있나?”
“있지요. 왕정치에게 얻었던 정보 중의 하나와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마진천의 말에 문후 장로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그 당시 추궁을 그만둔 이유는 죽림현사와 성의 때문이었다.”
“모 선생은 그렇다 치고, 성의라니요?”
나를 치료한 의원이 누구였는지 몰랐던 듯 마진천이 물었다.
“나를 치료한 의원이 성의이셔. 모 선생님과 친분이 있다고 했어.”
“그렇군.”
“죽림현사와 성의, 뛰어난 명성을 가진 사람들이지. 청우, 네가 다친 일이 자신들의 개인 사정에 의한 것이었다면서 추궁을 그만둬 달라고 하더구나.”
“구파의 제자가 다친 일입니다. 아무리 성의와 죽림현사라고는 하나 그만둘 이유가 없지 않았습니까?”
“본산에 전서를 보내보았다. 그만두라고 하더군. 장문인께서 말이다.”
“장문인께서…….”
조용히 중얼거리자, 마진천이 말했다.
“죽림현사와 성의, 그리고 매화검선께서 그만두라고 하셨다라…… 무언가 관련이 있을지도…….”
“그것은 나중의 일이다. 먼저 설명부터 끝내거라.”
“예, 그러고 나서 싸웠습니다. 총검문을 습격한 무인들과.”
“지금까지의 증거로 추정되는 집단은 있나?”
“없습니다. 그저 마지막의 그 남자가 가지고 있는 무기, 제가 보기에는 삼마병 중 이병 추혼칠마창인 것 같았습니다…….”
“혈천…… 말인가?”
“아닐 수도 있지요. 혈천은 해체되었습니다. 다른 세력에서 얻은 것일 수도 있지요. 무림을 파괴하고, 천하를 위협하려는 세력은 어느 때에나 있었죠.”
마진천의 말에 문후 장로의 얼굴에 명암이 졌다.
“장문인께…… 보고해 보지.”
“예, 비매각과 비조각에 정보를 보내 보십시오. 조금은 더 정보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알았네. 하지만 정체불명의 세력이라고 했지? 어째서 이런 평화로운 시대에 그들이 나타난 건지…….”
“삼백 년의 평화,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준비 기간입니다.”
“그래, 그것도 그렇지.”
문후 장로님이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괜찮다. 화산파가 약해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지지는 않는다. 지금과 같이 조금씩 다른 구파와 사이를 개선해 나가면 된다. 구파는 약하지 않아.”
자부심이 담긴 문후 장로의 말.
정도무림의 지주, 구파의 무력에 대해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드러난 칼보다는 암중의 비수가 더 무서운 법이죠.”
“그렇긴 하다만, 괜찮다. 우리는 강하다.”
마진천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 자신하는군…….”
마진천이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무튼, 설명은 이것으로 끝인가 보군. 그렇다면 이번엔 청우, 너다.”
문후 장로님이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당시 너의 그 기이한 능력, 그리고 복면인들의 수장과 싸울 때의 그 기이한 무공. 어떻게 된 일이냐?”
“그건…….”
‘어떻게 대답해야 되지?’
고민하고 있을 때, 문후 장로님이 말했다.
“그것도 네 장천수와 같은 것이냐?”
“아, 네…….”
대답할 것은 이것밖에 없다.
다행히도 문후 장로님이 먼저 말해 주셨다.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그래, 너의 말을 믿어 보마. 어차피 내일이면 본산으로 돌아갈 터이니 장문인께 말해 보마.”
“아,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더 물어볼 것이 남아 있으십니까?”
마진천의 말에 문후 장로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나가 봐도 된다.”
“예, 그럼…….”
포권을 취하고 지객당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