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화산천검 2권(13화)
5장 대결(2)
삼재검법.
복면인이 기묘하게 검을 휘둘렀다.
삼재검법의 변화를 모조리 차단해 버린다.
“너는 저들보다 약하군. 실력은 괜찮아 보이는데, 차라리 내 수하들과 싸우는 것이 낫지 않나?”
“적이면서 그런 조언을 해도 되나? 승부에만 집중해라.”
나의 말에 복면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강자로서의 여유다.”
“호랑이는 토끼를 잡는 데도 여유를 부리지 않는다. 너는 강자가 아니라 오만에 빠진 여우일 뿐이다.”
복면인이 검을 휘둘렀다.
챙! 챙! 채채챙!
격장지계가 통한 듯 광폭하게 검을 휘두르는 복면인이다.
화가 나면 시야가 좁아지고, 상황 판단이 느려진다.
복면인에겐 패배를 안겨 주고, 나에겐 승리를 안겨 줄 기회.
하지만 복면인은 만만치 않았다.
카앙!
복면인이 검을 맞부딪치고 뒤로 물러났다.
“후우…… 하마터면 완벽히 넘어갈 뻔했다.”
가라앉는 눈빛.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어린나이로 보이는데 대단한 격장지계다. 나에게 한순간 분노를 느끼게 하다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릴 적,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에게 심하게 시달리면서 배운 격장지계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상대해 주마.”
복면인이 자세를 바꾸었다.
또다시 다른 무공을 사용하려는가?
이번엔 제대로다.
검을 집어넣고, 자세를 잡았다.
맞부딪치는 기파에 모래 먼지가 휘날렸다.
“발검술인가?”
“그렇다면 어쩔 건가?”
복면인이 냉정한 눈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잠시의 대치 상태.
순간, 복면인이 날아올랐다.
달을 등지고 하늘에 떠오른 복면인.
빠른 속도로 나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하앗!”
기합을 내지르며 왼손과 오른손, 양손으로 발검했다.
오른쪽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사부가 준 검, 왼쪽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청강검.
복면인의 검과 십자로 교차했다.
카아앙!
검이 긁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복면인이 공중에서 몸을 한 바퀴 돌리며 다시 한 번 검을 내리쳤다.
카앙!
“크윽…….”
복면인의 검에 실려 있는 경력이 대단했다.
발이 땅속에 파고들었다.
복면인이 반탄력으로 몸을 튕기며 땅에 내려섰다.
뒤로 몸을 젖히는 복면인.
휘어지는 몸.
탄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나의 앞으로 다가온다.
쨍!
“크윽.”
궁신탄영(弓身彈影)이다.
상승의 신법인 만큼 엄청난 빠르기.
재빨리 검을 앞으로 내리쳤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어도 치명상을 입었을 거다.
챙! 챙! 채챙! 카가악!
몸을 기묘하게 움직이며 몰아치는 연격.
매화검로는 물론이거니와 신류퇴나 장천수를 펼쳐 낼 잠시의 시간도 주지 않는다.
그저 방어만이 최선이다.
챙! 채챙! 스걱!
하지만 기세를 타고 강해지는 복면인의 연격에 방어가 뚫리기 시작했다.
옆구리부터 시작해서 어깨, 허벅지에까지 얕은 검상을 입었다.
그때, 마침 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잉∼
다른 자들과는 달리 장포를 입은 복면인의 수장이다.
바람에 장포 자락이 휘날렸다.
[지금이다!]
마진천의 전음이 들렸다.
‘나도 알고 있다고!’
지금, 염력을 전개한다.
위이잉!
요동치는 상단전.
염력에 복면인의 장포 자락이 위로 올라가며 복면인의 눈을 가렸다.
“……!!”
놀라는 복면인.
‘지금이다.’
흐트러진 검.
오른쪽으로 일보 움직여 가볍게 피해 냈다.
왼발로 진각을 밟는다.
쿵!
발을 타고 허리로 올라와 꺾는다.
배가(倍加)되는 힘.
다시 어깨에서 회전, 전사(轉絲)다.
검신에 깃드는 무지막지한 회전력.
푸욱!
재빨리 뻗어 내자 강력한 검력을 품고 복면인의 어깨를 꿰뚫었다.
“크윽!”
복면인이 나의 이 격을 막아 내고,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복면인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 방심했다. 제대로 한다고 해 놓고서 마음속에서는 얕보고 있었나 보군.”
찌익!
복면인이 옷을 찢었다.
뚫린 어깨, 근처의 혈도를 짚자 출혈이 멈추었다.
“보아하니 너도 기세에 밀려서 그렇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한 것 같지는 않군.”
움찔했다.
복면인의 가라앉은 눈은 나의 모든 것을 꿰뚫을 듯 강렬했다.
“지금도 위험한데,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면 죽을 수도 있겠군.”
복면인이 검을 꾹 쥐었다.
“실력을 발휘할 기회는 주지 않는다. 아까의 바람과 같은 요행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달려드는 복면인.
아까와 마찬가지로 광폭한 기세로 노도와 같은 연격을 퍼붓는다.
하지만 똑같은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상단전과 중단전의 공명은 아까와 같은 검법에 저절로 반응하며 막아설 곳을 알려 주었다.
카각!
중간에서 막혀 버린 복면인의 검법.
복면인의 왼손이 빛살과도 같이 움직였다.
퍼억!
“큭!”
이것을 노린 것이었을까?
아까와 같은 공격을 함으로써 주의를 그곳으로 돌리고, 막혔을 때 수공으로 공격.
어깨에서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다시 한 번 움직이는 복면인의 손.
오른손의 청강검으로 막았다.
터텅!
검날과 육장이다.
맞부딪치면 육장이 베일 것은 당연한 일, 복면인은 검 면만을 치며 뒤로 물러났다.
“하아…… 하아…….”
오른쪽 팔은 당분간 사용하지 못한다.
입술을 깨물며 노려보았다.
복면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달려들었다.
“크으!”
이제는 숨기지 못한다.
왼손으로 매화검로를 전개했다.
매화검로 이 초 매화부석.
복면인의 검과 나의 매화가 한순간 십여 번 부딪쳤다.
복면인의 검이 뒤로 튕겨 나갔다.
앞으로 일보 나서며 매화검로 사 초, 매화연혈을 전개했다.
복면인의 몸을 덮쳐 가는 매화.
복면인이 몸을 뒤집으며 발을 내찔렀다.
퍽!
“크윽!”
복면인의 임기응변은 뛰어났다.
최소한의 피해로 나의 공격을 막아 내며 반격한다.
이것이 실전, 경험, 연륜의 차이다.
하지만 기세를 탄 이상 놓칠 수는 없다.
끝까지 내찌른 검에 복면인의 가슴에서 피가 튀었다.
복면인의 피를 머금고 붉게 피어나는 매화.
다시 한 번 내찌른다.
보라색으로 변한 매화가 은은하게 빛나며 복면인을 덮쳤다.
푸욱!
깊었다.
복면인의 옆구리를 뚫고 들어가는 매화.
“크으…….”
몸을 비틀며 검을 내리치는 복면인.
피할 틈은 주지 않는다.
염력으로 복면인의 검을 막았다.
“……!!”
놀라는 복면인.
느려진 검의 속도.
검을 놓고 왼손으로 다시 한 번 발검했다.
큐우웅!
‘마지막!’
이걸로 끝이다.
이 상태라면 복면인의 몸은 양분될 것이다.
그때, 검은 무언가가 나의 앞에 나타났다.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퍼어억!
“컥!”
가슴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충격.
공중에 떠 뒤로 날아갔다.
콰아앙!
화산파의 홍등 전각의 벽에 부딪치며 멈추었다.
“크으…….”
주르륵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피.
성의의 단약으로 내상을 치료해 놓았더니, 이번엔 새로운 내상을 입었다.
기혈이 비틀리는 고통과 함께 피를 토했다.
“쿨럭! 우욱…….”
고개를 들어 복면인이 서 있던 곳을 쳐다보았다.
복면인은 망신창이였다.
옆구리에 꽂혀 있는 검, 가슴을 베어 가다 말고 멈춘 또 다른 검.
입가에 피를 흘리며 서 있는 것이 상세가 심각했다.
하지만 숨통을 끊어 놓지 못하였다.
게다가 복면인이 쳐다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았다.
육 척 장신에 근육으로 뭉쳐진 체구.
이목구비가 선명하면서도 각이 진 얼굴, 불길처럼 쏟아져 나오는 눈빛.
강한 사내의 모습이었다.
복면인들과는 다르게 얼굴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등에 꽂혀 있는 여섯 자루의 묵색 창.
나를 친 것은 그의 손에 잡혀 있는 한 자루 묵색의 창으로 보였다.
도합 일곱 자루의 창을 몸에 지니고 있는 남자.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열린 상단전, 게다가 그 평범한 궤도를 벗어난 검로. 위험하군.”
괴상한 남자다.
무심한 듯 말하는데, 음공이라도 되는 듯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흔들리는 눈으로 쳐다보자, 그가 창을 등에 꽂으며 말했다.
“다행이라면 아직 완벽히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로군. 그렇다면 죽어라.”
그가 홀로 중얼거리더니 창을 들었다.
창을 잡은 손을 뒤로 당기듯 움직이더니, 앞으로 내던졌다.
쌔애애애앵!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묵색의 창.
게다가 깃들어 있는 경력 또한 엄청났다.
바람이 창을 휘감아 돌았다.
땅거죽이 뒤집히는 위력.
순식간에 내 눈앞에 도달하는 창날.
상단전의 염력도 소용없다.
무언가에 가로막히듯 힘을 쓰지 못했다.
‘이런…….’
허무한 끝인가?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았고, 기세도 탔다.
한데 그저 한 사람의 난입으로 모든 것이 틀어졌다.
이대로 끝이다.
막을 방법이 없다.
찰나의 순간, 빛이 번쩍였다.
콰아앙!
강렬한 폭음.
진기로 귀를 보호하였기에 고막은 터지지 않았다.
눈을 뜨자 찬란히 빛나는 검신이 보였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보이는 푸른 무복, 익숙한 얼굴.
“위험했다.”
마진천이었다.
검을 비틀어 잡으며 마진천이 말을 이었다.
“그 묵색의 일곱 창, 삼마병(三魔兵) 중 이병(二兵) 추혼칠마창(追魂七魔槍)인가?”
남자가 눈을 빛냈다.
“알아보는가? 중원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라 알아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알아보는 사람이 있군.”
“삼백 년 전, 혈천의 겁난. 혈천회의 세 호법 중 창마(槍魔)의 성명병기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은 상관없지. 너야말로 누구냐? 나의 공격을 막다니, 평범한 후기지수는 아닌 듯 보이는데?”
그가 등에서 창을 한 자루 꺼내며 말했다.
“마진천, 종남파의 십팔검수다. 너는 누구지?”
“사람이 많아 어디 소속인지는 가르쳐 줄 수 없다. 하지만 이름은 가르쳐 주지. 황신(黃神)이다.”
“들어 본 적 없군.”
“너도 들어 본 적 없다. 아직은 정보망이 엉성하군. 숨겨진 실력자도 파악하지 못하다니…….”
“나와 저 녀석이 잘 숨은 거지. 너희의 정보망을 탓할 필요는 없다.”
“그것도 맞는 것 같군.”
고개를 끄덕이는 황신.
마진천이 검을 들어 올렸다.
“해 볼 텐가?”
마진천이 기세를 뿜어냈다.
종남의 반룡.
땅에 서린 용이 그 기세를 뿜어내자, 이 대지에 그만이 서 있는 듯 존재감이 엄청났다.
“상관없지. 하지만 피해가 너무 심각하다.”
황신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남아 있는 복면인은 복면인의 수장 하나와 다섯 명.
문후 장로님의 옆에 유혁 사형이 서 있는 것으로 보아, 나와 복면인의 수장이 싸울 때 유혁 사형이 다가가 도와준 것 같았다.
그렇기에 화산파와 종남파의 후기지수는 문후 장로님을 포함 아직도 열세 명이나 생존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