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32화 (32/175)

# 32

화산천검 2권(7화)

3장 죽림현사 모청수(2)

매화검로 십육 초, 매화만천.

내가 배운, 알고 있는 무공 중 가장 강한 최후의 절초다.

평소와 같이 심호흡을 하며 근육을 이완시킬 시간도,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생각할 시간도 없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움직였다.

검이 분열된다.

둘, 넷, 여덟, 열여섯, 삼십이, 육십사…….

이백오십육 송이의 매화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바람에 꽃잎이 휘날리듯이 검으로 만들어 낸 매화의 꽃잎도 휘날렸다.

사방, 팔방 모든 방위를 점한다.

폭발의 여파가 비집고 들어올 틈조차 없는, 촘촘한 그물과도 같이 매화가 피어났다.

오른쪽으로 힐끔 시선을 돌리자 마진천이 보였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검을 비틀며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나타나는 기의 막.

하나의 귀갑(龜甲)이 마진천의 앞을 가로막았다.

다시 한 번, 또 한 번.

도합 세 번을 휘두르자, 세 개의 귀갑이 마진천을 보호했다.

완벽히 방어에만 특화된 초식이었다.

그 어떤 공격도 막아 낼 수 있는 방어막이었다.

마진천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문제는 나다.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면 안 된다.

조금만 방심해도 온몸이 터져 나갈 것이다.

“핫!”

벽력탄이 폭발했다.

울려 퍼지는 뇌성과 강렬한 섬광.

매화의 잎이 벽력에 타들어 갔다.

한 송이, 한 송이…….

순식간에 사라져 가는 매화.

마지막 한 송이마저 타들어 가고, 벽력의 충격파가 몸을 휩쓸었다.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하얗게 표백된 머릿속.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모든 것이 검은색으로 물들어 가고, 정신을 잃었다.

똑! 똑! 똑!

‘차가……워…….’

똑! 똑! 똑!

‘추워…….’

똑! 똑! 똑!

“으으…….”

춥다, 얼어 버릴 것 같다.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린다.

머리에서부터 시작된 차가운 감각.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머릿속이 울렸다.

“일…… 다행…….”

“멈추…… 아직…….”

무언가가 들려왔다.

하지만 귓속이 울려서 그런지 정확히 들려오진 않았다.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데, 천 근의 거석을 들어 올리듯 엄청난 심력이 소모되었다.

겨우겨우 눈을 뜨자 흐릿한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깜빡! 깜빡!

눈을 두어 번 깜빡이자 형상이 정확하게 보였다.

하나는 마진천,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깨어났구나.”

조용하고 진중한 중저음의 목소리.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목소리였다.

“누구…… 신지…….”

“인사해라, 네 생명의 은인이시다.”

“아!”

상체를 일으키고 포권을 취하였다.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몸을 움직이면 안 되니 누워 있게.”

중년인의 말에 따랐다.

사실 포권을 취하는 데도 상당한 심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몸은 삐걱거리고, 하단전에서는 미약한 진기만이 느껴졌다.

다시 눕자 중년인이 어디론가 떠나가고, 마진천이 입을 열었다.

“네가 쓰러지고 며칠이나 지났는지 아나?”

고개를 젓자, 마진천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그마치 이 주야다.”

“이 주야라면…… 훈련은 어떻게 됐지?”

“너를 빼고 진행했다. 시끄럽게 장로들이 떠들어 대긴 했지만, 하루가 지나자 입을 다물더군.”

“왜지?”

“나야 모르지.”

“그렇군……. 그럼 저분은?”

“나도 모른다. 죽림현사(竹林賢士) 모청수(慕淸數)가 불러온 의원인데, 내력은 모 선생을 빼곤 아무도 모른다.”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어지러운 정신을 가다듬고 상황을 판단하느라 그랬고, 마진천은 할 말이 없는 듯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중년인이 들어왔다.

“먹게나. 그리고 나는 이만 가겠네. 환자가 깨어났으니, 나는 나를 부르는 다른 환자들에게 가 봐야겠네. 청수 녀석에게는 안부 전해 주게. 그럼…….”

유지에 싸여 있는 한 단약을 건네주곤 중년인이 떠났다.

얼굴과 목소리를 기억하였다.

언젠가 인연이 되어 만나면, 도움을 드릴 수 있으면 그럴 것이라 다짐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불러오지.”

중년인이 떠나고 잠시 후, 마진천 또한 떠났다.

쿵!

문이 닫히고, 정적이 감돌았다.

멍하니 있다가 중년인이 주고 간 단약에 정신이 미처 손을 뻗어 유지를 벗기고, 약을 손에 쥐고 입에 넣었다.

텁텁하고 시큼한 맛이 느껴졌다.

뱉어 내고 싶었지만 참으며 삼켰다.

꿀꺽!

“하아∼”

겨우겨우 삼키자 약효가 드러났다.

몸의 중단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약기(藥氣).

몸을 한 바퀴 휘돌자 마음이 가라앉고, 몸이 풀렸다.

쓴 약은 몸에 좋다더니 역시나 쓴 만큼 약효가 좋았다.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되자 몸을 일으켜 움직여 보았다.

우두둑! 뚜둑!

뼈에서 들리는 소리에 이질감이 들었다.

‘이 주야 동안이나 몸을 움직이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지…….’

일다경 정도를 움직이자 적응이 되었다.

육체를 점검하고 적응이 되었으니, 이번엔 내부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내기를 끌어올렸다.

꿈틀!

다행히도 하단전은 멀쩡했다.

하지만 내기가 반 이상 사라진 것이, 파괴되지는 않았지만 충격은 있었던 것 같았다.

‘내기를 쓰러지기 전과 같이 쌓으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한탄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기에, 죽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라 자위하며 내기를 움직였다.

꽈드득!

“쿨럭!”

무언가가 끓어오름에 곧바로 뱉어 냈다.

까맣게 죽은 피였다.

그러자 이질감이 느껴지던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해졌다.

하지만 내기를 단전에서 움직이자마자 사혈을 토해 낼 정도로 기혈이 뒤틀려 있었다.

쿡쿡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 온몸이 비틀릴 것만 같은 고통.

참지 못하고 내기를 다시 하단전으로 되돌리고 눈을 떴다.

“하아…….”

외부는 괜찮다고 할 수 있는 상태, 하지만 내부가 문제였다.

기혈이 심하게 뒤틀려 있어 내기를 끌어 올리지 못하고, 반 이상의 내기가 사라져 있었다.

“다시 하는 것이 나을까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운기를 그만두었으나, 다시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상태로 놔두면 기혈이 뒤틀린 채로 굳어질 위험이 있기에 차라리 할 것이면 지금 하자고 결심했다.

“하아∼ 흡!”

기합을 넣고 가부좌를 틀고 고통에 대비하며 내기를 끌어 올렸다.

꽈드득!

뒤틀린 기혈을 바로잡느라 몸에서 괴이한 소리가 울리고, 고통이 느껴졌다.

대비하였음에도 느껴지는 악독한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신음성을 내뱉을 뻔하였다.

하지만 운기 중에 소리를 내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

목 언저리까지 올라온 비명을 꾹 참고 기혈을 바로잡아 갔다.

꽈드득! 꽈득! 콰직!

기혈을 바로잡는데, 마치 쇳조각을 짓누르는 것만 같은 소리가 났다.

그리고 고통도 그와 같았다.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기혈을 바로잡은 지 반 시진째.

드디어 중단전까지 이르는 혈도를 모두 원래대로 돌려놨다.

중단전에까지 길이 뚫리자, 기를 다시 하단전으로 되돌리고는 눈을 떴다.

“크으으…… 하아…… 하아…….”

이미 고통은 끝났지만 심리적인 영향인지 배가 쿡쿡 찌르는 듯 아파 왔다.

격렬한 숨을 내뱉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하아…… 하아…… 후우…… 후우…….”

숨을 바로잡으며 끝났다고 마음속으로 여러 번 반복해 말하자, 고통이 점점 사라져 갔다.

고통이 씻은 듯 사라지고, 평소와 같은 잔잔한 호흡을 내뱉고 있던 때,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그랗게 뜨여진 눈으로 놀란 표정을 짓는 여자.

연화였다.

“깨…… 깨어났구나…….”

더듬더듬 말을 끝내고, 잠시 굳은 듯 서 있던 연화.

“야!!”

쾅!

반갑게 웃으며 얘기하려 했는데, 연화가 소리치며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으윽…….”

머리가 울리는 통증.

윙윙거리며 귓속이 울렸다.

“괘…… 괜찮아?”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 몰랐다는 듯 연화가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며 걱정스레 물었다.

“병 주고 약 주고 가지가지 한다…….”

피식 웃으며 말하자, 연화가 ‘다행이다’라고 말하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자 눈 밑이 거멓고, 살이 빠진 듯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걱정했잖아…… 이제 괜찮은 거야?”

손을 꾹 쥐며 얘기하는 연화.

눈에 일렁이는 감정은 걱정스러움과 기쁨이다.

‘그런 눈빛으로 보면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해야 할 것 같잖아…….’

씁쓸하게 웃자, 연화가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 아직 몸이 안 좋으면 나가 있을게. 안정을 취해야 하니까…….”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평소의 연화 같지 않았다.

장부와 같은 호쾌함과 어린 여자아이의 영악함을 동시에 갖춘 연화.

하지만 지금은 마치 깨질 것만 같은 유리 인형을 대하듯 조심스러웠다.

“응…… 조금만 있다가 들어와 줘. 아직은 어지러워서…….”

“괜찮으니까, 괜찮아지면 말해 줘. 얘기는 그때 하자.”

문을 닫고 연화가 나가자, 긴 숨을 내뱉으며 생각에 잠겼다.

‘겨우 그 정도에 머리가 울릴 정도라니…….’

기혈이 뒤틀렸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조금 심각했다.

다행인 것은 금세 괜찮아졌다는 것이랄까?

나를 치료해 준 그분, 의술 실력이 매우 뛰어났던 듯 기혈이 뒤틀린 것을 빼고는 매우 좋은 상태였다.

하지만 무리해서는 안 된다.

괜찮아지고 있고, 괜찮게 만들 수 있는 상세.

무리하다가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그렇지만 무리할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은 착각일까?

“하아…….”

이 느낌, 착각이 아니다.

무언가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하나뿐이지.”

어차피 지금 이렇게 가만히 있어 보았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렇다고 잠이 오는 것도 아니니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최대한 빨리 내상을 치료하는 것.

끔찍한 고통에 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인 바, 빨리 하는 것이 낫겠지.

‘인기척도 없고…… 조용하니 좋네.’

가장 편한 자세, 가부좌를 틀고 다시 운기를 시작했다.

중단전까지 용이 승천하듯 노도와 같이 움직이는 내력.

그 기세를 타고 중단전을 휘돌곤 상단전으로 올라갔다.

“…….”

입술 사이로 뜨거운 피가 흘러내렸다.

오장육부가 뒤틀어지고, 비틀리는 것만 같은 고통.

꾹 참아 내고 상단전에 진기가 도달했다.

“……!!”

느껴지는 것은 벽(壁).

하지만 그것은 나쁜 상태라는 것이 아니었다.

진화하고,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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