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화산천검 2권(5화)
2장 격돌(2)
챙! 채챙!
“큭.”
암기에 실려 있는 경력에 검이 흔들렸다.
작은 암기에 실린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마진천 또한 굳은 얼굴로 암기를 막아 내고 있었다.
독질려, 철질려, 매화표, 수리표, 비수 등.
어디에 저렇게 많은 암기를 숨겨 놓았었는지 모를 정도로 많은 암기가 비와 같이 쏟아져 내렸다.
“큭큭큭.”
왕정치가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흘리며 사방팔방 살잠사를 누비고 다녔다.
등 뒤에서, 눈앞에서, 머리 위에서…….
사각을 점하며 뿌려지는 암기.
마침내 일각이 지나고, 드디어 모든 암기가 떨어진 듯 암기의 세례가 멈추었다.
“후우…….”
격해진 호흡을 고르며 심호흡을 하였다.
‘위험했다…….’
다행히 딱 맞춰서 왕정치의 암기가 떨어졌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당했을 거다.
손을 들어 올려 땀을 닦아 냈다.
왕정치가 품속에서 손을 빼고 겸을 움켜쥐었다.
“후후후, 죽어라!”
살잠사를 타고 허공을 자유자재로 누비며 왕정치가 등 뒤로 다가와 겸을 휘둘렀다.
챙!
겸을 막아 내자 마진천이 다가오며 검을 내찔렀다.
왕정치가 겸을 놓으며 살잠사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갔다.
“무기를 버리는 건가?”
암기도 떨어졌고, 무기라고는 두 자루 겸밖에 없는데 그중 하나를 버리고 가다니…….
“난 싸움을 시작하면 내 손에서 겸을 떼어 놓은 적이 없다. 단 한 번, 그분에게 패하기 전에는 말이다.”
씨익 웃으며 왕정치가 손을 잡아당겼다.
“윽!”
겸이 왕정치에게 날아갔다.
‘어째서?’
자세히 보니 겸의 손잡이 부분에 가느다란 투명한 무언가가 보였다.
‘살잠사?!’
그렇다, 살잠사를 이용한 한 수다.
겸이 왕정치에게 날아가고, 그 겸에 걸려 있는 나의 검과 함께 나 또한 끌려갔다.
천근추를 사용했건만 소용이 없었다.
나의 천근추를 뛰어넘는 강력한 내공으로 왕정치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차앗!”
마진천이 나를 향해 뛰었다.
“너는 마지막에 요리할 거니까 가만히 있어!”
챙!
살잠사와 마진천의 검이 맞부딪쳤다.
마진천의 검이 튕겨 나가고, 마진천이 땅으로 떨어졌다.
“자, 먹어라!”
또르르륵!
보라색의 독이 살잠사를 타고 흘러내렸다.
겸을 떨쳐 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날이 파여 있고, 기형적으로 구부러져 있었기에 검은 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살잠사를 타고 흘러내리는 독에 중독될 것이다.
게다가 저 진한 보라색의 독은 붉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척 봐도 극독이었다.
‘검을 놓으면 살 수 있어. 하지만 그건 수치인데…….’
보라색의 독이 겸에 닿았다.
나의 검과 독이 맞닿으려는 순간.
“큭!”
마음속으로 결단을 내리고, 재빨리 검을 놓았다.
팽그르르 신형을 돌리며 땅에 착지하자, 왕정치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호오, 구파 중에서도 화산파의 제자는 싸움 중에는 검을 놓지 않는다고 배웠을 텐데?”
“죽는 것보다는 낫지.”
“크하하. 맞는 말이다. 고리타분한 녀석은 아니었구나. 크크크. 그래, 죽일 맛이 나는구나.”
‘죽일 맛? 미쳤군…….’
내 눈빛을 느낀 것인지 왕정치의 웃음이 잦아들었다.
“큭큭큭. 다시 가도록 하지.”
검병의 끝에 묶여 있는 두 수실에 살잠사를 묶곤 왕정치가 겸을 던졌다.
후우웅∼
둔중한 파공음을 내며 날아오는 기형겸.
마진천이 나의 앞에 서며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귀를 울리는 커다란 굉음.
겸이 땅에 박혀 들어갔다.
“그건…….”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 육 초 천하일단(天下一斷).”
살잠사 또한 끊긴 듯 왕정치가 겸을 끌어당기지 않고 있었다.
“마지막에 요리한다고? 내가 널 요리해 주마. 거기서 가만히 있어라.”
마진천이 숨겨 왔던 기세를 뿜어냈다.
처음에 느꼈던 그 강렬한 기세를 왕정치가 느끼고 있는 것이다.
왕정치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덤벼라, 죽여 주지.”
왕정치가 잠시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그러자 얼굴에 다시 혈색이 돌았다.
으드득!
“가만…… 놔두지 않겠다.”
마진천의 기세에 눌린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왕정치가 분노했다.
왕정치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제대로 놀아 주지.”
해독약으로 보이는 붉은 핏빛의 단약을 삼키곤 우리를 향해 독을 뿌렸다.
초록색의 극독, 초염산이었다.
가만히 서서 맞아 줄 이유가 없기에 우리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피했다.
“소용없다!”
거미가 실을 뿜어내듯 살잠사를 뿜어내는 왕정치.
대부분의 독은 우리가 서 있었던 땅으로 떨어졌지만, 살잠사에 묻은 독들은 살잠사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왕정치가 그 살잠사에 또 다른 살잠사를 연결하여 흘러내리는 독을 우리를 향하도록 방향을 바꾸었다.
“큭!”
치이이익∼
빠르게 흘러내리며 방향을 바꾸는 독에 앞섶이 닿고,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녹아 들어갔다.
조금만 늦었어도 앞섶이 아니라 가슴이 독에 녹아 들어갔을 것이다.
“크하하. 그래, 발버둥치거라.”
‘젠장…….’
우리가 초염산을 피하려 움직이는 것에 대소하며 왕정치가 이번엔 하얀 분(粉)을 뿌렸다.
“이것은 오시분(훹弑粉)이라고 한다. 다리의 신경을 자극해 땅에 무릎 꿇게 하여 죽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미세한 가루.
조금씩 저 멀리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만, 아직 사위는 어두웠다.
원래부터 잘 보이지 않는 가루가 어두운 밤에 바람을 타고 날아오니, 막을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숨을 멈춰야 돼!”
마진천에게 말하고 크게 숨을 들이켜며 호흡을 막았다.
어떻게 날아오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저런 종류의 독은 대부분 호흡을 통해 중독되기 때문이다.
“재밌는 짓을 한다만 소용없다. 오시분은 말이다, 모공을 통해 중독되거든. 피부에 있는 그 모든 구멍을 막지 못하는 이상 중독은 피할 수 없다. 크흐흐. 재밌었다만 끝이로구나.”
왕정치가 불길한 웃음을 흘려 댔다.
잠시 후, 오시분에 중독되었는지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크윽.”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왕정치가 말한 오시분의 효능.
다리의 힘이 풀리며,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크으…….”
“큭큭큭. 걸렸구나.”
흐릿한 시야로 왕정치가 겸의 날에 무언가를 바르는 것이 보였다.
초록색 겸의 날이 불길해 보였다.
“초염산은 독성이 강하니 짧으나 굵은 고통일 것이다. 잘 가거라.”
쌔애앵!
공기를 가르며 다가오는 겸.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날아왔다.
‘이런…….’
이렇게 흔들리는 몸으론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도해 보지 않는 것보다는 시도해 보는 것이 낫다.
‘움직여, 움직여!’
의(意)로써 다리를 움직이려 하지만 소용이 없다.
다리는 이미 감각이 없고, 몸은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겸은 이 순간에도 빠르게 공간을 격하며 날아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겸과 나와의 거리가 반 이상 줄어들었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움직여, 움직여, 움직여!’
촌각의 시간.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억겁과도 같은 길고 긴 시간이었다.
발악하듯 몇 십 번이나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움직여, 움직여!’
조금이라도 된다.
그저 고개만 까딱일 수 있어도 된다.
팔을 들어 올릴 수만 있으면 된다.
그렇다면 초염산에 죽을지도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일 검을 날릴 수 있다.
‘움직이라고!!’
이제는 끝이다.
겸의 독인(毒刃)이 목 바로 앞부분에 도달했다.
눈앞으로 보이는 초록색의 날.
포기하려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꿈틀!
찰나의 시간.
하단전에 잠들어 있던 진기가 용이 승천(昇天)하듯 상단전으로 올라갔다.
순식간에 상단전에 진기가 가득차고, 상단전을 통해 신비한 기운이 발출되었다.
겸이 움직인다.
손잡이 부분이 위로 올라가며 방향이 틀어지고, 겸의 인이 간발의 차이로 목 옆을 지나갔다.
쿠아아앙!
깃들어 있던 힘이 막강했던 듯 겸은 땅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뭐…… 뭐냐?!”
경악한 표정의 왕정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얼굴이 파랗게 변해 갔다.
마치 귀신을 본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 그것은…… 그분의 것…….”
왕정치가 살잠사 위에서 비틀비틀 위태롭게 뒷걸음질 쳤다.
좋은 기회다.
상단전이 활성화되어 있고, 어째서인지 경악해 있는 왕정치를 칠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하지만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겸에 목이 베여 죽지는 않았지만, 오시분의 독은 여전히 몸을 침식해 들어오고 있었다.
하단전의 기, 상단전의 의념으로 잠식해 오는 것을 막고 있다만, 시간을 늦춘 것일 뿐이다.
“이럴 순 없어. 죽일 거야, 죽인다!”
등 뒤에 묻혀 있는 겸을 왕정치가 끌어당겼다.
휘리릭!
빙글빙글 돌아가며 겸이 왕정치의 손에 잡히는 순간.
스걱!
무언가가 베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왕정치가 충혈되어 붉어진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의 손목을 벤 검을 쳐다보았다.
벤 자는 마진천, 입술을 비틀어 웃고 있었다.
“오시분. 해독하는 데 애를 먹어서 위험했다만, 잘 넘겨주었군.”
마진천이 나를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크아악!”
왕정치가 잘려진 손목을 잡고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적이지만 정말 아파 보였다.
마진천이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왕정치를 등지고 살잠사를 베어 가며 나에게 다가왔다.
“크으으…… 죽…… 죽인다!”
왕정치가 광기에 물든 눈으로 마진천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해 보던지.”
마진천이 피식 웃으며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 입을 열었다.
“고맙…….”
겨우 두 자를 말했을 뿐이건만 오시분의 침식 속도가 두 배는 빨라졌다.
속으로 신음성을 내뱉으며 다시 오시분의 침식을 막는 데 집중했다.
겸에 매달린 살잠사를 베어 낸 마진천이 손으로 나의 입을 벌리고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먹어라. 오선 중 약선(藥仙)님의 만독(萬毒)을 해독한다는 선단(仙丹)이다.”
혀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아드는 선단.
백설(白雪)과도 같은 시원하면서도 청량한 기운이 목을 타고 들어와 온몸을 휘돌았다.
침식해 오는 독기를 정화하곤 하단전에 정착했다.
“만독불침(萬毒不侵)은 아니더라도 백독불침(百毒不侵) 정도는 만들어 주는 천하에 둘도 없는 비싼 영단이니 감사하도록.”
침식해 온 독기를 모두 해독하고 눈을 뜨자, 마진천이 장난스럽게 얘기하며 왕정치와 싸우고 있었다.
챙! 챙! 퍽!
마진천의 발차기에 왕정치가 뒤로 십여 보 정도를 물러났다.
겸을 늘어뜨리고 흐트러진 숨을 내뱉는 왕정치.
“왜 그러지? 날 죽인다 하지 않았나?”
“크윽…….”
“하앗!”
기세를 이어 가겠다는 듯 달려들며 검을 휘두르고, 이어지는 노도와도 같은 마진천의 연격에 왕정치가 맥을 못 추고 신음성만을 흘려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