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29화 (29/175)

# 29

화산천검 2권(4화)

1장 실력(4)

“진정하고, 조용히 있어라.”

마진천이 어깨를 잡으며 나에게 말하였다.

그의 말대로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다스렸다.

“너는 누구지?”

“내가 말해야 되나?”

능글맞은 목소리에 마진천이 피식하고 웃었다.

“아니, 말하지 않아도 된다. 등에 멘 두 자루 겸, 초염산과 살잠사(殺蠶絲). 비겸독지주(飛鎌毒蜘蛛) 왕정치(王鄭淄). 맞나?”

남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마진천의 말이 맞나 보다.

‘비겸독지주? 설마!’

비겸독지주 왕정치.

살수문파 마살문의 제일살수다.

살수라고 하면 어둠 속에서 암습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랬던 것을 왕정치가 깨 버렸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목표의 앞에 당당히 나타나 처치하고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잡기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어지간한 중소 문파의 장문인들보다 강한 무공, 구파의 공적이 되지 않기 위해 명분이 있는 청부만 이행하기에 그렇다.

“눈썰미가 좋군. 그렇다면 네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도 잘 알 텐데?”

“그래. 그 뒤가 마살문(魔殺門)의 정예들이라는 것과, 우리가 지금 너희의 비밀담화회에 참여했다는 것도 잘 알지.”

“안다면…… 죽어라!”

마진천의 위, 나무쪽에서 검은 야행복의 남자가 떨어졌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비수.

마진천의 정수리를 노리고 있었다.

“위…….”

챙!

내가 위험하다고 말하기도 전, 마진천이 순식간에 검을 뽑아 들며 비수를 막아 냈다.

“이 정도도 못 막을 정도면 따라오지도 못했다.”

마진천이 냉소적으로 웃으며 손목을 움직여 검을 비틀었다.

“큭!”

비수를 튕겨 내고 살수의 심장 부분을 찌르는 검.

“사라져라.”

촤앗!

마진천이 검을 왼쪽으로 그으며 살수의 몸에서 뽑아냈다.

피가 풀 위에 뿌려지고, 살수가 쓰러졌다.

“……이름이 뭐지?”

“사자(死者)에게 이름을 알려 주는 것만큼 불길한 일도 없지.”

마진천의 말에 뒤쪽에 서 있던 스무 명의 복면인이 살기를 뿜어내며 앞으로 나섰다.

“죽여 주지.”

스무 명의 복면인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할 수 있다면 해 보도록.”

마진천이 비웃으며 말했다.

2장 격돌(1)

숨 막히는 대치 상태.

살기가 공기를 짓누르고, 그들의 기세가 마진천과 나를 압박했다.

싸움의 기본은 기세 싸움이다.

초반의 기세 싸움에서 져 버리면 상대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죽는 수가 있다.

‘밀리면 안 돼.’

무거워지는 몸에 진기를 휘돌렸다.

코를 통해 들어온 자연의 기를 중단전에 휘돌려 일렁이는 감정을 진정시키고, 하단전으로 움직여 기를 끌어 올렸다.

기가 온몸을 타고 돌며 압박감이 사라져 갔다.

마진천은 처음부터 그런 것은 느끼지 않았다는 듯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뭐해? 어서 공격해 봐.”

비웃듯 입꼬리를 비틀며 말하는 마진천의 말에 마살문의 정예들, 복면인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죽엇!”

검에 기가 집약되고, 유형화되어 뻗어 나왔다.

검에서부터 시작된 일렁임은 한 장이나 되었고, 어두운 기운을 뿜어냈다.

“검기(劍氣)??”

검기라고 하면 아직 나는 내 마음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매화검로를 펼치면 나타나기는 하는데, 내 마음대로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보아 저들의 무력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더욱 긴장하고 다가오는 복면인들에게 검을 내찌르려는데, 마진천이 섭선을 꺼내 던졌다.

휘리리릭! 캉!

섭선은 가장 가까이 있는 자의 검을 튕겨 내고, 연속해서 다른 자들의 검 또한 튕겨 냈다.

“하앗!”

기합을 내지르며 마진천이 앞으로 내달렸다.

섭선에 담겨 있는 힘이 예상외로 컸는지 상대는 손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상태로 마진천의 검과 격돌.

챙! 챙! 채채챙! 카앙! 푹!

잘 막아 냈다만, 검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자는 마진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순식간에 검이 튕겨 나가고 심장에 검이 틀어박혔다.

“한 명!”

촤아악!

마진천이 검을 뽑아내며 다시 몸을 날렸다.

붉은 피가 땅을 적시고, 복면인의 몸이 쓰러졌다.

그 몸에 틀어박히는 암기들.

그들은 쓰러진 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동료였던 자의 몸에 암기를 던지고, 방해가 된다며 저 멀리 걷어차 냈다.

“이 자식들!”

끓어오르던 무언가가 폭발했다.

화산이 폭발하듯 몸의 중단에서 시작된 무언가는 머리로 올라가 이지를 상실하게 했고, 온몸을 휘돌며 힘을 솟아오르게 했다.

마진천의 실력에 평범한 상대가 아니라고 직감했는지 검진을 펼치는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무형의 기세가 몸을 압박하고 짓눌렀으나, 장애조차 되지 않았다.

기운을 더욱 몸에 휘돌리자 불쾌한 조금의 압박감조차도 사라져 버렸다.

“으아아!”

큐우웅!

발검으로 공격.

공기를 찢어발기는 파공음이 그전보다 더욱 거셌다.

쨍!

검을 들어 올려 막아 내는 자의 검을 부수며 나의 검을 상대의 목에 틀어박았다.

푹!

손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느낌.

혈류의 고동, 움직이는 성대, 불쾌한 느낌이다.

상대의 몸을 뚫고, 목숨을 취했다는 것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온몸을 휘도는 기를 중단전에 휘돌리자 마음이 진정되어 갔다.

지금은 첫 살인의 감각에 놀라고,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 죽여야만이 살 수 있다.

전장인 것이다.

촤아악!

검을 뽑으며 뒤로 휘둘렀다.

채채챙!

나의 몸을 꿰뚫으려 하는 검을 튕겨 내며 매화작보를 밟았다.

상대의 사각으로 들어간 뒤에 수평으로 검을 휘둘렀다.

쨍!

역시나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게다가 이글이글거리는 검기(劍氣)가 피어오르고 있어 공격하기가 힘들었다.

‘언젠가 이런 것에 대해서 사부에게 조언을 들은 적이…….’

상대의 검을 막아 내며 생각해 보았다.

‘검기…… 그래! 그거다!’

승부는 내공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도움을 줄 수는 있으나 결정적인 이유는 아닌 것이다.

검기를 쓸 줄 안다고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검기를 쓸 줄 몰라도, 상대보다 검기(劍技)에 뛰어나다면 이길 수 있는 것이다.

“하아앗!”

손목을 비틀어 검을 튕겨 냈다.

양쪽에서 검을 내찌르는 두 복면인.

앞으로 한 보 내디디며 장천수를 전개했다.

진각을 밟으며 정권.

천근의 거력이 담겨 있는 주먹에 상대의 가슴이 함몰되었다.

울컥 피를 내뿜는 복면인.

무시하고, 신류퇴(神流腿)로 또다시 가슴을 가격했다.

복면인이 하늘을 날았다.

앞에서 달려오던 자들이 검을 휘둘러 복면인의 몸을 토막 냈다.

잔인한 광경에 또다시 부글부글 끓었지만, 지금은 양쪽에서 찔러 오는 검을 막아 내야 했다.

“핫!”

한 보 뒤로 물러서며 검의 교차점을 찾아내 찔러 넣었다.

캉!

일 검에 두 검을 막아 내며 인(引).

끌려오는 검에 중심을 잡지 못하는 두 복면인.

‘여기선…….’

왼쪽으론 장천수, 오른쪽으론 신류퇴.

퍽! 퍽!

분산된 내력에 즉사시키지는 못했지만, 어깨와 다리에 큰 타격을 주었다.

한동안은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또다시 뒤로 일보 물러나며 매화요요의 초식으로 검을 막아 갔다.

챙! 챙! 채챙!

‘허점!’

일격필살(一擊必殺)의 기세로 찔러 오는 검.

그렇기에 막아 내자 순식간에 허점이 드러났다.

오른쪽 옆구리와 왼쪽 갈비뼈.

사선으로 베어 내자 두 복면인이 피를 토해 냈다.

뻥!

신류퇴로 날려 보내고, 연환되는 검진 속에서 질풍과도 같이 종횡무진 휩쓸고 다녔다.

마진천도 압도적인 무력으로 차례차례 복면인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순식간에 반 이상의 복면인이 쓰러졌다.

‘내가 이렇게 강했나…….’

마진천의 도움이 있기는 하지만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나는 실전에서 잘 싸우고 있었다.

‘이런!’

잡생각을 하느라 검로가 흔들렸다.

그사이를 노리고 복면인이 검을 내찔렀다.

“찻!”

푸욱!

“……!!”

검에 찔리고도 고통스런 신음조차 내지 않고 더욱더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복면인.

그 서슬에 놀라 방어할 때를 놓쳐 버렸다.

‘맞는다…….’

한순간의 실수.

카앙!

다행히도 마진천이 잘 막아 주었다.

“긴장을 놓치지 마, 제대로 싸워라.”

“후우∼ 고맙다.”

“알았으면 어서 제대로 해.”

정신을 차리고 달려드는 자들을 향해 다시 검을 움직였다.

잡념이 들어가면 안 된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목숨이 날아가는 전장.

이번에는 착실히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에만 전념했다.

마살문의 정예들이 검진을 펼칠 때만 해도 웃음을 띠우고 있던 왕정치는 한 사람 한 사람 정예들이 죽어 나갈 때마다 얼굴이 굳어 갔고, 반 이상이 줄어들자 등에서 겸을 꺼내 들며 일갈했다.

“멈춰라!”

내기를 진탕시키는 심후한 내력.

“크윽…….”

어깨를 베어 가다 말고 손이 멈추었다.

복면인이 재빨리 몸을 돌려 벗어나 왕정치의 뒤에 섰다.

마살문의 복면인들이 모두 뒤로 물러서자, 마진천은 여유로운 웃음을 띠우고,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대단한 꼬맹이들이로군. 역시 구파의 저력은 대단해. 경시하면 안 되겠어. 그분들의 힘을 빌려 약화시키고 있는데도 이 정도라니…….”

“그분들? 무슨 소리냐!”

“알 것 없다. 너흰 그저 죽어 주면 된다.”

“화산파와 종남파의 회담. 너희 쪽이 꾸민 거였나?”

왕정치가 겸을 꽉 쥐었다.

“알 것 없다.”

“너희 쪽이 꾸민 거였군. 그렇다면 본산 아니면 이쪽이 위험한 건데…… 어느 쪽이지?”

“그것도 알 것 없다.”

“뭐, 이 정도까지 알아냈으니 더 이상은 나도 안 바란다. 고맙다.”

마진천의 빈정거리는 말에 왕정치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넌 반드시 죽여 주마.”

핏!

무언가 날아오는 느낌에 고개를 숙이자 얇은 무언가가 나무에 틀어박혔다.

‘이건…….’

오면서 봤던 실.

왕정치의 독문병기인 피를 부르는 실, 살잠사였다.

핏! 핏! 피핏!

왕정치가 살잠사 위에 올라탔다.

“죽음의 춤을 보여 주지.”

마살문의 정예들이 숲을 빠져나갔다.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저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기세를 내뿜으며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왕정치의 앞에서 등을 돌리고 그들을 쫓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 죽음을 맛보거라.”

마치 거미[蜘蛛]와 같이 왕정치가 살잠사 위를 타고 돌며 암기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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