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28화 (28/175)

# 28

화산천검 2권(3화)

1장 실력(3)

“어째서 이런 것을 배우냐고 묻고 싶겠지? 그것은 다 이유가 있다. 나중에 강호에 나가면 너희들은 진법이라는 것과 싸우게 될 것이다. 사문과 같이 행동한다면 모를까, 보통 때에는 혼자서 다니겠지. 그렇다면 너는 일 대 다수의 진법과 싸우게 될 것이다. 여럿이서 한 명을 핍박한다, 수치스러운 일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무시하면 안 된다. 화산파나 다른 구파가 협공을 수치스러워하면서도 꼭 배우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럿이서 한 명을 공격하나 그들은 사마외도니 우리가 다 이길 것이다? 헛소리다. 한 손으로 두 손을 막지 못한다. 그것이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렇기에 우리 정도의 문파에서도 이렇게 진법을 배우게 하지. 쓰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을 만났을 때 대응하기 쉽도록 말이다.”

‘그렇구나…….’

생각해 보니 다수가 한 명을 핍박하는 것을 계율로서 금하고 있는데도 진을 배우는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제대로 알자, 마음속에 거리낌이 없어졌다.

“알았느냐? 아무튼, 제대로 하지 못할까? 제천평, 그렇게 하면 부딪치지 않느냐?! 검을 내리고, 발을 반 보 뒤로 빼. 오제혁, 더 빠르게 움직여라!”

문후 장로님이 한 사람 한 사람 지적했다.

흐트러진 진이 바로잡히고, 처음과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멈추도록.”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진을 멈췄다.

주체할 수 없었던 속도임에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속도를 조금씩 늦춰 가자 순식간에 멈춰져 버렸다.

“나와라.”

바깥으로 나오자 노을이 지고 있었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몇 번 움직이지도, 설명을 듣지도 않은 것 같은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지나 있었다.

이것이 무공이다.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져든다.

“아직 이르긴 하다만 상관없지. 오늘은 이것으로 끝이다. 숙소로 돌아가든지 뭘 하든지 마음대로 하도록. 총검문 바깥으로 나가는 것과 말썽을 피우는 것을 제외하곤 마음대로 해라. 영풍 장로, 우리는 잠시…….”

“알았소.”

두 장로님이 떠나가고, 연화와 숙소로 돌아와 이른 저녁을 먹었다.

방으로 돌아와 사부가 준 검을 빼고, 청강검 두 자루를 침대 옆에 놓은 후에 침대에 몸을 눕히고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렸다.

쾅! 쾅!

“누구냐?!”

대경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이런, 이런.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마진천이었다.

“왜 온 거지?”

“오늘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었나? 아까 보니 조금 더 성장한 것 같더군.”

빙그레 웃는 마진천.

하지만 몸이 저절로 움츠러드는 것이, 좋은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지나쳤어. 내 충고를 무시하다니, 내 말은 말 같지 않다는 건가?”

“……무슨 소리냐?”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얘기했을 텐데?”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아니, 틀렸어. 넌 이미 주목받고 있다고.”

마진천이 품속에서 섭선을 꺼냈다.

“그것은 왜?”

“훗.”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마진천이 나에게 섭선을 찔러 왔다.

“읏!”

오른발을 한 보 뒤로 빼며 고개를 숙여 섭선을 피하였다.

“이게 무슨…….”

마진천이 손목을 흔들었다.

휘익∼ 퍼서석!

지붕을 뚫고 날아가는 섭선.

하늘 높이 날아갔다가 마진천의 손으로 돌아온다.

“보이지?”

하얀 섭선.

그곳에 묻어 있는 검붉은 물.

“……피?”

“벌써 쥐새끼가 붙었어. 눈치채지 못했지?”

몸이 굳어진다.

암살자.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마진천이 알려 주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것이다.

“흠, 목을 노렸는데 어깨를 스쳤군. 역시 평범한 살수는 아니야.”

“……고맙다.”

“뭐, 고마워할 것까지야. 즉사시키지 못했으니 보고를 할 테고, 더 수준 높은 자를 보낼 터,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다.”

“아니, 조심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어.”

피식 웃는 마진천.

“뭐, 그렇긴 하지.”

“저자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만일 누군가가 나에게 붙는다면 나는 더욱 눈치채지 못할 거다. 조심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지. 차라리 지금 저자를 추적하겠어.”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다. 게다가 암살자다. 네가 눈치채지 못한 수준 높은 암살자. 너는 따라가지 못할 거다.”

“명문 구파, 화산파의 제자로서 나는 이 일을 무시할 수 없어.”

“역부족이더라도?”

“상관없다.”

기묘한 표정을 짓는 마진천을 놔두고 섭선에 의해 파괴된 구멍을 통해 바깥으로 나왔다.

흩어진 피.

피는 왼쪽은 반원, 오른쪽은 흐트러진 모양이었다.

“왼쪽으로 간 건가?”

“아니, 오른쪽이다. 이것을 보라고.”

언제 나왔는지 마진천이 기왓장 하나를 들고 흔들고 있었다.

“이 기와의 앞부분을 봐. 당황한 상태로 피를 반대 방향으로 뿌린 것은 대단하나, 몸은 이성을 따라가지 못했군.”

기왓장의 앞부분이 조금 파여 있었다.

물론 오래되어 자연적으로 부서졌을 수도 있으나, 이 건물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전각이다.

자연적으로 부서질 이유가 없었다.

“이미 상당히 늦었으니 빨리 가는 것이 좋을 거다.”

“넌 추적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말은 한 적 없는데?”

마진천의 말에 피식하고 웃고는 암향표를 극성으로 전개하며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총검문을 벗어났다.

“여기선 왼쪽이다. 풀이 저쪽 방향으로 눌려 있어.”

총검문의 담장을 넘으며 무게를 조절하지 못한 것인지 풀이 미세하지만 조금 눌려 있었다.

판단에 따라 방향을 이끌고 가는데, 순간순간 판단을 내리지 못할 정도로 기묘하게 흔적을 없앤 곳이 있었다.

관도를 따라가지 않고 깊은 숲을 통해 이동했기에 그런 것이다.

그럴 때 마진천이 나섰다.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무엇이 속임수인지 순식간에 파악해 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네 갈래 길.

왼쪽은 산으로, 오른쪽은 촌으로, 가운데는 도시로 가는 길이었다.

“아직 마르지 않았어. 거의 다 따라잡았다.”

땅에 떨어진 붉은 물방울.

아직 마르지 않았고, 방향으로 보아 왼쪽으로 향한 것 같았다.

“저쪽이라면…… 녹청산(綠靑山)이군. 그래, 이 주변에선 녹청산만큼 숨기 좋은 곳이 없지.”

망형산과는 정반대의 산.

산 전체를 덮은 푸르른 나무들이 눈에 띄는 산이었다.

“그런데…… 눈치챈 건가?”

땅에 주저앉아 풀을 헤치는 마진천.

그 사이에서 초록색의 무언가가 묻은 작은 침이 보였다.

“초염산(草鹽酸)인가?”

초염산이라면 독성이 매우 강한 독이다.

독초 삼십여 개에서 독을 뽑아내 특수한 약물과 조합하면 나오는 독이다.

처음은 거북한 느낌, 시간이 갈수록 내공이 흩어지며, 백 보 정도를 걸었을 때는 오공에서 피를 흘리며 죽는다 하여 백보독(百步毒)이라고도 불린다.

“땅은 밟지 말아야겠군, 그렇다면…….”

“나무를 밟고 가야 한다. 가자.”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두꺼운 가지 위를 타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이건…….”

나무와 나무 사이를 타고 가던 중에 이상한 것을 보았다.

커다란 나무, 그중 중간 부분의 나뭇가지가 베여 있었다.

마진천이 다가와 손가락으로 베인 부분을 쓸었다.

“단면이 깨끗해, 검에 베인 건가? 아니, 느낌이 다른데…… 그래, 겸(鎌)이군.”

“그건 왜 알아보는 거지?”

“우리가 지금 놀러 가나? 싸우러 가는 거다. 상대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아야 돼.”

“그렇군.”

“이 정도는 상식이다. 대체 뭘 배운 건지 모르겠군.”

“상식도 몰라 미안하군. 똑똑해서 좋겠어.”

“하하. 삐친 건가? 미안하다고.”

마진천의 말.

내가 너무나 긴장을 하였기에 농담을 통해 긴장을 풀어 주려는 것임을 안다.

‘후∼’

긴장을 조금 풀고는 다시 추적을 시작했다.

또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진천이 어떤 나뭇가지에 손을 댔다.

“거의 다 따라잡았다. 따뜻해.”

“……잠깐만.”

“음?”

나의 말에 마진천이 멈추었다.

“왜 그러지?”

“거기 앞에, 조심해.”

희미하게 보이는 투명한 선.

눈앞을 집중하여 관찰하였기에 보인 선이다.

“이거, 위험할 뻔했군.”

나뭇가지 위와 풀.

이번엔 상황이 반대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묶여져 있는 가느다란 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얇은 실이었다.

가까이 가서 보자 살이 베일 것만 같은 예기가 느껴졌다.

“건들지 마, 베일 거다. 내려가지.”

실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풀 위로 사뿐히 내려왔다.

“음…….”

얼마 가지 않아 난관에 부딪쳤다.

똑같은 핏자국이 세 방향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게다가 거의 동시에 뿌려진 듯 마른 정도가 차이가 없었다.

밟힌 풀이나 온기도 비교해 보았는데, 다를 것이 없다.

마치 세 사람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 것 같았다.

“나뉘는 것이 낫지 않나?”

“아니, 잠시만.”

마진천이 눈을 감고 땅에 얼굴을 대었다.

잠시 후, 마진천이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왼쪽이다. 소리가 들리는군.”

괴상한 방법이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마진천의 판단에 따라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일각 정도가 지난 후, 마진천이 얼굴을 굳히곤 내 몸을 잡고 풀숲으로 몸을 날렸다.

“뭐하는 거냐?”

갑작스런 행동에 짜증을 냈다.

마진천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다.

[조용히 해라. 안 보이나?]

마진천의 전음에 눈을 돌렸다.

“흠…… 그랬단 말이지…….”

단발, 째진 눈과 얇은 입술.

두 자루 낫을 등에 묶어 놓은 사내가 보였다.

그의 뒤로는 스무 명 정도의 복면인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어깨 부분에 상처가 있는 암살자가 부복해 있었다.

지금까지의 추적과 어깨 부분의 상처.

나를 감시하던 그 암살자가 분명했다.

“쓸모없는 것.”

짜증이 나는 듯 툭 내뱉곤 단발의 남자가 뒤쪽의 한 복면인에게 손짓했다.

손짓당한 복면인이 순식간에 앞으로 나서며 부복해 있는 복면인의 목을 베었다.

슉∼ 푸슈슛!

“윽!”

목이 날아가고,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사람이 죽었다.

처음 본 살인의 광경에 속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었다.

“음? 쥐새끼가 있었나?”

당황한 탓에 소리를 내고 말았다.

단발의 남자가 등에 멘 겸(鎌)을 순식간에 우리가 숨어 있는 풀숲을 향해 던져 냈다.

“칫!”

마진천과 함께 땅을 박차 날아오는 낫을 피하곤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온 건가?”

“…….”

우리가 대답하지 않자, 남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쓸모없는 것 같으니라고, 당한 것도 모자라 저런 녀석들을 끌고 오다니…….”

“닥쳐라!”

남자의 말에 가슴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 열기를 터뜨리듯 외쳤다.

“흐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나?”

“수하가 잘못했다지만 어떻게 그렇게 죽이고, 망언을 할 수가 있느냐!”

“잘못을 했으면 이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쓸모가 없으면 버려져야 되는 것이 진리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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