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화산천검 2권(2화)
1장 실력(2)
낙화.
유혁 사형이 들어 올린 검을 내려쳤다.
마치 꽃잎이 바람에 휩쓸려 떨어지듯 부드럽게 내려쳐지는 검.
간단한 동작에 무수한 변화가 숨어 있었다.
떨어지는 꽃잎이 약한 바람에도 방향을 바꾸고 기묘한 변화를 보이듯 유혁 사형의 검에도 그런 변화가 보였다.
반년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무위.
단 한 번 내려친 것뿐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만!”
그것만으로도 되었다고 느꼈는지 영풍 장로가 외쳤다.
유혁 사형은 검을 거두고 자리로 되돌아갔다.
다음은 현파다.
“이름은 현파. 나이는 열다섯이며 삼십육검수입니다.”
“자신 있는 것은?”
“대천강검법(大天剛劍法)입니다.”
“시작하도록.”
기수식을 취하자 현파의 기세가 전각을 뒤덮어 갔다.
열다섯이라는 나이에 맞지 않는 커다란 몸집과, 보통의 검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대검은 그것에 힘을 더해 주고 있었다.
“후아앗!”
현파가 커다란 기합성과 함께 검을 휘둘러 갔다.
대천강검법.
묵직한 대검으로 펼쳐 내는 대천강검법은 굳건한 하늘과 같았다.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을 듯 뻗어 내는 검에는 망설임이나 흔들림이 없고, 푸르른 하늘과 같이 모든 것을 포용한다.
묵직한 검 속에 변화를 품고, 빠른 쾌검 속에 강한 힘을 표출한다.
현파는 삼십육검수의 직위와는 달리 십팔검수와 비견될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
현파가 커다란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연화의 차례가 되었다.
“이름은 홍연화. 나이는 열다섯이며 선검수입니다.”
“자신 있는 것은?”
“옥녀소화검법(玉女韶華劍法)입니다.”
“시작하도록.”
연화가 기수식을 취했다.
그리고 초식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 든 생각은 ‘아름답다’였다.
마치 예인이 춤을 추듯 부드럽게 움직인다.
부드러운 원을 그리며 화사한 빛을 내뿜는다.
하지만 장미에 가시가 있듯 옥녀소화검법 또한 그랬다.
아름다운 검로 속에 수십의 변화를 숨기고 있으며, 가볍게 내찌르는 검 속에 비수를 숨기고 있었다.
“그만!”
영풍 장로의 말에 연화가 검을 거두었다.
언제 저렇게 강해졌는지 반년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실력이었다.
연화가 자리에 돌아오며 내게 말했다.
“반년 전과는 다르지? 나 엄청 노력했다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나의 차례.
“후우∼”
앞으로 나서서 심호흡을 하며 심신을 가다듬었다.
“이름은 청우. 나이는 열다섯이며 육지검사입니다.”
“자신 있는 것은?”
“……장천수입니다.”
“무슨 소리냐?”
문후 장로님이 잘못 말한 것은 아니냐는 얼굴로 물었다.
‘역시…….’
“검사면서 장천수를 가장 자신 있어 한다고?”
어이가 없다는 듯한 영풍 장로의 표정.
문후 장로님과 다른 제자들의 표정 또한 다르지 않았다.
몇몇의 사람들, 내 조의 사람들과 마진천, 유혁 사형을 빼고는 말이다.
“검사라고 검법에 자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검을 쓰기에 검사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검사라는 이름을 내놓아야지.”
“검사이나 장천수에 더 뛰어난 성취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까?”
“뭐, 안 될 것이야 없다만은…….”
기묘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영풍 장로.
다른 제자들은 피식피식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럼…… 시작하도록.”
“후우∼”
시작은 언제나 심호흡.
근육을 적당히 긴장시키고, 마음은 평정을 유지한다.
장천수, 하지만 이제는 장천수라 불러도 될지 모르게 변화해 버린 무공의 기수식을 취했다.
진각을 밟으며 주먹을 내뻗는다.
‘원이 아니라 직선이다.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이고, 내공을 도인한다. 주먹은 점이다, 베기와 같은 선이 아니야.’
사부에게서 받은 가르침을 떠올리며 움직였다.
허공의 한 점을 최단거리, 최대한의 속도로 격한다.
파앙!
팔을 접으며 팔꿈치로 이 격.
일보 내디디며 몸을 회전시키며 뒤돌아차기.
아니, 그럴 필요가 없지 않은가?
뒤를 돌며 차는 것은 회전을 주기 위한 것, 하지만 회전은 허리를 통하면 된다.
그저 상체를 비틀면 되는 것이다.
뒤로 도는 불필요한 동작을 없애고 발을 내찌른다.
속도가 두 배 이상 빠르다.
‘눈 깜짝할 사이가 생사의 갈림길이다.’
사부의 조언을 기억해 냈다.
주먹을 펴 장을 만들어 충(衝).
부드럽게 위로 쓸어 올리듯 승(昇).
맥을 끊는 척(斥).
힘을 역이용하는 화(化).
끌어당기는 인(引).
되돌리는 반(反).
지금까지 체득한 모든 무리를 체현해 나갔다.
매화삼십육신검형에 매화검로가 진화하였듯, 다른 무인들의 무공을 견식하고 장천수에 응용해 나간다.
순식간에 새로운 초식이 만들어지고, 불필요한 움직임을 없애 나갔다.
보법은 매화작보.
매화작보가 장천수의 움직임에 맞추어 변해 간다.
굳건히 몸을 받치는 균형 있는 자세.
순식간에 방위를 점하는 발.
어지러이 움직이며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가는 보법.
“그만!”
무아지경 속,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을 차리자 영풍 장로와 문후 장로님이 기이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문후 장로님이 입을 열었다.
“음…… 그게 장천수인가?”
‘아차!’
실수를 눈치챘다.
화산파의 제자로서 허락도 없이 무공을 바꾸어 버리는 것은 큰 죄다.
매화검로를 숨기는 데 급급한 나머지 장천수 또한 보통의 장천수와는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깨달음을 접목시키다 보니 어느새 다른 무공이 되어 버린지라…….”
“그래, 그렇구나. 이번에 돌아가면 장문인께 말씀드려 정식 무공으로 채택해 주마. 기발하고도 오묘한 무공이야.”
포권을 취하여 감사를 표했다.
내가 바꾼 무공을 칭찬한다는 것은 나를 칭찬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 무공을 가장 자신 있어 하는지 알겠군.”
영풍 장로에게도 포권을 취하여 인사하곤 자리로 돌아왔다.
다른 자들, 특히 화산파의 문도들이 쳐다보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가장 기초적인 무공 장천수.
그것을 이렇게 변화시켜 놨다는 것에 그들은 놀라워하고, 질투하고 있었다.
그 시선도 얼마 지나지 않아 거두어졌다.
다음으로 나오는 사람, 탑희윤이다.
“이름은 탑희윤. 나이는 열다섯이며 삼십육검수입니다.”
매우 조그만 목소리.
“크게 말하도록.”
영풍 장로의 말에 탑희윤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영풍 장로 또한 탑희윤의 그런 성격을 알고 있는지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 있는 것은?”
“저…… 그…… 호접연환검무(蝴蝶連環劍舞)입니다.”
“시작하도록.”
고개를 털어 내며 탑희윤이 허리띠를 풀어냈다.
흐물흐물거리며 낭창낭창 휘는 검신.
검사인데 검이 없기에 의아했는데, 연검이었다.
허리띠 대용으로 쓰고 있었기에 검집도 없고, 어디에 보관하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흡∼ 후우∼”
부끄러워하는 감정을 뱉어 내려는 듯 격렬하게 호흡하는 탑희윤.
얼마 지나지 않아 잔잔한 호흡으로 바뀌며 탑희윤이 고개를 들었다.
수줍어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고, 강렬한 무인의 눈빛만이 보였다.
마치 다른 사람으로 변하기라도 한 듯 완벽히 다른 인상으로 변했다.
‘호오∼’
검을 움직이는 탑희윤.
연검은 기병(奇兵)이다.
다루기도 어렵고, 오랫동안 훈련하지 않으면 쓸 수가 없는 병기.
보통의 무인으로서는 다루기가 매우 까다롭다.
탑희윤은 그런 연검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손목을 비틀자 검이 휘며 공격의 방향이 순식간에 바뀌어 버렸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 같지만, 연환이다.
나비가 날아다니듯 기묘한 변화를 일으키는 검.
연검은 나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었다.
나풀나풀 나비가 날아다니는 듯하였다.
“그만!”
탑희윤이 검을 거두고 돌아왔다.
“다음은 없군. 끝인가?”
탑희윤을 마지막으로 모두가 무공을 선보였다.
“역시 모두 뛰어난 무공 실력을 가지고 있구나. 어제의 진법을 그렇게 빠르게 파훼한 것이 이해가 가는구나.”
“흠…… 이 정도면 태을미리환허진(太乙迷離幻虛陳)도 가능할 듯싶은데…….”
“그것은 나중이오. 지금은 일단 육봉진(六峰陳)부터 시작하는 것이 나을 듯싶소.”
“그렇다면 그것으로 합시다.”
서로 무언가를 상의하더니 문후 장로님이 우리에게 외쳤다.
“일 조, 너희는 저곳으로. 이 조, 너희는 그쪽으로. 아니다, 조금만 더 위로 가거라. 삼 조, 너희는 오른쪽으로. 사 조, 너희는 북동쪽으로. 오 조는 서쪽으로 십 보. 육 조는 위로 스무 보.”
문후 장로님의 지시에 따라 자리를 이동했더니, 여섯 조가 여섯 개의 점을 둘러싸는 형태가 되어 있었다.
“이것이 육봉진이다. 여섯 개의 봉우리, 여섯 조가 끊임없이 연환되어 움직이는 진이지.”
그렇게 말하곤 각 사람마다 어느 자리에 서야 하는지 직접 지도해 주었다.
“그 상태로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시작은 천천히, 한 바퀴 돌 때마다 빠르게 움직인다.”
오른쪽으로 천천히.
문후 장로님의 말대로 한 바퀴 돌 때마다 빠르게 움직였다.
점점 빨라지더니 주체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검을 뽑아라. 권사들은 출수할 수 있게 자세를 잡아라.”
스르릉∼
스무 명의 검사가 검을 뽑아 드는 소리가 전각을 울렸다.
“육봉진은 각 봉우리마다 다르게 움직이나, 마치 쇠사슬이 연결되어 있듯 연환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기에 검법이나 권법을 새로 배울 필요가 없지. 각자 자신의 장기를 살리면 되는 거다.”
빠르게 돌아가는 여섯 개의 톱니바퀴.
한 번 쓰윽 하고 훑어보곤 문후 장로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일 조는 추풍을 중심으로 한다. 나머지 셋은 보조하도록. 이 조는 막후를 중심으로 한다. 나머지 셋은 보조한다. 삼 조는 유연을 중심으로 한다. 나머지 셋은 보조한다. 사 조는 만청풍을 중심으로 한다. 나머지 셋은 보조한다. 오 조는 유혁을 중심으로 한다. 나머지 셋은 보조한다. 육 조는 청우를 중심으로 한다. 나머지 셋은 보조한다. 보조하는 자들은 삼재진을 펼치도록.”
여섯 조가 문후 장로의 명대로 움직였다.
여섯 사람, 여섯 개의 봉우리를 중심으로 삼재진, 산맥을 형성한다.
여섯 진이 맞물리고, 하나의 진이 만들어졌다.
삼재진이 빈틈을 없애고, 여섯 중심이 기세를 내뿜었다.
“육봉진은 한 명의 고수를 위해 만들어진 진이다.”
진이 잠시 흐트러졌다.
일 대 다수.
여럿이서 한 사람을 공격하는 합격은 정도에선 암암리에 금지하는 불문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