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화산천검 2권(1화)
1장 실력(1)
어제의 일.
진법과 무술의 시험과 훈련을 끝내고 돌아온 뒤에 다를 것 없이 밥을 먹고 하루가 끝났다.
운기조식을 끝으로 잠시 실전에 대해서 생각한 바를 정리하고 잠에 든 지 몇 시진 후.
동이 터 오고 총검문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후읍!”
간단한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 조화의 기운을 들이마신다.
백회혈을 타고 들어간 기운은 온몸을 돌며 활력을 돋구어 주었다.
“후우∼”
숨을 내쉬며 운기를 끝내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계단을 타고 내려오자 어제와 같은 모습.
차를 마시며 분위기를 내는 그들의 모습에 잠시 한숨을 쉬곤 연화의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기품 있게 차를 마시는 연화.
나 또한 자연스럽게 찻잔을 들어 올려 차를 마셨다.
어제와 같은 차, 용품정차다.
차를 거의 다 마실 때쯤 음식이 나왔다.
어제와 다를 것이 없다.
한 가지 다른 것이라면 죽이 같이 나왔다는 것 정도?
어제의 일 때문인지 모두 군말 없이 음식을 먹었다.
밖으로 나오자 종남파의 제자들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
앞으로 한 발자국씩 나서서 서로 인사를 건네는 문후 장로님과 영풍 장로.
그러곤 무언가를 상의하더니 잠시 후 자파의 제자들을 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곳은 하나의 큰 전각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바깥에서 보고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넓은 내부가 드러났다.
스물네 명의 제자.
모두가 무공을 펼쳐 내도 맞부딪치지 않을 만큼 넓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서도록.”
가만히 서 있자 누군가가 걸어왔다.
탑희윤과 현파였다.
“반갑다.”
“반가워…….”
연화와 함께 싱긋 웃어 답해 주고는 문후 장로님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변형(四邊形:사각형)으로 질서정연하게 서자, 영풍 장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제의 진법. 너무 쉽게 빠져나온 자들이 있었다.”
영풍 장로가 만청풍 사형의 조와 유혁 사형의 조를 쳐다보았다.
“솔직히 그렇게 실력이 좋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너희들을 얕보았다는 것이겠지. 그렇기에 오늘 너희의 실력을 알아보아야겠다.”
‘이해 못한 사람 있나?’라는 듯한 눈빛으로 훑어본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영풍 장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 명씩 차례대로 나오거라.”
첫 번째 조.
종남파의 제자가 첫 번째로 나섰다.
“이름과 직위, 나이를 말하도록.”
“이름은 오제혁(훡濟赫), 나이는 열일곱이며 삼십육검수입니다.”
“자신 있는 것은?”
“종남의 해벽검(海壁劍)입니다.”
“시작하도록.”
기수식을 취하는 오제혁.
검을 뽑아 들고 비스듬히 세웠다.
왼발은 반 보 뒤로, 왼손은 무언가를 막아서듯 수결을 취했다.
“핫!”
기합성과 함께 오제혁이 해벽검을 펼쳐 냈다.
이름에 걸맞게 엄청난 중압감이 느껴지는 검법.
바다와 같은 방패.
그 어떤 공격조차 저 바다의 벽 앞에서는 통하지 않을 듯 두꺼운 순(盾)과 같다.
하지만 시전자의 실력이 그 검법에 따라오지 못했다.
두꺼운 방패를 만들어 내나, 두꺼울 뿐 단단하지 못하였다.
무겁게 압박하나, 그 사이엔 틈이 있었다.
“그만.”
오제혁이 아쉬운 얼굴로 검을 내렸다.
“잘 보았다, 들어가도록.”
검을 검집에 다시 집어넣고, 자리로 돌아가는 오제혁.
중검의 극을 추구하는 두꺼운 방패와 같은 검공.
무공은 뛰어나나 사람이 수준이 되지 못하였다.
나 또한 아쉬운 마음으로 고개를 젓곤 다음으로 나오는 자를 보았다.
이번엔 화산파다.
“말하라.”
“이름은 제천평(?天平). 나이는 열여덟이며 선검수입니다.”
연화와 같은 과다.
보평제자로서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노력만으로 선검수가 된 남자다.
하지만 직전의 제자가 아닌 관계로 나보다 배분이 낮다.
아니, 배분이 아니라 본산에서의 그 직위가 낮은 것이지.
“자신 있는 것은?”
“화산의 육합검법(六合劍法)입니다.”
“시작하도록.”
기수식을 취한다.
제천평이 중단에 검을 올렸다.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일 수 있는 자세…….’
제대로 된 자세였다.
“하앗!”
육합검법.
화산파의 독문검법으로, 육합을 이용한 검법으로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방위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을 기본 원리로 한다.
빠르나 느리게, 무거우나 가볍게.
서쪽을 점하나 동쪽도 점해져 있고, 남쪽을 점하나 북쪽 또한 점해져 있다.
제천평의 검이 그 어떤 것으로도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촘촘한 검의 그물을 만들어 갔다.
“그만!”
검을 거두고 물러난다.
다음으로 나서는 것은…….
“마진천…….”
종남의 반룡이다.
싱긋 웃으며 걸어 나오는 그는 내가 느끼기엔 풀숲에 몸을 숨기고 있는 범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드러나지 않도록 자신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는 호랑이.
장로들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자신을 숨긴 자.
그 무공 수위가 나로서는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남자였다.
“이름은 마진천. 나이는 열아홉이며 십팔검수입니다.”
“자신 있는 것은?”
“종남의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입니다.”
“시작하도록.”
천하삼십육검.
종남의 비전검법으로, 세간에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검법이다.
마진천이 검을 뽑아 들고 기수식을 취함과 동시에 초식을 전개해 나갔다.
올올이 풀어내는 초식.
천하를 굽어보듯 도도하게 검이 움직인다.
그 어떤 것도 비견될 수 없을 만큼 강인하며 부드러운 검.
강(强)과 유(柔)가 조화된 검법, 그 이름에 걸맞은 위력을 지닌 검법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그가 실력을 숨기고 있어서겠지.
“그만!”
마진천이 영풍 장로의 말에 검을 거두고 자리로 되돌아갔다.
더 보고 싶고,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 내곤 다음으로 나오는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이름은 환공(環鞏). 나이는 열일곱이며 십팔검수입니다.”
“자신 있는 것은?”
“분광참검(分光斬劍)입니다.”
“시작하도록.”
분광참검.
종남파 장로 광검(光劍) 도오연(都悟衍)의 독문검법으로 알려져 있는 검법이다.
빛을 베어 버릴 정도로 빠른 쾌검.
그 명성에 걸맞게 환공은 극에 이른 쾌검을 보여 주었다.
단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세 가닥의 빛을 뿌리고, 회수했다 싶으면 어느 순간 검은 이미 뻗어져 있었다.
변해 버린 매화검로의 일 초 또한 극쾌를 지향하는 쾌검.
분광참검에는 배울 것이 많았다.
선을 버리고, 점을 공략한다.
원이 아니다, 직선이다.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지는 검에 의해서 환공의 주변은 순식간에 검광으로 덮였다.
“그만!”
영풍 장로의 말에 검을 거두는 환공.
십팔검수에 걸맞은 엄청난 무위였다.
모두들 감명을 받은 듯 다른 제자들의 눈도 이채를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음 제자가 앞으로 나서자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름은 막후(幕?). 열일곱이며 육지권사입니다.”
이번엔 육지권사 막후.
같은 육지의 무인으로서 속가제자다.
화산파에도 얼마 있지 않은 육지권사로서, 그중 가장 뛰어나다 알려져 있다.
“자신 있는 것은?”
“복호권(伏虎拳)입니다.”
복호권.
화산파의 독문권법으로서, 세간에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권법이다.
그리고 종남의 천하삼십육검과 마찬가지로 잘 알려져 있는 만큼 강력하다.
빠웅∼
엎드려 있는 호랑이가 움직인다.
막후가 빠른 속도로 주먹을 내찔렀다.
빠른 만큼 힘이 부족하다는 말은 복호권에는 통용되지 않는다.
빠르나, 그 빠른 권 안에는 천 근의 힘이 담겨 있었다.
호랑이를 닮은 권법.
무서운 기세를 뿜어내며 공격한다.
하단을 공격하고, 순식간에 앞으로 나서며 머리를 내리친다.
갈수록 위력이 증가되어 가는 복호권.
속도 또한 점점 빨라져 간다.
“그만!”
절정에 오르려는 순간, 영풍 장로의 말에 막후가 자세를 바로잡고 심호흡을 하였다.
진정되었는지 막후가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으로 나서는 사람, 만청풍 사형이다.
“이름은 만청풍. 나이는 열일곱이며 선검수입니다.”
“자신 있는 것은?”
“매화삼십육신검형(梅花三十六新劍形)입니다.”
“시작하도록.”
사형이 기수식을 취했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을 변형시켜 화산에서 인정을 받은 매화삼십육신검형.
내가 장천수를 바꾸어 버린 것과 같이 만청풍 사형의 사부, 매화광(梅花狂) 무청편(武淸遍) 장로 또한 이십사수매화검법에 파고들어 새로운 검법을 만들어 내었다.
그것이 매화삼십육신검형.
원래의 이십사수매화검법이 빠르고 날카로웠다면, 매화삼십육신검형은 강과 유의 조화를 추구한다.
“후우∼”
깊은 숨을 내뱉고 검을 움직이는 만청풍 사형.
기존의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일 초에서 시작해 검로가 점점 변화해 간다.
부드럽게 움직여 강하게 내찌르고,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며 기이하게 변화해 갔다.
아름다운 매화꽃이 피어나며 향기를 뿌린다.
매화 속에 빠져 들어간다.
매화삼십육신검형은 나의 매화검로와 매우 흡사했다.
내가 몰랐던 응용법, 진기를 어떻게 도인하는 것이 좋은가, 발은 어디에 놓고 중심을 어떻게 잡는가 등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 간다.
“그만!”
검을 거두고 자리로 되돌아간다.
매화삼십육신검형과 나의 매화검로.
머릿속에서 점점 융합되어 간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새로운 검로가 탄생되고, 변하지 않은 검로는 기초를 다진다.
생각을 정리하고 눈을 뜨자 어느새 내 바로 앞의 조, 유혁 사형의 차례였다.
“이름은 유혁. 나이는 열일곱이며 선검수입니다.”
“자신 있는 것은?”
“낙화검법입니다.”
“시작하도록.”
검을 땅을 향해 늘어뜨린다.
완벽한 자연체.
마치 거대한 산으로 변한 듯 강렬한 기세를 뿜어낸다.
검이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