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24화 (2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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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천검 1권(24화)

9장 훈련, 무술과 진법(2)

문후 장로님의 말투에 종남의 그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남자가 영풍 장로를 쳐다보는데, 영풍 장로는 그저 웃음만 띠우고 있어서인지 남자의 인상이 더욱더 찌푸려졌다.

문후 장로님은 코웃음을 치고는 몸을 날렸다.

사 인이 한 조로 구성된 여섯 조 모두가 문후 장로님을 따라 몸을 날렸다.

역시 구파 중 약세라고 하지만 내로라하는 후기지수들이라서 그런지 모두 경공은 물론이요, 신법에도 조예가 높았다.

순식간에 망형산이라고 불리는 산에 도착하였다.

망형산, 이름 그대로 물을 바라는 산.

매우 척박하고 저 먼 곳, 사막을 떠올리게 하는 듯 듬성듬성 나무가 있었고, 물소리라고는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 척박한 산을 쳐다보며 문후 장로님은 웃고 계셨다.

“훈련 장소로서는 아주 좋은 곳이지.”

“어째서입니까?”

문후 장로님의 말에 화산파의 육지검사 중 한 사람이 물었다.

이름이 아마도 진소천(眞푒?)이었던가?

속가제자 중 한 사람이다.

“너는 실전에서 무슨 상황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인 상식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갑자기 노선배나 노고수들이 나타나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지형지물 때문에 초식에 장애가 생겨 상대보다 실력이 좋으나 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알 것이고.”

무진 장로님이 잠시 뜸을 들이고 말했다.

“그렇기에 이곳이 좋은 곳이다. 척박한 마른땅, 바싹바싹 마르는 입술, 갈증에 타들어 가는 목. 살수들이나 하는 수련인 것 같지만, 강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법. 알았느냐? 무술 수련의 첫 번째는 지형지물의 극복이다.”

눈을 빛내며 얘기를 끝냈다.

영풍 장로는 얘기를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고 있었다.

영풍 장로가 문후 장로님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번 시간에 가르칠 것은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진법이다. 오늘은 두 가지를 동시에 배울 거다.”

진법과 무술이 대체 어떤 관계인지를 몰라서 나를 포함해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올라가 보면 알 것이다. 자, 가 보자꾸나.”

느릿느릿 천천히 산에 나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느릿한, 긴장을 푸는 듯한 발걸음에 모두들 살짝 긴장이 풀려 가기 시작했다.

중간쯤 왔을 때는 모두들 조금씩 눈이 풀려 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영풍 장로가 얘기를 끝내자마자 발로 어느 한 나뭇가지를 툭 건드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종남파의 장로가 되어서 나뭇가지를 보지 못했을 리는 없는 일. 무언가의 신호가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나는 자하심법을 운기하며 산을 오른 것이다.

그리고 예상이 적중했는지 다른 후기지수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눈은 풀려 가고, 점점 노골적으로 몸이 축축 처져 가고 있는 것이다.

연화에게도 얘기했다만 연화 또한 마찬가지.

게다가 종남의 반룡, 마진천 또한 똑같았다.

그 정도 무력, 능력이라면 나처럼 무슨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준비했을 터인데 풀린 눈.

‘뭔가 이상해.’

걸음을 멈추고, 일행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진기를 극성으로 끌어 올리며 주변을 관찰했다.

진법이라 함은 기본적으로 가장 보편화된 것이 팔괘와 사상을 근본으로 한 사상진과 팔괘진이다. 강호에 많이 알려져 있는 진들은 모두 이 진들을 근간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사상과 팔괘를 떠올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건, 태, 이, 진, 손, 감, 간, 곤.

그리고 사상의 태양, 소양, 태음, 소음.

지형지물인 물, 불, 흙, 돌.

‘별 차이 없는데?’

어차피 나의 진법에 대한 조예는 매우 낮다.

장로님이 펼친 진법이라 하면 당연히 상승의 것일 터.

나의 어수룩한 실력으로는 감히 부자연스러운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 하지?’

당황하는 것은 금물.

마음의 밭, 중단전으로 기를 휘돌리며 냉정히 생각하였다.

‘사상과 팔괘가 아닐 수도 있다.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보자.’

하지만 육합, 구궁 등 어떤 것을 생각해 보아도 답을 찾아낼 수 없었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와 앞으로 달려가 다른 일행을 따라잡았다.

어찌 된 일인지 일각 정도를 뛰었을 뿐인데 일행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진법에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준비하고 대비하고 있었는데도 진법에 걸렸다는 것에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바로 다시 대책을 생각하느라 머리를 굴렸다.

‘조급히 생각하지 말자. 장로님이 훈련이라 하셨으니 위험할 시엔 장로님이 도와주실 거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해이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실전과 같다고 생각하자. 나는 지금 위험한 상황인 거야.’

마음을 다잡고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그렇게 일각 정도를 둘러보는데,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야 ……우야…….’

“잘 안 들리는데…… 그런데…….”

자세히 들어 보니 들어 본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급히 신형을 날렸다.

일각 정도를 달린 끝에 소리의 발원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 청우야!”

연화였다.

“뭐야, 너는 저기 있었잖아!”

“응? 어디에?”

“저쪽에 있는 일행에…….”

“그건 나도 똑같아. 너도 내가 있던 일행에 있었어. 하지만 평소랑 다르게 이상하다는 느낌에 불러 봤는데 진짜로 올 줄은 몰랐어.”

귀엽게 웃으며 얘기하는 연화.

“뭐야, 그럼 우리 둘 다 같은 진 안에 갇힌 거야?”

“아니다, 넷이다.”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대경하여 검을 뽑아 들며 뒤로 휘둘렀다.

스겅!

“읏, 위험하다고!”

소리를 낸 사람이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뜻에 고개를 들어 상대의 얼굴을 보았다.

“너희들은…….”

어제 같은 식탁에 앉고, 오늘 같이 산에 올라온 조의 인물이었다.

두 명, 어제의 그 남자들이었다.

“이거 조의 사람들이 모두 모였네?”

넉살좋게 웃으며 물어오는 네모난 얼굴, 다부진 몸매의 소년(같은 남자).

“아, 먼저 내 소개부터 하지. 나는 종남의 삼십육검수인 현파(縣擺)라고 한다.”

시원스럽게 자신의 소개를 한다.

말투는 경박스러우나 경박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호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종남의 삼십육검수인 탑희윤(搭熙尹)이라고 해요.”

곱상하고, 부끄럼 많게 생긴 소녀, 아니 소년.

역시나 인상과 다르지 않게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하하. 왜 얼굴을 붉히는 건데? 응?”

장난스럽게 묻는 현파의 말에 탑희윤이 더욱 부끄러워했다.

“보시다시피 부끄럼쟁이인지라 양해해 주기를.”

시원스럽게 얘기하는 현파.

경계를 풀고 인사했다.

“화산의 육지검사, 청우라고 하오.”

“화산의 선검수, 홍연화라고 해요.”

예의 있고 기품 있게 인사한 것에 현파가 괴상한 얼굴로 뭔가 고민하다 말했다.

“그렇게 예의를 차리면 우리가 무안하다고. 나이도 그렇게 차이 나지 않는 것 같은데 편하게 해.”

고민했던 것이 이것인가 보다.

시원시원한 인상과 어울리는 말이었다.

‘어…….’

화산에서 친구라고는 연화밖에 없던 지라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렇다면야 뭐, 그렇게 하도록 하자.”

당황하는 나를 대신해서 연화가 앞장서서 말했다.

“흐음,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당당하군.”

싱글싱글 웃으며 나를 도발한다.

하지만 그 정도 도발에 넘어갈 정도면 화산에서 사형들과 대판 싸움이 일어나고도 남았다.

“그것보다도 현재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법에 갇혔다는 것이오.”

“쳇, 안 통하는군.”

현파가 불만스럽게 툭 내뱉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우리 네 명만이 같은 진 안에 걸렸어. 오랫동안 돌아다녀 봤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더군.”

“그쪽이 보기엔 어떻소?”

“뭐가 말이야?”

“각자 같이 올라온 일행들이 있소?”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그렇다면 연화의 얘기를 듣고 생각했던 가정이 맞았다는 것이 증명된다.

“우리들은 진 안에 갇혔소. 그리고 각자 따로 진 안에 갇혀 산을 올라왔지. 하지만 잠시 일행과 떨어졌다가 만나 보니 같은 조의 사람들이 있고, 또한 각자 같이 올라온 가상의 일행이 있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인지는 몰라도 진법에 한 명씩 걸렸고, 어느 순간 다른 진법의 안에 들어온 것이오.”

“흠…… 그렇다면 두 가지 가정이 생기는군.”

현파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첫 번째, 우리가 처음에 진법에 걸리고, 그 진법 안에 네 명을 포함하는 다른 진법을 하나 걸었다는 가정. 두 번째, 진법에 걸리고 난 후 잠시 진법을 풀고, 아니면 한정된 공간 안에서 진을 겪게 된 후 다른 진법의 안으로 들어갔다는 가정.”

내가 생각했던 것과 일치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첫 번째 가정에는 한 가지 파훼법이 있어.”

수줍게 고개를 들고 말하는 탑희윤.

“진법끼리는 같은 사람이 펼친 진법이라고는 해도 그 교차점에 조금의 맞물림과 모순이 생겨. 그렇기에 그 모순을 찾아내고 부수면 진은 파훼돼.”

“그렇다면 일단 그 모순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이겠군.”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가 남는다.

“두 번째 가정은 어떻게 할 것이오?”

“그건 나중에 생각해. 일단은 가능한 일부터 해 봐야지.”

현파가 툭 내뱉곤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곰곰이 생각하고는 말했다.

“내가 북쪽 방향, 희윤이가 남쪽 방향, 연화 소저가 서쪽 방향, 청우가 동쪽 방향을 맡기로 하자. 찾았거나 찾지 못했거나 이곳으로 돌아오기로 하지.”

“어떤 진에 걸렸는지 모르니까 같이 다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연화가 반박했다.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으로 보아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들고, 동료끼리 떨어뜨리는 그런 진인 것은 아닌 것 같아. 차라리 우리를 같은 곳에 모이게 하는 진이라면 모를까.”

탑희윤이 연화의 말에 다시 반박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생각하다가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게다가 이건 시험 같은 거라고. 장로님들께서 우리들을 위험한 진에 빠뜨릴 것 같아?”

현파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하자 연화가 입을 다물었다.

“그럼 가자고.”

팟!

각자 정해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동쪽으로 달려가며 기를 끌어 올려 눈에 집중시켰다.

안력의 강화다.

기운들을 주변에 퍼뜨려 감지했다.

기감이다.

다른 구성물들과 다른 느낌을 가진 것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를 발견했다.

‘저건…….’

황량한 산에 어울리지 않게 푸르른 숲이 있었다.

척 보기에도 부자연스러우나, 그런 만큼 위험한 느낌이 있는 숲이었다.

긴장하며 속도를 낮추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달랐다.

기감에도 감지되는 부자연스러운 느낌.

하지만 특별히 다른 것은 없었다.

숲의 중앙까지 들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일각.

“그냥 숲인 건가?”

중앙에도 다를 것이 없자 몸을 돌려 나갈 준비를 하였다.

그때, 퍼뜨려 놓았던 감각에 무언가가 잡혔다.

살기도 뭣도 없지만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읏!”

팅! 팅! 티팅!

순식간에 뽑아낸 검으로 암기들을 튕겨 냈다.

“거기냐!”

자세를 잡고 암기가 튀어나온 곳으로 달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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