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23화 (23/175)

# 23

화산천검 1권(23화)

8장 종남의 반룡(4)

“아니, 그만하자.”

자존심이 상하지만 주제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검을 검집에 회수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말이 짧아졌군.”

“기습과 함께 그 오만한 말투, 경어를 쓸 필요가 없지.”

이게 내 생각이었다.

저 정도로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오만하다면 무인으로서, 사람으로서 존경을 받을 필요가 없다.

마진천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가? 어차피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 주의라서 말이지. 그건 그렇고, 대화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으니 대화를 시작하지.”

싱긋 웃으며 품속에서 다시 섭선을 꺼내 살래살래 흔드는 마진천.

‘낯짝도 두껍다…….’

모욕적인 말을 들었는데도 싱긋 웃고, 게다가 지적받은 것을 고치지도 않는다.

하지만 겉으로는 반발해도, 마음속으로는 당연하다는 듯이 인정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종남과 화산의 협력. 지금의 합동훈련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상한 질문이다.

밑도 끝도 없이 던진 말에 모르겠다는 눈빛을 보내 주었다.

“아직 모르는가? 뭐, 상관없지. 내가 말해 주면 되니. 네가 보았듯이 종남과 화산, 아니 무당과 소림을 제외하곤 화산은 모두와 관계가 좋지 않다. 너도 알다시피 혈천의 겁난 때문이지.”

“그런데?”

“감정의 골은 깊고 깊어 일 개월 전까지 삼백 년이나 지속되었지. 그런데 갑자기 합동, 협력이라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곰곰이 생각하고 답해 주었다.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 독불장군은 오래가지 못해. 그것을 상기했을 수도 있지.”

“아니, 그러기엔 너무 갑작스럽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말하긴 뭐하지만 종남은 화산에 그렇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수뇌부는 조금 심했지. 한마디 하자면 저 영풍 장로님이 이상한 거다. 이곳에 온 화산파의 장로도 만만치 않게 이상하지만 말이지. 아무튼 그런데도 갑작스럽게 회담을 하고, 협력을 하자고 제의하였다. 너무나 호의적으로 말했지.”

마진천의 얘기를 들어 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삼백 년 동안이나 이어져 온 불화,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을 텐데?’

“무언가가 개입했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구파를 위협할 정도면 경시할 수 없는 자들이지.”

장문인의 기대감에 찬 눈빛.

그것이 이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느낀 것은 착각일까?

“뭐, 너무 비약적이긴 하지만 가능성은 있지. 그러니 이번 훈련,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도록. 예감이 좋지 않으니 말이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마진천이 섭선을 접고는 등을 돌리고 걸어갔다.

불길한 예감, 머리가 아파 온다.

공터에서 멍하니 동이 틀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9장 훈련, 무술과 진법(1)

짹짹짹.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아침을 알린다.

동이 터 오며 구름은 주홍빛으로 물들고, 밤사이 어두워진 골목 사이사이까지 빛이 밝게 비춘다.

“읏!”

밝은 빛에 눈이 부신다.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뜨자 괜찮아졌다.

어느새 아침이 되었는지 총검문의 식솔들과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또 홍등의 불을 끄고 아침을 준비하느라 하인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하아, 아침이구나…….”

밤새 충격적인 느낌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자각하지 못하고 멍하니 아침까지 서 있어서 그런지 아직 현실감이 없었다.

반쯤 눈이 풀린 채로 비틀비틀 화산파 후기지수들의 숙소로 돌아왔다.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려고 하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잘 잤어?”

상큼한 미소와 함께 인사하는 연화.

하지만 아직 멍한 상태여서 그런지 살짝 고개만 끄덕이고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야, 왜 그래?”

연화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 아직 잠이 덜 깨서 그래. 잠시만…….”

연화를 뒤로하고 침대의 위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그 상태로 아침의 공기, 음기(陰氣)와 양기(陽氣)가 조화된 기(氣)를 들이마셨다.

자하심법은 음기와 양기가 조화되는 노을이 지는 때를 본 따서 만든 심법.

그래서 그런지 순식간에 정신이 맑아지며 몸이 풀렸다.

일각 정도를 운기하고 눈을 떴다.

연화는 그새를 못 참고 문 옆에 종이를 붙여 놓고 사라졌다.

밥 먹으러 갈게. 빨리 와.

종이를 뜯어 옆의 탁자 위에 올리고 문을 열었다.

계단을 내려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화산파의 제자들이 모여 차를 한 잔 마시며 명문의 티를 내듯이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다도(茶道).

‘저게 다도……?’

미간이 찌푸려진다.

저들은 다도에 대해서 착각하는 것 같아 보였다.

다도라 함은 편안히 즐겁게 마시는 것, 차를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는 태도다.

그런데 저들은 명문으로서의 무언가에 얽혀 있는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무언가 틀에 얽매인 듯이 차를 똑같은 행동으로 마시고 있었다.

후루룩∼

차 마시는 소리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울렸다.

잠시 한숨을 내쉬곤 연화가 있는 식탁으로 갔다.

연화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편안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시면서도 기품이 있는 것이, 다른 자들과는 달리 진정한 다도를 실천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응? 왔어?”

연화가 후루룩 차를 마시고 내려놓은 뒤에 말했다.

차가 담겨 있는 찻잔을 쳐다보자 연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용품정차(龍品精茶)라고, 이 근방에선 유명한 차인가 봐. 향도 좋고, 색깔도 괜찮아.”

“그래?”

차를 가슴 높이로 들고 색을 감상해 보았다.

맑은 녹색의 차다.

가까이 가져와 잠시 향을 맡고, 마셔 보았다.

순향(純香). 겉으로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상쾌하고 깨끗한 맛이 난다.

“좋은 차네.”

“응, 의외로 신경을 많이 썼어. 총검문이 그렇게 큰 문파는 아니라서 그런지 이번 기회로 구파에 점수를 따고 싶은가 봐.”

보평제자에서 시작하여 선검수가 되었기에 자유로운 사상과 정신의 연화.

그렇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옆에 있는 다른 몇몇 제자들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상관없이 후루룩 하고 차를 마신다.

“그럼 오늘의 아침밥은 뭐이려나? 아침이니까 기름기 있는 음식은 좋지 않을 텐데…….”

잠시의 기다림 후, 시비들이 주방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딸그락!

식탁 위에 음식을 내려놓고, 다른 식탁으로 가 또다시 음식을 내려놓는다.

나의 식탁 위에도 음식이 놓아지자 무슨 종류의 음식인지 알 수 있었다.

포자 두 개, 그것뿐이었다.

“이게 뭐지?”

“포자 두 개라고? 장난하는 거야?”

다른 제자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조식인 포자 두 개를 보자마자 불만을 터뜨리는 제자들.

평소에 얼마나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 왔는지는 몰라도 차려온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면전에서 불만을 토로하면 안 된다.

그 정도는 예의로 알고, 육지에서 배웠을 텐데…….

마침 장로님이 식당으로 오고 계셨다.

“장로님, 이것 보십시오. 밥이 포자 두 개입니다, 포.자. 두∼ 개.”

건방 떠는 듯 경망한 말투.

육지권사들 중 가장 경박한 종창평(宗昶?)이라는 자다.

문후 장로님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것이냐?”

어제의 일도 있고, 종창평의 언사가 맘에 들지 않아 문후 장로님은 화가 난 듯 보였다.

하지만 눈치 없는 종창평은 계속 주절댔다.

“어떻게 저희들에게 이런 음식을 대접할 수가 있는 겁니까? 저희가 중소문파의 제자도 아니요, 자랑스러운 정파의 명문, 구파 중 하나인 화산파의 제자에게 이래도 되는 겁니까?”

열변을 토한다.

마치 자신은 고귀한 사람이니 이런 것은 먹을 수 없다고 얘기하는 듯 보였다.

잠시의 침묵 후, 문후 장로님이 말했다.

“먹지 마라.”

문후 장로님이 툭 내뱉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종창평이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다가가며 말했다.

“장로님, 그게 무슨……?”

“시끄럽다, 그렇게 떠들 시간에 먹어. 싫으면 먹지 말고 나가라. 쓸데없이 소란 피우지 말고.”

짜증을 낸다.

화산의 장로로서 육지권사 주제에 저리 경박한 말투로 떠드는 것이 화가 나겠지.

속으로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종창평이 다시 말했다.

“아니, 장로님. 이건 저희 화산을 무시하는 거라구요. 어떻게…….”

“시끄럽다, 종창평. 소란 피우지 말고 앉아라.”

조용히 누군가가 말했다.

조용하지만 커다란 울림을 주는 목소리.

종창평이 찔끔한 표정으로 소리를 낸 사람을 쳐다보고는 다시 자리에 가서 앉았다.

고개를 뒤로하고 쳐다보자 차가운 인상, 호리호리하지만 강인한 느낌이 드는 남자가 그 주인공이었다.

“장로의 말은 무시하더니, 저 아이의 말은 듣는구나. 대체 누가 더 위인지 모르겠구나.”

문후 장로님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피식하고 웃고 있지만 마음은 편치 않을 터, 말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었다.

종창평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누구야?”

뒤에 있는 남자에게 조용히 손짓하며 연화에게 물었다.

“만청풍(万?風). 선검수 중 냉혈철심(冷血鐵心)이라고 불리는 사람인데, 유혁 선배님을 제외하고는 선검수의 신진서열 이 위나 다름없는 사람이야. 게다가 청도(淸道) 장로님께 사사 받은 자라서 그런지 예의 없는 사람과 위선적인 사람, 죄를 범하는 것을 가장 싫어해. 게다가 그 사상을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하는지라 별로 인기 있는 선배는 아니지만, 장로님들께 신뢰받고, 무서운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해.”

“흐음∼”

들어 본 적이 있다.

청도 장로님은 그 이름에서부터 알다시피 맑은 길, 정도(正道)만을 걸어오신 분이다.

게다가 그 제자는 청도 장로님에게 그 성정을 물려받아 더욱 발전시켜 그 정도가 특히 심해서 많은 동문이나 후배들에게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청도 장로님은 육지검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예전에 몇 번 훈련을 받을 때 만나 본 적이 있었다.

어째서 만청풍이라는 자를(아니, 사형인가? 근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 조금 민망하네……) 몰랐는지 내 멍청함을 탓할 정도였다.

내가 연화에게 물어본 것을 빼고는 아무런 대화도 없이 식사 시간이 끝났다.

다시 차 한 잔을 마시고 밖으로 나오자, 종남파의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끝내고 간단히 몸을 풀고 있는 중이었다.

각자 무기를 꺼내고 휘두르거나, 권과 장을 내뻗는다.

우리들이 나오자 행동을 멈추고 우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마진천, 그자도 있었다.

섭선을 들고 나풀나풀 흔들며 싱긋 웃는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대꾸하고는 장로님들을 쳐다보았다.

가볍게 서로 인사를 한 두 장로님은 잠시 얘기를 주고받더니,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어제 저녁에 식탁에 앉은 그대로 네 명씩 서라.”

종남과 화산의 사람들 모두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래도 고분고분히 가는 것이, 어제보다는 나아진 모습이다.

“지금부터 망형산(望灐山)으로 간다.”

망형산.

대체 무슨 산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랄 망, 물 이름 형이라는 이름에서부터 무언가 척박한 느낌이 들었다.

“망형산이 대체 어딥니까?”

종남파 쪽에서 유생과 같이 생긴 유들유들한 인상의 남자가 물어왔다.

“정식 명칭은 모른다. 그저 내가 그렇게 이름 붙였고, 이제부터 그렇게 불릴 것이다. 그렇게 알고 잔말 말고 따라 오거라.”

생각해 보니 문후 장로님은 다혈질이고, 또한 누군가의 간섭이나 질문 같은 것을 일체 받기 싫어하시는 성격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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