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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천검-22화 (22/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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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천검 1권(22화)

8장 종남의 반룡(3)

남자, 마진천에 대한 얘기는 이 말로 끝나고, 조용히 근처를 거닐었다.

그리고 대충 지리를 외우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지를 알아내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 시간인 듯 식탁 위에 음식이 놓여 있고,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점심과는 달랐다.

한 식탁에 사람들이 네 명씩 정해진 대로 앉아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중 둘은 화산파의 사람, 나머지 둘은 종남파의 사람들이다.

식탁은 전쟁 전의 그것처럼 서늘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왔구나, 저곳에 가서 앉거라.”

문후 장로님의 말에 맨 끝 탁자로 가 연화와 함께 앉았다.

앞쪽으로는 네모난 얼굴, 다부진 몸매의 고집스러운 인상의 소년과 유약한 몸매, 곱상하게 생긴 소공자와 같은 인상의 소년(소녀 같지만 성대가 튀어나왔으니……)이 앉아 있었다.

“자, 모두 모였으면 주목하거라.”

짝 하고 박수를 치며 문후 장로님이 말했다.

앞에 있는 사람들의 탐색을 정지하고는 문후 장로님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부터 같이 행동해야 할 동료들이다. 사이좋게 지내도록.”

상황 설명도 없이 갑작스럽게 던진 말.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은 없었다.

잠시 침묵이 감돌고, 종남파의 후기지수가 문후 장로님에게 말했다.

“……무슨 소립니까?”

“한 탁자에 네 명. 여섯 조로 나누어 행동할 것이다. 협동심이 중요하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편히 생활하는 데 좋을 것이다.”

“말도 안 됩니다. 종남파의 녀석들과 같은 조라니!”

“갈(喝)! 시끄럽다!”

문후 장로님의 일갈에 소리치던 육지권사 한 명이 입을 다물었다.

“반박은 허용치 않는다. 불만도 들어 주지 않아.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거라.”

강압적인 말투.

기분이 나빠진 듯 인상을 찌푸린 문후 장로님의 서슬에 다른 후기지수들도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숙였다.

“허허. 그렇게 강압적으로 말하면 겉으로는 따르나, 속으로는 반발하는 것이 아이들이오. 부드럽게 설명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이오.”

“그렇소? 나는 잘 모르겠구려.”

기분이 상한 것인지 문후 장로님의 말투가 조금 퉁명스러웠다.

영풍 장로는 무안한지 헛기침을 터뜨리곤 짝 하고 박수를 치며 시선을 모았다.

“자, 이번 식사는 서로의 친목을 다지기 위해 마련한 것이니, 서로 싸우지들 말고 들게나. 거기, 그렇게 눈싸움하면서 밥 먹다가는 체하네. 잠시만이라도 멈추게나.”

영풍 장로의 말에 식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친목을 다지기 위한 부드럽고 가벼워야 할 식사는 시종일관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중간 중간 장로님들의 이후 일정과 같은 것들의 설명을 빼고는.

“너희들이 내일부터 훈련해야 할 것은 다섯 가지다. 무술, 진법, 협동, 근력, 지력. 어떻게 훈련을 하는지는 때가 되면 가르쳐 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이좋게 지내도록. 한마디 하자면 은원 관계는 중요한 것이다. 원한을 하나 만들면, 언젠가 원한이 하나 돌아오는 것이 진리다. 현재의 친구가 미래의 적이 될 수도 있고, 현재의 적이 미래의 친구가 될 수도 있는 법이야. 두 달 정도를 같이 생활해야 할 동료끼리 처음부터 이러면 좋지 않아.”

영풍 장로가 열변을 토해 내도 사람들은 반응이 없었다.

잠시 헛기침을 터뜨리고는 영풍 장로가 다시 앉아 식사를 하였다.

무거운 공기 속에서 식사가 끝나고, 연화와 같이 계단을 오르면서 얘기를 하였다.

“정말로 너무하잖아? 어떻게 저런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라는 거야?”

투덜투덜 연화가 불만을 쏟아 낸다.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끼리 왜 앉혀 놓는 건데? 일단은 따로 떨어져서 먹고, 나중에 친해지도록 자리를 만들어도 되잖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래.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할 건 없잖아. 안 그래?”

“응, 그래.”

다다다다 쏟아 내는 말에 대충 대꾸를 해 주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반응이 왜 그래? 뭔 일 있어?”

역시 오랫동안 만나 온 친구라 그런지, 내가 어떤 기분인지를 순식간에 파악한다.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걱정해 주는 연화에게 답해 주었다.

“아니야, 그냥 조금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래.”

“그래? 무슨 고민인지는 모르겠지만, 편하게 생각해. 그럼 난 갈게.”

“응, 알았어.”

연화의 방은 계단을 올라와서 왼쪽, 나는 오른쪽이기에 인사를 하며 등을 돌렸다.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푹신한 감촉의 침상에 몸을 묻었다.

“후우∼”

부드러운 느낌에 편안한 감촉과는 다르게 마음이 조금 심란했다.

“마진천…… 이라고 했던가?”

생각나는 것은 한 가지, 종남의 반룡.

가만히 걸어오고 있을 뿐인데도 느껴지는 압도적인 기운.

패도적인 기운을 느낀 탓에 아까의 식사에서도, 올라오는 동안에도 그자의 모습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십팔검수인 거지?”

십팔검수라고 한다면, 화산에서는 선검수 정도다.

선검수만도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론 그 정도의 무력이면 화산파의 매화검수, 즉 종남의 십검수 정도여야 말이 맞았다.

하지만 직위는 십팔검수, 이상했다.

“뭐, 상관없지. 나와 비슷한 것일 수도 있고.”

나 또한 선검수보다 강하지만 육지검사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후읍∼”

음기(陰氣)를 머금은 공기를 백회혈을 통해 흡수하자 정신이 맑아졌다.

잠시 그 여운에 잠겨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을 뜨고는 아래쪽을 쳐다보았다.

붉은색의 홍등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고, 앞쪽에 있는 종남의 숙소에선 푸른 등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청(靑)과 홍(紅).

음(陰)과 양(陽).

물과 불로 비유되는 두 색깔.

상생, 상극하는 두 기운.

마치 종남과 화산을 비유하는 듯해서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때, 종남의 숙소 문 앞에서 문을 지키고 있던 하인들이 문을 열었다.

밝게 빛나는 빛을 등지고 어떤 남자가 바깥으로 나왔다.

“저 사람은…….”

방금까지만 해도 생각하고 있던 남자.

종남의 반룡, 마진천이었다.

마진천도 나를 보았는지 살래살래 섭선을 흔들며 나를 쳐다봤다.

탁!

창문을 닫고 장포를 걸친 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계단을 타고 내려와 하인들이 문을 열어 주기도 전에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차가운 바람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자는…….”

내가 내려오는 동안에 어디로 떠난 것인지 보이지가 않았다.

길의 중간으로 걸어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찾는데, 내 뒤통수를 향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음?”

뒤를 돌아보자 잘 보이지 않는 건물의 옆쪽, 밤의 음영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마진천이 섭선을 살래살래 흔들고 있었다.

잠시 나를 쳐다보다 등을 돌리고는 그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따라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뭔가에 홀린 듯 그것에 응하며 그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꺾였다가 직선, 곡선을 그렸다가 꺾인다.

구불구불한 그곳을 벗어나자 보이는 것은 취운암의 연무대와 같은 널찍한 공터였다.

그 가운데에 서서 마진천, 그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따라온 거지?”

연화와의 대화 때와는 다른 말투.

마치 왕이라도 된 듯이 오만한 말투다.

“그쪽이 따라오라고 했잖소?”

말은 하지 않았지만, 행동으로 그렇게 말했다.

“흠, 그런가? 난 그런 적이 없는 것 같다만, 그렇게 느꼈다면야 할 말이 없지.”

마치 장난을 치는 듯한 말투다.

“장난은 그만 치고, 할 말이나 하시오.”

기분이 나빠짐에 따라 내 말투에 퉁명스러움이 묻어났다.

“이런, 이런. 그렇게 쉽게 삐쳐서야 내가 미안하지. 단 두 마디에 그렇게 기분이 상할 줄은 몰랐네. 사과하지.”

싱긋 웃으며 말한다.

대체 무엇이 진짜 그의 성격인지 모를 만큼 순식간에 말투가 변했다.

“뭐, 본론부터 말하자면 한 가지 너에게 시킬 것이 있어서 말이지.”

마진천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군.’

마진천=괴상한 사람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시험을 해 보아야겠다.”

“시험?”

“아,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보기 위한 것이다.”

대화할 수 있는 자격?

“내가 거절한다면 어떻게 할 거요?”

“거절할 권리는 없어. 내가 흥미를 느꼈으니까.”

마진천이 말을 끝냄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섭선을 내찔렀다.

“읏!”

발검을 하기에는 너무 가깝다.

손을 수도로 바꾸며 섭선을 비껴 냈다.

“호오, 검사인 줄 알았는데 권사인가?”

갑작스런 공격을 한 자의 말에 대꾸할 이유가 없기에 진각을 밟았다.

발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힘.

허리에서 꺾고, 어깨에서 다시 꺾으며 주먹으로 발출한다.

전사(轉絲)를 담은 일격.

마진천이 섭선을 들어 올려 안면을 방어했다.

캉!

재료가 철로 된 것인지 쇳소리와 함께 주먹이 조금 아렸다.

하지만 놀라지 않고, 팔을 접고 팔꿈치로 이격을 날렸다.

쾅!

팔꿈치는 주먹보다 더 강한 부위.

제대로 먹힌 듯 마진천이 뒤로 두 발자국 밀려났다.

“장천수인가? 하지만 다른데…….”

섭선을 거두고 뒤로 물러나며 마진천이 중얼거렸다.

한눈에 꿰뚫어 보는 안목.

초식을 변화시켰는데도 다른 문파의 무공을 한 번에 알아본다.

자세를 더 굳건히 하며 말했다.

“장천수가 맞기는 하지. 하지만 나만의 장천수다.”

“무공을 자신에 맞게 바꿀 정도인가? 대단하군.”

마진천이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섭선을 가슴속에 파묻고,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맑은 검명과 함께 검신이 월광을 분산시킨다.

모공을 송연하게 만드는 백광, 날카로운 예기와 푸르른 검신.

척 보기에도 명검이었다.

“섭선으로 장난을 치기에는 수준이 높군. 검으로 상대해 주지. 너도 검을 뽑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진천이 검을 대충 늘어뜨렸다.

척 보기에는 허점이 너무도 많은 자세이지만, 자세히 살펴보자 빈틈이 없는 자세였다.

겉으로 드러난 허점은 상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

완벽한 자연체(自然體)였다.

경시하지 못하고 나 또한 자세를 취했다.

매화검로 일 초, 발검의 자세.

“먼저 가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마진천이 달려들었다.

삼 장, 이 장, 일 장…….

순간을 나누고 나눠 마진천의 몸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그 순간, 검을 뽑아 들었다.

무음의 검.

아무런 소리도 없이 엄청난 속도로 타격점에 도달했다.

‘잡았다!’

완벽히 잡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진천은 만만하지 않았다.

무음, 극쾌의 검이건만 마진천은 언제 검을 회수했는지 나의 검을 막아서고 있었다.

챙!

“빠르군.”

마진천이 잠시 감탄을 하듯 말하고, 검을 움직였다.

느릿느릿한 검. 하지만 천근의 경력을 품고 있는 중검(重劍).

그물에라도 걸린 듯 움직임이 둔해졌다.

극에 이른 중검.

하지만 투로는 한 가지, 완만한 원을 그리는 검.

막아 내기에는 쉬웠다.

“핫!”

이 초 매화부석으로 천천히 경력을 풀어 나갔다.

매화의 꽃잎이 중검, 바위를 천천히 깎듯 부숴 나간다.

챙! 챙! 채챙! 채채채챙!

완벽히 막아 내며 뒤로 삼 보 물러났다.

다음 공격에 대비하려는데, 마진천이 검을 검집으로 회수했다.

“어째서 검을 회수하는 거지?”

“이 정도면 됐다. 합격이다. 왜? 더하고 싶은가?”

마지막 말을 내뱉고는 그가 다시 기세를 피워 올렸다.

아까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기세.

저 기세라면 백전백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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