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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천검-21화 (21/175)

# 21

화산천검 1권(21화)

8장 종남의 반룡(2)

“음, 잘 먹었다.”

연화가 음식을 한, 두 입씩 맛보고 말했다.

“에? 그 정도로 배불러?”

아무리 음식이 많다고는 하지만 한, 두 입 정도씩 먹는 것에 양이 찰리가 없었다.

소식가인 나조차 그 정도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

“……날 대체 뭘로 보는 거야? 여자라고, 여자. 너랑은 다르지.”

연화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민망함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음식을 다 먹고, 같이 일어서 바깥으로 나갔다.

근처를 둘러보며 기웃거리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구나, 사제.”

듣자마자 기분이 나빠지는 목소리,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였다.

“유혁 사형.”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아니, 어째서 지금까지 십여 일 동안이나 같이 다녔으면서 몰랐는지, 내 눈이 삔 건지 의심이 갔다.

기분이 나빠 왔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 맘에 걸렸다.

“장일 사형은요?”

“아아, 심하게 다쳤기에 오지 못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고, 나 또한 오는 것보다는 오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옆은 누구냐? 설마 여자 친구냐?”

“아니요.”

피식하고 웃으며 농을 건네는 사형에게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은 장난에 넘어가 주기로 하였다.

“아닌가? 뭐, 상관없지. 알아서 잘하도록. 그리고 종남의 녀석들이 왔을 때 망신당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럼…….”

화산에 있었을 때와는 다르게 우아한 동작과 기품을 내보이는 사형.

선비와 같은 우아한 걸음걸이로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누구야?”

멀리 보이지 않게 되자 연화가 물어왔다.

“응? 같은 선검수인데, 모르는 거야?”

“응, 본 적 없어. 누군데?”

“선검수 유혁. 낙화검 소이련 장로님의 제자로서 배분 상으로 내 사형이야.”

“아, 유혁 선배님이었어?”

“응? 알고 있다는 말투네?”

“그럼. 선검수로 올라온 지 반년 만에 매화검수에 다가가는 천재이신걸. 장문인께서도 예외적으로 선검수의 수련과 임무에서 제외하고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실 정도야.”

“그 정도야?”

무에 대한 재능이 뛰어난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로 뛰어난 사람인 줄은 몰랐다.

“에? 너는 몰랐다는 말투네?”

“별로 좋은 인연은 아니라서…….”

“음, 성격이 나쁘다는 소리는 많이 들려왔어. 그런데 그것도 반년 정도 전인가? 누구한테 깨져서 돌아오고 나서는 숙소에서 두문불출, 성격도 바뀌었다고 들었어.”

반년 정도 전에 누군가에게 깨져서 돌아왔다고 하면, 나와의 비무일 것이다.

“그게 그렇게 충격을 먹을 정도였나?”

물론 그럴 만도 하다.

몇 년 동안이나 놀려 먹던 사제가 무엇을 먹었는지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실력으로 자신을 이기려 들었으니 말이다.

‘뭐, 자업자득이지.’

“응? 무슨 소리야?”

“아니야, 아무것도. 일단 다시 돌아가자.”

“에? 벌써? 아직 반도 다 못 돌았는데…….”

“공기가 무거운 것이, 뭔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열린 상단전, 예지능력이다.

이런 예감은 거의 틀리지 않는다.

“그래? 나는 모르겠는데…….”

“돌아가자.”

연화의 미련 섞인 말은 무시하고 재빨리 숙소로 돌아갔다.

연화는 자신의 말을 무시한 것에 심통이 난 듯 볼을 부풀린 채로 나와 같이 달렸다.

하지만 그것도 숙소에 도착하자 달라졌다.

연화가 긴장하며 왼쪽 허리춤의 검대에 매달려 있는 검 병을 잡았다.

언제라도 출수할 수 있도록 긴장하면서.

나 또한 검 병에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언제라도 최대한의 속도로 반응할 수 있도록 긴장했다.

보이는 광경은 푸른 등이 매달려 있는 전각을 뒤로한 채 푸른 무복을 입고 있는 종남파의 후기지수들과 홍등이 매달려 있는 전각을 뒤로한 채 붉은 무복을 입고 있는 화산파의 제자들이 대치하고 있는 것이었다.

팽팽한 대치 상태.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만 같은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이었다.

침묵만이 감도는 가운데 멀리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무엇들 하는 것이냐!”

“지금 뭘 하는 것이냐!”

앞뒤로 들리는 호통 소리.

뒤쪽을 돌아보자 문후 장로님이 문 총관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앞쪽에서는 종남파의 인도를 맡은 장로로 보이는 노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각자 자파의 무리로 걸어가 한차례 호통을 치고, 뒤로 돌아 서로를 쳐다보았다.

“오랜만이오, 문후 장로.”

“오랜만이오, 영풍 장로.”

알고 있는 사이인 듯 두 장로님이 서로 반갑게 인사했다.

“무례를 사과드리오.”

“아니오, 우리 아이들이 실례를 범한 것 같은데 무슨 소리요?”

문후 장로님의 말에 영풍 장로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식사는 하셨소?”

“방금 도착하였기에 아직이오.”

“그렇다면 같이하는 것이 어떻소? 우리 아이들은 이미 식사를 끝낸지라 혼자 밥을 들기 적적했거늘 잘됐구려.”

“허허. 그렇소? 나쁘지 않구려. 식당은 어디오?”

“아, 총검문의 문주가 식사에 초대를 하였소. 이분을 따라가면 되오.”

뒤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뒤쪽에 서 있던 문 총관이 다시 자신을 소개했다.

“총검문의 내총관 문서시라고 합니다.”

“허허. 문 총관이셨구려. 내가 실례를 범했나 보구려. 그곳에 서 있는 줄도 모르고 예를 차리지 않았으니.”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이리로…….”

문 총관이 길을 안내하기 전에 두 장로님이 각자 자파의 후기지수들을 한차례 훑어보았다.

사고치지 말라는 뜻의 눈빛이다.

한 명 한 명 친절히 눈빛을 보내고는 문 총관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칫. 장로님만 없었어도…….”

“그건 우리가 할 소리다. 화산파의 문도들 주제에…….”

“뭐야?”

또다시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됐다.

“그만해. 사고치지 말라는 눈빛을 받았잖아. 성질 죽여.”

“너도 마찬가지야. 시끄럽게 하지 마.”

근처에 있는 동료들이 말리자, 그 둘은 잠시 서로를 노려보고는 몸을 돌렸다.

“내 말이 맞지?”

모두가 사라지고, 중간에 나와 연화만이 남자 연화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게, 어떻게 안 거야?”

“그냥 느낌이야. 아무튼 별로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닌가 보네. 협력하기로 했으면서…….”

“같은 구파라고 해도 화산파는 무당과 소림을 제외하고는 사이가 좋지 않아.”

“혈천의 겁난 때문이야?”

“그래, 그 당시에 우릴 도와주었던 무당. 그리고 그 후에 우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던 소림을 제외하고는 같은 구파라 할지라도 사이가 좋지 않지.”

“그렇구나.”

그렇다면 이번 일은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으면서 협력하려 하다니.

“나야 그런 옛날 일은 신경 쓰지 않는 주의라 아무 감정도 없다만, 다른 아이들은 다른가 봐.”

“그런가 보네.”

“응. 새로 친구라도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글러 먹은 것 같아.”

연화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럼 다시 근처나 구경 다니자.”

“그래.”

이번엔 반대쪽을 돌아다니려 걸음을 내디디려는 순간, 푸른 전각, 종남파의 숙소 쪽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응?”

새하얀 피부, 짙은 눈썹과 오똑한 코.

눈은 맑고 깨끗했다.

전형적인 미남의 상(像)인 남자였다.

남자가 우리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싱긋 웃었다.

“잘생겼다.”

연화가 중얼거렸다.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걸어오는 그 남자.

연화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듯 그저 남자의 얼굴에만 주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운.

손에 저절로 땀이 났다.

땅에 서려 있는 용[蟠龍]인 것인가?

정심하나 사람을 압도하는 무형의 기가 그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채를 발하는 눈빛.

“느낄 수 있나?”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군. 내 무형기를 눈치채다니.”

대단한 자신감.

자신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를 눈치챈 것만으로 나를 대단하다 칭찬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격이 있었다.

후기지수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무력을 속에 갈무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화만이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연화에게 시선이 미친 듯 남자가 연화에게 말을 걸었다.

“소저는 화산파의 누구신지?”

“아, 화산파의 선검수 홍연화라고 해요.”

“선검수셨구려. 어린 나이인 것 같은데, 어찌 되는지?”

“열다섯이에요.”

“대단하구려. 열다섯의 나이에 선검수라니.”

“별거 아니에요.”

능숙한 말솜씨로 대화를 이끌어 가는 남자.

연화는 헤헤하고 좋다고 웃으며 남자의 말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공자는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아, 생각해 보니 소개가 늦었구려. 종남파의 십팔검수 마진천(馬鎭天)이라고 하오.”

십팔검수.

종남파의 후기지수는 세 단체에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 삼십육검수.

화산파의 육지검사와 비슷한 정도로, 삼십육 명씩 다섯 조(組)로 구성된 단체이다.

두 번째, 십팔검수.

화산파의 선검수와 비슷한 정도로, 열여덟 명씩 세 조로 구성된 단체이다.

세 번째, 십검수.

화산파의 매화검수와 비슷하나, 단 열 명의 한 조밖에는 존재치 않아 매화검수보다 아래로 치는 무력단체이다.

“나이는요?”

“하하. 비밀이오. 하지만 소저보다는 많다는 것만 알아 두시구려.”

“얼마나 많기에 비밀인가요?”

“하하하, 그렇게 많지는 않소.”

“치, 아닌 것 같은데요?”

경개여구(傾蓋如舊).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연화와 마진천은 친하게 농까지 건네고 있었다.

“하하. 그것보다도 연화 소저와…….”

나에게 힐끔 눈길을 준다.

“청우, 육지검사요.”

딱딱하게 대답하자 마진천이 살짝 입가를 비틀었다.

“청우 소협이었구려. 연화 소저와 청우 소협은 어디로 가는 것이오?”

소협이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연화가 내 앞을 가로막고 웃으며 말했다.

“심심해서 그저 잠시 주변을 구경하려는 것일 뿐이에요. 같이 다니실래요?”

“아니오, 할 일이 있어서 같이 다니진 못하겠구려. 다음을 기약하지요.”

“음, 아쉽지만 할 일이 있으시다니…….”

“하하. 그럼 다음에 만나지요.”

마진천은 품에서 섭선을 꺼내 살랑살랑 흔들며 자리를 떠나갔다.

가을도 거의 끝나 가고, 겨울에 다가가는 날씨이건만 섭선을 꺼내 부치는 것은 분명 철에 맞지 않는 행동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마진천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말인 듯 그것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마진천이 떠나가자 연화가 말했다.

“진짜 잘생겼다. 게다가 말도 잘해…….”

“왜? 반했어?”

“아니, 그건 아니고. 인간적으로 매우 괜찮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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