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20화 (20/175)

# 20

화산천검 1권(20화)

7장 쌍검술(4)

철환이다.

벗어났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또다시 그 몸이 축 늘어지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심란했다.

“쌍검술을 수련할 동안만 벗게 해 준다고 말했을 텐데?”

“네, 그랬죠.”

체념하고 철환을 다시 양 발목과 손목에 찼다.

딸깍!

몸 안의 힘이 사라지고, 축 늘어지는 느낌.

내공의 봉인이다.

“허장성세라는 말을 알고 있느냐?”

사부가 갑작스럽게 밑도 끝도 없는 말을 건넸다.

그 진의를 몰라 물끄러미 쳐다보자, 사부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차.’

재빨리 대답했다.

“알고 있죠. 실속은 없으면서 허세만 부리는 것이잖아요?”

“그래, 맞다. 그러면 말이다. 그걸 내가고수에게 대입시켜 봐라. 내가고수의 실속은 무엇이냐?”

“음…… 내공이요.”

“그렇지. 그럼 내가고수의 허장성세라는 것은 무엇일 것 같으냐?”

“내공도 없으면서 내공이 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요.”

“그래, 만일 네가 그 상황이라고 해 보자.”

마음속으로 그려 봤다.

한 줌의 내공도 없지만 당당하게 서서 군중을 오시하는 나.

하지만 곧바로 사람들이 달려들어 내 몸을 난자했다.

부르르 몸을 떨자, 사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네가 허장성세라는 것을 모르게 하려면 뭐가 필요하지?”

“……모르겠는데요.”

“바로 실력이다. 초식과 같은 것들이지. 내공이 없어도 초식만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만한 초식에 대한 깊은 이해도와, 내공이라는 보조가 없어도 모든 실력을 내보일 수 있는 능력. 이 두 가지가 필요하지.”

“그렇군요.”

“알았느냐? 그래서 철환을 차게 한 것이다.”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휴식과 몸의 훈련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바뀌었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입니다.”

“남아(男兒)라고 하기에는 늙었다.”

“그 뜻이 아닐 텐데요?”

“시끄럽다. 말장난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움직여라.”

“쳇.”

투덜투덜거리며 처음 철환을 찼을 때와 똑같이 간단한 움직임을 반복했다.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어 사부에게 말했다.

“그런데 밤이 늦었잖아요. 피곤한데…….”

솔직히 피곤했다.

몸이 아닌 머리가 말이다.

“내가 말했잖느냐. 오 일 정도 더 밤늦게까지 훈련한다고 말이다.”

“그건 무거운 검을 들고 연습할 때잖아요.”

“남아일언중천금이다. 지켜야지.”

“남아라고 하기에는 늙었다면서요.”

“내가 아니라 너 말이다.”

“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요?”

“사부의 말을 듣고 따랐으면, 그건 네가 한 말이나 다름없는 거다. 잔말 말고 움직여.”

“예에∼”

시시한 농담 따먹기도 질렸다.

사부의 말대로 계속 몸을 움직였다.

오랜만에 찬 탓인지 조금 불편하고, 무거웠다.

“하아…… 하아…….”

어렴풋이 해가 떠오를 때쯤, 만족할 만큼 몸을 움직인 것인지 사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가서 쉬어도 된다는 허락의 뜻이다.

“피곤해…….”

운기를 할 수도 없으니 몸의 피로를 풀 수 있는 것은 잠을 자는 것뿐.

머리도 아프니 잠을 자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내가 행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 바로 돌로 된 침상에 몸을 눕혔다.

눈을 감고 이불 속에 몸을 깊이 파묻었다.

약 이 주일.

시간이 지나고 하산할 때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사부에게서 쌍검술을 훈련하는 동안 넘겨주었던 검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그동안 정이 들기도 해서 청강검 한 자루와 그 무거웠던 검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

검 세 자루를 제외하고는 가볍게 전낭과 옷을 챙기고, 매화각으로 향했다.

매화각 앞에는 나를 제외한 열한 명이라는 숫자의 화산파의 제자들이 있었다.

이들이 육지검사, 육지권사와 선검수 중에서 고르고 고른 정예다.

그중에는 연화도 있었다.

반갑게 인사하고 같이 정해진 자리에 섰다.

사부와 다른 장로님들은 모두 매화각의 문 옆으로 늘어서 누군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매화각의 문이 열리고 기다리던 누군가가 나왔다.

백미백염.

선인의 기운을 풍기는 매화의 검선, 화산파의 장문인 매화검선 장추익이었다.

“모두 나왔구려.”

장문인이 장로님들, 열두 명의 제자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마치 무언가를 바라고 있기라도 하듯 장문인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내게서 눈이 떨어졌을 때에 깊은 숨을 내쉬며 정신을 다잡았다.

“여러 말은 하지 않겠네. 어차피 모든 설명이야 그곳에 가면 들을 수 있을 터이니.”

장문인이 잠시 뜸을 들이고 말을 이었다.

“가서 화산이 어떤지, 화산파의 제자들의 기상을 종남파에게 보여 주고 오게나. 협력 문파이기는 하나 우리가 더 위라고 말이네.”

기(氣)가 끓어오른다.

열두 명의 제자들에게서 올라오는 기운에 장문인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만 가게나. 문후 장로, 잘 인도해 주게.”

장문인은 짧은 몇 마디를 끝으로 다시 매화각으로 돌아갔다.

사부님과 눈을 마주치자 사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화산파를 벗어나는 사람들을 따라 움직였다.

삼 년 동안의 생활, 짧은 기간이지만 현재로서는 내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변한 화산파를 벗어난다.

8장 종남의 반룡(1)

화산을 떠나고, 문후 장로님의 인도에 따라 길을 걸은 지 어언 십여 일.

종남파와 화산파의 중간 지점, 정파의 중소문파 중 하나인 총검문(總劒門)에 도착했다.

정문에 가까워지자 두 명의 문지기가 보였다.

잔뜩 긴장한 듯 문지기의 전형적인 자세로 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었다.

“누구인지 소속 문파와 이름을 말하시오.”

“화산파의 문후 장로라 하오.”

“아, 화산파 분들이셨군요.”

문지기가 놀랐다는 표정을 짓고는 길을 막고 있던 창을 치우며 문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문지기의 말에 잠시 문 앞에 서서 기다렸다.

후다닥 달려오는 누군가가 보였다.

말 수염에 살짝 째진 눈.

별로 인상은 좋아 보이지 않는 중년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총검문의 내총관인 문서시(汶샹侍)라고 합니다.”

“화산파의 장로 문후라고 합니다.”

포권을 취하며 문 총관이 인사하자, 문후 장로님 또한 포권을 취하며 웃음 짓고 답했다.

“피곤하실 텐데, 이쪽으로 오십시오.”

정중하게 청하는 그 말에 문후 장로님이 기분이 좋아진 듯 웃었다.

“허허. 그 호의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말에 문 총관이 살짝 눈을 빛냈다.

아마도 화산파에 점수를 땄기에 기쁘다는 뜻인 것 같았다.

총관을 따라서 걸어온 지 약 반각.

커다란 건물이 두 채 보였다.

푸른색 등이 매달려 있는 전각과, 붉은색 홍등이 매달려 있는 전각.

“홍등이 매달려 있는 쪽이 화산파 분들이 묵으실 곳입니다. 왼쪽의 푸른 등이 매달려 있는 전각은 종남파 분들의 숙소고요.”

문 앞에 서자 하인들이 고개를 숙이며 문을 열었다.

“장로님은 피곤하시겠지만, 잠시 시간을…….”

“허허. 알겠습니다.”

총관과 문후 장로님이 떠나고, 나를 포함한 화산파의 일행은 하인들에게 안내를 받아 방을 하나씩 배정받았다.

방 안은 깨끗하고, 고풍스러웠다.

구파의 제자들이 온다기에 많은 신경을 쓴 듯 여기저기 비싼 물건들이 보였다.

대충 한 번 훑어보고 창문을 열었다.

부드럽게 열리고, 바람이 들어왔다.

흩날리는 앞머리를 잠시 가다듬고는 바깥의 풍경을 보았다.

종남파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인지 푸른 전각의 문 앞에 대기하고 있는 두 하인들만이 보일 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누군가가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연화였다.

방 네 칸 정도가 떨어져 있기에 연화가 크게 소리쳐 말했다.

“아래로!”

그러곤 쏙 얼굴을 집어넣었다.

피식 웃으며 짐을 잠시 정리하고는 일 층으로 내려갔다.

내려가자 연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밥부터 먹자. 아직 밥 안 먹었잖아.”

정오다.

밥을 먹을 시간이고, 아침 이후로 계속 경공을 극성으로 펼치며 달려온지라 배가 고프기에 연화의 말에 따랐다.

넓은 일 층의 한 곳에 식탁과 여러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배가 고팠는지 한 식탁을 제외하고 모두 차지하여 두, 세 명씩 앉아서 얘기를 하며 식사하고 있었다.

“저기 가서 앉자.”

남아 있는 한 식탁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화산파의 취운암에 있을 때에는 보도 듣도 못한 음식들.

여러 가지 보양식과 기름기 있는 음식들이 있었다.

“우와, 맛있겠다. 이런 건 오랜만인데?”

연화는 선검수.

임무에 따라 하산을 하기에 가끔씩 이런 음식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지 어떤 음식인지 알아보고 즐거워했다.

“이건 마라탕이라고 해. 매콤한 음식인데, 혀가 얼얼할 정도야. 이건 필라라고 포자 같은 음식이야. 아, 여기 포자도 있네. 그리고 이건…….”

몇몇 아는 음식 이름들도 있었지만, 거의 다 모르는 음식들이었다.

음식 설명 듣는 것은 처음엔 재밌었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은 흥미 있고, 재밌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연화가 그 음식에 관한 이야기 같은 것도 전부 말해 주었기에 조금씩 흥미를 잃어 갔다.

“……설명은 지루하지? 먹어 보자.”

혼자 몰입해서 신들린 듯이 말했지만, 내 지루해∼ 라는 분위기를 눈치챈 것인지 연화가 말을 끊고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나 또한 찌푸린 얼굴을 피고 음식을 집어 입에 넣었다.

매운 음식도 있고, 짠 음식도 있었으며, 정말 맛있는 음식도 있었다.

화산의 취운암에 있을 때는 먹어 보지도 못한 음식들.

하지만 먹을 때마다 무언가 기이한 것이 몸을 파고 들어오기에 기분이 묘했다.

먹던 중 잠시 젓가락을 놓고, 그 기운을 느껴보았다.

뜨거운 불순물.

화기(火氣)였다.

죽, 야채와 같은 선식만을 먹었던 취운암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느낌.

화산파에 들어오기 이전에 쌓였던 그 기운.

사부의 조언에 모두 태워 버린 그 것이었다.

겨우겨우 없애 버린 그것을 다시 쌓는다 생각하자 맛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먹을 맛이 나지 않았다.

눈을 뜨고는 육류나 기름기 있는 음식은 먹지 않고, 야채와 같은 선식만을 먹었다.

연화가 그것을 보고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다시 먹는 것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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