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9화 (19/175)

# 19

화산천검 1권(19화)

7장 쌍검술(3)

“자, 다시 해 보자.”

이번엔 연무대에서 다시 반복.

여러 번 하다 보니 이것도 조금은 익숙해진 것인지, 왼손으로도 사부의 검을 능숙하게는 아니더라도 편하게 막을 수 있었다.

“다시 간다.”

하지만 사부는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한 것인지 계속 반복했다.

그것에 의문을 느껴 말했다.

“시간이 없다면서요. 발검 때는 조금만 비슷해졌더니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으면서, 왜 지금은 그렇지 않은 건데요?”

“어차피 모든 검로는 이 세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수평 베기, 수직 베기, 찌르기. 그러므로 이것이 이번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 완벽해져야만 한다.”

“납득 못해요.”

“시끄럽다, 사부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티격태격하며 훈련을 한 지 사 일.

드디어 오른손과 똑같이 막을 수 있었다.

사 일이라고 하면 짧은 시간.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잠도 두 시진만을 자면서 매일매일 하루 종일 이것을 연습했다고 하면 매우 긴 시간이고, 또한 안 익숙해지고 싶어도 안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드디어 거의 똑같아졌구나. 음.”

사부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사부의 그 흐뭇한 웃음을 보면서도 울상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씻지도 못해 꾀죄죄하고 불쾌한 느낌.

몸은 운기를 하였기에 괜찮다지만, 머리는 몇 일간의 노동에 깨질듯이 아팠다.

“조금만 쉬죠?”

불쌍하고, 피곤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려 목소리를 조절해 말했다.

“그래, 특별히 조금의 시간을 주마. 한 시진 동안 쉬고 있거라. 어차피 나도 물건을 받으러 잠시 나갔다 와야 하니 말이다.”

“무슨 물건이요?”

“네 수련을 위한 물건이다. 쉴 수 있을 때 쉬고 있거라. 더 힘들어질 테니 말이다.”

그렇게 말하곤 사부가 휙 하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산책을 하듯 느긋한 걸음걸이로 연무대에서 벗어났다.

“후아∼”

평평한 돌, 내가 휴신석(休身石)이라고 이름 지은 곳에 누웠다.

그 이름대로 휴신을 하고 있는데,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청우야, 일어나거라.”

사부의 목소리였다.

‘왜 이렇게 빨리 깨우지?’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하고 말했다.

“하암∼ 쩝! 아직 한 시진 안 됐어요.”

“넘었다. 한 시진 반째다.”

“에?”

벌떡 일어나 하늘을 쳐다보자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한 시진이 지난 것이 맞았다.

“깜빡 잠든 모양이네…….”

“쉬었으면 일어나 받거라.”

사부가 이번에도 검을 넘겨주었다.

손쉽게 받았는데, 이번엔 철환과 같은 문제가 있었다.

“읏!”

묵직한 느낌.

철환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보통의 검보다 무거웠다.

“네 그 청강검보다 세 배 정도 무거운 검이다.”

“이런 검은 또 어디서 구하셨어요?”

“시끄럽고, 그 검 하나는 넘기거라.”

오른손으로 무거운 검을 들고, 왼손으로 한 검을 넘겼다.

“이제부터 그 검과 청강검을 들고 훈련하는 거다.”

“이러면 무게가 맞지 않는데요?”

사부가 말했듯이 왼손과 오른손의 균형을 맞출 것이면, 똑같은 무게로 하는 게 좋을 텐데?

“균형도 좋지만 능숙해야지. 왼손으로 그 검을 들고, 오른손과 같은 속도를 내는 것이 이번 목적이다.”

“그게 말이 돼요?”

사 일 전만 해도 왼손으로 밥을 잘 떠먹지도 못했다.

아무리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은 아니다.

“지금까지와 같이 훈련하면 오 일 정도면 가능하다.”

“하아…….”

쉴 수 있을 때 쉬라고 한 것이 이런 뜻이었나 보다.

잠도 못 자고 수련하는 내 모습이 눈앞에 훤히 보였다.

“한숨 쉴 시간에 조금 더 움직여라. 시작하자.”

“네.”

읏차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키고는 연무장의 가운데 섰다.

왼손으로 무거운 검을 쥐고, 오른손으로 삼 일간 써 온 청강검을 들었다.

“공격해 보거라. 지적해 주마.”

“네. 핫!”

청강검을 오른쪽 사선으로 내리긋는다.

챙!

사부가 내게 받은 청강검으로 막아 냈다.

“왼손으로 해 보거라.”

“하앗!”

무거운 검을 들어 왼손으로 내리긋는다.

까앙!

오른손의 청강검보다 더 둔중한 소리다.

“균형이 맞지 않는다. 왼손과 오른손의 힘의 비율이 달라.”

깡! 깡! 까아앙!

사부의 지적을 고쳐 가며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아직이다. 계속해라.”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가면서 찌르고, 긋고, 벤다.

이틀 정도이지만 오십 근짜리 철환을 찬 적이 있는지라 보통 검의 세 배의 무게이지만 검은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른손과 균형을 맞추며 휘두르는 것은 달랐다.

철환을 차고 이파리를 뜯을 때와 마찬가지다.

왼손의 검을 들으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순식간에 균형, 비율이 맞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속도의 차이로 나타났다.

“왼손이 느려. 조금 더 힘을 주거라.”

챙!

“이번엔 빨라. 검의 무게를 느끼고 오른손과 맞춰. 그렇다고 오른손을 느리게 하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쌍검술이라고 할 수가 없다. 왼손과 오른손의 완벽한 균형. 그것이 쌍검술이다.”

쌍검술, 이러다 양손잡이 되겠다.

물론 도움은 많이 되겠지만, 이건 맞지 않는 옷을 입도록 하는 것과 같다.

“쓸데없는 상념은 버려라. 맞지 않는다면 맞게 만들면 된다. 그릇이 작다면 크게 만들면 돼. 노력해서 불가능한 것은 없다. 한계는 네가 정하고, 네가 만드는 것이다. 네가 안 된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 것이며, 네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불가능할 것이다. 말했듯이 틀을 만들지 말고, 틀에 박히지 마라. 모든 것은 네 마음에 달려 있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사부가 말하였다.

사부의 말에 쓸데없는 걱정과 상념은 버리고 집중하였다.

“그래, 그거다. 조금 나아졌구나. 계속 휘둘러. 휘두르고, 휘둘러라.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지고, 능숙해질 대로 능숙해져야 한다.”

반복, 반복.

똑같은 동작의 반복은 아니나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여러 행동을 반복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몸이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검이 나를 휘두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나중에는 내가 검을 휘두르는 것인지, 검이 나를 휘두르는 것인지 모르게 되었다.

챙! 챙! 채챙!

맞부딪치는 쇳소리만이 들리고, 모든 것이 어둠에 잠긴 듯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이 검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내가 느끼고 있는 내 몸이 검인지, 아니면 내 육신인지.

뒤바뀌고, 뒤섞였다.

아니다, 어차피 하나다.

사부가 말했듯이 검법이든 장법이든 뭐든 어차피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내가 검을 휘두르는 것도, 검이 휘둘려지는 것도 모두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행동.

내가 검이고, 검이 곧 나이며 어차피 하나를 위해 나아가는 것.

다를 것이 어디에 있는가?

챙! 챙! 콰차창!

“이런!”

사부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하고 들었다.

암흑의 휘장이 걷혀지고, 세상이 돌아왔다.

눈앞의 광경.

사부의 청강검은 깨진 듯 파편이 땅바닥에 널려 있고, 내 검이 사부의 명치 한 치 앞에 멈춰 서 있었다.

“아, 이게…….”

조금만 늦게 정신을 차렸어도 내 검이 사부의 가슴을 꿰뚫었을 것이다.

재빨리 검을 뒤로 빼고는 사부의 눈치를 보았다.

사부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혼날 것이라는 생각에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사부가 중얼거렸다.

“허허, 이런 우연이 있나. 그저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거늘 신검합일의 초입이라니…….”

“신검……합일이요?”

이게 무슨 소리지?

신검합일? 검과 하나가 된다는 그 경지를 말하다니?

“그렇단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부.

잠시의 침묵 후에 사부가 말을 이었다.

“아까 전의 감각이 기억나느냐?”

“음…….”

검을 들고 휘둘러보았다.

부웅∼ 후우웅∼

어떻게 휘둘러보아도 아까 전과 같은 완벽한 일체감은 없었다.

그저 검이 조금 더 손에 잘 맞는 것 같은 느낌뿐이다.

“그래, 갑작스런 깨달음이니 잘 기억은 나지 않을 터다. 하지만 그 경지를 한 번 느껴보았으니 더욱 쉽게 그 경지를 다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상심하지 말거라.”

상심하지는 않았지만, 그 앞의 사부의 말들은 모두 맞는 말이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엔 왼손으로 검을 휘둘러보았다.

부웅∼

아직도 오른손과 완벽히 똑같거나 하지는 않지만 아까보다는 매우 나아져 있었다.

“신검합일의 영향인 것 같구나.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정도면 괜찮은 수준이다. 계속 훈련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으나, 지금으로서는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명상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편한 곳에 앉아 생각해 보거라.”

편한 장소라고 해 봐야 어디겠는가?

땅바닥, 취운암이나 휴신석이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생각해 보았다.

아까 전의 그 느낌.

검을 휘둘렀을 때 느꼈듯이 거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계속 생각해 보면 조금은 더 기억이 나는 것 같았다.

‘먼저…….’

당시의 생각.

내가, 나의 몸이 휘두르던 검.

점점 피로에 지치고 지쳐 종국에는 몸이 따라가지 못하고 검이 육신을 휘두르는 듯한 형세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간 기묘한 몸 상태로 검을 휘두르고, 감각이 사라지고, 어두운 암흑의 심연에 갇혀 버린 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검끼리 부딪치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검이 느껴지지 않고, 몸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검이 느껴지나 그것이 검인지 모르고, 몸이 느껴지나 몸이 나의 몸인지 모를 뿐이다.

그리고 사부의 조언이 생각나며 합일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따스하고 기묘한 느낌과 함께 감각이 돌아왔었다.

“하아, 모르겠다…….”

또다시 그런 상황이 되어 봐야지 만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재로서는 명상을 해도 불가능.

상황, 느낌은 생각이 나나 재현은 불가능하다.

“후우∼”

아쉬움에 한숨 쉬며 몸을 일으켰다.

사부가 의자에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의자는 왜 가져오셨어요?”

“피곤하잖느냐. 내 나이가 벌써 오십이다. 반나절 동안 서 있기에는 다리가 아프다.”

“대 화산파의 장로라는 분이 다리가 아프다니요. 아무튼, 그건 그렇고 반나절이라…….”

사위는 어둑어둑했다.

밤이라는 소리다.

그저 조금의 시간 동안 명상을 한 것 같았는데, 벌써 시간이 반나절이나 흘러간 것이다.

“조금은 기억이 났느냐?”

“네. 하지만 재현은 불가능해요.”

“괜찮다, 기억이 난 것만 해도 대단한 수확이다. 그런 갑작스런 깨달음을 기억 못하고 날려 버리는 한심한 무인들도 많이 있으니 말이다.”

사부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나에게 다가왔다.

“자, 다시 차거라.”

사부의 손에 들려 있는 검은색의 물질.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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