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화산천검 1권(17화)
6장 조언(4)
다를 것이 없다.
평범한 마보 자세에서 평범한 내찌름.
“대체 어디에 상승의 무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거예요?”
“쯧쯧, 보지 못하는구나. 다시 한 번 보거라.”
팡!
사부가 또다시 주먹을 내찔렀다.
자세히 뚫어져라 관찰하고 있자니 무언가가 달라 보였다.
근육의 움직임, 회전력이다.
“필요 없는 부분은 버린다. 쓸데없이 근육을 움직이기보다는 필요한 것만을 사용하는 것이 나은 법이지. 이것은 내공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 초식을 사용할 때 가장 빠르고, 가장 효율적으로 내공을 움직여야 낭비가 없는 법이다. 그리고 또 하나, 회전력. 전사(轉絲)라고 하지. 그냥 주먹을 내찌르는 것보다는 회전력을 가미한 주먹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주먹이나 검이나 다를 것이 무엇이냐? 주먹에 전사를 가미하듯 검에도 가미하면 된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박투의 두 가지 무리다. 다른 어떤 것이 더 있을 것도 같다만 나는 검사라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피식 웃으며 말하고는 사부가 내 뒤로 섰다.
“해 보거라, 마보 자세를 취해라.”
양발을 벌리고 무릎을 굽힌다.
말을 타는 자세라 불리는 마보 자세.
사부가 내 몸을 잠시 훑어보더니 손을 뻗어 내 무릎을 잡았다.
“그게 아니다, 이거다.”
사부가 무릎의 각도를 비틀자 조금 더 편안한 자세가 되었다.
“거기서 뻗어라.”
부웅∼
“정지.”
사부가 뻗어 낸 상태로 정지한 내 손을 잡고 곧게 폈다.
“원이 아니다. 직선이다. 빠르게 가격하는 것이 중요해.”
사부의 지적에 다시 자세를 잡고 내찔렀다.
“대충 성공이구나. 하지만 아직 쓸데없는 움직임이 있다.”
사부가 손목을 잡고 움직였다.
직선을 그린 빠른 주먹.
하지만 별 느낌이 없었다.
“이것이 그 자세에서 가장 빠른 투로다.”
“하지만 별 차이가 없는데요?”
“그 ‘별’이 중요하다. 눈 깜빡할 시간의 차이라도 실전에선 엄청난 차이다. 그 차이가 생사의 기로라고 할 수 있지.”
“그렇군요.”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구나.”
미적지근한 대답에 사부가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는 내 앞에서 마보를 취하였다.
“동시에 찔러 보자꾸나. 하나, 둘, 셋!”
셋에 맞춰서 주먹을 내찔렀다.
사부가 알려 준 투로가 아닌 살짝 원을 그린 투로.
매우 조금의 차이이지만, 사부의 주먹이 먼저 내 얼굴에 닿았다.
“이것이 차이다. 나는 너를 칠 수 있지만 너는 그 조금의 차이 때문에 나를 칠 수 없지. 그것도 보통의 주먹이 아닌 내공이 들어간 주먹이다. 실전이었으면 한 방에 뻗었거나, 주도권을 뺏겼겠지.”
이제야 제대로 이해했다.
‘바로 이런 차이구나…….’
사부의 한 치 앞에서 멈춘 내 주먹.
그리고 내 얼굴을 친 사부의 주먹.
효율적인 움직임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
“잠시 쉬도록 하자꾸나. 또 느려졌다. 경청하려는 그 정신, 정(精)은 충만하나 움직이는 신(身)이 흐트러진 상태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네.”
사부의 말에 몸을 대자로 뻗어 누웠다.
“후우∼”
차가운 바닥에 누워 밤하늘을 보았다.
밝은 빛을 내는 별들이 마치 검은 융단 위에 밝은 보석을 올려놓은 것처럼 빛나고 있고, 꽉 찬 동그란 원형의 만월(滿月)이 그 가운데서 세상을 고고히 비추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 옆에서 별이 반짝였다.
“또…… 유성이네…….”
긴 꼬리를 만들며 떨어지는 별.
하나, 하나 늘어나더니 종국엔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유성우(流星雨)다.
“유성우라, 오랜만에 보는구나.”
사부 또한 고개를 들어 유성우를 쳐다보았다.
순간순간 반짝이며 몸을 불태우곤 사라지는 유성.
사부는 그것을 보며 감상에 젖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꼬마 아이가 컸으면 지금쯤 이십 대 중반 정도가 되었을 것인데…….”
중얼중얼 사부가 뭔가를 말했다.
내용을 들어 보니 옛날 강호를 유랑하던 시절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
“꼬마 아이라뇨?”
“아니다, 그저 갑자기 생각났을 뿐이니…… 어차피 만날 일도 없을 것이다.”
“……?”
“되었다. 그만 일어나거라.”
“에이…… 저런 진기한 구경도 했는데 조금 더 감상에 젖어도 되잖아요?”
“시끄럽다. 어서 일어나.”
“쳇…….”
투덜투덜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방금까지 무엇을 설명하고 있었지?”
“박투술이요.”
“그래, 그랬었지. 그럼 다음은…… 초식, 무공이 나을 것 같구나.”
이번에는 몸을 쓰는 것이 아닌 것인지, 사부가 옆에 있는 평평한 돌에 손가락질했다.
앉으라는 뜻이다.
“초식과 무공이라 하면 몸을 쓰는 것일 텐데, 어째서 앉으라고 하는 거예요?”
“아직은 네가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조금의 깨달음을 주기 위한 조언일 뿐이다. 토 달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거라.”
돌 위에 앉자 사부가 그 옆에 서서 입을 열었다.
“무공이라 하면 여러 가지가 있다. 검법, 도법, 장법, 극법, 창법, 봉법 등등 무수히 많지. 세상의 병기의 수와 똑같다고 보면 된다. 셀 수가 없지. 아무튼 그 모든 것들은 말이다, 이름만 다르지 하나와 마찬가지란다.”
“하나요?”
“그래, 만류귀원(萬流歸元)이다. 모두 무의 극의를 보기 위한, 자신을 수련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저 자신의 몸을 사용하느냐, 병기를 사용하느냐의 차이지. 하지만 말이다. 언젠가 신검합일과 같은 경지에 오르면 알 것이다. 검이 곧 나이며 내가 곧 검이지. 내 몸이 검이 되고, 검이 내 몸이 된다. 그렇다면 말이다. 검법을 장법으로 사용할 수도, 장법을 검법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 바로 이렇게 말이다.”
언제 뽑아 간 것인지, 사부가 내 허리춤에 꽂혀져 있던 검을 들고 서 있었다.
“먼저 권법, 가장 잘 알려진 무공인 태극권이다.”
다리를 굳건히 하고 손으로 원, 태극을 그리며 부드럽게 움직인다.
유려하고 수려한 곡선을 그리는 손은 부드러우면서도 매서운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기감이 사라진 나로서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이것을 검으로.”
사부가 오른손, 검을 들고 있는 손으로 왼손의 태극권의 권로를 그렸다.
부드러운 곡선, 그저 길이가 늘어났다 뿐이지 태극권과 같았다.
“이렇게 말이다.”
“음……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어디가 말이냐?”
“사부가 한 것은 그저 태극권의 묘용을 검에 가져다 붙인 것일 뿐, 태극권이 태극검법이 된 것은 아니지 않아요?”
사부가 한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다.
그저 태극권에 들어 있는 무리를 검으로 표현할 뿐이라면 말이다.
“권이라서 모르는 것이냐? 그렇다면 반대로 해 보마. 먼저 검, 이십사수매화검법이다.”
사부가 이십사수매화검법의 기수식을 취하였다.
“이 초, 매화접무(梅花蝶舞)다.”
부드럽게 움직인다.
피어나는 매화꽃.
마치 나비가 날아다니듯 나풀나풀 부드럽게 움직인다.
월광을 흡수하고 분산하는 검 면.
마치 밝은 별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져 이곳에 강림한 느낌이었다.
“이것을 장으로.”
검을 나에게 돌려주고 사부가 몸을 움직였다.
“……!!”
‘저게 뭐지? 어떻게 된 거야?’
눈이 번쩍 뜨인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똑같다.
어떻게 저렇게 똑같이 검법을 장법으로 펼쳐 낼 수가 있다는 말인가?
느릿느릿 원과 직선을 그리는 손은 마치 검이 뻗어 나가는 것과 같고, 아래로 뻗는 손은 매화가 바람에 흩날리듯 나풀나풀 휘날린다.
“알았느냐?”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놀라움과 더불어 어떻게 한 것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게 오늘 내가 마지막으로 가르칠 것이다. 여기서 내가 보여 준 것을 정리하든지 안으로 들어가 자든지 마음대로 하거라. 난 어디 갔다 올 곳이 있다.”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사부가 몸을 날렸다.
아니, 어차피 대답을 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있지도 않았다.
사부가 보여 준 그 장법.
아니, 검법.
아니지, 장법이니 검법이니 구별을 할 것이 없다.
검으로 휘두르면 검법이요, 장으로 펼치면 장법이요, 창으로 휘두르면 창법이요, 극으로 휘두르면 극법이고, 주먹으로 내찌르면 권법이니, 구별을 할 것이 어디 있는가?
“그래, 무공(武功)이다. 무에 대한 공부. 어째서 다르다고 생각한 것이지?”
실마리가 풀린다.
매화검로를 제어할 수 있는 실마리가.
그 상태로 아침 동이 틀 때까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읏!”
멍하니 앉아 있다 따가운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제 왔는지 사부가 옆에서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밤새도록 여기서 이러고 있었느냐? 춥겠구나. 깨달음도 좋지만, 몸이 더 중요한 법이다. 일어나거라.”
덥썩 내 손목을 잡는 사부.
따뜻한 것을 넘어 뜨거울 정도였다.
“음…… 완전히 얼음이구나, 얼음.”
사부가 피식 웃으며 손바닥을 내 명문혈에 대었다.
뜨거운 기운이 장심을 통해 들어오며 몸을 후끈 달구었다.
“자, 들어가자꾸나.”
사부의 손에 이끌려 암자로 되돌아갔다.
“어제 무리했으니 오늘 하루 정도는 이곳에서 푹 쉬거라. 몸도 피곤할 것이고, 머릿속도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을 터이니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상에 누웠다.
아직 정리가 완벽히 되지는 않았다.
게다가 어제 철환을 차고 노동을 한지라 몸도 피곤했다.
“쉬거라. 나도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으니 다시 나가야겠다.”
그렇게 말하곤 사부가 어제와 마찬가지로 몸을 날렸다.
혼자 남은 모옥 안에서 사부의 조언을 통해 실마리를 풀어 나간다.
변화한 매화검로.
제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7장 쌍검술(1)
하루의 시간 동안 모든 것을 정리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시원한 바람이 몸을 휩쓸고 지나가자 정신이 맑아지듯 상쾌해졌다.
“안녕하세요, 사부.”
사부는 그저께 내가 앉아 있던 그 돌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래, 몸은 괜찮으냐?”
“네, 이제 조금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별로 힘들진 않네요.”
팔을 휙휙 휘두르고, 발을 여러 번 움직여 보았다.
조금 힘들긴 하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그렇다면 상관없겠구나. 받아라.”
휙 하고 무언가를 던진다.
황급히 손을 움직여 받았다.
“이게 뭐예요?”
“보면 모르느냐?”
“아니, 알긴 아는데…….”
사부가 던져 준 것은 검이었다.
그냥 보통의 대장간에서 살 수 있는 청강검, 하지만 두 자루였다.
“어째서 두 자루인 거죠? 쌍검술이라고 하면 이해하겠는데, 전 검이 있잖아요. 그럼 삼검술인데요?”
“쌍검술이다.”
“왜요?”
“허리춤에 있는 그 검은 이 주 동안 풀어 놓거라. 필요 없을 터이니 말이다.”
사부의 말에 일단 검을 사부에게 넘겨주었다.
내 검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것.
조금 아쉬우나 ‘어차피 사부가 주었던 검이니 사부의 것인데 왜 아쉬워하는데?’라고 자신에게 말하며 아쉬움을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