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6화 (16/175)

# 16

화산천검 1권(16화)

6장 조언(3)

‘움직여라.’

단전의 내공을 끌어 올리려 용을 써봤다.

“역시 움직이지 않는구나.”

내공을 봉한다는 것은 허언이 아니었다.

어떤 혈도를 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운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평소에 꿈틀꿈틀 맥동하던 기운들이 무언가에 막혀 굳어 버린 듯 딱딱해져 있었다.

“그래, 익숙해지는 것만이 답이겠구나.”

내공은 포기, 결국 답은 하나다.

이 무게에 익숙해져야 한다.

“움직이자, 움직여.”

팔을 들어 올려도 삐걱, 팔을 내려도 삐걱.

다리를 들어 올려도 삐걱, 다리를 내려도 삐걱.

삐걱삐걱거리는 몸이 마치 괴뢰(傀儡)로 변한 것 같았다.

“헥헥…… 에이씨, 힘들어.”

방금 전에 씻었음에도 온몸이 다시 땀에 절었다.

그렇게 얼마나 몸을 움직였을까?

어느새 사부가 문을 열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녀오셨어요? 왜 불렀데요?”

내공이 봉해진지라 기감이 사라져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몸을 움직이는 것에 집중하였기에 정말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사부가 문을 닫으며 의자에 앉았다.

“할 말이 있다. 앉거라.”

진지한 표정.

나갈 때와는 달리 무척이나 진지하고 어두운 표정이었다.

이런 표정은 몇 번 본 적이 없어 심히 긴장이 되었다.

“종남파, 알고 있느냐?”

“당연히 알고 있죠.”

종남파(終南派).

화산과 같은 섬서성에 있는 구파.

쾌(快), 중(重), 변(變)으로 유명한 검파이자, 화산과 마찬가지로 몰락해 가는 형세이다.

“얼마 전 종남파의 장로들과 회담을 한 적이 있다.”

“알고 있어요.”

별로 사이도 좋지 않은데, 갑자기 회담을 한대서 놀랐던 적이 있다.

그때를 얘기하는가 보다.

“그래, 그때의 회의에서 예정을 잡았던 것이 합동훈련이다. 한 달 정도의 준비 기간을 가지고 실행하기로 했었지. 그리고 훈련에 내보내는 것은 육지검사 다섯, 육지권사 넷, 선검수 셋이다. 모두 열두 명이지. 하지만 그 후보엔 네가 없었다.”

“당연한 것 아니에요? 제가 활발히 활동하는 다른 동문들을 제치고 발탁되는 것은 제가 생각해도 어불성설이에요.”

사부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 조금 암울한 얘기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아무튼 듣거라. 예정이 바뀌었다. 그 후보에 네가 올랐다. 삼 일 후, 하산한다.”

“예……?”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

갑작스런 하산.

하산이라는 두 글자 빼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쩔 수가 없다. 갑작스런 장문인의 추천이다. 거부할 장로는 없다.”

“장문인께서…….”

“어째서 널 추천했는지 나는 모르겠지만, 장본인인 너는 알고 있겠지. 묻지는 않으마.”

“아!”

생각났다. 반년 전의 사형들과의 비무를 빙자한 반항.

그때 장일 사형이 내가 이겼다고 했고, 유혁 사형은 그 후로 두문불출이라고 들었다.

합동훈련.

친목을 도모한다고는 하지만, 각자 자파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최고의 기재와 영재들을 뽑아서 보낼 것이다.

각자 어떠한 지위 안에서 가장 강한 사람을 보낼 터.

그것에 가장 부합되는 것이 나.

육지검사가 선검수를 이겼다.

그것도 최대의 기재로 촉망받는 유혁 사형을.

그렇다면 장문인이 추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

빠르게 생각을 마치고는 현재 상황을 정리하고, 해결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자 사부가 씁쓸하게 웃었다.

“아직 가르칠 것들이 많이 남았건만 아쉽구나…….”

“그래도 아직 이 주 정도의 시간이 남았잖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그래, 아쉽지만 이미 결정된 일. 미련을 가져 봐야 소용없는 법이니. 남은 시간에 충실 하자꾸나.”

“그래야죠,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나오거라.”

미련을 접고 다시 평소의 상태로 돌아온 사부.

사부의 뒤를 따라 바깥으로 나왔다.

집 앞, 연무대(練武垈).

탁 트인 그곳에서 사부가 나를 보며 말했다.

“시간이 촉박하다. 머리보다는 몸으로 깨우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뭘요?”

“말했잖느냐? 배울 것이 많다고.”

뒷짐을 쥐고 서는 사부.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덤비거라.”

사부가 기세를 뿜어내자 마치 커다란 벽이 서 있는 듯했다.

본래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공이 봉인되자 그렇게 느껴졌다.

사부가 내 몸에 조금의 압박만을 주도록 기운을 조절했다는 것이 느껴지는데도 말이다.

“하앗!”

쿵!

둔중한 진각을 밟으며 주먹을 내찔렀다.

부우웅!

공기를 가르는 둔중한 파공음.

사부는 공격은 하지 않겠다는 듯 뒷짐을 쥔 채로 발을 어지러이 놀렸다.

타다닥!

사부가 오른쪽으로 일 보 움직이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자 기묘하게도 종이 한 장 차이로 주먹이 비껴 나갔다.

“이것이 보법이다. 매화작보이니 뭐니, 어차피 모두 세 가지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붕! 부우웅!

온 힘을 다해 뻗어 내는 주먹을 사부는 역시나 간단한 동작만으로 피해 버렸다.

“피하는 것이다. 가장 효율적이고 단순한 동작으로 피하는 것이 바로 그 첫 번째다.”

아무리 철환의 무게 때문에 느려졌다지만, 온 힘을 다해 내찌르는 주먹을 뒷짐을 진 상태로 가볍게 산책을 하듯 움직여 피하는 사부의 보법은 가히 일절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했다.

물론 그것은 보는 사람의 얘기고, 공격하는 나로서는 열불이 나지만 말이다.

“방위를 점하는 것. 가장 빠르게, 가장 손쉽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방위인 사각을 점하는 것이 그 두 번째다.”

사부가 내 주먹을 또다시 가볍게 움직여 피하고,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어어?”

그러자 사부가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가슴 아래에서 사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힘을 실어 주는 것. 자신의 초식에 가장 많은 힘을 실을 수 있도록 무게의 중심을 잡고, 안정된 공격을 가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그 세 번째다.”

고개를 내려서 쳐다보자 사부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을 풀고,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읏!”

가볍게 내찌른 듯 보이는 일 장.

하지만 나는 현재 내공이 봉인된 상태이니 경시하지 못하고 재빨리 두 손을 모아 사부의 공격을 막아 냈다.

퍼어억!

“크으…….”

저릿저릿한 손.

분명히 막아 냈는데도 마비가 된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것이 보법의 세 가지 목적이다. 알았느냐?”

손을 휘휘 털며 사부를 노려봤다.

사부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흠…… 벌써 적응이 된 것이냐? 땀은 흘리고 있다지만, 그다지 힘들어 보이지는 않는구나.”

“그러게……요…… 가 아니에요.”

속아 넘어갈 뻔했다.

재빨리 말을 바꾸자 사부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냐? 뭐, 상관없지. 다시 간다. 똑바로 보거라.”

피곤한 몸을 쉴 새도 없이 사부가 다시 걸어왔다.

“핫!”

다시 주먹을 내찌르고 반복.

그렇게 열 번 정도를 얻어터지자 조금이지만 무언가 이해가 되었다.

헥헥거리는 나를 보며 사부가 입을 열었다.

“이걸로 보법에 대한 것은 대충 끝이다. 다음은 화(化)다. 알고 있듯이 매우 기초적인 무리이지.”

화(化). 상대의 힘을 이용하여 공격하는 것.

기본적인 기초 무리다.

“공격해 보거라.”

“후우…… 후우…….”

땀에 절어 후끈거리는 몸을 잠시 식히고, 다시 주먹을 내찔렀다.

힘이 빠져서인지 처음 주먹을 뻗었을 때보다 느릿했다.

“성의가 없구나. 제대로 하거라.”

사부의 핀잔에 반박했다.

“힘이 빠져서 그렇잖아요. 잠시만 쉬죠?”

“……알았다, 반각. 그 후에 다시 시작하자.”

사부의 말에 바로 땅에 쓰러지듯 누웠다.

“후아…….”

격렬한 운동을 하고 난 뒤라서인지 뜨거운 숨이 나왔다.

가을인데도 입김이 나올 정도였다.

반각이 지나고, 더 누워서 쉬고 싶어 하는 몸을 달래며 일어났다.

“시작하자꾸나.”

“하앗!”

잠시 숨을 고르고, 왼발을 앞으로 한 보 내딛고 허리를 회전시키며 오른팔을 내찔렀다.

회전력에 의해 빨라진 주먹을(그래 봤자지만) 사부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숙여서 피해 냈다.

그리고 오른발을 내디뎌 내 몸 안쪽으로 파고들고는 왼손으로 내 앞섶을 잡았다.

너무나 순식간에,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라 막을 수가 없었다.

“앗!”

팽그르르∼ 콰당!

사부가 손목을 비틀자 앞으로 쏠린 무게 때문에 몸이 한 바퀴 회전하며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등에서 느껴지는 쓰라림보다도 놀라운 것이 있었다.

화를 이렇게 간단하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화(化).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으로 배우는 것이지만, 가장 체득하기 어려운 무리 중 하나이지.”

땅바닥에 대(大)자로 뻗은 채로 귀를 쫑긋이 세우고 경청했다.

“먼저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안법(眼法)이다. 투로를 읽고, 흐름을 읽어 낼 수 있는 눈이 필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상대의 힘을 역이용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보법. 아까 했던 것처럼 가장 단순하고 효율적인 동작으로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가장 공격하기 쉽고 무게를 실어 주기 편한 장소를 점해야 한다. 그리고 세 번째로 필요한 것은 내력이다. 상대의 힘을 역으로 이용한다고는 하나, 내 힘이 하나도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상대의 힘을 포용할 수 있는 대해와도 같은 넓은 내공이 필요하지.”

‘그렇구나…….’

사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다시 한 번 해 보자꾸나. 말했듯이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네.”

허리를 돌려 몸을 풀고 다시 한 번 정권을 내찔렀다.

사부는 역시나 일 보 내딛는 것만으로 내 공격을 피하고는 내 손목을 잡았다.

“앗!”

그리고 발을 걸고는 나를 사부의 뒤로 밀어냈다.

부웅∼ 콰당탕!

이번엔 땅으로 달려 나가던 그대로 곤두박질쳐졌다.

얼굴이 쓰라렸다.

“다시 오거라.”

그 후로 또다시 반복.

사부는 정말로 몸으로 체득하게 하려는 듯 몇 마디 말을 끝으로 계속 화(化)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사부의 그런 수련 방법은 정말로 효과가 있었다.

깨달음을 얻을 때와는 달리 머리보다 몸이 먼저 기억하는 것이다.

사부의 화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피해 내는 것이다.

그래봤자 곧바로 또다시 걸려 넘어졌지만.

“머리보다 믿을 만한 것은 몸이다. 머리는 오래된 기억은 잊어버리지. 하나 몸은 다르다. 기억하고 있으면 절대로 잊어먹지 않는다. 네가 까먹었더라도 몸은 몇 번만 반복을 하면 다시 기억하지.”

“헉…… 헉…….”

“다음은 박투술(搏鬪術)이다.”

“헉…… 꿀꺽…… 박투요?”

“박투라 함은 서로 치고 때리는 싸움을 뜻한다. 예를 들자면, 삼류무인이나 파락호들이 주먹을 내찌르는 그런 것이랄까? 하지만 말이다. 그런 삼류의 기술이라도 배울 것은 많고, 또한 상승의 무리를 포함하고 있지. 바로 이런 것이다.”

사부가 마보 자세를 취하고는 주먹을 내찔렀다.

“마보충권이다.”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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