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5화 (15/175)

# 15

화산천검 1권(15화)

6장 조언(2)

“눈을 감고, 운기를 시작하거라.”

진기를 움직여 소주천을 행한다.

정해진 혈도를 타고 움직이는 기운.

점점 힘을 늘려 간다.

한 바퀴, 두 바퀴 힘을 증가시키는 기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가는 기운에 몸을 맡겼다.

“정신을 놓지 말거라. 기운의 움직임에 집중해.”

몰아(沒我). 깊은 곳으로 침잠되어 가는 정신을 일깨우고 사부의 말대로 기운의 움직임에 정신을 집중했다.

자하심법의 구결을 외우며, 기운을 도인.

“무언가 보이느냐?”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는 운기.

무엇이 보인다는 것일까.

“역시 보이지 않는가 보구나. 이래서 습관이 무서운 것이다. 언제나 하던 것인지라 익숙해져 버려 무엇이 틀렸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누군가가 지적하기 전에는 모르지. 너는 너의 기운이 혈도를 따라 막힘없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느냐?”

무애(無碍).

아무런 장애도 없이 움직이는가.

다시 집중해서 관조해 보았다.

평소의 그 정해진 혈도를 따라 빠르게 움직이는 기운.

무언가 느껴졌다.

미약하지만 정해져 있던 혈도를 벗어나려 하는 기운들.

하지만 막혀 있기에 통과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다.

“알아냈느냐? 그래, 너의 진기는 막힘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틀 안에서만 움직이기에 그렇게 생각한 것일 뿐. 막혔기에, 미약한 느낌이기에 몰랐던 것이다. 일류와 이류의 무인이 어떻게 구분되는지는 아느냐? 바로 이 사실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상승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진기의 움직임이 막힘이 없고, 거침이 없어야 한다. 게다가 또한 이러한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는 관찰력과 끈기가 필요하다.”

상승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마음가짐, 행동들.

모두 몰랐던 것투성이다.

사부의 목소리에 더욱 집중했다.

“알았느냐? 틀에 박혀 안주하지 말고, 무엇이 틀렸는지 무엇이 맞았는지 잘 생각하도록 하거라. 그 어떤 사소한 것이라도 무시하지 말거라. 세상에 무가치한 것은 있으나 무용한 것은 없는 법이니.”

가치관과 마음가짐의 차이.

마지막 한마디가 마음속을 울린다.

“자, 그럼 천천히 벽을 뚫거라.”

사부의 말을 따라 정해진 혈도를 타고 움직이는 기운을 막힌 혈도로 도인한다.

쾅! 쾅! 쾅! 쾅!

기운은 커다란 힘으로 혈도를 막고 있던 불순물의 벽을 뚫어 갔다.

화산파에 들어오기 전에 속세에서 쌓인 화기(火氣)의 벽을 불태우고, 진정한 화산파의 문도로 변해 간다.

“자연과의 합일(合一). 속세에서 쌓인 자연과의 합일을 막는 장애물을 불태웠으니, 상승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초석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만하고 일어나거라.”

사부의 말에 따라 눈을 뜨고 일어났다.

“깨달은 것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흡족한 표정의 무진 사부.

눈을 굴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잡초 하나에도 생기가 느껴지고, 땅 위에 놓여 있는 길가의 돌멩이에도 기이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세상이 다르게 보이지 않느냐?”

“예.”

“이것이 상승의 경지의 초입이다. 대단하지 않느냐?”

대단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

이것이 상승의 초입이라면 그다음의 경지는 얼마나 엄청날까.

“자, 들어가자꾸나.”

취운암으로 돌아가는 무진 사부.

사부에게서 받은 조언, 깨달음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뒤를 따랐다.

언제나처럼 음식을 먹고, 의자에 앉아 사부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보다 많은 것들이 또 달라져 보이지 않으냐?”

“예.”

머릿속으로 깨달음을 정리하자 더욱 확연히 느껴졌다.

그 어떤 것도, 심지어 나무로 된 젓가락조차도 다르게 보였다.

“심(心)과 혼(魂)을 훈련하였으니, 이제 신(身)을 훈련하여 조화를 이루어야겠지.”

사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일어나 낡은 궤로 걸어갔다.

뚜껑을 열고 무언가를 꺼내 드는 사부.

“그것은…….”

철환(鐵環)이었다.

둥근 고리 모양의 가운데 부분이 뚫려 있는 쇳덩어리.

“양 손목과 발목에 차거라.”

휙 하고 던져 주는 무진 사부.

나를 향해 날아오는 네 개의 철환.

가벼운 것을 던지듯 하였기에 가벼울 줄 알았다.

“읏…….”

하지만 아니었다.

들자마자 느껴지는 엄청난 무게감.

재빨리 진기를 끌어 올리지 않았으면 놓칠 뻔하였다.

“조금 무거울 것이다. 오십 근(20kg) 정도이니.”

조금 무거운 정도가 아니다.

하나도 무거운데 그것이 네 개.

성인 남성 한 명을 드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무게이다.

“어서 차거라.”

사부의 말에 그것을 몸에 찼다.

부피는 크지만 구멍은 손목과 발목에 맞춤으로 제작을 한 듯 딱 맞았다.

딸깍!

마지막 오른쪽 발목에도 착용을 완료하고 몸을 일으켰다.

“엇…….”

무언가 이상했다.

온몸이 축 늘어지고, 몸이 더 무거워진 듯한 느낌.

“내공은 쓸 수 없을 것이다. 혈도를 봉했으니 말이다. 네 힘으로 일어나거라.”

사부의 말에 대경하여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내공을 봉하다니요! 무인의 생명인 내공을 봉하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육신의 단련이다. 내공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더냐?”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심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벌떡 일어날 정도로 팔팔하면 내공을 봉해도 별 상관은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니다, 벌떡 일어나자마자 온몸이 비명을 질러 댔다.

발목은 빠질 것만 같고, 상체는 땅으로 곤두박질칠 것만 같았다.

침상에 걸터앉으려 무릎을 굽히는데, 사부가 말했다.

“밖으로 나오거라.”

밖에 나와 나를 기다리는 사부.

똥 씹은 느낌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무거운 발을 들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쿵! 쿵!

발바닥과 땅이 맞닿을 때마다 큰소리가 났다.

밖으로 나오자 온몸에 땀이 주룩주룩 비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떠하냐?”

“……힘들어요.”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매화검로를 제어하기 전까지는 어차피 몸을 써야 하지 않느냐? 네게 도움이 될 터이니 참거라.”

변화된 매화검로.

사부가 돌아오자마자 바로 털어놓았다.

가끔씩 놀러 오는 연화와는 달리, 같이 사는 사부에게까지 속일 수는 없기에 먼저 말을 한 것이다.

“기수식.”

장천수의 기수식을 취했다.

보평제자들과 속가제자들이 배우는 장천수와는 다른 기수식.

하지만 이것도 또한 사부에게 알려 주었기에 사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시작하거라.”

팍!

온 힘을 다해 손을 들어 올리고, 정권을 내찔렀다.

“조금 느리구나.”

철환의 무게 때문에 매우 느려진 주먹.

사부의 말도 그렇고, 내 마음에도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시 한 번 주먹을 내찔렀다.

하지만 처음과 다를 것이 없다.

“이씨…….”

사부가 내 기분과는 반대로 옅게 웃음 지었다.

“아직은 철환의 무게에 익숙해지지 않았으니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개의치 말고 초식을 끝까지 펼치거라.”

“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사부의 말대로 초식을 전개해 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삼 초식이 되자 몸이 버티지 못하고 내 의지와는 다르게 순식간에 앞으로 쓰러졌다.

“아야야…….”

볼이 따가웠다.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자 뾰족한 돌부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손을 움직여 흘러내리는 피를 닦고, 한쪽 무릎을 굽히며 손을 땅에 짚었다.

“일어나거라.”

후들거리는 다리지만, 사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일어났다.

“익숙해져야 한다. 포기하지 말거라.”

일어나 다시 삼 초식부터 전개해 나갔다.

겨우겨우 마지막 초식까지 펼쳐 내고 땅으로 쓰러지듯 누웠다.

털썩!

“으으…… 힘들어…….”

땀이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몸은 피곤함에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찌릿찌릿 근육이 저렸다.

“씻고 오거라.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조금만 쉬면 안 될까요?”

헤헤하고 웃으며 애교를 부리듯 말했다.

“안 된다. 어서 가거라.”

“후우∼ 알았어요.”

단호한 말에 축 늘어진 몸을 일으키고는 사부에게서 새 도복을 받아 계곡으로 걸어갔다.

가깝다는 것과 멀다는 것은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낀다.

취운암에서 계곡까지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지에 각각 오십 근의 무게를 더하자, 평소 일각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반 시진이나 걸려서 도착했다.

계곡의 물소리가 무척이나 반갑게 느껴졌다.

“드디어 도착이다!”

기쁜 마음에 재빨리 살갗에 달라붙은 찐득거리는 옷을 벗어던지고 계곡으로 뛰어 들어갔다.

풍덩!

땀에 절어 뜨거운 몸에 차가운 물이 닿자 기분 좋은 느낌이 든다.

계곡의 바닥에 누워 그 느낌을 즐겼다.

폐활량이 좋기에 삼 분 정도는 물속에서 버틸 수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누워 있어도 위험하지 않다.

평소에는 말이다.

숨이 막혀 오자 나는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푸하∼ 읍!”

긴장이 풀려 온몸의 힘이 빠지자, 갑자기 뭔가가 끌어당기듯 몸이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어읍…… 푸흡…… 푸하!”

콧속에 물이 들어갔는지 코가 매웠다.

‘으, 긴장을 풀 수가 없잖아. 이젠 몸 씻는 것도 일이네, 일.’

마음속으로 한탄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더 이상 물속에 있고 싶은 기분이 아니기에 바깥으로 나와 새 도복을 입고, 벗어 두었던 도복을 들고 취운암으로 돌아갔다.

또다시 반시진이 걸려 도착하자 사부가 나를 보며 말했다.

“한 시진 반, 늦었다.”

“어쩔 수가 없다고요, 이것 때문에…….”

철환을 노려보며 말하자 사부가 피식 웃었다.

“예상이 가는구나. 아무튼 밥이나 차려 오거라.”

“네.”

밭으로 갔다.

취운암의 바로 뒤이기에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밭에 쭈그려 앉아 요리할 재료를 고르고 이파리를 뜯었다.

찌이익∼

종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이파리가 중간 부분에서 뜯겨져 나갔다.

“평소와는 다르구나.”

평소와는 달리 섬세한 힘 조절이 필요했다.

철환의 무게를 버티고자 힘을 세게 주면 중간에 뜯겨 나가고, 그렇다고 힘을 약하게 주면 팔이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어떻게 해서 요리를 끝내고, 식사를 끝낸 뒤에 의자에 앉아 축 늘어졌다.

“온몸이 저려요.”

근육이 찌릿찌릿 저리는 느낌에 사부에게 이걸 풀어 달라고 호소했다.

사부는 간단히 무시했다.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다. 나는 잠시 매화각에 다녀와야겠다.”

“왜요?”

“나도 모른다, 도착하면 알겠지. 익숙해질 수 있도록 몸이라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거라.”

말을 끝내고는 암향표를 극성으로 전개한 사부가 날아가듯 뛰었다.

신법 일절, 무진 사부는 벌써 저 멀리 점같이 보였다.

그 모습을 끝까지 보고 나서 더 이상 사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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