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4화 (14/175)

# 14

화산천검 1권(14화)

5장 장천수(3)

꿀꺽!

화산파 이십사 계명 십삼 계.

화산파의 제자로서 동문이나 사형제끼리의 싸움을 금한다.

회의를 거쳐 최대 파문, 최하 육지검사로서의 지위를 박탈한다.

‘이 조항이 생각나는 이유는 뭐람…….’

씁쓸하게 웃으며 장문인을 바라보았다.

“너도 알고 있듯이 화산파 이십사 계명 십삼 계다.”

“역시…….”

예상이 들어맞은 것을 기뻐해야 하나?

“그렇다고 크게 벌을 내릴 것은 아니다.”

“에?”

예상을 벗어난 말에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분명 십삼 계는 ‘최하 육지검사의 지휘를 박탈한다’였다.

그런데 크게 벌을 내릴 것이 아니라니?

“그 녀석들, 유혁과 장일의 성정을 내가 알고 있고, 또 무진 장로의 일도 있고 하니 가볍게 처리하는 것이다.”

“무진 사부의 일이라니요?”

거의 이 주 만에 사부의 이름을 들었다.

“무진 장로가 임무에 성공했다. 별다른 상처 없이 현재 사천에서 돌아오고 있다고 전서가 날아왔다.”

“휴우∼ 다행이다.”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흉조.

사부가 떠난 날의 유성우.

별다른 상처가 없다고 하니 안심되었다.

“그건 됐고, 네 처벌을 얘기해 주마.”

꿀꺽.

크게 벌을 내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래도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후로 일 년 동안 오용 칠현의 시험을 금한다.”

오용 칠현의 관문.

선검수가 되기 위한 관문이다.

보통의 제자들로선 지금의 징계가 크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변화된 매화검로, 초식의 정리와 제어.

아직 할 일이 많은 나로서는 선검수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기쁘게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알아들었으면 가 보도록.”

포권을 취하고 밖으로 나왔다.

공손히 문을 닫고 취운암으로 걸음을 옮겼다.

“응?”

암자의 입구 옆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집중해서 보자 보이는 사람, 연화였다.

“어떻게 된 거야? 괜찮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 연화.

시원스럽게 답했다.

“응, 걱정할 필요 없어. 일 년 동안 오용 칠현의 시험을 금한다는 것뿐이니까.”

“일 년 동안 금한다고?”

“응.”

“헤에, 의외로 가벼운 징계네.”

“좋은 일이지, 뭐.”

가볍게 대답하며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연화가 어깨를 잡았다.

“응? 왜?”

“잔말 말고 따라와.”

강압적인 말투에 반항할 수 없었다.

연화의 뒤를 조용히 뒤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넓게 펼쳐진 공터였다.

“여긴……?”

“내가 찾아낸 비밀 장소야. 남들한테 보이기 싫을 때는 여기서 수련해. 나는 비련대(秘練垈)라고 불러.”

바닥에 자갈과 같은 장애물도 없고, 수련하기에는 좋은 장소였다.

주변을 다 둘러본 뒤에 말했다.

“여기 보여 주려고 따라오라고 한 거야?”

“그럴 리가 있겠어?”

스르릉∼

연화가 웃으며 검을 뽑았다.

“음?”

“자, 주먹 들어. 점검이야.”

“점검이라니?”

웬 점검?

점검할 것이 뭐가 있다고?

“장천수 말이야. 끝마쳤다고 했잖아? 점검해 주겠다고.”

갑자기 이러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 번쯤 비무를 해 보고 싶었던 상대인 연화이기에 멀리 떨어져 기수식을 취하였다.

“후우∼”

시작은 언제나 적당한 긴장과 심호흡.

주먹을 들어 올리고, 연화를 쳐다보았다.

시작은 연화부터였다.

타닥!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검을 내찌르는 연화.

파아앗!

정확히 머리를 향해 쏘아지는 검.

하지만 피하지 못할 만큼 빠른 것이 아니기에 고개를 살짝 틀어 피해 냈다.

수월하게 피해 낸 것이 의외였던 듯 연화의 눈썹이 꿈틀했다.

연속해서 검을 내려치는 연화.

매화작보로 피하고, 안으로 달려들었다.

파앙!

“읏!”

정권을 내찌르자 연화가 당황한 얼굴로 피해 냈다.

장천수 일 초 정권에서 팔꿈치 찍기.

내뻗은 손의 팔꿈치로 연화의 어깨를 강타했다.

퍽!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연화가 뒤로 밀려났다.

“뭔가 이상한데……?”

이상했다, 많이 이상했다.

“연화야, 잠깐 멈춰 봐.”

“응, 그…… 그래.”

연화의 당황한 듯 떨리는 목소리.

역시 이상하다.

“지금 장난하는 거야? 피하지도 않고, 느릿하게 검을 내뻗다니. 아무리 친선비무라지만, 이러면 안 되지.”

내 말에 연화가 잠시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안 피해? 느릿한 검?”

멍한 표정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변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내가 지금 장난하는 것 같아 보여?”

“응, 그렇게 느릿하게 움직이다니 장난하는 걸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잖아.”

“후우∼ 나야말로 한마디 하자. 너 언제 이렇게 강해진 거야?”

“에?”

강해지다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내뻗은 검을 고개만 까딱여서 피하고, 순식간에 주먹을 내뻗은 뒤 팔꿈치로 공격. 이게 장천수 맞아? 그리고 네 실력 맞아?”

“내가 말했잖아. 장천수를 나에 맞게 바꾼다고.”

“그래, 그건 그렇다 쳐. 그런데 눈에도 보이지 않는 쾌속으로 날 공격하다니, 내가 보아 온 네가 아니라고.”

“네 눈에 보이지 않았다고?”

“어, 보이지 않았어. 내가 지금까지 보아 온 너의 무공 실력이 아니라고.”

“흐음…….”

고민해 보았다. 순식간에 답이 나왔다.

“초식을 고치고, 정리하면서 강해져 버린 건가?”

이게 정답이었다.

그동안 체득하지 못했던 무리, 새롭게 얻은 깨달음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강해진 모양이었다.

“후우∼ 이거 내가 점검할 수준이 아니잖아. 그만하자, 비무할 기분이 아니야.”

검을 거두는 연화.

나 또한 긴장을 풀고 연화의 곁으로 걸어갔다.

“진짜로, 육지검사가 선검수보다 강하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하하하.”

멋쩍게 웃고는 같이 취운암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봐. 간다.”

연화가 떠나가고, 앉아서 상념에 잠겼다.

‘강해졌단 말이지…….’

장천수의 초식 정리.

강해진 무공, 체득한 무리들.

나도 모르는 새 선검수인 연화의 무공 실력을 가뿐히 뛰어넘고 있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 나 심법으로 엄청난 내공을 쌓았었잖아?’

생각해 보니 그랬다.

장천수의 초식을 고치면서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내공이다.

선심후수, 내가고수의 근원은 내공이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효율로 단련했으니, 이렇게 강한 것이다.

‘이 정도면 하단전의 벽을 하나 더 깰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장천수에 집중하느라 심법에 집중하지 않았었다.

그저 피로가 쌓이면 운기하고, 괜찮아지면 바로 다시 장천수의 초식 정리에 집중하였었다.

‘시도해 보자, 부조화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보는 거야.’

신, 심, 혼의 부조화.

정신은 말짱하나 몸만이 피곤한 기분 나쁜 느낌.

그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바로 가부좌를 틀고 자하심법의 운기를 시작하였다.

코를 통해 들어오는 자연지기.

그에 따라 같이 움직이는 내공.

조화롭게 융화되며 온몸을 돌았다.

그리고 하단전으로 돌아온 진기는 다시 빠른 속도로 몸을 돌았다.

두 배, 네 배, 여덟 배, 열여섯 배…….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진기는 열다섯 번을 돌고 하단전에 부딪쳤다.

콰아앙!

온몸이 흔들렸다.

충격이 온몸을 휩쓸었다.

하지만 충격의 대가는 만족스러웠다.

하단, 중단, 상단이 조화를 이룬 것이다.

몸과 마음이 하나 된 듯한 느낌.

무언가 살짝 이상한 느낌은 있지만, 이 정도면 성공이었다.

“성공이다!”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드디어 기분 나쁜 느낌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6장 조언(1)

연화와의 비무 후에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사부와 매화검수들이 돌아오고 반년이 지났다.

가을의 증거, 단풍.

푸르른 녹림은 짙은 붉은색으로 변하고, 시원한 바람이 숲 사이사이를 누비고 다닌다.

중원의 오악 중 서악, 화산은 봄보다 더욱 신비로운 절경을 내보이며 변해 가고 있었다.

화산의 기운을 품은 문파, 화산파 또한 조금씩 변해 갔다.

몇 십의 보평제자를 들이고, 몇몇의 선검수가 탄생한 것 외에 아주 커다란 변화.

화산의 장문인과 종남의 장문인의 회담.

그들의 회담에 칠파와 세간의 시선이 집중됐다.

구파의 최약세 화산파와 몰락해 가는 또 다른 구파 종남파.

두 문파는 구파 약세라는 오욕을 지우기 위해 협력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는 후기지수끼리의 친목을 위한 합동훈련이었다.

변화는 화산파의 끝자락에 있는 취운암의 청우와 무진 장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정신을 집중하거라.”

조용히 말하는 무진 사부.

“마음을 편안히, 하지만 언제나 최대한의 속도로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긴장하는 것을 잊지 말아라.”

한 마디 한 마디를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느껴라. 너의 손 안의 검의 감촉,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그 느낌을 잊지 말거라.”

딱딱한 검 병.

고풍스러운 검막이.

오른쪽 손바닥 위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검신.

눈을 감고 오감 중 촉각을 극대화시킨다.

오감의 조절.

반년 동안 깨달은 자하심법의 공능 중 하나다.

“언젠가 검이 울며 말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거부하지 말고, 검이 원하는 대로 하거라.”

검의 말.

병기, 무생물이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일까?

하지만 잊지 않고 머릿속 깊은 곳에 각인시킨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깨달음의 조각이요, 상승의 경지를 위한 초석이다.

사부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 필요가 없는 말이 없다.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더라도 기억하고 있으면 언젠가 도움이 될 것이다.

“검과 네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마라. 검은 팔의 연장선이 아니다. 검이 바로 네 손이고, 팔이고, 몸이다.”

검과 신체의 합일, 신검합일(身劍合一).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

검은 검이고, 몸은 그저 몸인데, 어찌하여 둘을 같게 생각하는지…….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아직은 네가 그 정도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았음이니 기억하고만 있으면 된다.”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경지.

강해졌다고 생각했건만 진정한 상승의 경지엔 도달하지 못했나 보다.

“검을 놓거라, 명상은 끝이다. 심법의 수련에 들어간다.”

눈을 뜨고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던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검첨과 검집의 끝부분이 닿았다.

몸의 옆에 놓고, 정좌하고 있던 몸을 움직여 자세를 바꾸었다.

두 다리를 포개고 앉아, 두 손을 모아 둥근 원을 만들어 아랫배 위에 올려놓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오른 손바닥은 왼 손등을 감싸고, 양 손바닥과 발바닥은 하늘을 향하게 한다.

가부좌(跏趺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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