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1화 (11/175)

# 11

화산천검 1권(11화)

4장 사형들과의 비무(3)

탁!

“아야야, 아프다고.”

“말투가 왜 그래? 치료해 준 사람한테. 다치지 않게 조심했어야지!”

화가 났다는 듯이 말했지만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연화 때문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응, 조심할게.”

“후우. 진짜로…… 놀랬단 말이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숨을 내쉬는 연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았어, 알았어.”

“밥은 먹었어?”

“아니, 아직이야. 이렇게 다쳤는데 밥할 시간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알았어, 여기서 운기조식이나 하고 있어. 밥은 내가 해 줄게.”

“응, 알았어.”

연화가 나가자, 바로 눈을 감고 운기조식을 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공허했던 하단전에 기가 가득차고, 더 이상 운기를 할 필요가 없어지자 받아들이던 기운을 끊고 심호흡을 했다.

눈을 감고 있자 왠지 모르게 아까 전의 싸움이 생각났다.

유혁 사형의 낙천화와 내가 펼쳐 낸 매화검로 십육 초, 매화만천.

유혁 사형의 낙천화는 내가 보기에도 엄청났었다.

솔직히 매화검로의 마지막 초식으로도 막기조차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공력을 모두 끌어 올리고 마지막 초식을 펼치자, 검이 정해진 검로를 벗어나며 혼자서 살아 있는 생물같이 움직였다.

몸 안의 조화가 깨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저절로 움직인 것이다.

일단 변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일식, 하단 베기는 둥글게 반원을 그렸다.

이식, 중단 찌르기는 순식간에 일곱 개나 되는 매화를 그리며 유혁 사형의 검로를 살짝 비틀어 놓았다.

그리고 삼식, 사식, 오식, 육식을 지나자 나조차도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고, 경쾌하게 움직였다.

마지막 십팔식에서 모든 힘을 잃어버린 유혁 사형의 검과 쾅!

그동안 훈련을 할 때에는 변하라고 해도 변하지 않더니 갑자기 변해 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검로와는 다르게 변한 검로.

게다가 조화가 깨졌을 때에 변했던 것과는 다르게, 새롭게 바뀐 매화검로가 머릿속에서 기존의 매화검로를 뇌의 구석으로 밀어 버리고 있었다.

초식을 마음대로 바꾼다는 것은 잘못하면 초식을 엉망으로 바꿔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유혁 사형의 낙천화 초식을 막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초식은 더욱 좋게 변해 있었다.

‘좋은 것인데……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이렇게 원하지 않을 때에 갑자기 변한 터라 불안한 느낌.

불안한 느낌을 털어 버리려 고개를 젓고 눈을 떴다.

시간 좋게 연화가 문을 열고 들어와 음식을 식탁 위에 놓고 있었다.

“응? 운기는 끝난 거야?”

“어.”

“그럼 와서 먹어, 조심해서.”

쓰라린 손아귀 때문에 힘들었지만 어떻게 해서 밥을 먹고, 같이 바깥으로 나가서 풀밭 위에 섰다.

사르르∼

바람이 불어오고, 연화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청우야.”

“왜?”

“그게…… 저기…….”

연화는 무언가 말하기 곤란한 것이라도 있는지 말하는 것을 주저하였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연화가 말을 이었다.

“후우…… 아니야. 됐어.”

“왜? 궁금하게 왜 말을 끊어?”

“시끄러, 갑자기 말하기 싫어졌어. 내일 다시 올 테니까 몸조리 잘하고 있어.”

“궁금한데…….”

“잘 있어, 안녕∼”

손을 살래살래 흔들곤 연화는 길을 따라 취운암을 벗어났다.

“막무가내야 정말…….”

기분 좋게 웃고는 검을 뽑았다.

“찐득찐득해.”

생각해 보니 피가 흐를 때 검 병을 잡았던지라 피가 반쯤 굳어서 찐득찐득하였다.

“씻어야겠네.”

검을 다시 검집 안에 집어넣고 계곡을 향해 걸어갔다.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들리고, 눈앞에 맑은 시냇물이 보였다.

스르릉!

따가운 손아귀로 검 병을 잡고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그리고 물속에 검 병을 담가 놓고 피를 닦아 냈다.

투명한 물이 빨갛게 물들어 갔다.

그것도 잠시, 다시 투명하게 변하고 검 병 또한 찐득한 피가 깨끗이 씻겨 나갔다.

몇 번 가볍게 휘둘러 검에 있는 물기를 털어 냈다.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고는 취운암으로 향했다.

‘여기선 이렇게…… 그리고 여기선…….’

가상으로 매화검로를 펼쳐 보며 바뀌어 버린 매화검로를 정리해 보았다.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취운암에 다다라 있었다.

상념을 접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후우, 피곤하다.”

돌로 된 침상 위에 몸을 파묻고 이불을 덮어썼다.

그렇게 있기를 반각, 일각, 이각, 반 시진, 한 시진…….

“잠이 안 오잖아!”

몸은 피곤하다고,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머리는 쌩쌩했다.

부자연스러운 몸 상태.

“이거 심, 신, 혼의 부조화의 영향인가……?”

유혁 사형과의 비무 때문에 생각해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나는 지금 몸 안의 조화가 깨진 상태였다.

“핫!”

손을 들어 올리려 힘을 주었다.

역시나 몸은 피곤한 듯 축 늘어지려 하고, 머리는 매우 맑았다.

“운기를 좀 하면 나아지려나?”

눈을 감고, 와공(臥功)을 하였다.

운기를 하는 데 가부좌를 틀 필요는 없었다.

입공(立功), 와공(臥功), 좌공(坐功) 그 어떤 것이든 가능하도록 훈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평소에 가부좌를 트는 이유는 습관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씩 귀찮을 때는 이렇게 가부좌를 틀지 않는다.

이각 정도를 운기를 하고 눈을 떴다.

운기를 하기 전보다는 몸이 개운해져 있었다.

침상 옆에 풀러 둔 검을 다시 허리춤에 매고 밖으로 나왔다.

휘이잉∼

시원한 바람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하늘 위에서는 까만 장막 위에 밝은 염료를 묻혀 놓은 듯 별들이 빛나고 있었고, 달은 그 가운데 떠서 태양을 대신해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달빛 아래서 검무라…… 꽤 괜찮을지도…….”

검을 뽑았다.

비스듬한 검신에 월광(月光)이 비춰지고, 검신이 맑고도 밝은 빛을 뿜어냈다.

그것을 보자 손아귀의 고통도, 피곤한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후우…….”

몸을 적당히 긴장시키며 바뀐 매화검로의 기수식을 취하였다.

검을 검집 안에 집어넣고는 오른발을 한 보 반 정도 앞으로 내밀고 몸을 약간 기울이며, 왼손으로 검집을 좌측으로 구십 도가량 꺾었다.

오른손은 검 병에서 살짝 띄우고 눈앞을 집중해서 보았다.

타닷! 스걱!

왼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순식간에 검을 검집에서 뽑아내며 베었다.

무음(無音)의 검.

파공성 없이 일 장 정도 앞의 나무를 베어 내고, 왼발을 축으로 빙그르르 돌며 앞으로 한 번 더 내찔렀다.

큐우웅!

이번에는 둔중한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마지막까지 내찌르고, 유일하게 바뀌지 않은 초식인 이 초 매화부석을 전개했다.

팟! 팟! 파파파팟!

검첨이 흔들리고, 순식간에 불어나는 매화.

바뀌지 않았다고는 해도 그 성취는 뛰어나졌는지 매화의 수는 여덟 개였다.

온몸의 사혈을 꿰뚫고, 수직으로 검을 내리쳤다.

팍!

땅에 내리꽂힌 검.

살짝 비틀고 검첨에 내기를 집중했다.

“하아앗!”

콰드드드!

지복(地覆).

올려치는 검에서 뿜어져 나온 기의 파동에 땅거죽이 뒤집어졌다.

커다란 토룡(土龍)이 꿈틀거리듯 땅이 솟아오르며 앞으로 내달렸다.

쾅!

나무에 부딪치며 토룡의 돌진이 멈추었고, 나는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우웨엑! 우욱!”

위액이 올라오며 쓴맛이 느껴졌다.

“퉤!”

위액을 뱉어 냈다.

“하아, 하아. 장난 아닌데? 뭐 이러냐…… 한 번에 내공의 사분지 삼이 사라지다니…….”

땅을 뒤집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잘 알고 있다.

하나 그동안 깨달음을 얻고, 깊어진 내공을 한 초식에 사분지 삼이나 써 버린다는 것은 믿겨지지가 않았다.

“그만큼 강하지만…….”

토룡의 흔적.

땅이 솟아올라 울퉁불퉁하고, 나무가 폭발하듯 터져 있었다.

“하지만 말이야. 이건 이미 매화검로가, 아니 화산파의 무공이라 할 수 없다고.”

매화검로를 펼쳤으나, 매화검로가 아니었다.

화산파의 매화검로는 부드럽고 유연하며 정교하여야 한다.

매화의 향기를 뿜어내며, 진짜 매화같이 아름다워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매화검로는 살기 짙고, 폭발성 있는 사도의 무공과 같았다.

정도의 무공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파괴력.

다른 검로 또한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물론 삼 초식만큼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무공은 화산파의, 정도의 무공이라 할 수 없었다.

그 근본은 매화검로, 정도의 무공이라고 해도 책에서만 읽어 왔던 마존들의 무공과도 같은 살기 짙은 무공은 나 자신이 인정하지 못했다.

조화가 깨졌을 때와는 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살기가 넘쳐 나는 것이다.

“후우, 조심해야겠다…….”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쓰지 않기로 마음먹고, 다시 기수식을 취하고 하나하나 초식을 전개했다.

역시나 다른 초식 또한 마찬가지로 살기가 짙었다.

삼 초식과 같은 파괴력이 없을 뿐, 사혈만을 찌르는 동작하며, 검으로 쓰는 무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후우…….”

땀으로 흠뻑 젖은 몸.

끈적거리는 느낌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씻어야겠다…….”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계곡으로 갔다.

스륵. 턱!

옷을 벗고, 검을 그 옆에 세워 두었다.

촤악!

차가운 빙수(氷水)와도 같은 냉수(冷水).

정신과 몸 모두를 일깨우는 차가운 느낌.

그 느낌을 즐기며 입욕을 하였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변해 버린 매화검로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바뀐 매화검로를 사용했다가는 분명히 정도에 어울리지 않는 무공이라고 핍박을 받겠지(특히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 게다가 생각해 보니 무공을 함부로 바꾸는 것은 중죄에 해당했어. 그러니 살기를 조절하고, 검로를 완전히 제어하여 정식 무공으로 채택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알아서 잘 숨겨야겠다.’

지금까지 익힌 검공 중 가장 마음에 들고, 손에 익어 버린 무공을 봉인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찮았지만 어찌하겠는가.

아쉬운 마음을 털어 내고, 밖으로 나와 내공을 끌어 올렸다.

몸에 묻어 있는 물기를 내공으로 날려 보내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풀어놓았던 검 또한 허리춤에 매고 발걸음을 옮겼다.

취운암에 다다르자 저 멀리 어렴풋이 태양이 뜨고 있었다.

밝게 비추는 양광.

구름이 그 빛에 주홍빛으로 물드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잠시 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가슴속의 심마(心魔)를 모두 말끔히 정화해 버리는 듯한 느낌.

기분 좋게 웃으며 소리쳤다.

“자, 새로 시작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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