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0화 (10/175)

# 10

화산천검 1권(10화)

4장 사형들과의 비무(2)

파라락∼ 찌이익!

그러나 재빠르게 몸을 회전시킨 사형의 기지 때문에 검은 옷자락만을 스쳐 지나갔다.

타다닥!

뒤로 재빠르게 물러나며 숨을 고르는 유혁 사형.

나 또한 숨을 고르며 사형을 쳐다봤다.

“너 이 자식…… 어떻게 된 거냐? 일주일 만에 이렇게 변하다니…….”

회심의 일격이 통하지 않고 도리어 반격을 당하자 유혁 사형은 분노한 듯 보였다.

씩씩거리며 손가락질하는데,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거 막지 않았으면 죽였을 거였잖아…….’

“그럼 그냥 맞아 줘요?”

씁쓸한 미소와는 다르게 입에서 나오는 말은 빈정대는 말투였다.

“으드득! 가만 안 둔다!”

또다시 이를 갈며 두 손으로 검 병을 잡고, 검을 왼쪽으로 들어 올리는 사형.

그 자세에 어째선지 온몸이 떨리며 소름이 돋았다.

“야, 잠깐만! 그건 위험하다고!!”

장일 사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험하다.’

웬만한 위험도 높은 초식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장일 사형의 경호성.

그렇다면 저것은 내 느낌대로 정말 위험하다는 것이다.

“시끄러! 날 화나게 만들다니,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아!”

유혁 사형이 왼발을 앞으로 한 보 내디디며 검을 움직였다.

“낙천화(落天花)!!”

낙천화.

낙화검법의 마지막 초식이라고 사부에게서 언뜻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력이 무척이나 강맹해 펼쳐지면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위력적이라는 것도 말이다.

‘읏……!’

머릿속에서 경보가 울렸다.

‘이거 진짜다…….’

죽음이라는 까만 사신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죽기 싫다고!’

막아 내기 위해 내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시야가 자색으로 물들어 갔다.

조화가 깨졌을 때나, 깨달음을 얻었을 때와 똑같은 시계.

위험할 수도 있으나 막아 내지 못하고 죽는 것보다는 낫기에 무시했다.

‘저 위력, 당연히 피할 수는 없겠지.’

피할 수도 없고,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막아 낼 수도 없을 것이라는 예감.

그 예감에 더욱 몸을 긴장시켰다.

‘그렇다면 맞받아친다!’

선택지는 하나, 맞받아친다.

정신을 집중하며 매화검로(梅花劍路)의 마지막 초식, 매화만천(梅花滿天)의 기수식을 취하였다.

“하아압!”

파아아아!

기를 검에 밀어 넣자 푸르던 검신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이것 또한 기괴한 일이지만 무시하고 최대한 힘을 넣어 매화만천을 전개했다.

검신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흔들리자 매화 모양의 형상이 생겨났다.

유혁 사형과 나 사이의 공간을 가득 메우는 매화 잎의 향연.

“매화만천!!”

둔중하게 내리쳐 오는 낙천화 초식과 맞부딪쳤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충돌음과 함께 커다란 반탄력이 손아귀를 타고 흘러 들어왔다.

검이 튕겨 나갈 듯 위로 솟구쳤다.

거대한 기(氣)와 기(氣)의 맞부딪침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으으윽!”

손아귀가 찢어질듯이 아파 왔다.

진공상태였던 공간에 공기가 유입되고,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몸을 날려 버렸다.

“으아아!”

텅! 텅! 터터텅!

등허리가 부서질 듯이 아파 왔다.

어두운 휘장으로 물든 시계에서 몇 번이나 몸이 땅에 부딪쳤다.

큰 나무에 부딪쳐 가까스로 멈추었다.

“으으…….”

까맣게 변했던 시계가 정상으로 돌아오자 온몸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아야…….”

아픈 부분을 하나하나 쳐다보는데, 가장 심한 부분인 손아귀는 찢어져 붉게 물들어 있었고, 머리도 깨졌는지 조금씩 뜨끈한 물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 시야를 붉게 만들었다.

움직이기 힘든 손을 들어 올려 손등으로 흘러내리는 피를 닦고 앞을 처다 보았다.

엄청난 흙먼지가 솟아올라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흙먼지가 가라앉고, 그 안에 서 있는 사형의 모습이 보였다.

“크으으…….”

고통스럽다는 듯 얼굴을 흉하게 일그러뜨리고, 검을 땅바닥에 꽂아 버티고 서 있었다.

사형의 손아귀도 나처럼 찢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고, 깨끗하던 선검수의 증거인 매화 두 송이가 그려져 있는 소맷자락은 갈가리 찢어져 있었다.

입술에선 조금씩 피가 흐르고 있었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너…… 이 자식…….”

파악!

유혁 사형이 신경질을 내듯이 검을 뽑고 비틀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아아…… 제발 살살 때려주기만을 빈다…….’

나는 손가락을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

하지만 사형은 움직일 수 있으니 내 패배는 자명한 것.

제발 죽이지만 않기를, 살살 때려 주기만을 빌며 눈을 감을 뿐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감았던 눈을 뜨자, 사형이 내 앞에 서서 검을 위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죽ㅇ…….”

“으…….”

내 목과 수직으로 세워져 있는 검.

그대로 내려치면 백분지 백, 죽을 것이다.

‘이렇게 허망하게 가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목에선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힐끔 눈을 뜨고 쳐다보자 유혁 사형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커헉!”

촤아악!

내리치려던 검은 유혁 사형의 옆에 떨어졌다.

‘헉!’

조금만 앞으로 떨어졌어도 코가 꿰뚫렸을 거다.

뜨겁게 열이 나고 있던 몸이 차갑게 식혀졌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한 것은 유혁 사형이 내 옷에 피를 뱉곤 그 위로 쓰러졌다는 것이다.

‘아, 무거워…….’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데 유혁 사형의 몸무게도 버티라니…….

조금씩 몸을 움직여 유혁 사형의 몸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장일 사형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번엔 장일 사형이야? 진짜 운도 없지…….’

체념하며 눈을 꾹 감았다.

저벅저벅. 턱!

그러나 또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고, 몸을 압박하던 무언가가 사라져 몸이 편해졌다.

“……??”

눈을 뜨자 장일 사형이 유혁 사형을 들쳐 메고 나를 기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쳇, 네가 이겼어. 이 녀석, 한 줌의 진기도 없다고.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 거야.”

그렇게 툭 내뱉고 장일 사형은 공터를 벗어났다.

“후우∼”

비무에서 이겼다고 순순히 가 준 장일 사형이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바로 하늘을 향해 대자로 누운 상태로 운기를 시작했다.

먼저 하단전.

현재 제일 심각한 것은 육신이기에 들숨을 통해 기를 모으고, 하단전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몰아넣은 진기를 자하심법의 구결을 통해 혈도로 인도하여 운기를 하였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조금 괜찮아져 몸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후우∼ 으윽!”

찢어져 버린 손아귀 때문에 검을 쥐는 데 매우 아팠다.

게다가 검 병은 땀에 절어 있었기에 상처 난 곳에 소금을 뿌린 듯한 느낌이었다.

“크으…….”

하지만 꾹 참고 들어 환집했다.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 때문에 머리가 띵하였다.

시급한 치료가 필요했다.

비틀비틀 갈 지(之) 자로 움직이며 취운암으로 향했다.

평소와는 달리 한 시진이나 걸려서야 취운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는 길에 너무 힘들어 정신을 놓고 기절을 할 뻔했었지만, 그렇게 되면 죽는다는 것을 깨닫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돌아왔다.

“아야야…….”

쓰라린 손아귀로 문을 열고 들어가 구석에 있는 궤 속에서 작은 함을 꺼내었다.

평소에 다쳤을 때 사용하던 약이 들어 있는 함이다.

함의 안에는 붕대, 금창약, 지혈산(止血散) 등이 들어 있을 것이다.

먼저 세수하기 위해 모아 두었던 토기(土器) 안의 물을 손아귀에 뿌려 피를 씻어 내었다.

물로 씻어 내는 데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그리고 지혈산을 뿌렸다.

“아야야…….”

화끈한 통증.

꾹 참고, 이번엔 초막염(草幕鹽)이라는 무진 사부가 소독(消毒)을 할 때마다 쓰던 소금을 뿌렸다.

또다시 밀려오는 통증.

이번엔 참을 수 없을 만큼 따가웠다.

땀에 전 검 병을 만졌을 때 상처 난 곳에 소금을 뿌린 것만 같다고 표현했었는데, 정정하겠다.

그때완 비교도 되지 않는 고통이다.

“끄아악! 크윽…….”

재빨리 함의 안에서 붕대를 꺼내 손아귀에 감았다.

손가락 끝으로 잡아서 붕대를 꽉 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통이 점점 약화되었다.

토기 안에 남아 있는 조금의 물로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 내고, 그곳에도 지혈산과 초막염을 뿌렸다.

손아귀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붕대를 꽉 조여서 감았다.

위급한 상황을 벗어나자 괴상한 생각이 들었다.

두 손 모두 붕대로 감고 있자 꼭 권사가 된 듯한 기분이 났다.

“이런 시시콜콜한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닌데…….”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었다고 이런 생각을 하는지…….

아픈 몸을 이끌고 침대 위에 올라갔다. 그러곤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눈을 감고 다시 자하심법에 따라 운기했다.

겨우 일각 정도 운기를 한 것만으론 모자랐다.

조금 괜찮아졌다고는 하나 조금일 뿐이다.

머리의 상처는 의약당에 가 봐야 하니, 달려갈 수 있을 정도로 몸을 회복시켜야 했다.

‘공신흡력 자천조화 합천인지…….’

구결을 중얼중얼거리며 기운을 움직이는데, 예민해진 감각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운기를 멈추고 문 쪽을 돌아보자 인기척의 주인인 연화가 보였다.

“너…… 너…….”

무언가에 충격을 받은 듯 삿대질을 하며 말을 더듬는 연화.

“아…… 안녕.”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자 화난 얼굴로 다가와서 내 머리 위로 주먹을 올리곤 내리쳤다.

쾅!

“아야야…….”

“아…… 머리 괜찮아? 아니, 이게 아니지. 너 어떻게 된 거야!”

“아, 비무를 하다가 조금 다쳤어.”

손을 감싼 붕대도 그렇고, 머리를 감싼 붕대도 그렇고 얼마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건 비무에서 실수로 다친 정도가 아니잖아! 손바닥도 완전히 찢어졌고, 머리도 깨졌잖아!”

다다다다 말을 쏟아 내고 연화가 약품들이 들어 있는 함을 열었다.

“지혈산은 발랐어?”

“응.”

“그럼 지혈산은 됐고, 붕대는 새로 갈아야겠고, 소청제(小淸醍)는 소독용으로, 그리고 복피정(復皮精)도 필요하고…….”

연화는 혼자 중얼중얼거리며 두 손 가득 약품들을 챙기곤 내 옆으로 다가왔다.

“붕대부터 풀게.”

그렇게 말하며 가까이서 조심조심 붕대를 풀어 나갔다.

연화의 머리가 내 얼굴 바로 앞에 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

바람을 타고 좋은 향기가 코에서 느껴지자 기분이 요상해졌다.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돌리곤 벽면만을 쳐다보았다.

“왜 얼굴을 돌리고 그래? 붕대 풀기 힘들게!”

대답해 줄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쓰라리고, 따갑고,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 있었지만, 참을 인(忍) 자를 속으로 써 가며 참아 냈다.

“머리의 상처가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복피정을 바르고 하루 정도 푹 자고 나면 회복될 것 같아. 자, 끝이야. 그래도 만일에 대비해서 몸이 회복되는 대로 의약당으로 가 봐. 아니, 내가 데려다 줄까?”

“아니,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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