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8화 (8/175)

# 8

화산천검 1권(8화)

3장 훈련(2)

포권을 풀은 후에 시야에 들어온 옷.

옷이 염색한 듯 검붉게 변해 있었다.

“하아, 이 옷은 버려야겠지?”

다른 깨끗한 도복으로 갈아입고, 붉게 변한 옷을 방 안 한쪽에 치워 버렸다.

“공천패…… 라고 했었지…….”

짙은 눈썹과 호안, 덥수룩한 수염.

산적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몸에서 피워 올리는 기세는 산적 같은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 눈에 걸맞게 산중지왕(山中之王), 호랑이의 기세였다.

한 번 보고 구함을 받은 것뿐인데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보통 사람과는 다른, 화산파의 장로님들보다도 강하고 신비로운 사람 같았다.

‘내 생각일 뿐이지만 말이지…….’

고개를 털어 상념을 접고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정오에서 조금 지난 오후였다.

“후우∼ 기는…….”

진기를 끌어 올려 보았다.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기다.

그 양은 늘지가 않았지만, 그릇이 단단해졌음 물론이요, 그 밀도가 엄청났다.

그전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이런 기라면 유혁 사형, 장일 사형도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만한데…….”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

처음 만났을 때의 의미심장한 눈빛과 소름은 다름이 아니라 그들의 성격 때문이었다.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

직전제자들 사이에선 유명한 성정을 갖고 있는 둘이었다.

앙숙이기도 하지만,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한 둘.

둘의 취미는 다름 아닌 사제 괴롭히기다.

길가다 만나면 괴롭히고, 사부님들 계시지 않으면 괴롭히고.

그렇게 당한 자들만 엄청나게 많다.

나 또한 그 범주의 밖은 아니다.

벌써 당한 것만 열 번이 넘는다.

열 번이라고 하면 적은 것 같지만, 사부님이 직전의 제자 옆에서 떨어질 날이 얼마나 되겠는가?

게다가 그 괴롭힘의 강도가 높을 때는 마치 지옥과도 같다.

하지만 사부님들께는 말씀드릴 수 없었다.

교묘하게 비꼬며 말하는데, 사부님들께는 절대 이르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그들의 앞에서.

‘이길 수 있다면, 아니 아직은 무리겠지.’

이길 수 있는 확률은 늘었다. 하지만 이길 수는 없다.

왜냐? 바로 그 경험의 차이다.

두 사형은 직전제자들 사이에서 악동으로 유명하지만, 그것과는 반대로 무에 관한 재능은 독보적이다.

그 어떤 천재를 붙여 놔도 꿀리지 않을 것만 같은 그 무에 관한 천부적인 재능.

그들이 우리를 괴롭히는데, 단 한 번도 우리에게 보복을 당한 적이 없는 이유가 이것에 있었다.

“그렇다면 이 확률을 더욱 높여야 하는데…….”

높이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장로님들의 눈을 피해서 함정을 파 놓는 것이 그 첫째다.

둘째로는 이 늘어난 진기를 통한 훈련이 있다.

셋째로는 장로님들에게 이르는 것이다.

“셋째는 각하, 첫째는 불가능. 그렇다면…….”

훈련밖에는 없지.

아니, 어차피 이것 외에 다른 방법은 내키지도 않았다.

내가 훈련하고, 노력해서 그들을 따라잡아야 한다.

나를 무시할 수 없게끔.

“그렇다면 방법은 훈련, 훈련하는 것에는 대체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훈련이라고 해 보았자 별다를 것은 없다.

만날 하던 대로 심법에 따라 기를 운기하고, 초식을 연련하는 것.

“하지만 평소랑 같으면 언제 사형을 따라잡느냐 이거지.”

무에 관한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사형들은 자만도 하지 않는다.

그저 끝없이 훈련만을 할 뿐이다.

가끔씩 우리들을 괴롭힐 때를 빼고는 말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훈련으로는 많이, 아니 매우 많은 문제가 있었다.

평범한 범재인 내가 그들을 평소와 같이 훈련해서 언제 따라잡겠는가?

어불성설(語不成說), 천년일청(千年一淸)이다.

“하아∼ 생각해 내라…… 생각해…….”

어째서 갑자기 사형들을 이렇게 이겨 먹으려 하는지는 까먹었다.

하지만 생각이 난 이상 해야지.

할 일도 없고 말이다.

깨달음에 관한 것이라면 무리다.

깨달음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긴 하지만, 그것을 바라는 자에게는 오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깨달음이 오면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니 평소랑 다를 것 없이 그저 훈련을 하고, 준비하고만 있음 되는 것이기에 깨달음은 무리인 것이다.

“아, 잡생각 할 때가 아니지.”

생각해 보니 사형들이 올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무진 사부가 하산했다는 것이 화산에 떠돌려면 적어도 일주일 정도 걸릴 것이다.

그것도 무진 사부가 본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어서 그렇다.

그렇기에 일주일 동안 빨리 수련을 해서 사형들을 이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일주일이라는 것이 무리긴 하지만. 뭐, 어때.”

도전하는 자에게 복이 있는 법이다.

일주일이 짧은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가능성은 있다.

그 가능성에 매달리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어째서 조화가 깨진 거지?”

갑작스런 의문.

하지만 내가 어떤 것을 훈련할지에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상단전 때문이야. 상단전은 혼과 백을 관장하는 신을 위한 장소. 뚫을 순 있어도, 뚫으면 안 되는 곳이었기 때문이지.”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한 법이다.

차라리 그 상태로 정진했으면 언젠간 상단전을 타통해도 아무런 영향이 없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뚫었으니 어쩔 것인가?

“아니, 이게 아니지. 그렇다면 상단전의 훈련은…… 무리겠군.”

방금 중단전을 늘려 일시적으로 조화를 이루었다.

그런데 상단전의 훈련?

또다시 주화입마에 걸릴 것이 눈앞에 훤히 보였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매화검로를 훈련했었다.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무공을 말이다.

“매화검로. 그래, 변했었지…….”

매화검로는 변했다.

“전과는 다른 검로, 게다가 내가 주체하지 못하는 살기라…….”

초식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문제다.

초식이라면 내가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바, 게다가 그것이 내가 자주 쓰는 검법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 할 일은 이거다. 매화검로가 바뀌었지? 그것의 제어가 내가 일주일 동안 할 일이다.”

결정이 났으면 실행을 해야 하는 법.

검을 뽑아 들고 준비했다.

“좀 무서운데…….”

조화를 이루었다고는 하나, 매화검로를 매개체로 커다란 고통을 받았던 것이 바로 방금 전의 일인지라 무서웠다.

‘또다시 조화가 깨지면 어쩌지? 아까와 같은 기연이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 그래, 그냥 평소와 같이 훈련하자.’

검을 내리려는 순간, 사부의 호통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후우∼ 겁먹지 말자. 그래, 매개체는 매화검로였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조화가 깨진 것이야. 일시적으로 조화를 이루었으니 매개체를 통한 고통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야. 그래, 겁먹지 말자. 겁먹지 말자.’

최면을 걸듯 조용히 계속해서 되뇌었다.

그러자 어느새인가 두려움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겼다.

“하앗!”

그 자신감으로 매화검로를 전개했다.

부웅∼ 부우웅∼ 퍽!

“헉…… 헉…… 뭐…… 야…….”

검을 땅에 처박고 숨을 고르며 어이가 없음에 소리쳤다.

“왜 변하지 않는 건데!”

매화검로는 변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전의 매화검로와 다를 것이 없었다.

“이러면 다를 것이 없잖아!”

여러 번 해 봐도 마찬가지다.

매화검로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진짜 변했었나?”

이제는 그때 매화검로가 변했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후우∼ 쳇…….”

매화검로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매화검로는 포기다. 그럼 이제 뭐가 남았냐…….”

안 되는 것은 포기해야지.

시간도 얼마 없는데 한 가지를 갖고 고민할 정도로 나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재빨리 다른 것을 고민했다.

“남은 것은…… 조화…… 조화…… 왜 계속해서 조화만 생각나는 거야?”

계속해서 이 단어만 생각났다.

조화.

“아니지, 이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조화라고는 하지만, 음양의 조화가 아닌 삼단전의 조화다.

“아니, 조화는 깨달음이잖아. 그렇다면 무리지. 그럼 단전에 뭔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하단전.

내 몸 안에 있는 기가 쌓이는 곳이다.

“하단전을 늘리는 것은 깨달음과 연관된 곳이니 안 되고…… 그렇다면 관련이 있는 것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래, 심법이다.”

심법, 나에게는 자하심법이다.

“심법과 관련된 것은 진기. 그래, 오랜만에 기에 전념하자.”

오랫동안 매화검로를 연련하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무의 기본은 진기. 선심후수(先心後手)다. 초식의 강함도, 무의 연련도 기에 관련되어 있지. 그래, 근원으로의 회귀지. 사형들과의 싸움 때문에 하기는 하지만, 본래 내가 해야 했던 일이야.”

연무대의 중앙에 앉았다.

연무대는 태양이 잘 내리쬐는 곳이다.

기가 잘 통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심법을 수련하는 데에는 안성맞춤이다.

“후우∼”

먼저 심호흡을 한 뒤 눈을 감았다.

몸 안의 관조.

먼저 삼단전이다.

하단전은 본래와 같다.

그릇에 내용물이 다 차지 않은 상태.

중단전은 엄청나다.

그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졌다.

상단전은…… 알 수 없다.

조그만 구멍만이 뚫렸기에 그 안을 살펴볼 수 없었다.

“흡!”

호흡(呼吸).

자연의 기운이 코를 통해 흘러 들어왔다.

흘러 들어온 기는 혈도를 타고 온몸을 휘돌았다.

휘돈 진기는 다시 하단전으로 가서 안착.

다시 기를 흡수하면, 또 혈도를 타고 온몸을 휘돌고 다시 안착한다.

그렇게 계속해서 기를 끌어 모으는데 집중했다.

‘그런데…….’

진기를 흡수할수록 전과는 다른 것을 느꼈다.

빠른 속도로 진기가 몸을 휘돌고, 흡수되는 양이 다른 것이다.

전에는 오 할 정도만이 하단전에 안착했다.

그런데 지금은 칠 할에서 팔 할 정도의 기운이 하단전에 안착하는 것이다.

‘게다가…….’

모이는 기운 또한 그 양이 달랐다.

그전의 두 배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이 정도라면…….’

잘하면 된다.

심법에 계속해서 투자하다 보면 조화는 물론이요,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을 이기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확연하게 다를 정도로 쌓이는 진기에 무아지경으로 계속해서 운기를 했다.

“후우∼”

더 이상은 내가 무리일 것 같았다.

눈을 뜨고 일어서자 어느새 밤이었다.

“몸은…….”

확연히 달랐다.

하단전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이 늘었다.

“핫!”

팡! 팡! 파아앙!

“우와…….”

기가 움직이고, 주먹에 모인다.

그리고 그것을 발출!

느껴지는 느낌과 파공성이 달랐다.

바위도 부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생각난 김에 해 보자.”

내가 훈련하고 눕는 바위는 말고, 다른 바위의 앞에 섰다.

“후우∼ 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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