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7화 (7/175)

# 7

화산천검 1권(7화)

2장 타통(3)

쾅! 쾅!

막힌 혈도를 뚫을 때마다 몸은 흔들리고, 코와 입을 통해 뜨끈한 물들이 흘러나왔다.

아마 피일 것이다.

하지만 고통은 없었다.

고통을 느끼기에는 혈도들이 뚫려지며 느껴지는 시원함이 너무도 컸다.

쾅! 쾅!

기운은 소주천만을 하던 나의 몸을 대주천을 시킬 수 있을 만큼 단전을 키우고, 새로운 혈의 길[血道]을 뚫어 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리를 향해 돌진해 갔다.

쾅! 쾅!

“쿨럭!”

지금까지 나온 피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양의 피를 토해 냈다.

계속해서 기침이 나왔다.

‘이렇게 계속 몸을 움직이고 소리를 지르면 안 좋은데…….’

하지만 진기는 배운 것과는 달리 아무런 상관없이 계속해서 움직였다.

쾅! 쾅! 쾅! 쾅!

벽을 뚫으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결국 기운은 상단전을 향하는 통로에 작은 구멍을 뚫어 놓았다.

파아아아!

매우 작은 구멍만을 뚫어 놓았을 뿐인데 기침이 멈추고, 온몸에 힘이 솟기 시작했다.

이것이 백(魄)과 혼(魂)을 관장하는 신(神)을 위한 장소인 상단전의 힘이었다.

몰아지경으로 운기를 하던 나는 눈을 떴다.

번쩍!

한순간 앞이 자색으로 물들었다.

그것도 잠시,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후우우∼”

날숨을 통해 마지막 남은 탁기(濁氣)를 뱉어 내고 몸을 움직여 보았다.

탁! 탁! 휘익!

주먹끼리 부딪쳐 보고, 달려 보기도 하고, 다리를 내뻗어 보기도 했다.

“이게…… 내 몸 맞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 빠른 몸놀림이었다.

상단전이 타통 되기 전과 타통 된 후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우와∼”

전과는 다른 빨라지고, 부드러워진 몸에 크게 소리쳤다.

나무 위에 앉아 있던 새들이 날아가 소란스러웠지만, 그래도 기뻤다.

흥분이 가라앉고, 무진 사부가 준 검이 생각나 취운암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박혀 있는 낡은 궤를 열어 보았다.

끼이익∼

낡은 궤를 열자 어두운 가운데 밝은 빛을 내는 검이 보였다.

무진 사부에게서 받은 첫 번째 진검이었다.

“오랜만에 보네.”

사부에게서 받고 마구잡이로 휘두르다 온몸에 상처가 났던 때를 생각해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달랐다.

추억을 떠올리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겠지.”

그때 무진 사부에게 엄청나게 혼이 난 터라 지금까지 한 번도 꺼내 보지 않았었다.

상단전이 타통 된 기념으로 매우 오랜만에 검 병을 잡고 들어 올렸다.

차가운 검 병의 느낌,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다.

푸르스름한 검신과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지는 검첨, 검막이는 고풍스럽게 장식되어 있었으며, 검 병의 끝으로는 두 가닥의 붉은 수실이 내려와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보니 상당히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런 물건으로 그렇게 난리를 피워 댔으니 사부가 얼마나 화가 나고 당황스러웠을까?

씁쓸하게 웃으며 가볍게 몇 번 휘둘러보았다.

붕∼ 부웅∼

“좋구나.”

가볍게 바람을 가르는 검신.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일품이었다.

“좀 좁은데…….”

취운암은 넓지만 그래도 검을 들고 움직이기엔 좁았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기분 좋은데?”

크게 웃으며 매화검로의 기수식을 취했다.

오른발을 앞으로 일보 내딛고, 오른손으로 검을 쥐며 왼손으로는 수결(手結)을 취하였다.

“후우∼ 하앗!”

언제나 시작 전에는 조금의 긴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옛날에 많이 혼이 났던 검을 들고 움직일 생각을 하자 조금 심하게 긴장이 되었다.

할 수 없이 긴장을 풀기 위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기합성을 내지르며 매화검로 일 초 매화낙영(梅花落榮)을 전개했다.

검신이 부드럽게 바람을 갈랐다.

파르르르!

최대한 빠르게 회전시키자 벌 떼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며 검첨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회전하였다.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말이다.

파파파파!

검이 가상의 적의 사혈(死血)들을 꿰뚫고, 마지막으로 상대의 인중을 꿰뚫었다.

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

기이한 느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어째선지 익숙하고 당연하다는 느낌이 들어 나는 계속하여 초식을 전개해 나갔다.

이 초 매화부석(梅花剖石), 삼 초 매화요결(梅花曜抉), 사 초 매화유정(梅花喩情)…… 다음 초식으로 넘어갈 때마다 검은 더욱더 매화검로의 정해진 검로를 벗어나고 있었다. 마지막 십육 초 매화만천(梅花滿天)에 이르러서는 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살기에 정신을 차리고 검을 거두었다.

“무슨…….”

시야는 이미 짙은 자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주체할 수 없이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재빨리 검을 환집했다.

“으윽…….”

그러자 이번에는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 왔다.

“크으으…….”

머릿속에 사부의 목소리가 울렸다.

‘신(身), 심(心), 혼(魂)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사람의 몸은 소우주(小宇宙)와 같아 조화롭고, 무한하다. 하나 그 조화가 깨졌을 때 사람의 몸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무너지고, 망가지지. 신이 성하면, 심이 따라오지 못하고. 심이 성하면, 혼이 망가지고. 혼이 성하면, 신이 따라오지 못한다. 알았느냐? 조화다, 조화. 특히 너의 심법인 자하심법은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노을빛, 태극을 기준으로 한 심법이다. 조화가 깨졌을 때,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하도록 하거라.’

“크윽…… 이게 조화가 깨졌을 때의 부작용인 건가?”

깨질듯이 아파 오는 머리 때문에 땅에 누워 머리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뒹굴었다.

“크으…….”

비명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고,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때, 누군가의 그림자가 태양을 가렸다.

고개를 든 나의 앞에 나의 시계 때문에 피부색이 자색으로 보이는 짙은 눈썹과 호랑이와 같은 눈, 부스스한 수염의 중년인이 서 있었다.

“혼이 신과 심의 조화를 깼군. 가만히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고통스러워도 참거라.”

“으윽…….”

안 된다고 말하려 했지만 나오는 것은 신음뿐이었다.

장심에 손을 대고 진기를 불어넣는 장년인.

하단전을 통해 움직이는 장년인의 폭풍과도 같은 진기는 순식간에 중단전을 향해 갔다.

쾅!

“으윽!”

온몸이 흔들리며 짙은 자색의 시계가 점점 옅어지고, 종국에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중단전을 억지로 늘려 놓은 진기는 나의 몸을 몇 바퀴 돌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일시적인 예방책으로 중단전을 늘려 놓았다.”

중년인의 무식한 치료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두통은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것. 백중지세를 유지하고 있는 심(心)과 혼(魂) 중 어느 하나든 다른 하나보다 성하게 되면 또다시 고통이 몰려올 게다. 그러니 이 일시적인 치료의 효과가 끝나기 전에 신(身)과 심(心), 혼(魂)의 조화를 이루거라.”

툭 내뱉듯이 말하고는 중년인이 자리를 떠나갔다.

“자…… 잠시만요!”

중년인이 내딛던 발걸음을 멈추며 나를 돌아보았다.

부리부리한 호안(虎眼)에 소름이 돋았다.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존성대명을 알려 주십시오.”

중년인이 잠시 턱을 쓰다듬었다.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중년인의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다.

후우∼ 하고 숨을 내쉬고는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공천패(鞏天覇)라고 한다.”

툭 내뱉듯이 말하곤 그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3장 훈련(1)

똑똑!

“들어와라.”

부드럽게 문이 열리고 짙은 눈썹에 호안, 부스스한 수염의 중년인 공천패가 전각의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이군.”

“그래, 오랜만이다.”

의자에 앉아 서류를 처리하던 노인, 화산파의 장문인 장추익이 고개를 들었다.

털썩!

의자에 앉으며 공천패가 장추익을 쳐다보았다.

장추익의 마음을 꿰뚫어 보려는 듯 강렬한 눈빛.

두 사람의 눈빛이 얽혀 들어갔다.

공천패가 눈빛을 거두지 않고 입을 열었다.

“구파의 일익, 화산파의 장문인 매화검선 장추익. 높은 곳에 올랐군. 화산파가 성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군. 하지만 너무 성한 것인가? 정기가 예전만큼은 못하군.”

먼 미래를 예언하듯 공천패의 눈과 말은 아득한 느낌을 주었다.

“공동파는 어떤가?”

“이곳과 다를 것이 없다. 이번 대 구파의 장문인들은 왜 이렇게 야심이 큰지…… 소림과 무당, 아미는 그렇지 않지만, 나머지 문파는 너무 세속에 물들었어.”

“사람이 남의 위에 서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불가의 승려, 도가의 진인이 아닌 이상 그것은 인간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욕구이지.”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보다 못한 법. 도를 넘지 않기만을 빌 뿐이다.”

“이런 얘기는 그만두도록 하지. 그것보다 그쪽은 어떤가? 바뀌었나?”

“아직은 아니지만 곧 그럴 것 같다.”

“막을 건가?”

“아니, 나의 천명은 그것이 아니다. 그것을 되돌릴 자는 따로 있어.”

“그렇다면 막는 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성장하지 않았어.”

“그런가? 그렇다면 현재로선…….”

“대응할 방법이 없다.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는…….”

“하아…….”

검선의 한숨.

마음속까지 울리는 듯한 깊은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만 돌아가지.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

“그렇겠지…….”

고개를 끄덕이자 공천패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려는 순간, 공천패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오는 길에 재밌는 아이를 만났다. 그 어린 나이에 홀로 상단전을 열고 있더군.”

“호오, 그런가?”

장추익의 눈이 빛났다.

“어떻게 성장할 것 같나?”

“아직 모른다. 하지만 상상을 뛰어넘을 것 같아 보이는군.”

“자네가 말했다면 그런 것이겠지. 이름은 어떻게 되나?”

“모른다. 소박한 암자, 커다란 바위, 연무대가 있었던 것 같은데…….”

“취운암인가? 그렇다면 그곳에 있는 것은 무진과 청우…… 역시 범상치 않은 아이였군.”

흡족한 미소를 띠우는 장추익.

공천패가 고개를 저었다.

“그 아이는 어떤 가혹한 천명이 기다리고 있을지…… 난세의 영웅은 좋지 않은 천명일 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