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6화 (6/175)

# 6

화산천검 1권(6화)

2장 타통(2)

탁! 탁!

따끈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죽. 밭에서 캔 채소들.

사부가 화기(火氣)가 쌓이면 좋지 않다고 육식을 하지 않으려 하기에 순수하게 채소들로만 만든 음식들이었다.

떠들던 음성들이 조용해지고, 무진 사부가 조용히 수저를 들었다.

어른인 무진 사부가 먼저 음식을 떠서 먹고, 그 후에 나와 연화가 음식을 들었다.

죽과 채소이기에 간단히 식사를 끝내고 음식이 들어 있던 그릇들을 나무쟁반 위에 올려놓았다.

“아, 이건 내가 할게.”

연화가 설거지는 자신이 하겠다고 하며 소매를 걷어 올리고 쟁반을 들었다. 그러곤 근처에 있는 계곡으로 향해 갔다.

“허허, 너도 그렇고 저 아이도 그렇고 모두 천재, 선재로구나.”

“저는 모르겠지만 연화가 천재인 건 확실하죠.”

“화산파 최초로 여장로가 될 수도 있겠구나.”

무진 사부는 거짓말을 하질 않고, 안목이 좋다.

무진 사부가 그렇게 말했다면 연화는 현재와 같이 수련하면 언젠간 화산파 최초의 여장로가 되는 영광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잠시 나가 봐야 될 일이 생겼다.”

무진 사부가 얼굴을 굳히며 말하였다.

“장문인께서 하산하라 하셨다.”

“어째서입니까?”

“화산의 속가제자 중 한 명이 세운 문파와 다른 문파가 싸움이 붙었다는구나. 매화검사들과 내가 임무를 맡았다. 아마도 한 달 정도는 못 돌아올 것 같구나.”

한 달.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으나, 길다고 하면 길다고 할 수도 있는 기간이다.

제자가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사부가 산을 내려간다고 하자 살짝 긴장했다.

“언제 출발합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출발해야 될 것 같구나. 이미 매화검사들은 연화촌(燕華村)에 도착해 있다고 하더구나.”

“위험한 일은 아닌지요?”

문파끼리의 싸움, 목숨을 건 전투라면 백분지 백 위험한 일일 것이다.

“허허. 내가 누구더냐? 화산파의 장로인 무진 진인이다. 위험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죽을 만큼 위험한 일은 아니다.”

자신감 있는 표정과 말투.

무진 사부의 행동에 나는 긴장을 풀었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그래, 너도 내가 없는 동안 농땡이 피우지 말고 계속 수련하거라.”

그렇게 얘기하곤 무진 사부가 문을 열고 나가 취운암을 벗어난 뒤, 극성으로 암향표를 전개하였다.

순식간에 무진 사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후∼’ 하고 한숨을 쉬곤 계곡으로 갔다.

“랄라라∼”

연화가 콧노래를 부르며 계곡에서 그릇을 깨끗이 씻고 있었다.

깨지지 않게 조심조심, 그리고 세심하게 문지르는 손놀림.

익숙한 손놀림이었다.

툭!

“응? 언제 왔어?”

발로 땅을 툭툭 하고 쳐서 기척을 내자 연화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 나 혼자 있기 뭐해서 말이야.”

“에? 혼자? 무진 장로님은?”

“임무 때문에 하산하셨어. 한 달 정도는 못 뵐 것 같아.”

“아, 그래? 제대로 인사도 안 했는데…….”

섭섭하다는 듯이 말하곤 연화가 고개를 흔들어 감정을 털어 냈다.

탁!

마지막 그릇을 깨끗이 닦고 양광(陽光)에 말리며 연화가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어쩔 거야? 취운암에 남아 있을 거야?”

“그래야겠지. 그곳 말고 내가 지낼 곳이 어디 있어?”

“그렇지. 그럼 내가 틈틈이 시간 내서 놀러올게. 심심하지 않도록.”

“무공 수련을 하고 있으면 별로 심심할 틈은 없을 것 같은데?”

“잔말 말고. 호의로 말하면 받아들여.”

“예, 예.”

이후론 서로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였다.

그렇게 저녁이 지나 연화가 떠난 뒤, 나는 취운암을 빠져나와 저녁 하늘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저녁 하늘.

자색, 흑색 등 여러 가지 색이 섞인 듯한 하늘과 밝은 빛을 내며 세상을 비추는 달, 별들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아름답구나…….”

그동안은 무공 수련에 바빠 이런 자연경관을 보지도 못하였다.

하지만 사부가 떠나고 시간이 남은 지금은 이런 수려한 광경들을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별 하나가 반짝하고 빛나더니 땅으로 떨어졌다.

“유성?”

유성이라고 하면 길조.

떨어지는 동안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하는 길(吉)의 징조다.

하나 지금은 어쩐 일인지 길(吉)할 것이라는 느낌보다는 흉(凶)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지?”

심장이 쿵쿵하고 세차게 뛰었다.

불길한 예감이었다.

“사부님이 없어서 그런가?”

혼자서 지내는 것은 처음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불안한 거라고 자신에게 말하며 취운암으로 들어갔다.

짹! 짹!

밝은 양광이 세상을 비추고, 새들이 울어 댔다.

“음…….”

눈부신 햇살에 손으로 눈을 가렸다가 일어나며 손을 떼었다.

그리고 아직 몸에 남아 있는 잠기운을 고개를 흔들어 털어 냈다.

“사부…….”

일어나자마자 원래의 습관대로 사부를 찾았다.

“사부?”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언제나 먼저 일어나 자신을 깨우던 무진 사부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아, 맞아. 어제 하산하셨었지…….”

어제의 일이 기억났다.

사부가 하산했다는 것과 자신이 혼자라는 것도.

“……혼자?”

혼자라는 사실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제는 연화와 함께 있었기에 느끼지 못했던 혼자라는 느낌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리고 어제의 흉(凶)할 것이라는 느낌이 어째선지 사부를 생각할 때마다 강하게 느껴져 더욱 심란했다.

“후우∼ 이게 무슨 추태냐, 청우. 사부가 없어졌어도 생활은 똑같이. 아침 수련이다. 그래.”

고개를 털어 감정을 털어 내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몸을 풀어 주고, 암자의 옆에 세워져 있는 목검을 들었다.

“후우∼”

검을 들자 차갑고 청명한 기운이 느껴졌다.

저녁과 새벽의 기운을 빨아들인 목검은 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 기분 좋은 느낌에 입꼬리를 위로 올려 웃음을 짓고는 검을 움직였다.

먼저 삼재검공.

보평제자일 때부터 배워 온 무공이니만큼 아침 수련으로는 가장 적합했다.

가볍게 몸을 풀듯이 검을 움직이고, 검공을 끝까지 전개한 뒤에 검을 환집했다.

다음으로는 장천수.

삼재검법과 마찬가지로 가장 익숙한 무공이었다.

역시나 그렇듯 여러 부분에서 괴리감이 느껴졌지만 무시.

평소와 똑같이 그냥 끝까지 초식을 전개했다.

그리고 매화검로.

앞의 두 무공과는 다르게 긴장하며 검을 움직였다.

“핫!”

손을 빠르게 움직여 검극을 흔들었다.

흔들린 검극이 매화의 모양을 빠르게 그려 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진정한 매화검로라고 할 수 없다.

단전에 있는 내공을 움직여 검극을 통해 배출하자 붉은 빛을 띠고 있는 매화가 드러났다.

파파파팟!

빠르게 공간을 점하며 모습을 드러내는 매화.

매화의 수는 다섯 개.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수를 만들어 냈다.

“음…… 어째선지 뭔가 될 것 같은데?”

매화를 한 송이 더 만들어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 느낌에 검을 다시 움직였다.

천천히 하지만 느리지는 않게 진기를 움직여 검으로 이동시키곤 검을 회전시키며 빠르게 내찔렀다.

“핫!”

파팟!

느낌에 이끌린 대로 검을 움직였다.

다섯 개를 그려 내자 검이 저절로 움직이듯 내 의지를 벗어났다.

팟!

한 송이의 매화를 더 그려 낸다.

‘여섯 개!’

하지만 매화는 완전하지 않았다.

두 송이 꽃잎이 모자란 불완전한 매화였다.

“후우∼”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니야. 괜찮아, 이 정도면 뭐…….”

아쉬운 느낌에 한숨을 쉬었지만, 본래 이것만 해도 엄청난 성과다.

어제 하나의 매화를 더 만들어 냈고, 그다음 날에 바로 반 정도의 매화를 만들어 냈다.

이 정도면 만족하고도 남을 성과였다.

검을 평평한 바위 위에 기대어 놓고, 바위의 위에 올라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번엔 심법의 수련이었다.

눈을 감고 몸 안을 관조하며 숨을 들이쉬었다.

“후읍∼”

대자연의 기가 코를 통해 들어오고, 혈도를 타고 몸 안을 돌아다녔다.

이렇게 편안히 심법 수련을 하고 있자 직전의 제자가 되고 나서 심법에 대해 설명을 들었을 때가 생각났다.

“가부좌를 틀거라.”

무진 사부의 말대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내려져 오는 눈꺼풀에 따라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 조금씩 시야를 점해 갔다.

“몸 안을 관조해 보거라.”

외부는 보이지 않는다.

볼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내부뿐.

사부의 말대로 내부를 관조해 보았다.

이마 부분에 있는 뇌의 앞에 벽 같은 것이 느껴지고, 명치 바로 윗부분에서 반쯤 열린 듯한 문과 함께 배꼽 아랫부분에 지금까지 모아 놓았던 조금 많아진 내공과 단전이 느껴졌다.

“배꼽 아랫부분의 단전과 명치 윗부분, 그리고 머리에서 무언가가 느껴질 것이다. 네가 기를 모아 두었던 곳, 배꼽 아래의 단전을 하단전이라고 한다. 그리고 명치의 윗부분을 중단전이라고 하고, 머리 부분을 상단전이라고 한다.”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이라 구분하는 이유는요?”

“지금 말해 줄 것이다. 하단전은 세간에서 말하는 내공이 쌓이는 곳이다. 신체 각 부위의 힘과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단련하는 곳이지. 육(肉)과 신(身)을 관장하는 곳이다. 중단전은 감정의 기복을 조절하고, 내장을 보호하는 곳이다. 이곳을 단련하면 뼈마디가 유연해지고, 내부의 각 부분에 유연성과 자가수복력을 증대시키고, 항상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심(心)과 정(精)을 관장하는 곳이다. 상단전은 신(神)을 위한 장소라고 불리며, 혼(魂)과 백(魄)을 다스린다. 발달하면 예지능력이 생기고, 독심술이라고도 한다지? 상대의 마음을 예측할 수 있으며, 손에 닿지 않아도 사물을 움직일 수 있는 염력(念力)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무진 사부는 한 번 숨을 들이켜곤 다시 말을 이었다.

“모두 중요한 곳이나, 현재의 너로서는 하단전을 단련시키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무공 수련의 첫 번째는 언제나 몸에서부터다. 그다음이 마음이고, 그다음이 정신이다. 알았느냐?”

사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이 머릿속에 울리며 각인되어 갔다.

현재 나의 단전은 반쯤 열려 있던 중단전이 모두 열렸고, 상단전이 조금 열린 상태였다. 하단전에는 이 년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내공이 쌓였으며, 신(身)은 유연하고, 심(心)은 정(正)하였다.

“후우∼”

잡념은 이것으로 끝이다.

몰아(沒我)의 경지에 들어가며 정신이 마음속 깊은 곳으로 침잠(沈潛)되어 갔다.

몰아지경 속에서의 운기,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하심법의 구결대로 운기되어 가던 기운이 갑자기 길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기운이 움직이고, 막혀 있던 혈도들을 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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