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화산천검 1권(4화)
1장 화산파의 제자(4)
“와하하하하!”
매우 기뻐 계속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 그만 웃고 밖으로 나가자꾸나. 네가 내 제자가 되었으니, 다른 장로들이나 그 제자들에게 인사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
“아, 네!”
나는 웃음은 멈추었지만 기쁨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대답하곤 무진 사부의 뒤를 따라나섰다.
시간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정오.
보평제자들은 자하심법을 운기할 시간이고, 속가제자들은 다 같이 모여 이형권이나 비형권과 같은 초식을 훈련할 시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최고의 혜택을 받는 직전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앗!”
“이야압!”
챙! 챙!
검명(劍鳴)이 울리고, 쇠끼리 맞부딪치며 불꽃을 튀겼다.
“낙화류수(落花流水)!”
검극이 흔들리고, 아름다운 꽃잎이 춤을 추듯 상대를 향해 날아갔다.
“치잇, 만화개천(萬花開天)!”
낙화류수에 대항해 한 아이가 커다란 꽃잎을 그리며 전면을 방어해 갔다.
두 검이 서로 맞부딪치고, 두 아이는 뒤로 각자 다섯 걸음씩 물러섰다.
“후우…… 후우…….”
“하아…… 하아…….”
두 아이가 숨을 고르고 승부를 내려 다시 검을 드는 순간,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구경하고 있던 두 노인이 손을 들었다.
싸움을 멈추라는 신호였다.
그러자 둘은 의아해하면서 검을 내리고 서로 포권을 취하였다. 그러고는 서로 냉랭할 정도로 휙 하고 몸을 돌리곤 손을 들었던 두 노인에게 걸어갔다.
“왜 멈추라 하셨습니까? 거의 다 이긴 것이었는데…….”
홍포를 입은 각진 얼굴의 소년이 말하였다.
“무슨 소리야? 유혁. 이번 비무는 내가 거의 이겼었다고.”
“너야말로 무슨 소리냐, 장일. 너의 그 비효율적으로 커다란 꽃을 그리는 초식 정도는 낙화검법(落花劍法)으로 한 초라도 더 부딪쳤으면 순식간에 이겼을 거다.”
유혁이라는 소년의 말에 둥글둥글한 얼굴의 하얀색 무복을 입은 장일이라는 소년이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였다.
“허허, 그만들 하거라.”
“너희들이 여기서 싸우면 우리 둘만 망신을 주는 거란다.”
“…….”
“…….”
두 노인의 말에 장일과 유혁은 서로를 쳐다보며 잠시 얼굴을 찡그리고는 노인의 옆에 섰다.
유혁의 옆에 선 노인은 큰 키에 유혁과 똑같은 홍포를 입고 있었다.
이 노인은 화산파의 장로 중 하나인 낙화검(落花劍) 소이련.
그리고 장일이란 아이의 옆에 서 있는 노인은 화산파의 장로 중 하나인 조화검(造化劍) 도우화였다.
“오늘 새로운 손님이 오는데 이렇게 망신살을 주려 하다니. 유혁아, 너는 내가 우습게 보이느냐?”
이련 진인의 말에 유혁이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사부님.”
“장일아, 네가 아무리 내 제자라곤 하나 손님이 오시는데 이렇게 무례한 행동을 보여 줘도 되느냐?”
장일 또한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사부님.”
“그렇다면 조용히 자중하고 있도록 하거라.”
“예.”
유혁과 장일이 자중하고 뒤쪽에서 가만히 서 있을 때, 누군가가 그들의 앞에 도착하였다.
“오랜만이오, 무진 진인.”
“오랜만이오.”
“오랜만입니다.”
무진 사부님이 도우화 장로님과 소이련 장로님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화산파 도문에서 진인이라는 이름을 받은 무진 사부님과 화산파 검문의 대표적인 두 장로 도우화 장로님과 소이련 장로님.
그 옆의 아이들도 검문의 대표적인 장로님의 제자답게 날카로워 보였다.
“이 아이입니까? 처음으로 들인 직전제자가?”
소이련 장로님이 흥미롭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소. 이 아이가 내 제자요.”
“흐음…….”
옆에 서 있는 두 아이가 나를 보며 조금 이상한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에 어째선지 소름이 돋아 몸을 움찔하였다.
“제가 받아들인 직전의 제자, 이름은 청우라고 하오. 장문인께 사정은 들었을 것이오. 직전제자가 되기 전에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으나, 이미 지나간 일이니 허물 삼지 말아 주었으면 하오.”
무진 사부의 말에 두 장로님이 나와 사부님을 번갈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럼 직전제자 중 막내인 건가? 지금까지 직전의 제자가 없던 건 그대와 우영 장로뿐인데, 우영 장로는 보평제자들의 대사부라서 직전제자를 받지 않으니 말이오.”
“그렇소.”
“그렇다면 보평제자에서 직전제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터이니 실력은 그리 빼어나지 않을 터. 안계를 높여 줄 테니 잠시 구경해 보시오.”
부드러운 말투와 경직된 분위기와는 다르게 웃음을 띠며 말하는 도우화 장로님.
어떻게 들으면 모욕적인 말이나 무진 사부는 날 위해 두 장로 분들이 배려한 것이라는 뜻을 알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자, 그럼 다시 비무를 시작한다. 제자리에 서도록 해라.”
두 장로님의 말에 뒤에 서서 오한이 들도록 기괴한 눈빛을 보내던 녀석들, 아니 두 사형이 앞으로 나가서 공터의 중앙에 섰다.
공터의 중앙에 서고는 서로 포권을 취했다.
“조화검 도우화 장로의 직전제자, 장일이다.”
“낙화검 소이련 장로의 직전제자, 유혁이다.”
서로 조금 신경질적으로 말하곤 두 사형이 동시에 검을 검집에서 뽑았다. 그러곤 서로 검을 상대를 향해 들었다가 내렸다.
비무를 하기 전의 의례 같은 것이다.
유혁 사형은 왼발을 한 발자국 앞으로 내밀며 한 손은 검 병을 꽉 쥐고, 다른 한 손은 비스듬히 검 병을 쥐었다.
양수검, 특이한 자세다.
장일 사형은 오른발을 뒤로 반보 내디디며 검을 비스듬히 내렸다.
그러자 날카로운 검과도 같은 기세가 유혁 사형에게서, 모든 것을 흘려보내는 바람과도 같은 기세가 장일 사형에게서 느껴졌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보평제자였던 내게도 느껴질 만큼의 날카로운 기세.
나는 저 두 사형들의 눈빛은 맘에 들지 않지만, 실력만은 진짜라고 느꼈다.
“대단한 성취군요, 두 아이 다.”
무진 사부가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화산 장로의 제자로서 수학한 지 오 년이 넘어가네. 저 정도 성취는 당연한 것이지.”
“그럼, 그럼.”
두 장로님이 뿌듯하다는 얼굴로 두 제자를 쳐다보았다.
“시작하도록 하지.”
“덤벼라.”
“하앗!”
수직으로 베는 유혁 사형의 검을 장일 사형이 부드럽게 흘렸다.
그렇기에 검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압!”
계속 자신의 공세를 흘리는 장일 사형의 검에 신경질이 났는지 유혁 사형은 얼굴을 찌푸리며 초식을 전개했다.
“낙화검법 일 초 유엽천락(柳葉千落)!”
유혁 사형의 검이 순식간에 여러 개로 변한 듯 늘어나며 장일 사형의 전신을 압박해 들어갔다.
핏! 핏!
간신히 공격을 피했지만 옷이 잘린 것에 눈살을 찌푸리며 장일 사형은 초식을 방어형에서 공격형으로 전환하였다.
“조화검(造化劍) 삼 초 척송야림(刺松揶林)!”
끌어들이듯 반원을 그리며 가슴으로 검을 되돌리고 장일 사형이 검을 내찔렀다.
느리지만 변화와 중검의 묘를 담고 있는 엄청난 초식이었다.
“치잇!”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으나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자 유혁 사형은 또다시 눈살을 찌푸리며 집중하여 장일 사형의 검을 방어해 들어갔다.
하지만 유혁 사형은 장일 사형의 검을 방어하지 못했다.
장일 사형의 검이 순식간에 형(形)을 변화하며 유혁 사형의 검을 피해 목젖을 찔러 들어간 것이다.
“우웃!”
놀라며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섰지만 장일 사형의 검은 그것보다 더욱 빨리 유혁 사형의 신형을 따라잡았다.
툭!
그리고 장일 사형의 검이 유혁 사형의 목젖에 닿았다.
“그만!”
더 이상 하면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이련 장로님이 소리치며 비무의 끝을 선언했다.
원래 검을 멈출 생각이었는지 소이련 장로님이 소리를 치자마자 장일 사형은 검을 땅으로 내렸다.
장일 사형이 검을 내리고 유혁 사형의 곁으로 다가가 중얼중얼 무언가 말을 하였다.
유혁 사형의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으로 보아 장일 사형이 무언가 놀리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만 놀리거라, 일아.”
도우화 장로님의 말에 장일 사형이 말은 멈추었지만 곧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에 유혁 사형이 더욱 화를 내려 했다.
하나 조용히 노려보는 소이련 장로님에 의해 유혁 사형은 노기를 가라앉히며 숨을 골랐다.
“자, 이번 비무는 일아의 승리다. 혁아는 다음번엔 이길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하도록.”
도우화 장로님의 말에 유혁 사형이 포권을 취했다.
“어떻소? 무진 진인?”
소이련 장로의 말에 무진 사부가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대단했습니다. 이 정도면 강호로 나가도 일류는 아니더라도 이류고수 소리는 들을 정도요.”
무진 사부의 말에 소이련 장로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우라고 했나? 우아야, 어떠하냐?”
부드럽게 묻는 말에 마음속에서 울리던 말을 토해 냈다.
“대단……해요…….”
난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보평제자일 때 배웠던 무공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인간을 벗어난 듯한 속도와 힘, 그리고 기술.
그리고 그것들을 자신이 배울 생각을 하니 정말 기뻤다.
“너도 언젠간 저렇게 될 수 있단다.”
무진 사부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만 가겠습니다.”
무진 사부가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그러자 두 장로님들도 포권으로 답례했다.
나는 구십 도로 꾸벅하고 인사하곤 무진 사부를 따라 이곳을 벗어났다.
이후로는 다 비슷비슷했다.
수련을 하고 있는 장로님과 제자들을 찾아가서 잠시 인사를 하고 덕담을 들은 뒤에, 다시 또 다른 장로님을 만나고 또다시 덕담을 듣고, 또다시 다른 장로님을 만나고…….
그렇게 인사만 하는 데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무진 사부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취운암(就澐庵)으로 가는 길.
무진 사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더냐?”
“네? 뭐가요?”
조용히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말을 걸어오기에 나는 반문했다.
“너와 비슷한 또래거나 조금 나이가 많지만 저 아이들을 보며 느낀 것이 있느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생각했다.
제일 처음 만난, 기이한 눈빛을 보내 소름이 돋았으나 그 이후에는 제대로 된 실력으로 인해 소름이 돋은 장일 사형, 유혁 사형. 그리고 나와 동갑이었으나 먼저 들어와 사형으로 불러야 하는 궐오야 사형. 직전제자 중 유일한 여자이자 나보다 나이가 두 살이 많은 누나인 설비연 사저. 그리고 나머지 특색이 있는 다른 사형들…….
모두가 뛰어난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치기 어리고 조금은 오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나 무인으로서 더욱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마음가짐.
모두가 나에겐 배워야 할 점이오, 따라잡아야 할 점이었다.
“너는 저들보다 뛰어나게 될 거다.”
“에? 정말요?”
“내가 확신한다. 넌 오 년 안에 저들보다 뛰어난 무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요?”
“바로 나의 제자이며,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단언하는 말.
무진 사부의 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것이면 나의 훈련에 잘 따라와 주어야 한다. 할 수 있겠느냐?”
“네!”
힘차게 대답하자 무진 사부가 희미한 웃음을 짓고는 걸음을 더욱 빨리하였다.
난 그런 사부의 걸음에 맞추어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취운암에 도착하고 나는 몸을 단정히 하고, 씻고는 잠자리에 누웠다.
기대감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