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3화 (3/175)

# 3

화산천검 1권(3화)

1장 화산파의 제자(3)

뻑!

‘윽…….’

뒷목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난 정신을 잃어 갔다…….

청우가 정신을 잃고, 괴물 보듯이 청우를 보고 있던 아이들에게 무진 진인이 호통을 쳤다.

“무엇들 하느냐! 근처에 있는 아이들은 저 아이를 어서 의약당(醫藥堂)의 의원에게 데리고 가고, 나머지는 방 안에서 근신하고 있거라!”

그러자 유상필의 근처에 있던 아이들이 정신을 차리고는 유상필을 데리고 의약당으로 향했고, 나머지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수군수군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 녀석…… 정말로 진기를 움직일 줄 알다니…….”

화가 난 척했고 화가 조금 나기는 했지만, 무진 장로는 그것보다는 놀라움이 더 큰 상태였다.

아이들 중 유상필이라는 녀석이 대장 노릇을 하며 아이들을 괴롭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것을 말리지 않았냐고 하면, 어린아이들끼리의 치기 어린 싸움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사라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데 지금은 달랐다.

어린아이들끼리의 싸움이 아니다. 내공을 이용한 범위를 벗어난 싸움인 것이다.

내공을 단전에 쌓았다고 무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를 사용할 줄 알고, 심신이 단련되어야 무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데 청우라고 하는 이 아이는 심신이 단련되지도 않았는데 내공이라는 강력한 병기를 썼다.

이것은 어린애들끼리의 싸움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었다.

그렇기에 청우라는 아이가 내공을 일으켰을 때 바로 달려왔다.

하나 이미 상황은 늦어 있었다.

겨우 도토리만큼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녀석은 한계를 뛰어넘는 속도를 보인 것이다.

순간적으로 낸 속도는 무진 진인이 극성으로 암향표(暗香漂)를 전개했을 때의 절반.

상대적으로 가까이 있었던 청우의 주먹이 먼저 녀석에게 도착하고서야 그 장소에 도착을 해 버린 것이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야. 화산이 아닌 다른 곳의 심법이나 무공을 배웠을 수도 있는 일…….”

만약 이 가정이 진실이면 심각해진다.

다른 사마외도의 세작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서 장문인에게 알려야…….”

무진 진인은 암향표를 극성으로 전개하며 장문인의 전각, 매화각(梅華閣)으로 향했다.

절반 정도를 갔을까?

갑자기 옆구리에 끼고 있는 청우가 꿈틀했다.

“어떻게 벌써……?”

순간적으로 힘을 조절하지 못하고 진신내력의 반이나 되는 내력으로 수도를 내리쳤다.

그런데 이렇게 벌써 일어난다는 것은 이 녀석이 타고난 신체를 갖춘 아이라는 것이거나, 단전에 쌓여 있는 내공이 주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일 정도의 높은 성취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약이 심했던 것일까?

청우는 잠시 꿈틀하고는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숨소리도 고르고, 깨어 있는 상태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무진 진인은 청우에게서 신경을 끄고 전속력으로 매화각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무진 진인은 매화각에 도착하였다.

똑똑!

아무리 긴급 상황이라고는 하나, 무진은 화산파의 장로.

장문인의 거처에서 예의 없게 문을 벌컥 열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예의 있게 문을 두 번 두드렸다.

“누구더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치입니다.”

무진 진인의 본래 이름은 전치.

무진(霧進)이라는 도호는 장로가 되고 나서 화산파 도문에서 안개와 같이 빠르고 은밀한 신법을 인정받아 얻은 이름이고, 그전의 본래 이름은 전치였다.

“들어오거라.”

허락을 받자 무진 진인은 문을 열었다.

‘웃…….’

들어오자마자 느낀 것은 절정의 고수들의 경계 어린 눈빛들.

하나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눈빛일 뿐,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이 눈들은 화산파의 장문인 매화검선(梅花劍仙) 장추익의 그림자들, 매영(梅影)이었다.

장로인 자신조차 어디에 숨었는지 종잡을 수 없는 절정의 암살자들.

무진 진인은 침을 삼키곤 앞으로 걸어갔다.

탁자 위에 빼곡히 쌓인 서류들을 검토하는 백미백염(白眉白髥)의 노인.

이자가 바로 화산파 검문의 장문인, 오선(五仙) 중 검선이라고 불리는 매화검선 장추익이다.

장추익은 무진 진인이 탁자의 앞에 서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깊은 흑연(黑淵)의 눈동자.

장추익의 무공 수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무슨 일이더냐? 장로라는 신분에 있는 자네가 그렇게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오다니…….”

장추익의 말에 무진 진인은 옆구리에 끼었던 아이를 의자 위에 앉혔다.

“이 아이는 누구더냐?”

“제가 훈련시키고 있는 보평제자 중에 청우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옵니다.”

“그런데?”

흥미 없다는 듯이 말하며 다시 서류를 훑어보는 장추익의 행동에 무진 진인이 침을 삼키곤 말하였다.

“세작일 수도 있는 아이입니다.”

“세작?”

장추익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청우를 향해서 든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세작은 문파 사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사마외도의 세작이 문파에 잠입해 들어왔다면 본문의 비전무공을 빼앗길 수도 있고, 잘못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겨우 들어온 지 네 달이 된 보평제자가, 이제 혈도를 조금씩 뚫어 나갈 아이가 내공을 움직입니다.”

장추익이 무진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

“후우∼”

“왜 그러십니까?”

장추익이 한숨을 쉬자 무진 진인이 당황하며 말했다.

그러자 장추익은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대 화산파의 장로로서, 그것도 나와는 다르게 무진이라는 도호를 받은 자가 이렇게 어린아이 같은 생각으로 살아가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지 않은가…….”

장추익의 말에 무진 진인이 얼굴을 붉혔다.

“어린아이 같다니요…… 그런…….”

장추익이 손을 들어 무진 진인의 말을 잘랐다.

“됐네, 이런 사소한 말다툼 따윈 중요한 게 아니네. 그저 그 정도 증거만으로 이 아이가 세작이라고 할 수는 없네.”

“하지만 사 개월 만에 진기를 움직이는 아이가 그 어디에…….”

“그대는 정말 편협하구려. 어떻게 그런 생각밖에 할 줄을 모르는가?”

장추익의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에 무진 진인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이 아이가 천고의 기재일 수도 있는 것을…… 그저 그것만 가지고 세작이라 하는 것이 자신보다 강하다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어린아이들과 다를 것이 어디에 있는가?”

무진 진인이 더욱더 얼굴을 붉혔다.

“저 아이의 숨소리를 들어 보게나.”

“예…….”

무진 진인은 장추익의 말에 집중하여 청우의 숨소리를 들었다.

후욱∼ 후우우∼

“잠자고 있을 때의 숨소리잖습니까?”

“다른 아이들의 숨소리를 기억하고 있는가?”

“예, 같이 생활하다시피 하고 있으니 기억하지 못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비교해 보게나.”

후욱∼ 후우우∼

“그런…… 어이하여 이런 아이가 정련된 숨법을…….”

“알겠는가? 이 아이는 하늘이 내려 준 무재, 범상치 않은 아이인 것이지. 그렇다면 화산의 문도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진기를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 생각하지 않는가?”

“그렇……군요…….”

장추익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아이, 탐나지 않는가?”

“예? 그런 무슨…….”

무진 진인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화산의 장로로서 현재 자네와 우영 진인만이 제자가 없네. 보평제자를 가르치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본래 우영 진인의 일. 그만 고집부리고 어서 제자를 들이게나. 난 자네를 믿네. 이 비범한 아이를 올바르게 키워 낼 재능이 있다는 것을 말이네.”

장추익이 무진 진인을 쳐다보았다.

신뢰가 가득 담긴 눈길.

무진 진인은 그 눈길을 거부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허허. 알겠네. 이후의 일은 내 알아서 다른 자들에게 통보해 줄 터이니 이 아이가 깨어나면 알아서 얘기하고 놀라지 않도록 해 주게나.”

“알겠습니다. 그럼…….”

무진 진인이 포권을 취하곤 밖으로 나갔다.

매화각의 안, 장추익만이 남아 인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번쩍하고 눈이 뜨였다.

“여기는……? 그보다…… 으윽…….”

뒤통수가 심하게 아파 왔다.

그렇기에 나는 주변을 둘러볼 생각도 못하고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정신이 드느냐?”

매우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통수를 쓰다듬던 손을 내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평제자들의 사부인 무진 사부님이 보였다.

“사부…… 아……!”

뒤통수의 고통과 무진 사부를 보자 유상필의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자신이 냉정함을 잃고 기를 이용해 녀석을 공격했다는 것도, 또한 그것을 보고 무진 사부가 화가 나서 날 기절시켰다는 것도 말이다.

“저…… 그땐…….”

“변명할 필욘 없다. 나도 어째서 네가 그랬는지는 아니까…….”

무진 사부의 부드러운 말에 난 고개를 들었다.

무진 사부가 예상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였기 때문이다.

동문의 제자끼리 싸우는 것은 그 어떤 문파에서건 중죄로 처벌한다.

그런데 그런 중죄를 저지른 자에게 무진 사부는 부드럽게 말했다.

“상필이의 행동이 지나쳤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그렇기에 네가 화가 나서 주먹질을 했다는 것도 알고. 하나…….”

무진 사부가 잠시 운을 띄우곤 말했다.

“아직 기를 운용할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내공을 써서 공격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게 제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인지라…….”

게다가 그것도 오늘 수련할 때 처음, 이번이 두 번째인, 그전에는 정말로 맹세코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나도 안다. 하나 무인이라 하면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는 법. 아무리 화가 났기로서니 자신의 기운을 제어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것은 사마외도의 마두들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다. 이를 알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거라.”

“네…….”

나는 무진 사부의 논리정연한 말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하나 너 혼자서 심신의 단련을 할 수는 없는 법. 내가 너의 사부가 되어 너를 도와줄 것이다.”

“무슨 소리세요? 이미 무진 사부는 보평제자들의 사부이니까 제 사부가 맞잖아요.”

무진 사부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대사부가 아니라, 내가 너의 직전사부가 되겠다는 소리다. 알겠느냐?”

“에? 그럼 다른 아이들은 어쩌고요?”

“그건 우영(玗瑛)이가 맡을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

우영이라 하면, 화산파의 장로 중 하나인 우영 진인.

무진 진인이 경공으로 일절을 이뤘듯이 우영 진인은 검으로 일절을 이룬 무인이었다.

“그렇다면 제가 갓 화산파에 들어와 기초심법과 기초무공을 배우는 보평제자가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내고 들어온 강호 무파나 무가의 속가제자도 아니고, 재질을 인정받아야만 될 수 있는 직전제자가 되었다는 거예요?!”

내 말에 무진 사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아아아!”

기쁜 마음에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내 나이 열두 살. 화산파에 들어온 지 네 달여밖에는 되지 않은 아이로서는 거의 최고의 혜택을 받은 셈이다.

동문끼리의 싸움이라는 중죄를 일으키고도 면죄부를 받고, 그저 그런 무공만을 배우며 살아가야 하는 보평제자의 운명을 벗어나 매우 낮은 확률로 뽑힌다는 장로들에게 무공을 직접 사사받는 직전제자가 된 것이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게다가 직전제자들은 큰 죄를 짓거나 화산 이십사 계명을 어기지 않는 이상, 보평제자들이나 속가제자들과는 다른 많은 혜택들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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