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화산천검 1권(2화)
1장 화산파의 제자(2)
파아악!
“뭐…… 뭐야!”
내 당황한 목소리에 모두가 내뻗던 검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뭐하는 것이냐, 청우!”
무진 사부님이 호통을 쳤다.
하지만 난 무진 사부님의 호통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뭐였지?’
순간적이긴 하지만 내가 모아 두었던 미약한 기(氣)가 단전을 벗어나 혈도를 타고 손목에 모이고 검을 통해 내뻗어졌다.
‘나…… 설마…… 내공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거야?’
내공을 움직이는 것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보평제자들의 첫 번째 목표나 마찬가지이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하하하하!”
딱!
“아얏!”
하지만 그 기쁨도 오래가지 않았다.
무진 사부님이 노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와 머리를 쥐어박았기 때문이다.
“지금 뭘 잘했다고 웃는 것이냐? 수련 시간에 이게 무슨 짓이냐!!”
무진 사부님의 호통에 난 잠시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헤헤하고 웃으며 무진 사부님에게 말했다.
“무진 사부님, 무진 사부님. 저 말이에요…….”
“시끄럽다!”
딱!
무진 사부님은 내 말을 중간에 끊고는 또다시 나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수련 시간이 끝나고 남도록 하여라.”
“저…… 그게…….”
난 내 엄청난 성과를 자랑하고 싶은 거였건만, 무진 사부님은 코웃음을 치며 날 무시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셨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시작하여라!”
“합!”
아이들의 기합 소리가 우렁차게 들리고, 나는 울상을 지으며 삼재검공을 처음부터 다시 펼쳤다.
수련이 끝나고, 나와 무진 사부님만이 연무장에 남았다.
“네가 뭘 잘못했는지는 아느냐?”
“아니…… 수업에 소란을 피운 건 죄송하지만, 잠시만 제 얘기 좀 들어 주세요. 네?”
내 말에 무진 사부님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그래, 변명 정돈 들어 주마.”
무진 사부님의 말에 난 휴∼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곤 말하였다.
“제가 말이죠, 제가…… 진기를 움직였어요!”
난 활짝 웃으며 기쁘게 말했다.
내 말에 무진 사부님이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그게…… 정말이더냐?”
“네, 진짜예요. 여기서 이렇게! 했더니 단전에서 기운이 올라와선 손으로 갔어요.”
난 아까의 동작을 똑같이 해 보이며 말하였다.
그러자 무진 사부님의 얼굴이 변하였다.
“어디서 내게 거짓말을 하느냐!”
“에? 그게 무슨 소리세요?”
무진 사부님이 갑자기 노한 표정을 지으며 호통을 치자 나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다시 한 번 검공을 펼쳐 보거라.”
“네.”
난 아까의 동작대로 검을 내찔렀다.
그러자 뭔가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단전에 있는 기운이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네 진기가 움직였다고 생각하느냐? 혼나기 싫어서 감히 내게 거짓말을 하다니! 이곳은 구파의 일익, 화산파다. 그런 곳의 제자인 네가 거짓말을 하다니 말이 되는 소리더냐?”
“거짓말 아닌데…….”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무진 사부님이 내 말을 안 믿어 주는 것이 이해가 갔다.
내가 보평제자가 된 지는 사 개월.
겨우 그 정도 기간 만에 진기를 움직이다니,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오늘부터 수련이 끝나면 청우, 너는 삼재검공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반복한다. 내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 말이다. 알겠느냐?”
“으…… 네…….”
난 풀이 죽어 조그맣게 말했다.
무진 사부님은 냉랭하게 뒤돌아서서 걸어가셨다.
난 한숨을 내쉬며 보평제자들의 숙소인 보평각(保平閣)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아깐 분명 움직였는데…….’
단전을 쓰다듬어 보았다.
미약하지만 따뜻하고 청량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번엔 왜 안 움직인 거니? 네가 안 움직여서 거짓말한 것 같이 되어 버렸잖아. 쳇…….’
난 괜히 내 진기에게 화풀이를 하며 보평각으로 걸어갔고, 조금 시간이 지나 도착하였다.
“야, 어떻게 됐어?”
“수련 끝나고 나서 나만 삼재검공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연습하래. 에휴∼”
내 앞에서 걱정스런 얼굴로 물어보는 이 말 머리의 아이는 유정호.
나와 같이 들어온 보평제자 제 이십오기의 동문이다.
“그러니까 왜 혼자 발광을 해? 조용히 애들을 쫓아서 움직이면 되지.”
연화의 독설.
“아니, 나 그때 진기가 움직였었단 말이야…….”
내 말에 아이들의 얼굴이 경직되더니, 잠시 후 다 같이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 무슨 소리야? 겨우 사 개월 만에 진기가 움직이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큭큭큭. 그러니까 말이야. 천재가 아닌 이상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연화와 정호의 비웃음에 나는 그저 한숨을 쉬며 안으로 들어갔다.
‘무진 사부님도 안 믿는데 너희가 믿겠냐?’
그때, 내 앞으로 한 아이가 걸어왔다.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덩치가 크고, 또 또래에 비해 얼굴이 많이 삭아 보이는 아이.
“읏, 폭두전차(爆頭戰車)다.”
본명 유상필.
별명은 폭두전차인 현재 이십오기 보평제자들 중의 최강자, 한마디로 짱이다.
“야, 뭐라고?”
별명이 머리를 터지게 만드는 전투용 차인 만큼 이 녀석은 심심할 때마다 다른 아이들에게 시비를 건다.
현재의 내가 그런 상황이다.
“아니, 그냥 수련 시간에 왠지 진기가 움직인 것 같았다고…….”
“뭐라고?”
유상필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내게 물었다.
‘젠장…….’
이 녀석이 이렇게 얼굴을 일그러뜨릴 땐 폭발하기 직전이다.
한마디로, 난 위험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아니, 그게…….”
“닥쳐!”
뻑!
‘아이씨…… 이럴 줄 알았어…….’
머리가 뒤로 밀리고, 주변이 흔들려 보였다.
볼에선 불이 피어오르는 듯 열이 올라왔다.
“야, 뭐야?”
엄청난 타격성에 주변에서 떠들고 있던 아이들이 몰려왔다. 그러곤 내 볼과 유상필의 들어 올려진 주먹을 보고는 또다시 폭두전차가 사고를 쳤다는 둥 내가 불쌍하다는 둥 중얼중얼거렸다.
‘그렇게 중얼거리지 말고 좀 말리라고…….’
난 속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곤 앞의 녀석을 노려보았다.
“어쭈, 노려보는 거냐?”
녀석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아니, 헤헤…… 그냥 쳐다만 본 거야. 너무 잘생긴 것 같아서…….”
“음, 내가 잘생기긴 했지…….”
‘자라 새끼같이 생긴 것이 무슨…….’
속으로야 이렇게 소리치지만 내 입에선 아부성 짙은 발언만이 계속 나왔다.
“우와, 이것 봐. 나이가 몇인데 벌써 근육이 나오다니…….”
“음, 내가 이 근육을 키우려고 얼마나 노력했었는데…….”
‘멍청한 것. 겨우 몇 번 아부했다고 기분이 좋아지다니…….’
난 속으로 욕하며 녀석에게 계속 아부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녀석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맞어. 너 이 자식! 맞기 싫어서 내게 아부한 거냐?”
“젠장, 딱 걸렸다…….”
“너 죽었어!”
“우와악!”
들어 올려진 주먹.
이후에 느껴질 통증에 대비해 난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보호했다.
하지만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슬쩍 눈을 떠서 앞을 바라보니 연화가 녀석의 손을 잡고 소리치고 있었다.
“야, 이 멍청한 너구리같은 새끼야! 네가 뭔데 청우를 때려!”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연화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남녀를 막론하고 누구한테도 저런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는 녀석이었을 터이니(내 추측이다.) 지금의 상황이 황당하겠지.
연화는 나보다 작다.
녀석에게는 명치 정도의 키라는 것이다.
게다가 얼굴도 어려 보이기에 사실 내 동갑이라고 보기에도 어렵다.
그런 여자애가 자신의 손을 막고 호통을 치니 그다음의 상황은…….
“연화야, 피…….”
퍽!
“꺄악!”
“이년이 미쳤나?! 감히 내 손을 잡고 막아?”
녀석이 다시 주먹을 들어 올려 연화를 치려 하는 모습이 내 눈에 보였다.
주변의 사물이 정지된 듯 보이고, 녀석이 움직이는 모습이 매우 느리게 보였다.
‘이…… 자식!’
녀석이 나를 쳐다보며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저 녀석 왜 저렇게 느린 거야? 뭐, 상관없지. 감히 연화를 때려!’
속으로 중얼거리며 앞으로 달렸다.
꿈틀!
단전에 잠들어 있던 청량한 기운이 움직였다.
용이 승천하듯 단전을 빠져나온 기운은 발의 천돌혈을 통하여 폭발하듯 밖으로 터져 나갔다.
파앙!
전율할 만한 속도.
눈 깜빡하기도 전에 녀석의 앞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분노에 눈이 먼 나는 그런 사소한 일은 생각도 안 하고 그대로 주먹을 내갈겼다.
이번엔 단전의 기가 주먹으로 내달렸다.
뻐어어어억!
엄청난 타격음과 함께 녀석이 느린 속도로 날아갔다.
어째선지 몸은 달아올라 있어 땀이 뻘뻘 나고 있었다.
콰앙!
녀석이 나무에 부딪치자,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너무나 느려보였던 세상이 다시 정상의 속도로 돌아온 것이다.
“허억…… 허억…….”
모두들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화도 마찬가지였다.
“너…….”
나는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연화를 일으켜 세웠다.
“윽…….”
연화를 일으켜 세우자 나에게 맞아서 날아간 유상필이 고개를 들었다.
이빨이 나갔는지 앞니가 보이지 않았고, 한쪽 얼굴이 파랗게 변해 있었다. 게다가 퉁퉁 부어 있기에 못생긴 얼굴이 더욱 못생겨 보였다.
“어으브…….”
녀석은 나에게 뭐라 뭐라 말을 하고 싶은 듯 입술을 계속 움직여 댔다.
하지만 부어오르고 이빨이 빠졌기에 제대로 된 말은 나오지 않았고, 잠시 후에 녀석은 정신을 잃었다.
“뭐…… 뭐야……?”
아이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괴물을 보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귀를 울리게 만드는 큰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짓이냐!!”
무진 사부님의 목소리였다.
“사부님…….”
아이들이 모두 무진 사부님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더냐……?”
무진 사부님은 주먹을 부르르 떨며 말하였다.
“아무리 보평제자라고 하나 우리 대 화산파의 제자가 같은 동문을 저 지경으로 만들다니!”
무진 사부는 평소 그렇게 엄격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이런 대형 사고가 일어나자 매우 분노하였다.
“그게…….”
“문답무용(問答無用)! 조용히 있거라!”
사부는 그렇게 외치며 수도로 내 뒷목을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