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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255화 (25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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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화

* * *

고즈넉한 정취가 물씬 풍기는 연못가에 천황이 서 있었다. 연못에 사는 물고기에게 밥을 주는지 연신 손으로 무언가를 물에 뿌렸다.

그의 손길에 뿌려진 먹이가 연못에 떨어지자 후드득 물고기들이 모여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망중한을 즐길 때 책사 하면이 다가와 보고했다.

“무림맹이 월광장을 공격하고 있다는 보고이옵니다. 백가장은 따로 움직여서 이곳으로 오고 있사옵니다.”

천황은 대답 대신 눈을 빛냈다.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하지만 곧 얼굴이 구겨졌다.

“하온데 진무사 이청운과 그의 수족인 마존령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옵니다.”

“뭐?”

짜증 섞인 외마디 음성에 책사가 목을 움츠렸다.

“용음사에서 입은 내상을 치료한 후 합류할 생각인 것 같사옵니다.”

천황은 조금씩 주던 먹이를 탈탈 털며 뒤돌아섰다.

그의 두 눈은 이미 붉은 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흥! 백가장 놈들을 모조리 죽이면 놈도 나타나겠지.”

* * *

한편, 무림맹은 전격적으로 월광장을 공격했다.

백야대가 파악한 무사들의 숫자는 약 오백여 명. 그 정도면 무림맹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계산하에서의 공격이었다.

무공의 수준, 기타 월광장에 대한 정보 등을 자세히 파악한 후 공격하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단숨에 월광장의 담장을 넘어간 무사들이 좌우로 퍼졌다.

넓은 마당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안쪽에 있는 수십 채 건물에서 공격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조심해라! 놈들이 화살이나 암기를 쓸지 모른다!”

“건물을 따라서 이동해라!”

무림맹 간부들이 소리치며 주의를 주었다.

무사들은 마당의 넓은 곳을 놔두고 건물 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건물 가까이 접근했을 때, 창문과 방문에 구멍이 숭숭 뚫리더니, 건물 안에서 화살이 튀어나왔다.

수백 발이 한꺼번에 튀어나오면서 무림맹 무사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무림맹 무사들은 도검을 비롯한 무기를 휘두르며 화살을 쳐냈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나 가까웠고, 화살도 일반 화살이 아닌 듯 속도가 보이지 않을 만큼 빨랐다.

순식간에 수십 명이 화살에 맞아 비틀거렸다.

“사각을 이용해서 접근하시오!”

누군가가 소리치자, 절정급 고수들이 창문이나 방문과 멀리 떨어진 곳을 이용해서 빠르게 접근했다.

일부는 건물을 지나서 더욱 안쪽으로 진입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방문이 활짝 열리면서 여기저기서 무기를 든 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치고 들어가던 무림맹 고수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때는 이미 칠팔백 명에 달하는 무사들이 월광장 안으로 진입한 상태였다.

사방 건물에서 쏟아져 나온 무사들과 무림맹 무사들 간의 혼전이 벌어졌다.

어느 한쪽이 우세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의 접전이었다.

하지만 월광장으로 들어선 무림맹 무사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면서 상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정문 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제갈신기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미 용음사를 공격할 때부터 느낀 바지만, 천황교의 일개 조직이 정파 무림의 정예들이 모인 무림맹을 상대로 분전하고 있었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백가장이나 마교보다는 못하다 해도 구대문파 중 어느 일파 정도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무력이었다.

“맹주, 오늘의 기회를 놓치면 강호가 피바람에 휩싸일 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같네. 아무래도 끝장을 봐야 할 것 같군.”

양조생이 검을 빼들고 앞으로 나섰다.

“모두 힘을 합쳐서 강호의 악이 될 싹을 자릅시다!”

곁에 있던 장로와 호법들도 일제히 무기를 빼들고 전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때 월광장 안에서도 삼십여 명의 흑의를 입은 자들이 싸움에 뛰어들었다.

* * *

청운은 운공을 마치고 눈을 떴다.

소주천만으로도 어느 정도 진기가 다스려졌다.

시간이 많으면 대주천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지금쯤 월광장과 태산서원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가서 도와줘야 했다.

‘아쉽지만 할 수 없지.’

방을 나서자, 마당에 마존령 대원들이 모여 있었다.

용음사를 칠 때 선봉에 나서서 싸우다 보니 무림맹보다 훨씬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부상이 심한 사람은 아예 제갈세가로 이동했다.

약간의 내상이나 경상을 입은 자들은 청운과 함께 운기를 해서 약간이나마 힘을 되찾은 상태였다.

“가가, 괜찮으세요?”

백청청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괜찮소.”

“내가 그랬잖아. 괜찮을 거라고.”

한쪽에서 혈황이 퉁명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옆에는 정 소감도 서 있었다.

백청청이 혈황을 째려보았다.

“운 공자는 사람이 왜 그래요?”

“내가 뭘?”

“선배라면서 후배가 부상을 입었는데 걱정도 안 돼요?”

“별걱정 다하네. 청운은 몸이 단단해서 그 정도로는 끄떡도 안 한다니까.”

“쳇.”

백청청이 입을 삐죽이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때 마침 용화청이 달려왔다. 사도맹 쪽에 갔다고 했는데 늦지 않게 돌아왔다.

청운이 그에게 물었다.

“맹주께선 어떻소?”

용화청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행히 목숨은 지장이 없을 것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상이 심해서 일단 제갈세가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팽천기 부맹주를 비롯해서 호법과 장로 십여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피해였다.

“으음, 맹주께서 괜찮으셔야 할 텐데…….”

“령주, 저희 사도맹 무사 중 부상이 덜한 사람 삼백여 명이 령주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그거야말로 반가운 이야기였다.

“그래요?”

“저 아래에서 대기 중입니다. 령주께서 이끌어주시기 바랍니다.”

“마다하지 않겠소. 단, 그들을 이끄는 사람은 그대가 되어야 하오.”

“예?”

“맹주께서 중상을 입으셨다 하지 않았소? 앞으로 그대의 책임이 막중해질 거요. 지금부터라도 맹의 무사들을 이끌도록 하시오.”

용화청은 청운의 말뜻을 바로 깨달았다.

이제부터 당신이 사도맹의 대표자가 되어야 한다, 사도맹의 간부들에게 인정받으려면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줘라. 그 말이었다.

용화청이 결연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했다.

“알겠습니다, 령주!”

“용 형은 잘하실 수 있을 거요. 맹주께 약속했듯이, 나 역시 도와드리겠소.”

“감사합니다.”

“자, 갑시다!”

* * *

십 장 높이 나무 위에 오연히 서서 태산서원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사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중년인.

놀랍게도 노룡회에 나타났던 천마였다.

팔짱을 끼고 있던 그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백철군도 천황교가 흑천이라는 걸 알아냈군. 그게 아니면 직접 나섰을 리 없어.”

마교의 전대 교주 역시 흑천의 주인이 끌어들인 비밀 고수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당대의 교주인 담대묵은 생각이 달랐다.

천황교의 존재를 십 년 전부터 알았으면서도 직접 공격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천황교는 마교가 사활을 걸어야 할 정도로 강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함께 망하는 미친 짓을 할 이유가 없었다.

무림맹과 사도맹, 백가장의 힘이 약화되면 무주공산이 된 강호를 줍기만 하면 되는데 왜 그런 미친 짓을 한단 말인가.

물론 약간의 변수가 있긴 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니면서 강호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자가 나타난 것이다.

이청운. 금의위 진무사였으며, 오호평천대장군이기도 하며, 황제의 지극한 신임을 얻은 자.

게다가 그놈은 이제 이십대 초반인 놈이 자신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전에 봤을 때 죽였어야 하는데.’

그때 죽이지 못한 것이 조금 후회되기는 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원래 미련을 두는 걸 싫어했다. 그리고 이청운이란 애송이가 조금은 마음에 들었다.

그놈을 보고 있으면 어릴 때 마교가 싫다며 자신의 곁을 떠나간 아들놈이 생각났다.

‘그놈이 딸을 낳았다고 했는데…….’

그가 아는 소식은 그게 전부였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천하를 뒤져봤지만 어디서도 아들의 딸을 찾을 수 없었다.

겉모습은 사십대지만, 실제 나이는 팔십이 넘은 그였다.

손녀가 있다면 두 번 다시 과거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떠나가겠다고 하면 지하 감옥에 가두는 한이 있어도.

‘그때 그놈도 다리를 부러뜨려서 감옥에 가두어 놓고 설득시켰어야 했어.’

어쨌든 다 지나간 일이다.

그는 미련을 털어내고 태산서원을 내려다보았다.

백가장과 천황교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 * *

콰과과광!

굉음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백철군은 오십대 중노인인 상대를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천황교 교주도 아닌 놈이 자신의 십 초 공격을 버텨냈다.

자존심이 상했다.

대백가장의 장주가 일개 하수인을 십 초나 공격하고도 쓰러뜨리지 못하다니!

그는 상대를 묵사발 내겠다는 듯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쾅!

굉음과 함께 상대를 멀리 날려버렸다. 머리가 터졌는지 얼굴의 반쪽이 말 그대로 묵사발 난 상태였다.

“후우, 질긴 놈.”

백철군은 만족한 한숨을 내쉬고 다음 상대를 향해 돌아섰다.

이미 천황교의 고수라고 할 만한 놈들은 장로들이 상대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백가장의 장로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새삼 천황교의 무서움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때 숨이 턱 막히는 기운이 그를 향해 밀려왔다.

‘헛! 어떤 놈……!’

백철군은 몸을 돌려서 기운이 밀려드는 곳을 바라보았다.

머리에 화려한 비녀를 꽂은 노인이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백철군은 그 노인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그 노인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위에서 싸우던 자들이 밀려나며 길이 만들어졌다.

가공할 위세!

‘천황교주!’

백철군은 노인의 정체를 바로 짐작했다.

천황교주가 아니라면 누가 이곳에서 저런 위엄을 풍길 수 있겠는가.

자신도 모르게 바짝 긴장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대가 천황교의 교주인가!”

상한 자존심을 만회하기 위해서 큰 소리로 물었다.

천황교주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맞다. 본좌가 바로 천황교의 교주이자 천황이니라.”

“흑천의 주인이기도 하겠구나!”

백철군이 슬쩍 떠보았다. 그런데 천황교주는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허허허, 제법 많은 걸 알고 왔구나.”

“보아하니 죽을 때가 다 된 늙은이 같은데, 뭔 욕심이 그리 많아서 세상을 혼란하게 하는가!”

“하하하하. 백가장의 가주가 성깔 좀 있다더니, 사실이었구나.”

“흥! 개소리 그만하고 목을 내밀어라, 늙은이!”

“네 실력이 제법이긴 하다만, 나를 넘어서려면 젖을 더 먹고 와야 할 것이야.”

천황교주는 백철군을 아기 취급했다.

백철군은 그 말에 눈을 치켜떴다.

“확실히 미친 늙은이구나!”

한 소리 욕설을 퍼부은 백철군은 땅을 박차고 주욱 날아갔다.

허공에 뜬 채로 공력을 끌어올린 그는 천황교주를 향해 양손을 쫙 폈다.

“내가 늙은이를 지옥으로 보내주마!”

천지를 뒤엎을 위력의 장력이 그의 양손에서 발출되었다.

천황교주는 무지막지한 장력이 밀려드는 걸 보고도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본좌가 그랬지 않느냐? 젖을 더 먹고 와야겠다고.”

천황교주가 약을 올리면서 마주 장력을 쳐냈다.

콰르르르릉!

두 사람의 장력이 충돌하면서 뇌성이 천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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