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
254화
* * *
사도맹의 뇌불사 공격이 끝나가고 있던 그때.
백야대가 용음사와 뇌불사에 이어서 수상한 장소 두 곳을 더 발견했다.
그중 하나는 월광장이라는 대장원이었는데, 태안의 상계를 좌지우지하는 대상가였다.
소문으로는 옛날의 왕가 소유라는 말이 있었는데, 확실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곳은, 태산의 삼대서원 중 하나인 태산서원이었다.
용음사에 있던 청운은 그 말을 듣고 눈이 커졌다.
“태산서원?”
“그렇습니다, 령주.”
태산서원에 직접 가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말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다.
태산서원은 일반 서원과 달리 일종의 교리를 따르는 학사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세상과 왕래가 많지 않고 폐쇄적이어서 뜻이 있는 학사들은 그곳에 가지 않았다.
“태산서원이 천황교의 거점 중 하나라니, 그동안 천황교에 대해 알 수 없었던 것도 이해가 가는군요.”
“어쩌면 그곳이야말로 천황교의 총단일지도 모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태산서원의 장로 중 한 사람이 언젠가 태안에 나왔을 때, ‘언젠가는 하늘이 뒤집어질 것이니라. 그때를 위해 새로운 하늘을 섬길 마음의 자세를 갖추도록 해라.’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의 천황교에서 하는 말과 일치했다.
청운은 백철군과 양조생, 제갈신기, 백야대주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갈신기가 먼저 말했다.
“태산서원이 총단이라면, 월광장을 먼저 치는 게 좋겠네.”
백철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라리 힘을 모아서 태산서원을 치는 게 낫지 않겠소?”
“아직 뇌불사의 상황을 모르는 데다, 뒤에 월광장을 놔두고 공격하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그렇긴 한데…….”
백철군이 미적거리자, 양조생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본 맹주도 월광장부터 치는 걸 찬성하오.”
백철군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무림맹이 월광장을 맡고 우리와 나머지 세력이 태산서원을 치는 게 어떻겠소? 그럼 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소만.”
제갈신기는 바로 대답을 못 하고 곰곰이 생각하며 득실을 따져보았다.
그런데 양조생이 먼저 말했다.
“그것도 괜찮을 것 같구려. 월광장은 우리 무림맹 단독으로 처리해도 될 것 같소이다.”
맹주인 양조생이 그리 말하자, 제갈신기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아무리 천황교의 주구라지만, 무림맹이 일개 장원조차 무너뜨리지 못한다면 그 또한 자존심 상할 일이었다.
게다가 백철군의 말대로 양쪽을 공격하면 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월광장을 무너뜨린 다음 지원을 하면 되니 큰 무리는 없을 듯했다.
그래도 일단 청운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령주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괜찮은 생각 같습니다. 다만 태산서원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게 없어서 걱정입니다.”
백철군이 그 말에 토를 달았다.
“설마 천하를 혼자 뒤엎을 정도는 아니겠지. 그런 힘이 있었다면 웅크리고 있었겠나?”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저도 내상이 어느 정도 나아지면 바로 참가하겠습니다.”
그때 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림맹 군사각의 전령이었다.
“맹주님과 총군사께 아룁니다. 사도맹이 뇌불사를 무너뜨렸다고 합니다.”
방 안의 사람 모두의 얼굴이 밝아졌다.
“오오, 그래? 잘됐군.”
하지만 전령의 다음 말에 다시 표정이 굳어졌다.
“하온데, 사도맹의 부맹주님이 사망하고, 맹주님은 중상을 입었다 합니다.”
표정들이 묘하게 엇갈렸다.
“그게 사실입니까?”
청운은 눈을 부릅뜨고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예, 령주.”
반면 제갈신기와 양조생은 걱정과 묘한 안도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무림맹과 천적이나 다름없는 곳이 사도맹이다.
그런데 그곳의 맹주가 중상을 입고, 부맹주가 죽었다.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하지만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청운은 문득 그러한 두 사람의 마음을 눈치채고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금은 함께 적을 상대하는 동료거늘…….’
그러나 정파와 사마도의 관계를 잘 아는 그이기에 그들을 탓하기도 애매했다.
“도대체 어떤 고수가 있었는데 그런 피해를 입은 겁니까?”
“혈뇌불이 뇌불사의 주지였다고 합니다.”
“혈뇌불!”
“그 악마 같은 자가 살아 있었단 말인가?”
“두 분이 합공을 해서 죽이긴 했는데, 그 와중에 그만 팽천기 부맹주가 혈뇌불에게 당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제갈신기와 양조생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수십 년 전에 죽었다고 알려진 공적 혈뇌불이 뇌불사의 주지였다니!
사실이라면 용천관과 팽천기는 강호에서 추앙을 받을 만한 일을 한 셈이었다.
다른 사람이 경악으로 혼란스러워할 때, 백철군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사도맹이 뇌불사를 무너뜨렸다면 더 이상 공격을 늦출 수 없을 것 같소이다. 시간을 끌면 천황교의 교주가 모습을 감출지도 모르오.”
양조생도 그 의견에 찬성했다.
“옳은 말씀이외다. 월광장을 최대한 빨리 무너뜨리고 태산서원으로 가겠소이다.”
사도맹이 강호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공적을 세웠지 않은가. 무림맹이 뒤만 따라갈 수는 없었다.
제갈신기는 양조생의 마음을 눈치채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천황교는 자신들의 공격을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너무 서두르다가는 이긴다 해도 피해만 커질 뿐이었다.
이긴다는 보장도 없지만.
하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나 날아가고 있었다.
“총군사, 즉시 장로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맹의 무사들을 준비시키게.”
“예, 맹주.”
* * *
태산의 남쪽에 있는 월광장은 규모가 수만 평이나 되었다.
태안 일대의 상계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곳으로 재산이 수백만 냥일 거라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별다른 움직임도 없이 조용했다.
“너무 조용합니다. 우리가 온다는 걸 알고 대비를 한 것 같습니다.”
용음사에서 내려온 지 한 시진 후.
언덕 위에 서서 장원을 내려다보던 제갈신기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양조생이 쓴웃음을 지었다.
“저곳이 천황교라니 믿기지 않는구려.”
“저 역시 믿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라 하니 어쩌겠습니까.”
월광장은 정도에 가까운 곳이었다. 특히 상행으로 쌓은 부를 어려운 자들에게 많이 베풀었다.
인근에 사는 자치고 월광장의 도움을 받지 않은 자가 없었다.
그런 만큼 칭송이 대단했기에 더욱더 착잡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미처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월광장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척하면서 수많은 어린아이들을 사들였다.
한 푼이 아쉬운 사람들은 칭송이 자자한 월광장에서 아이들을 데려간다 하니 무조건 믿었다.
그들은 은자 일이십 냥을 받고 자식을 팔아넘겼다. 그 돈이면 가족이 일 년을 배불리 먹고살 수 있었다.
간혹 팔아넘긴 아이가 궁금해서 찾아가는 자들도 있었지만, 교육을 위해 멀리 보냈다고 하면 대부분 믿고 돌아갔다. 의심은커녕 오히려 자식에게 교육까지 시켜주는 월광장에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다.
그럼에도 의심을 품는 자들이 간혹 있었는데, 그들은 월광장으로 들어간 후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공격을 시작하면 최대한 빠르게 적을 쳐야 합니다.”
제갈신기가 장로와 간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두 단단히 각오하시고, 손속에 인정을 두지 마십시오. 인정을 두는 순간 동료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잘 알겠소이다, 총군사.”
“그리하리다.”
장로와 간부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특히 용음사 공격에 나섰던 사람들은 그 말뜻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천황교도들은 지독하리만치 끈질겼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상태에서도 달려들었고, 내장이 흘러내리는데도 칼을 휘둘렀다.
간혹 사특한 종교에 물들면 사람이 미친다는 말을 들었지만, 막상 상대해 보니 인간을 상대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럼 공격을 시작하지요. 청기를 흔들게.”
제갈신기가 옆에 있는 기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기수가 파란색 기를 들고는 빠르게 원을 그렸다.
진격 명령이었다.
멀리서 기가 원을 그리는 걸 본 자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키더니, 언덕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그들은 달려 내려가면서 도검을 비롯한 각종 무기를 빼들었다.
그 모습은 보기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멋진 광경이었다.
단숨에 이백여 장을 달려간 그들은 곧장 월광장을 향해 쇄도했다.
* * *
무림맹이 월광장을 공격하던 그때, 백철군은 태산서원의 끝없는 담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학사들이 있어야 할 곳에 마귀들만 득실거렸다.
‘거짓된 위선자들.’
그의 눈에서 한광이 솟구쳤다.
하지만 가슴은 불길이 솟구치는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천황교.
당금 천하를 뒤흔들어 놓은 자들이 저 앞에 있었다.
천황교주.
그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천황교에 속한 고수들을 상대해봤기에 어렴풋이 짐작해볼 뿐이다.
백철군은 천황교주가 자신보다 약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보다 하수가 아닌 청운이 환음천군을 상대로 전력을 다했다고 했다. 그러고도 내상을 입었다.
그에 비하면 천황교주는 훨씬 더 강하다고 봐야 했다.
‘흥! 내가 바로 백가장주 백철군이다! 네놈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내 검에 목이 잘리고 말 것이니라!’
백철군은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 내면을 향해 소리쳤다.
사도맹주의 일로 약간 흔들렸던 마음이 확연히 안정되었다.
“장주, 정면으로 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육십대 노인 하나가 넌지시 말했다. 이장로인 백영화였다.
삼장로 백영상도 그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가주, 정면과 좌우, 삼면으로 치고 들어가는 게 어떻겠소?”
백철군이 태산서원을 쓱 둘러보더니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게 낫겠소. 정면은 내가 칠 테니, 좌측은 대주께서 백야대와 함께 공격해주시오. 그리고 이장로와 삼장로가 우측을 맡아주시고.”
“알겠네. 그렇게 하지.”
“예, 가주.”
백철군은 태산서원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숨을 들이쉬었다.
‘천황교. 너희가 흑천(黑天)이더냐?’
그 존재에 대한 것은 무림에 아는 사람이 극소수인 극비사항이었다.
백가장에서도 가주와 백야대주에게만 그 존재에 대한 비밀이 전해졌다.
흑천은 삼백여 년 전 혈사천교가 천하무림을 장악했을 때 나타났다.
흑천의 주인, 그는 혈사천교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비밀에 쌓인 고수들을 끌어 모았다.
그는 자신이 어둠 속에서 살며, 어둠이 사라지면 자신도 사라진다고 했다. 혈사천교가 무너지면 자신도 흑야대도 강호에서 은퇴할 거라고 했다.
비밀고수들은 그 말을 믿고 손을 잡았다.
하지만 거짓말이었다.
혈사천교가 무너졌을 때, 혈사천교의 모든 것도 함께 사라졌다.
무공도, 보물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흑천의 주인, 그가 모든 걸 차지했다는 걸. 미리 수하들인 흑야대를 대기시켰다가 빼돌렸다는 걸.
그의 목적은 처음부터 혈사천교의 무공과 보물이었다.
그는 분명 혈사천교와 긴밀한 관계일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혈황이 극비장소에 숨겨 놓은 보물을 족집게로 뽑듯이 찾아서 가져갔을 리 없었다.
혈사천교를 무너뜨리는 일에 참가했던 백가장주도 나중에서야 속았다는 걸 알고 백야대를 시켜 흑야대를 추적했다.
백야대와 흑야대는 철천지원수처럼 서로를 죽였다.
그러다 한동안 흑야대의 소식이 끊기면서 흑천도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런데 마침내 흑야대가 나타났다.
그렇다면 흑천도 아직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백가장주 백철군이 강서성을 벗어난 것도 그에 대한 확신이 섰기 때문이었다.
-역시 그놈들이지?
백야대주가 전음으로 말했다.
백철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이 빌어먹을 지독한 악연도 이 기회에 끊어졌으면 좋겠군.
-그래야지요.
-살아서 보세.
백야대주는 그 말만 하고 돌아서서 백야대를 이끌고 좌측으로 향했다.
백가장 무사 중 절반이 우측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