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
252화
* * *
무림연합이 옮겨간 제갈세가에 피투성이가 된 사내가 찾아왔다.
그 사내의 정체를 알아낸 무림맹 무사가 급히 그를 제갈신기에게 데려갔다.
그 사내는 오영상에게 명령을 받고 소식을 전하러 산을 내려갔던 자였다.
산을 내려오던 도중 적의 공격을 받은 그는 동료가 죽는 걸 보고도 이를 악물고 도망쳤다.
하지만 부상이 심해서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
제갈신기는 죽음을 앞둔 사내에게서 몇 가지 사실을 알아내고 곧장 청운을 만나러 갔다.
“용문이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네.”
“용문이라면 남천문을 오르는 곳에 있는 곳 아닙니까? 그렇다면 용음사?”
“내 생각도 자네와 같네.”
제갈신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청운의 눈빛이 차갑게 반짝였다.
‘또 한 곳을 찾았군.’
놈들의 본거지인지는 아직 모른다. 분명한 것은 천황교와 관련이 있는 곳이라는 것이었다.
용음사 외에도 의심되는 곳은 세 곳이 더 있었다. 그곳들도 곧 밝혀질 것이 분명했다.
제갈신기가 청운에게 말했다.
“어떻게 할 건가?”
“일단 용음사를 방문해서 확인해보지요.”
* * *
천황교에서도 자신들의 거점 하나가 들켰다는 것을 눈치챘다.
“놈들이 알아냈다고?”
“예, 용음사가 본 교와 관련되었다는 걸 들킨 것 같습니다.”
백발노인은 그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얼굴에 그어진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들켰으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용문에 자리한 용음사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장소였다.
“아무래도 보고를 올려야겠군.”
자신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용음사가 무너지면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남천문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환음천군은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 * *
한편, 일기비영 오영상은 부상을 입은 채 사력을 다해서 도주했다.
여덟이 출발해서 살아남은 인원은 자신을 포함해서 셋.
그나마도 끈질기게 따라붙는 괴인들 때문에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태였다.
“제길, 소식은 전해졌는지 모르겠군.”
세 시진 전, 자신의 명령으로 용문에서 산을 내려간 부하가 소식을 전했다면 저 지독한 놈들에게 복수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힘내라! 조금만 더 가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거다.”
오영상은 수하들을 독려하기 위해 그리 말했지만, 자신 역시 앞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앞쪽에 십여 명이 나타났다.
자신들을 뒤쫓아 온 놈들과 같은 복장이었다.
‘제길, 이제 끝인가?’
앞은 적에게 막혔고, 옆에는 절벽과 천장단애가 있었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자 두려움보다 허탈감이 몰려왔다.
살기 위해 여기까지 도망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시간을 끌기 위해서, 누군가가 자신들을 보면 적의 위치를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도망친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마저도 끝을 봐야 할 때였다.
“놈들에게 죽느니 나는 저곳으로 뛰어내리겠다. 선택은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오영상은 수하들에게 마지막 말을 건넸다.
그의 수하들도 웃으면서 말했다.
“저희도 조장의 뒤를 따라가겠습니다.”
“그래? 그럼 가자!”
그때였다.
다가오던 괴인들이 급히 몸을 틀면서 피하는 게 보였다.
“응?”
뒤이어서 뭔가가 괴인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오영상은 고개를 들어서 우측의 절벽 위를 보았다.
백의를 입은 십여 명이 학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백야?”
“백야대다.”
그랬다. 절벽 위에서 날아 내리는 자들은 백야대였다. 천황교의 본진을 찾기 위해 태산을 조사하고 다니던 그들이 오영상 일행을 발견하고 지원에 나선 것이다.
그 시각. 청운은 오대사령을 대동하고 용음사의 산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암암리에 알아볼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밤까지 기다려야 한다. 시간이 아까웠다.
“멈추시오.”
사대신장처럼 생긴 우람한 도인 여러 명이 청운의 앞을 막아섰다.
그중 중년의 도인이 도호를 외며 말했다.
“무량수불, 저희 용음사는 지금 내부 사정으로 인해 향화객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힘으로 뚫고 들어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청운은 마주 포권하며 도인에게 말했다.
“진무사 이청운이오.”
그러고는 품속에서 황금령부를 꺼내 내밀었다.
그 영부를 본 도인이 흠칫했다.
일반인이나 무림인이라면 산문을 넘지 못하게 막아도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황궁에서 나온 관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용음사는 황궁에서 지원해준 자금으로 증축을 한 터라 무작정 막았다가는 뒤탈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중년 도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무슨 이유이신지 모르겠지만 돌아가 주십시오.”
“황제 폐하의 명을 받고 온 사람에게 그냥 돌아가라고? 도장은 간덩이도 크군. 비키지 않으면 힘으로 뚫고 갈 것이오. 어떻게 하겠소?”
청운이 다그치자, 도인도 더 버티지 못하고 한쪽으로 길을 터주었다.
“가세.”
청운이 앞장서서 오대령주와 함께 산문을 넘었다.
산문에 들어선 그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입꼬리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곳곳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정상적인 도관이라면 있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게다가 그들 중에는 마기가 느껴지는 자가 다수였다.
“확실하군.”
청운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리자, 앞쪽의 도관에서 한 도인이 나오며 물었다.
“무엇이 확실하다는 거요?”
“이곳이 천황이라는 미친놈을 모시는 떨거지들이 사는 곳 중 하나라는 것 말이다.”
누구든 자신들이 신처럼 모시는 이를 욕하면 화가 나기 마련이다.
중년으로 보이는 도인의 얼굴에도 분노가 드러났다.
일반인이라면 천황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할 텐데도.
“무량수불, 말씀이 과하시구려.”
애써 억누르려 했지만 모든 것을 감출 수는 없었다.
더구나 청운이 한번 더 불을 질렀다.
“혹시 천황이라는 미친놈을 아시나? 그 미친놈이 요즘 제정신이 아니어서 사람을 밥 먹듯이 죽인다고 하던데.”
중년 도인의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어났다.
근처에 있던 도인들도 그 말을 듣고 모두 청운 쪽을 향해 다가왔다.
청운이 그 모습을 보고 씩 웃었다.
“아하, 이제 보니 그 미친놈을 신처럼 믿는 자들인가 보군.”
“죽을 자리를 네놈이 찾아왔으니 우리를 원망하지 마라!”
중년 도인이 소리치자, 근처로 다가오던 도인 수십 명이 일제히 몸을 날려서 청운 일행을 포위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도관 안에서도 도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언뜻 봐도 백 명이 훨씬 넘는 숫자였다.
“놈들을 쳐라!”
“무량수불! 천황을 욕보이는 자, 죽어 지옥에 가리라!”
“누가 죽을지는 두고 봐야지!”
청운이 냉랭하게 소리치며 검을 뽑았다.
오대사령도 일제히 무기를 뽑고 사방을 경계했다.
그때 담장을 넘어서 수백 명이 용음사 안으로 날아들었다.
마존령과 무림맹의 무사들이었다.
“나라를 어지럽힌 역도들을 쳐라!”
청운의 명령이 떨어지자, 담장을 넘어온 마존령과 무림맹 무사들이 일제히 도인들을 공격했다.
도인들 역시 천황교의 정예들이었다.
개개인이 일류 수준 이상의 고수들이었다.
그러나 마존령도 이미 전날 흑령사신과 혈승들을 상대해본 터였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전력을 다해서 용음사의 도인들을 몰아붙였다.
청운과 오대사령도 포위하고 있는 자들을 향한 공격에 나섰다.
콰우우우!
청운의 검에서 묵청색 흑룡이 솟구쳤다.
구두룡 중 청마룡과 흑마룡의 기운이 융합되어 일어난 강기였다.
천황교의 교도들이 막기에는 터무니없이 강한 위력이 실린 검공이었다.
일검에 대여섯 명이 베어졌다.
전력을 다해서 겨우 막아낸 자들도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훌훌 날아가서 쓰러졌다.
청운이 포위망을 무너뜨리자, 오대사령도 살수를 아끼지 않고 펼쳤다.
몇 번의 극한에 이른 격전으로 무공의 경지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린 용화청은 자신이 익힌 무공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냉혈마도 육송의 도는 허공을 찢어발겼고, 하후관의 염왕검은 용음사의 도인들을 지옥으로 인도했다.
마창 송기중과 고한 역시 각자 대여섯 명의 적을 쓰러뜨리고는 다른 먹이를 찾아다녔다.
“이놈들!”
허공에서 분노에 찬 노성이 터져 나왔다.
백발노인이 허공답보의 신법을 펼치며 허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총단에 보고를 올리러 갔던 환음천군이 돌아온 것이다.
“네놈들은 정파의 잡졸들이렷다!”
일성을 내지른 그가 쌍장을 뻗었다.
웅혼한 장력이 허공을 일그러뜨리며 쏟아졌다.
무림맹의 중견 고수 둘이 검을 뻗으며 장력에 마주쳐 갔다.
콰광!
폭음이 터져 나오며 무림맹 고수들이 뒤로 훌훌 날아가 나뒹굴었다.
그 후로도 땅에 내려선 환음천군은 쌍장을 좌우로 휘두르며 무림맹 무사들을 날려버렸다.
가공할 그의 무위에 무림맹의 진영 한 곳이 한순간에 와해되었다.
“우리가 상대해주마!”
무림맹의 장로인 영성자와 청하도장이 함께 몸을 날리며 환음천군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삼 초를 버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감히 천황의 대지를 모욕하다니! 모조리 죽여주마!”
화르르르르.
환음천군의 몸에서 기가 폭사하며 옷자락이 바람도 없는데 찢어질 듯 펄럭거렸다.
그때 이십여 장 떨어진 곳에 있던 청운이 허공으로 솟구쳐서 환음천군을 향해 날아갔다.
앞으로 뻗은 묵검에서는 묵황색 용이 꿈틀거리며 튀어나갈 때만 기다렸다.
청운은 환음천군과 오 장 거리가 되었을 때 공력을 쏟아냈다.
묵검의 검첨에서 묵황색 용이 용음을 토하며 튀어나갔다.
환음천군은 청운이 날아들며 뿜어내는 기운만 보고도 자신에게 뒤지지 않는 고수라는 걸 깨달았다.
“오냐, 이놈! 네놈이 이청운이라는 놈이로구나!”
그도 십성 공력이 실린 쌍장을 뻗으며 마주쳐 갔다.
붉은 기를 띤 장력이 장심에서 폭풍처럼 쏟아지며 밀려갔다.
두 사람 사이에 있던 자들은 가공할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좌우로 날아갔다.
삼 장의 간격. 청운과 환음천군이 쏟아낸 공격이 정면으로 뒤엉키며 충돌했다.
삼 장 허공에 뜬 두 사람은 그 상태에서 삼 초의 공격을 주고받았다.
콰과과광!
귀청을 찢는 굉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직경 십 장 안에 기의 폭풍이 일었다.
그 안에서 싸우던 자들은 해쓱하니 질린 표정으로 물러나기에 바빴다.
그러던 어느 순간!
콰광!
고막을 먹먹하게 만드는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이 양쪽으로 날아갔다.
허공을 훌훌 날아간 두 사람은 십 장 거리를 둔 채 땅에 내려섰다.
청운은 이를 악물고 환음천군을 노려보았다.
분명 천황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그런 자의 무공이 자신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천황의 실력은 저 노인보다 더 강할 터 자신 혼자서 그를 상대할 수 있을까 싶었다.
경악한 것은 환음천군도 마찬가지였다.
천황교의 사대고수 중 하나인 그로선 이제 이십대인 청운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마교 교주 천마 외에는 적수를 인정하지 않았던 그였다.
천황만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가서 일대종사로 군림했을 것이다.
그런데 새파란 애송이 하나 어쩌지 못하고 내상마저 입다니.
이를 악다문 그는 공력을 모조리 끌어올렸다.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그의 전신에서 붉은 혈기가 폭사했다. 혈황과 같은 핏빛은 아니었지만,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청운도 검에 흑마룡과 청마룡의 기운을 십성 싣고 암흑의 대지에서 얻은 검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