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
251화
청운이 도착했을 때는 적이 이미 제남 위소를 휩쓸고 물러간 상태였다.
무림맹과 사도맹 무사들을 비롯해서 위소의 군병들까지, 사방에서 불을 끈다고 난리였다.
여기저기서 부상자를 옮기는 모습도 보였다.
청운은 두 주먹을 으스러지게 움켜쥐었다.
‘제기랄! 동시에 공격했군.’
자신이 빠져나가자 천황교가 본대를 급습한 듯했다.
미끼를 풀어 놓고 걸리기를 기다렸던 것이 아니라, 정예 무사들이 빠져나간 위소 공격까지, 계획을 이중으로 세운 듯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놈들의 숫자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군.’
현재까지의 정보만으로는 천황교 전력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포로로 잡은 자들을 문초해서 대략적으로 알아본 게 전부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자신의 예상보다 더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계획한 작전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청운이 고민하고 있을 때, 한 청년이 청운을 알아보고 급히 달려왔다.
“청운, 천황교의 습격이 있었네.”
오룡의 일인인 남궁룡이었다.
질풍신룡 남궁룡은 이미 후기지수를 넘어서 남궁세가를 대표하는 무인으로 성장한 상태였다.
청운은 남궁룡을 통해서 이곳의 상황을 보다 더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놈들이 무림맹 쪽을 공격했네. 백가장의 남은 인원과 사도맹에서 지원을 왔지. 그때 다시 사도맹 쪽에서 불길이 치솟았네.”
그 바람에 사도맹 무사들이 다시 자신들의 거처로 달려갔고, 무림맹 쪽의 피해는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었다.
“양동작전에 당했군.”
놈들은 물과 기름같이 서로 섞이지 않는 정사 양측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자 바로 물러난 듯했다.
문제는 그 후였다. 양측은 서로 상대 측 때문에 피해가 커졌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백가장 장주님께서 말리셨는데도 이번에는 쉽게 물러서지 않고 있네.”
청운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 어디에 계신가?”
“중앙 백가장 진영에 모여 계시네.”
청운은 고개를 돌려서 불타고 있는 건물을 둘러본 뒤 남궁룡과 함께 백가장이 주둔하고 있는 중앙으로 이동했다.
* * *
“이런 빌어먹을 놈이…… 우리가 어디 네놈들이 겁나서 조용히 있는 건 줄 아느냐?”
“뭣이 어째? 그럼 어디 한번 해보자!”
중앙 막사로 들어서던 청운은 귀를 때리는 고성에 미간을 찡그렸다.
정과 사가 양쪽으로 갈려서 격렬하게 반목하고 있었다.
맹주들끼리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장로들도 서로를 노려보며 언제든 달려들 태세였다.
생각지 못한 상황에 골치가 아픈지, 중앙에 앉아 있는 백철군은 이마에 손을 얹고 있었다.
먼저 청운을 발견한 백철군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녀왔는가?”
그제야 용천관과 양조생도 칼날 같은 눈빛을 거두고 헛기침을 했다.
“험, 진무사가 돌아왔군.”
“어서 오게.”
정파에서 볼 때 청운은 정파인이었고, 사파에서 볼 때는 마존령주 아닌가.
청운은 모두에게 인사를 건넨 후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궁룡에게 들은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로가 네 탓만 했다. 욕이 튀어나오지 않았을 뿐 서로의 감정을 긁어댔다.
‘허. 정말 나이를 어디로 드셨는지…….’
청운은 허탈함에 화가 치밀었다. 적에게 기습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남 탓만 하고 있다니.
“그만하시죠! 실망이 큽니다!”
차갑게 뱉은 청운의 한마디에 실내가 얼음장처럼 변했다. 그의 입에서 북풍한설이 불어대는 듯했다.
사파의 주인도 정파의 주인도, 천하제일인으로 불리는 백철군마저 흠칫했다.
청운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게 말했다.
“천황교의 이간계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당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크흠.”
“험험.”
양측의 수뇌부는 청운의 말에 할 말이 없는지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나?”
백철군이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청운에게 말을 걸었다.
청운도 이번 일을 더 따지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지난 일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놈들을 끌어들여서 수백을 죽였습니다. 우리도 피해가 적지 않게 있었지만, 놈들은 정예 고수들을 많이 잃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우리 측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오! 역시 진무사로군.”
“마존령주, 고생했네.”
정과 사가 저마다 청운을 칭송했다.
청운은 고개를 흔들며 다시 입을 열었다.
“급한 건 천황교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의 결속을 흔들어서 전력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놈들도 우리가 두려운 것이야.”
“맞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기습하지는 않았겠지.”
“이제 더 이상 반목은 안 됩니다. 그동안 안 흘려도 되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렸습니다. 정사가 하나로 똘똘 뭉친다면 놈들이 아무리 강해도 이번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조생과 용천관은 서로를 흘겨보더니 한마디씩 했다.
“뭐, 자네가 그리 말한다면야…….”
“우리도 반목할 생각은 없네.”
청운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공격 계획을 새로 짤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자율에 맡긴 부분이 많았습니다만, 앞으로는 철저히 계획대로 움직여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네.”
“뭐, 그렇게 하지.”
“그리고 거점을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거점을?”
“하긴 이곳은 불에 타서…….”
제갈신기가 나서서 말했다.
“태산에 있는 제갈세가를 이용하면 어떻겠나? 대지가 넓으니 모자라는 시설은 막사를 설치하면 될 것 같은데.”
“너무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네. 천하가 위태로운데 약간의 어려움을 감수하지 못하겠나.”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청운이 결정을 내리자, 즉시 이동이 시작됐다.
* * *
쾅!
우르르릉!
“실패했다고?”
거대한 대전에 폭풍 같은 기세가 휩쓸고 지나갔다.
태사의에 앉아 있던 천황이 바닥을 강하게 내려찍으며 짜증 섞인 호통을 쳤다.
“이런 멍청한 놈들! 사냥하라고 보냈더니, 사냥을 하기는커녕 거꾸로 사냥을 당했단 말이냐?”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기운이 대전을 가득 메웠다.
오체복지하고 있던 한 노인이 힘겹게 말을 꺼냈다.
“천황이시여! 제, 제발 고정하시옵소서. 미끼 작전은 실패했사오나, 놈들 본대를 기습해서 많은 전과를 올렸사옵니다.”
천황의 시선이 방금 말한 노인에게로 향했다.
“그건 잘한 일이야. 하지만 그깟 벌레 같은 놈들 몇 죽인 것과 본 교의 정예가 죽은 것이 어찌 같단 말이냐!”
“너무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놈들이 태산으로 들어온다면, 모조리 지옥으로 보내겠사옵니다!”
“방법은?”
노인은 침을 꼴깍 삼켰다.
‘잘못 말하면 머리가 터져서 죽는다.’
그동안 숱하게 봤지 않은가. 동료들의 머리가 터져나가는 것을.
천황의 성격상 지금 무언가 번뜩이는 계략을 내놓지 않으면 자신 역시 그들의 뒤를 따라갈 것이 뻔했다.
“천황이시여. 이미 간자를 심어두었습니다. 놈들의 움직임부터 놈들의 계획까지 모두 알 수 있사옵니다.”
“그래서?”
천황은 지긋이 노인을 바라보며 어서 말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만일 마음에 드는 말이 흘러나오지 않으면 노인의 머리통을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노인이 다급하게 말했다.
“놈들이 들어오는 길에 막강한 정예를 매복시켰다가 일거에 놈들을 쓸어버릴 것이옵니다.”
“그래,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흑령사신과 귀불사의 혈승들이 전멸당했지.”
천황의 눈빛이 점점 더 차가워졌다.
노인은 날벼락이 떨어지기 전에 재빨리 말을 이어갔다.
“소천황과 혈사천황군이 출진할 준비를 마쳤사옵니다. 흑령사신과 귀불사의 혈승들이 없다 해도 놈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사옵니다.”
“응? 휘아와 혈사천황군의 연공이 벌써 끝났단 말이냐?”
“예,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그들의 경지가 혈룡단에 의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사옵니다. 천하에 소천주님과 혈사천황군을 막을 자들은 아무도 없사옵니다.”
그제야 천황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등받이에 붙였던 등을 뗀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휘아와 혈사천황군을 봐야겠다. 얼마나 강해졌는지 내 직접 확인할 것이다.”
“예!”
* * *
중원 오악(五岳)의 첫째인 태산은 동악(東岳)으로 불린다.
중원 전역에 퍼져 있는 명산에 비해서 높이는 그리 높지 않은 태산이지만 유서 깊은 곳이다.
동악대제 혹은 동악신령으로 불리는 태산부군을 가리키는 산이 태산이다.
태산부군의 딸인 벽하원군을 모시는 옥황묘가 높은 봉오리에 있다. 매년 삼월에 열리는 묘회(廟會)에는 중원 전역에서 수십만이 모인다.
도가에서 내려오는 민간 설화에 따라서 역대 제왕들도 태산에 올라 하늘에 제를 지냈다.
한무제가 심었다는 대묘의 측백나무가 유명하고 진시황제의 오대부송(五大夫松)도 유명하다.
태산을 오르는 여러 관문 중 중천문을 지나서 빠르게 산을 오르는 이들이 보였다.
향화객으로 보이는 이들이었지만 그들의 발놀림은 일반 향화객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고 경쾌했다.
중천문을 지난 무리는 빠르게 운보교(雲步橋)를 지나 오송정(五松亭) 앞에 다다랐다.
선두의 사내가 가던 길을 멈추고 살짝 고개를 들었다.
진시황제가 폭우를 피했다는 오대부송이 눈에 들어왔다.
사내의 눈이 빛났다. 이내 사내가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기자 일행들이 뒤를 따랐다.
한참을 지나자 용문이 보였다 십 리 정도를 더 올라가면 남천문이 나타난다.
예의 사내는 다시 고개를 들어서 남천문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일기비영 오영상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무언가 거슬리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응?’
용문의 한쪽에 지어진 암자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일반적인 사내가 아니었다.
‘무공을 익힌 고수다.’
겉모습은 평범해 보였다. 발걸음도 일반인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버릇처럼 일곱 번째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칠성둔형미리보.’
오영상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북두칠성을 모태로 한 보법에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네 번째 발걸음과 일곱 번째 발걸음이 밟을 때 내딛는 발의 위치가 살짝 틀어진다.
사내는 네 번째 발걸음은 표가 나지 않았지만 일곱 번째 걸음에서 표가 났다.
이내 오양상은 눈동자를 살짝 돌려서 용문 곁에 있는 산문을 보았다.
‘찾은 건가?’
자신이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곳이 놈들의 본거지와 관련된 곳이라는 걸.
문제는 놈들의 본거지라고 치기에는 규모가 작다는 것이다.
‘어디 동굴이라도 파고 두더지처럼 숨어 있는 것인가?’
안을 들여다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산문 안으로 들어서기도 어려웠다. 산문의 입구를 도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오영상은 수하 중 한 명에게 지시를 내렸다.
-돌아가서 이곳이 의심스럽다는 것을 알려라.
-예, 하오시면 안을 살펴보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지. 그냥 돌아가서 보고했는데 아니면 어떻게 하겠느냐.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사내가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서더니 산 아래로 움직였다. 그 뒤를 다른 한 명이 따라붙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둘이 움직이는 것이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오영상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한편, 오영상 일행이 사라지자, 용문의 한쪽 나무 그늘 뒤에서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는 차가운 눈으로 산 아래와 위를 한 차례 보더니 어디론가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