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
250화
한편, 청운 덕분에 흑령사신의 추적을 뿌리친 제갈세가 사람들은 앞에서 날아 내리는 자들을 보고 급히 발걸음을 멈췄다.
숫자는 백여 명. 괴이한 행색을 한 자들이었다. 머리를 깎은 걸 보면 승려들 같은데 살기가 철철 흘러넘쳤다.
제갈신우는 그들을 보고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태산 깊숙한 곳에 있다는 귀불사의 승려들?’
“아미혈타불! 시주들을 지옥으로 인도해 주겠노라!”
승려 중 하나가 괴이한 불호를 외고는 몸을 훌쩍 날렸다.
다른 승려들도 뒤이어 몸을 날리며 제갈세가 사람들을 공격했다.
혈황과 마존령은 저 앞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무기를 뽑았다.
멀리서 볼 때는 어느 쪽이 적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워지자 적아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중놈들을 쳐!”
혈황이 소리치고는 몸을 날렸다.
마존령 대원들도 망설이지 않고 공격에 나섰다.
제갈세가 사람들은 지원 무사들이 나타난 것을 알고 사기가 충천했다.
“지원군이다!”
“저 괴상한 중놈들을 쳐라!”
혈황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혈승들을 몰아붙였다.
“젠장, 내가 정파 놈들을 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다니.”
절로 푸념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더없이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팡!
허공을 찢어발기는 폭발음과 동시에 혈승 서너 명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혈승들은 혈황의 가공할 무공에 대경실색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혈황은 어둠이 자신을 가려준다는 걸 알기에 마음껏 무공을 펼쳤다.
비록 혈황신공을 직접적으로 펼치진 못하지만, 변형된 혈황신공도 이 정도 놈들에게는 공포를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 * *
그 시각.
청운은 적절한 거리를 두고서 달렸다.
흑령사신들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청운을 보며 욕을 해댔다.
“이놈! 비겁하게 어딜 도망가느냐!”
“찢어죽일 놈! 네놈도 남자면 맞서 싸우자!”
하지만 청운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한쪽 계곡으로 꺾어졌다.
흑령사신들도 그를 따라서 계곡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뒤쪽에서 여유 있게 따라가던 웅산이 다급히 소리쳤다.
“멈춰라! 계곡으로 들어가지 마!”
하지만 그의 목소리 여운이 다 가시기도 전, 계곡 양측에서 무사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그뿐이 아니었다.
도망치듯 달리며 미끼 역할을 하던 청운이 돌아서서 흑령사신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어디 다시 한번 해보자! 이번에는 확실하게 염왕 앞으로 보내주마!”
계곡 양쪽에서 쏟아져 나온 자들은 청운이 요청해서 은밀하게 달려온 백야대와 백가장의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인정사정 두지 않고 손을 썼다.
흑령사신 중 백여 명이 순식간에 죽어갔다.
웅산의 명령을 듣고 후퇴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퇴로가 막힌 상태였다.
청운과 백야대, 백가장 고수들은 그들을 가운데 두고 말 그대로 가두리 사냥을 했다.
반각도 지나지 않아서 흑령사신이 대부분 쓰러지고, 살아남은 자는 두어 명밖에 없었다.
그 중 하나, 웅산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청운을 노려보았다.
“이런 빌어먹을…….”
“낚시는 당신들만 할 수 있는 게 아냐.”
웅산은 이미 가슴이 쩍 갈라진 상태였다.
오기로 버티고 서 있을 뿐이었다.
“먼저 가서 기다리면, 천황이라는 미친 작자가 따라갈 거다.”
“크크크크, 어리석은 놈. 네놈이 강한 것은 인정하마. 하지만 그 실력으로는 천황님의 옷자락도 건들지 못해.”
“과연 그럴까? 내가 미처 말을 못 했는데, 나 역시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그래야 천황교 놈들이 너와 네 수하들의 시신을 보고 오판을 할 테니까.”
청운이 냉랭히 말하고는 차갑게 웃었다.
웅산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교활한…….”
“그래도 너희들보다는 나아. 이제 그만 염라대왕에게 가봐!”
쉬아아앙!
청운의 검이 횡으로 길게 그어졌다.
웅산의 목에서 핏줄기가 뿜어지는가 싶더니, 앞으로 꼬꾸라졌다.
“너무 쉽게 죽인 거 아니냐? 심문을 하면 놈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는데.”
백야대주가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청운은 고개를 저었다.
“천왕에게 미친놈들입니다.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이런 놈들에게 정보를 잘못 얻으면 얻지 않는 것만 못할 수도 있고요.”
“하긴…….”
“이제 마존령 쪽을 처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가자. 이곳 처리는 백가장 애들에게 맡기면 되니까.”
* * *
혈황이 한쪽에서 혈승들을 때려잡고 있을 때, 마존령 대원들도 전력을 다해서 혈승을 상대했다.
혈황에게나 약하게 보일 뿐 혈승들의 무공은 마존령 대원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특히 그들 중 몇 명은 오대사령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용화청도 혈승 하나를 상대하고 있었는데, 새삼 자신의 무공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도 젊은 층에서는 손가락에 들어가는 고수였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고수도 많았다.
콰과광!
선장과 검이 충돌하면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뒤로 두어 걸음 밀려난 용화청은 이를 악물고 재차 공격을 가했다.
그의 검에서 뻗어나간 검강이 다섯 줄기로 갈라지며 혈승에게 밀려갔다.
“헛! 이놈이……!”
예상치 못한 공격인 듯 혈승이 욕을 하며 선장을 팔랑개비처럼 휘돌렸다.
용화청은 눈빛을 빛내며 찰나의 빈틈을 노렸다.
자칫하면 자신이 다칠 수도 있었지만,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았다.
그렇게 십여 초식을 겨룰 때쯤, 혈승의 방어막에 실낱같은 틈이 벌어졌다.
이를 악다문 용화청은 그 틈 사이로 검을 밀어 넣으며 십 성 공력을 쏟아냈다.
쩌정! 쾅!
“으헉!”
선장이 옆으로 튕겨나가며 혈승의 가슴이 쩍 갈라졌다.
뒤이어 휘두른 검에 팔마저 하나 잘려나갔다.
용화청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마지막 일격을 가해서 혈승을 쓰러뜨렸다.
“헉헉헉, 이겼어.”
몸은 힘들었지만 끝내 승리를 쟁취했다.
용화청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피어났다.
상대의 실력은 자신이 마존령에 들어올 때보다 배는 더 강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마존령에서 지내는 사이에 배 이상 강해졌다는 말이었다.
이제는 사도맹의 후계자로서 떳떳하게 나설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그가 미처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그가 상대한 혈승은 귀불사의 주지인 독심마불 바로 밑의 이인자였다.
그가 짐작한 것보다 더 강한 고수를 상대해서 이긴 것이다.
“조심해!”
한쪽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잠깐 긴장이 풀어졌던 용화청은 화들짝 놀라서 몸을 돌리며 검을 쳐냈다.
땅!
동시에 한 사람이 그의 옆으로 미끄러져 오더니 칼을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막 용화청을 공격하려던 혈승이 허리가 절반쯤 갈라진 채 쓰러졌다.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
냉혈마도 육송이 핀잔을 주었다.
용화청은 할 말이 없었다.
승리에 취해서 빈틈을 보이다니. 멍청한 짓이었다.
“고맙소!”
용화청은 육송을 향해 소리치고는 다른 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육송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칼을 고쳐 쥐었다.
“이제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제법 부드러워졌는데?”
그 와중에도 혈전은 끊이지 않았다.
씩, 웃은 육송은 칼을 휘두르며 혈승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대사령 중 가장 조용한 사람을 꼽으라면 모두가 고한을 꼽았다.
그는 본래 중원인이 아닌 데다 무기도 구려검을 사용했다.
공격할 때는 벼락같고 방어할 때는 철벽이 따로 없었다.
이번 싸움에서도 그는 입 한번 열지 않고 혈승을 셋이나 쓰러뜨렸다.
쉬아악!
“크억!”
고한은 상대의 심장을 꿰뚫은 검을 빼내며 옆으로 흩뿌렸다.
검에 맺혔던 핏방울이 허공으로 튀었다.
‘이제 끝이 얼마 남지 않았군.’
사문의 복수를 하기 위해 마존령에 몸을 담았다.
처음에만 해도 가능할까 싶었는데, 어느새 철천지원수가 코앞에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깨달은 것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복수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청운과 함께라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는 자신의 원수를 갚아준다면 이청운의 하인으로 평생을 살 생각이었다.
고한은 검을 쥐고 다음 상대를 향해 검을 뻗었다.
그때였다.
“이 대인이다!”
제갈세가 사람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마침내 이청운이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적을 물리쳤다는 뜻이기도 했다.
혈전장에 내려선 이청운은 묵검을 휘둘러서 혈승 셋을 단 일검에 베어버렸다.
그리고 혈황에게 한 소리 먹었다.
“그놈은 내 상대인데 왜 네가 베는 거냐?”
“누가 베면 어떻습니까? 여태 싸움을 못 끝내고 뭐 합니까?”
“이놈들이 어디 보통 놈들인 줄 아냐?”
“제가 상대한 놈들도 무지 강한 놈들이었단 말입니다.”
두 사람은 말다툼(?)을 하면서도 장력을 날리고 검을 뻗어서 혈승 셋을 꺼꾸러뜨렸다.
백야대주가 그 꼴을 보고 빽 소리쳤다.
“지랄 말고 적이나 상대해라!”
‘나이도 어린놈이……!’
혈황은 불만이 많았지만 입을 꾹 다물고,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혈승을 노려보았다.
자신이 백야대주에게 욕먹은 게 다 저놈 때문인 듯했다.
그는 공력을 십 성 끌어올려서 혈승을 향해 뻗었다.
“죽어라, 이놈!”
쾅!
“케엑!”
혈황은 단숨에 혈승을 날려버리고 몸을 돌렸다.
어둠 속을 노려보던 그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제기랄, 저놈에게 빼앗겼네.’
청운이 독심마불과 대치하고 있었다.
“놈! 설마 함정이었더냐?”
독심마불은 이제야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제야 그걸 깨닫다니, 너무 둔한 것 아닌가?”
청운은 독심마불을 놀리며 검을 가슴 높이로 들었다.
“오냐, 이놈! 그럼 네놈이라도 죽여야겠다!”
독심마불은 눈을 부라리며 선장을 들었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군.”
청운은 냉랭히 말하고는 땅을 박차고 독심마불을 향해 날아갔다.
시간을 더 끌어봐야 누군가가 다칠 가능성만 커질 뿐. 그는 십성 공력을 실어서 검을 펼쳤다.
앞으로 뻗은 그의 묵검에서 벼락같은 광채가 솟구쳤다.
독심마불도 전력을 다해서 맞섰다.
하지만 그가 비록 천황교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라 해도 현경의 경지마저 넘어선 청운의 상대는 아니었다.
콰과과광!
연이어 굉음이 터져 나오고, 독심마불의 몸뚱이가 뒤로 훌훌 날아갔다.
청운은 비천무영신법을 펼쳐서 독심마불을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쉬아악!
묵검이 어둠을 가른 순간,
서걱!
독심마불의 목이 잘려나갔다.
단숨에 독심마불을 처리한 청운은 혈전이 벌어진 전장을 둘러보았다.
혈황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운은 그의 마음을 알고도 모른 척했다. 꼭 어린애가 손에 쥔 당과를 빼앗겼을 때의 표정과 같았다.
그는 혈황이 말을 걸기 전에, 망연한 모습으로 서 있는 제갈신우에게 갔다.
“총군사께 연락받고 달려왔는데, 늦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갈신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덕분에 아이들이 살았네.”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제갈세가의 젊은이들 수백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뻔했다.
그 사실을 명석한 그가 왜 모를까.
“고맙네.”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
“별말씀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청운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부상자부터 치료하고 위소로 돌아가지요.”
“알았네. 그렇게 하세.”
* * *
마존령과 백야대, 백가장, 제갈세가 사람들은 부상자들과 함께 제남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저 멀리 위소가 멀리 보일 때, 청운이 눈을 부릅떴다.
위소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감히!”
쾅!
청운은 바닥을 강하게 차고는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갔다.
“젠장! 다른 놈들이 위소를 쳤어!”
혈황과 백야대, 백가장 무사들 역시 몸을 날려서 청운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