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
249화
제갈신기도 그걸 모르지 않았을 텐데 왜 말리지 않았을까?
청운이 전령에게 급히 물었다.
“총군사께서 다른 말은 없으셨소?”
“쫓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제갈세가의 사람들이라 합니다. 그래서 이번 구출대에 제갈신우 장로께서도 직접 나섰습니다.”
그제야 청운은 제갈신기가 막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제갈세가는 크게 두 곳으로 나뉜다.
본가와 속가.
호북성 융중산에 본가로 두고 이곳 산동성 태산에는 속가가 자리했다.
속가는 본가에서 떠난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만들어졌는데, 공부(孔府)와 공자묘가 태산에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아마 이번에 쫓기는 자들도 그들일 가능성이 컸다.
문제는 이후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야 하나, 아니면 기다리면서 상황을 지켜보아야 하나.
만약 추가 지원대를 보낸다면 저들의 음모에 줄줄이 말려드는 꼴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구경만 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가가, 왜 그러세요? 혹시 지원대가 저들에게 당할까 봐 그러세요?”
가끔 엉뚱한 일을 벌여서 그렇지 백청청도 두뇌가 뛰어난 여자였다. 그녀는 말 몇 마디 듣기만 하고 상황을 짐작했다.
“그렇소. 문제는 그들마저 미끼가 되었을 경우요.”
청운은 자신의 고민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백청청이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그래도 구하러 가야 하지 않겠어요? 당할지 모르는 걸 뻔히 알면서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나 역시 같은 마음이오. 그런데 놈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게 뻔해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소.”
“그건 나중 일이고요. 몰랐다면 모를까, 알면서도 가지 않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 동료가 당할 것을 알면서도 또 다른 피해를 염려해 놔둔다는 것은 비겁한 변명에 불과했다.
“알았소.”
자리에서 일어난 청운은 제갈신기가 보낸 전령에게 말했다.
“총군사께서 따로 남기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안 그렇소?”
군사각 전령은 감탄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행운을 빈다며, 조심하라 하셨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입안이 씁쓸했지만, 결정을 내린 이상 한시가 급했다.
“알았소. 가서 그리할 거라고 말씀드리시오.”
“예, 대인.”
청운은 전령이 나가자 밖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가서 마존령 오대사령을 부르시오!”
“예, 령주!”
대답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그리고 마침 혈황이 들어왔다.
“무슨 일인데 그러냐?”
“천황교 놈들이 낚시를 시작했습니다.”
“낚시?”
청운은 간략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혈황의 이마에 골이 파였다.
“빌어먹게 됐군. 멍청한 놈들이 제멋대로 움직여서 제대로 걸린 것 같은데?”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일이 문제군.”
“그렇습니다.”
“그럼 놔둬.”
“예?”
“지금으로선 그들을 희생시키는 게 피해를 줄이는 일이야.”
청운도 모르지 않았다.
그럴 수 없다는 게 문제일 뿐.
그리고 그에게는 다른 생각도 있었다.
“놈들의 계획을 역으로 이용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역으로? 어떻게?”
“무림맹 무사들을 미끼로 만드는 거지요.”
무서운 말이었다. 아마 군사각의 전령이 있었다면 펄쩍 뛰었을 것이다.
무림맹 지원대 삼백여 명을 미끼로 사용하겠다는 말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혈황은 눈에서 붉은빛을 번뜩였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청운이 혈황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밖에서 용화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령주, 부르셨습니까?”
“들어오시오.”
문이 열리고 오대사령이 들어왔다.
청운은 빠르게 오대사령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주의를 주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오. 절대 무리하지 말고 신호와 함께 움직이시오.”
오대사령의 눈빛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듣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느낌이 들 정도의 계획이었다.
“알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럼 조용히 대원들을 집합시키시오.”
“예, 령주.”
잠시 후, 청운은 마존령과 함께 제남 위소를 벗어났다.
* * *
청운은 정파 무인들의 흔적을 추적했다.
수백 명이 움직인 만큼 확실할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간 방향이 뻔하다 보니 추적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한편, 태산으로부터 흘러내린 계곡물이 흐르는 강가에서 대규모 추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잡아라!”
“한 놈도 놓치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살기 띤 목소리가 강가에 울려 퍼졌다.
강변을 따라서 도주하는 사람의 숫자는 백여 명. 그 뒤를 수백에 달하는 무인들이 추격하고 있었다.
도주하는 자들은 간혹 후미에 처진 자들이 돌아서서 대항했지만 몇 초식 펼쳐보지도 못하고 죽어갔다.
그래도 그 짧은 시간에 도주하는 사람들은 몇 걸음이나마 더 달려갈 수 있었다.
그런데 강변의 추격전을 멀리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마존령과 함께 위소를 나온 청운이었다.
능선에 올라선 청운은 어둠으로 물든 강가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군.’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덕분에 아직 전멸을 당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청운은 바로 달려가지 않고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낚시는 제대로 바늘을 삼켰을 때 당겨야 하는 법이다.
밑밥이 약간 떨어져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도주하는 선두의 무사들이 이십여 장 안으로 들어왔을 때였다.
청운이 몸을 날리며 긴 장소성을 터트렸다.
우우우우!
추적자들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눈을 빛냈다.
“왔군.”
뒤쪽에서 지켜보던 한 장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청운은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로 내려서며 쌍장을 내리쳤다.
강력한 장력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슈슝!
콰콰쾅!
강가의 모래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추격자들을 덮쳤다.
도망치던 이들 중 청운을 알아본 자들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진무사다!”
“저희를 구하러 오셨군요!”
청운은 후방에서 추격을 막고 있던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장로님! 어서 도망치십시오. 이곳은 제가 맡겠습니다.”
후방에서 적을 막고 있던 사람은 제갈신우였다.
제갈신우는 보이는 사람이 달랑 청운 혼자인 걸 알고 당황한 표정이었다.
“설마 혼자 온 것인가?”
“예, 급하다 보니 먼저 왔습니다.”
청운의 대답에 제갈신우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지원무사가 왔다 해서 좋아했거늘, 달랑 혼자 오다니.
청운이 강한 것은 알고 있지만, 적 역시 한 명 한 명이 고수 아닌 자가 없었다.
그렇다고 머뭇거릴 수도 없는 일.
제갈신우는 제자들을 이끌고 뒤로 물러섰다.
그때 다가오던 적 중에서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어둠 속에서도 환히 보이는 백색 수염을 기른 자였다.
은염공(銀髥公) 웅산(熊山). 산동 일대에서 내로라하는 고수였다.
“그대가 이청운인가?”
“내가 꽤나 유명해졌나 보군. 도적들도 이름을 알고 있으니.”
그 말에 웅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맞군. 그럼…… 죽어야지.”
바닥을 차고 몸을 날린 그가 청운을 공격했다.
은빛 광채가 허공에 번쩍이며 청운의 전신을 난도질했다.
따다다다당!
청운은 몸을 틀며 상대의 검을 튕겨냈다.
동시에 적들 중 십여 명이 청운을 향해 살수를 펼쳤다.
슈슈슈슈슝!
쉐엑 쉐에엑!
수십 수백 가닥의 검기와 검강이 청운을 뒤덮었다.
청운은 냉소를 지은 채 적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순간, 그의 묵검에서 휘황한 묵광이 폭사했다.
떠더더덩! 콰광!
수십 줄기 묵광이 적진을 유린했다.
살수를 펼치며 청운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던 자들이 사방으로 날아가서 쓰러졌다.
비명이 거의 동시에 터져 나오고 어둠을 가르며 피가 튀었다.
웅산은 그 광경을 보고 적임에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놈에 대한 소문이 축소된 것이었구나!”
누가 있어 흑령사신(黑靈死神)을 상대로 저런 무위를 보이겠는가. 아마 천황교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도 쉽지 않을 것이다.
웅산은 손을 번쩍 들어서 잠시 공격을 멈추게 했다.
“멈춰라!”
그의 명령에 흑령사신들은 일사불란하게 뒤로 물러서며 청운을 견제했다.
청운은 검을 사선으로 들고 오연히 서서 웅산을 바라보았다.
웅산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검을 놓고 항복한다면 살려주마. 천황께 충성을 맹세하면 대대손손 영광이 뒤따를 것이다.”
“천황을 잡으러 온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천황께서 마음만 먹으면 네놈이 따르는 황제를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 네놈을 어여삐 여겨서 하는 말이니 잘 생각해 봐라.”
“개소리 그만하고 목을 내밀어라.”
“그놈,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설마 먼저 간 자들이 무사할 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네놈들 일행이 또 있단 말이냐?”
“크크크, 당연하지. 놈들은 이미 독심마불이 이끄는 혈승들에 의해서 한줌 핏물로 화하고 있을 것이다.”
청운도 입꼬리를 비틀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후, 그렇군. 그런데 당신은 내가 진짜 혼자 왔을 거라고 생각하나?”
“뭐?”
“걱정은 내가 아닌 당신들이 해야 할 것 같은데.”
청운의 말에 웅산의 아미가 와락 구겨졌다.
그 순간, 청운이 몸을 날리며 일검을 내질렀다.
크아아앙!
청운의 검이 검명을 터트리면서 용을 닮은 강기가 튀어나왔다.
“헉!”
웅산이 대경하며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청운의 비천무영신법은 그가 피하기에는 너무나 빨랐다. 그리고 묵검에서 펼쳐진 흑마룡의 기운은 천하에 맞받을 자가 거의 없었다.
콰우우우우!
일직선으로 뻗어 나간 검강이 웅산을 덮쳤다.
“으헛!”
웅산은 기겁하며 강기를 펼쳐서 맞섰다.
옆에 있던 자들도 합공하며 대항했다.
“흐아아아앗!”
청운은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흔들었다.
거대한 용을 닮은 강기가 꿈틀거리며 웅산과 흑령사신 십여 명을 휘감았다.
환우무상검의 폭멸이었다.
콰아아아아!
거대한 검기의 그물이 폭발하듯이 터져나갔다.
웅산과 함께 합공을 하던 자들은 청운의 공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십여 명이 사지가 잘려서 튕겨나갔다.
떠더덩! 쾅!
“크억!”
“으아악!”
그러나 동료의 죽음에도 다른 흑령사신들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공격에 가담했다.
“놈을 죽여라!”
청운의 검에서 겨우 벗어난 웅산이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청운에게 십여 명이 죽임을 당했지만 아직 남은 사람이 족히 이백은 되었다.
그들은 분노가 담긴 눈빛으로 청운을 노려보며 공격을 강화했다.
청운은 비천무영신법과 은신은형사신의 신법을 연달아 펼치며 흑령사신을 상대했다.
흑령사신의 무위는 청운조차 긴장해야 할 정도로 강했다.
비록 십여 명을 쓰러뜨리긴 했지만, 흑마룡의 기운을 끌어올려서 환우무상검을 펼치지 않았다면 힘들었을지도 몰랐다.
그러한 자들이 이백여 명이나 되었다.
정식으로 싸운다면 무림맹이나 사도맹의 무사 일천 명이 대항한다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듯했다.
청운은 다시 환우무상검을 펼쳐서 대여섯 명을 베어내고는, 적이 멈칫한 사이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흑령사신들은 청운이 도주하려는 줄 알고 지체 없이 쫓아갔다.
“잡아!”
“놓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