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
248화
맹천기가 묻고는 청운의 두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사도맹 쪽도 무림맹만큼이나 혈황에게 원한이 진 문파가 많았다. 아마 그가 혈황의 제자라고 하면 시끄러워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청운으로서도 이참에 확실하게 매듭짓는 게 나을 듯했다.
혈황이 폭발해서 엉뚱한 일을 벌이기 전에.
“대답하기 전에 저도 하나 묻지요.”
“말해보게.”
“만약 제가 오백 년 전의 천혈마종이 남긴 무서를 얻어서 익혔다면, 제가 혈혈마종의 제자입니까, 아닙니까?”
“그건…….”
“제가 마인입니까, 아닙니까?”
“……”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수백 년 전에 사라진 무공으로 판단합니까, 아니면 현재의 심성이나 행동으로 판단합니까?”
“물론… 현재가 중요하지.”
“신혈교를 칠 때, 운청은 신혈교의 고수들을 상대해서 수많은 사도맹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맞습니까, 아닙니까?”
“으음, 그건 맞는 이야기네.”
“맹주님과 부맹주님. 운청이 사도맹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지금은 그것만 생각하시고, 나머지는 나중에 따지시지요.”
용천관이 의자의 손잡이를 탁탁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자네 말, 잘 알아들었네. 그래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군. 그 청년이 진짜 혈황의 제자인가?”
청운도 확실하게 대답했다.
“제 이름을 걸고 분명히 말씀드리지요. 운청은…… 혈황의 제자가 아닙니다.”
혈황 본인이지.
그로부터 반 시진 후.
청운은 백철군과 백가장 장로들 앞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백철군은 청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확인을 받았다.
“정말 그가 혈황의 제자가 아니란 말이지?”
“절대! 혈황의 제자가 아닙니다. 제 목을 걸죠.”
청운이 목까지 건다는데 뭐라고 하랴.
더구나 청운의 눈에서 한 점의 거짓말도 느껴지지 않았다.
백철군과 백가장 장로들도 의심을 대부분 거두어들였다.
운청이 혈황의 제자가 아니라는 소문이 연합세력 안에서 빠르게 돌았다.
무림맹의 수뇌부도 당연히 그 소문을 들었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이청운이 목까지 걸었다고 한다.
그 말을 의심하면서 따질 만큼 간이 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사도맹과 따로 작전을 펼친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었다.
제갈신기가 청운을 찾아온 것은 다음 날이었다.
“미안하게 됐네.”
제갈신기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청운은 그를 탓할 마음이 없었다.
“총군사께서 무슨 잘못입니까? 저는 그저 무림맹을 이끄는 분들의 편협한 마음이 실망스러울 뿐입니다.”
냉랭한 청운의 말에 제갈신기도 할 말이 없었다.
“어쨌든 정보 교환만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약 그것까지 제동을 건다면…… 그 일에 나선 자들을 모두 역도로 처단할 겁니다.”
제갈신기의 눈이 커졌다.
청운의 냉량한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걱정 말게. 그 일은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관철시킬 것이네.”
* * *
산동성 태산.
천황교는 오랜 세월 태산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모두 네 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네 곳이 모두 천황교와 관련된 단체라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 곳은 사찰이고, 한 곳은 도관이고, 두 곳은 학사들의 터전이었다.
그들 네 곳은 산봉우리 하나를 중심으로 사방을 점한 채 세워져 있었는데, 규모가 상당히 컸다.
그 때문에 태산을 조사하던 무림연합의 무사들도 천황교의 정확한 총단을 알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백야대 대원들이 태산서원에 드나드는 학사들에게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감시한 덕분에 실마리를 잡아낸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뿐, 그들이 정확히 천황교 무리인지는 확신을 하지 못했다.
동쪽에 있는 태산서원도 그 네 곳 중 하나였다.
태산서원의 규모는 큰 건물이 이십여 채에 달했다. 대략 잡아도 오백 명은 기거할 수 있을 듯했다.
“조장, 오가는 자를 하나 잡아서 알아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멀리서 태산서원을 바라보던 백야대 대원 하나가 백야삼호를 향해 말했다.
백야삼호는 고개를 저었다.
“놈들도 우리가 조사하고 다닌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를 드러내는 건 너무 위험해.”
“지금쯤 황하에 다가왔을 텐데, 이러다 총단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태산에 들어오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백야삼호가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내가 들어가서 직접 확인한다. 너희는 대기해.”
“조장?”
“확인만 하고 나올 것이다. 빠져나오려고 마음먹으면 천하의 누구도 나를 막지 못해.”
백야대 대원도 그 말은 인정했다.
백야대 조장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었다.
대문파의 장문인을 일대일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강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실술과 경공이 탁월해야만 했다.
백야대가 공포로 군림해온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조장.”
백야삼호는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돌아섰다.
그때였다.
태산서원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응? 뭐지?”
처음에는 수십 명 정도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많아졌다.
그들은 곧장 북쪽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이런! 황하를 건너오는 사람들을 선제공격할 생각인 것 같군.”
어쨌든 그로써 한 가지 의문이 풀렸다.
“역시 천황교의 본거지인 건 분명한 것 같군요.”
“그런 것 같다. 가자! 저들보다 먼저 가서 알려야 한다.”
백야삼호가 말하고는 은신처에서 일어났다.
바로 그때,
“어딜 가시려고? 좀 더 구경하시지.”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강력한 기운이 몰려들었다.
백야삼호는 자신들이 적의 포위망에 걸려들었다는 걸 알고 조원들에게 빠르게 명을 내렸다.
“각기 최선을 다해서 이곳을 빠져나가라!”
백야대원 다섯은 망설임도 없이 신형을 날렸다.
“흥! 어림없다! 잡아라!”
조금 전의 냉랭한 목소리의 주인이 코웃음 쳤다.
다가오던 강력한 기운들이 백야대원들을 덮쳤다. 포위망을 빠져나가려던 백야 대원 셋이 적의 공세에 걸려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백야삼호와 다른 두 대원은 그들을 놔둔 채 순식간에 십여 장 밖에 내려섰다.
옆에서 동료가 당하더라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 것이 그들의 탈출에 대한 기본 철칙이었다.
포위망을 구축했던 자들도 설마 그들이 동료를 놔두고 빠져나갈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 멈칫거렸다.
“쫓아!”
나타난 자들 중 사십대 중년인이 악을 쓰며 외쳤다.
* * *
무림연합 세력은 셋으로 나누어져서 황하를 건넜다.
무림맹이 먼저 건너고, 백가장과 청운 일행이 건너고, 사도맹이 마지막에 건넜다.
황명으로 수십 척의 배가 동원된 덕분에 삼천 명 넘는 인원이 어렵지 않게 건널 수 있었다.
“마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이 천황교와 손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황하를 건넌 청운이 혈황에게 물었다.
혈황이 그 말을 듣고 코웃음 쳤다.
“마교? 미쳤느냐? 그 자존심 강한 검둥이들이 천황교와 손을 잡게?”
“천하를 노린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닙니까?”
“내가 아는 마교는 절대 자신의 위에 누가 있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천황교가 마교의 밑에 들어갈 거라 보느냐?”
“절대 그럴 리 없죠.”
“그러니까 걱정 붙들어 매.”
청운은 전에 혈기룡이 자라나는 동굴 입구에서 마주쳤던 중년인이 떠올랐다.
자신이 봤던 누구보다 강한 자였다.
아마 그자가 손에 인정을 남겨두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그때 죽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자가 펼친 무공이다.
‘천마군림보였어.’
나중에서야 그가 펼친 무공이 마교의 교주만이 익혔다는 천마군림보란 걸 알았다.
자신이 그 무공을 흉내 냈더니 많은 사람이 이리 말한 것이다. 천마군림보와 비슷하다고.
그렇다면 그 중년인이 마교의 교주일 가능성이 컸다.
‘좌우간 마교가 천황교와 손을 잡지 않았다면 다행인데…….’
황하를 건넌 무림연합 세력 무사들은 제남 서쪽에 있는 황군의 위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수천 명이 함께 쉴 수 있을 만한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해가 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밤을 그곳에서 보내고 태산으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곳에서도 일찍 도착한 무림맹 무사들과 늦게 도착한 사도맹 무사들은 백가장 무사들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갈라졌다.
청운은 씁쓸했지만 굳이 그 일을 따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터졌다.
“령주, 무림맹과 사도맹 무사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합니다.”
보고를 들은 청운은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젠장 결국 문제가 발생하는군.’
청운이 달려갔을 때는 양쪽의 무사들이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더군다나 중상을 입었는지 여러 명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당장 멈추시오!”
우르르릉!
청운의 사자후에 막 상대를 공격하려던 자들이 우뚝 멈췄다.
청운이 성큼 걸음을 옮기며 외쳤다.
“누가 동료에게 검을 겨누라 했소?”
양측의 무사들이 고개를 돌리며 눈치를 봤다. 청운은 그들을 나무라기 전에 급한 불부터 껐다.
“당장 부상자부터 돌보시오! 어서!”
“예!”
서슬 퍼런 청운의 호통에 무사들 몇 명이 나와서 부상자를 옮겼다.
청운은 누굴 따로 짚어서 벌을 줄 수도 없었다.
수십 명이 관련된 데다 싸움을 시작한 자조차 가려낼 수가 없었다. 이 사람 저 사람 말이 다 다른 것이다.
청운은 어렴풋이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혹시 천황교의 잔당들이 이간질을……?’
어느 정도는 우려했던 상황이었다. 천황교의 잔당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하기에는 그동안 그들이 심어놓은 간자의 뿌리가 너무나 깊었다.
“다음에 또 동료끼리 싸운다면, 양쪽 모두에게 벌을 내릴 것이니 명심하시오!”
주위에 있는 무사들에게 호통을 친 그는 옆을 돌아다보았다.
무림맹주 양조생과 사도맹주 용천관이 저만치 나와 있었다.
“두 분 맹주님, 저와 잠시 이야기 좀 하지요.”
청운을 양조생과 용천관을 앞에 두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아무래도 천황교의 간자들이 숨어서 이간질을 시키는 것 같습니다.”
두 절대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얼마든지 가능한 사실이라는 걸 알고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필패입니다. 하여 양쪽의 거처를 좀 더 바깥쪽으로 옮길 생각입니다.”
“그거라면 나도 찬성이네.”
당장 용천관이 먼저 동의했다.
양조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을 것 같구먼.”
결국 양측의 거처가 위소 양쪽 끝으로 옮겨졌다.
무림맹의 거처와 사도맹의 거처가 오 리나 되어서 마주칠 염려가 없었다.
그런데 석양이 질 무렵, 무사 하나가 무림맹 쪽으로 허겁지겁 달려왔다.
잠시 후, 휴식을 취하던 무림맹 무사 수백 명이 급히 위소를 빠져나갔다.
청운이 그 일에 대해 들은 것은 일각이 더 지난 후였다. 제갈신기가 전령을 보내 무림맹의 상황을 알린 것이다.
“뭐요? 무림맹에서 삼백 명 넘는 인원이 빠져나갔다고요?”
“그렇습니다, 이 대인. 태산에서 천황교 총단을 조사하던 대원 이십여 명이 적의 급습을 받아서 쫓기는 중이라 합니다.”
“쫓기는 중이라고? 당한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청운은 무림맹 군사각의 전령 말을 듣고 이마를 찌푸렸다.
상대는 천황교다. 그들이 작심하고 공격했다면, 아무리 무림맹에서 정예를 보냈다 해도 솔직히 살아남기 힘들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고의로 풀어주고 몰이를 했다는 말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미끼! 놈들은 더 큰 대어를 낚기 위해서 미끼를 풀어놓았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