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245화 (245/257)

# 245

245화

막 격돌하려던 양측은 하늘을 떨쳐 울리는 소리에 돌격을 멈췄다.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한 사람이 하늘을 훨훨 날아서 격돌하려는 양측 중간에 내려서고 있었다. 청운이었다.

“만조백관과 무림인들은 모두 황제 폐하를 영접하라!”

우르르릉!

청운의 입에서 터져 나온 외침은 천둥처럼 모두의 귀를 후벼 팠다.

오왕야는 저 멀리서 호위를 받으며 말을 타고 오는 인물을 보고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울부짖으며 대례를 올렸다.

“화아앙사앙!”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 폐하 만만세!”

무림인과 장수, 병사들이 일제히 부복하며 땅에 이마를 대었다.

이왕야 측에서도 황제의 등장을 알아본 병사들과 대신들이 예를 올렸다.

백청청과 마존령 대원들도 황궁무고가 무너지면서 죽은 줄 알았던 청운이 살아서 돌아오자 환호했다.

“가가!!!”

“령주!”

“살아계셨구려, 령주!”

“내가 그랬잖은가! 령주는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야! 와하하하!”

이왕야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덜덜 떨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십만이 넘는 병력이 싸우게 될 전장이 황제를 알현하는 대전으로 변했다.

이왕야와 사대장군은 공황 상태에 빠져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대의명분을 부르짖었다. 황제가 죽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그런데 황제가 등장함으로써 모든 것이 뒤엉켜버렸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황제에게 등을 돌린다는 것은 자신들이 내세웠던 대의명분에 반하는 행동.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젠장, 황제가 살아 있었다고?’

진퇴양난의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사대장군은 당황한 나머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했다.

청운이 그 순간을 파고들며 호통 쳤다.

“무얼 하느냐! 모든 장수와 병사들은 무릎을 꿇어라!!!”

이왕야와 대장군을 따르던 자들 중 주저하고 있던 자들이 청운의 호통 소리에 눈치를 보며 무릎을 꿇었다.

모두가 무릎을 꿇자 황제가 중간에 서서 외쳤다.

“짐은 무사하다! 간악한 무리들이 짐을 시해하려 했으나, 여기 오호평천대장군이 나를 구했도다!”

황제는 잠시 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 대장군을 따르는 무리들과 이왕야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이왕야를 지긋이 바라보며 근엄하게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이 자리에 있는 것이냐?”

“황상! 역도가 창궐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것이옵니다.”

이왕야는 황제의 꾸중에 당당하게 말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끝이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지만 느낄 정신이 없을 만큼 긴장한 상태였다.

그를 따르는 장수와 병사들이 처음부터 반역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이리 긴장할 것도 없었다.

이판사판 황제를 무시하고 몰아붙이면 되니까.

하지만 대다수 장수와 병사들은 반역도를 처단하기 위해서 달려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물론 장수 중에는 이왕야가 황권을 욕심낸다는 걸 알고 있는 자들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걸 내색할 만큼 어리석은 자는 없었다.

황제가 눈살을 찌푸리며 다그쳤다.

“짐을 구하겠다는 녀석이 역도들과 함께 황실을 위협해? 그러고도 네가 황실의 일원이라 할 수 있느냐!”

“황상! 오해이옵니다. 저는 그저…….”

“닥쳐라! 어디서 말대꾸를 하느냐?”

이왕야가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다고 하지만 황제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했다.

오랜 세월 황제의 권위에 짓눌려 살아온 그였다. 몸에 배인 그 정신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었다.

이왕야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후회막심 했다.

‘처음부터 무작정 군권으로 밀어붙였어야 했어!’

당당하게 천하를 놓고 황제와 싸우겠다며 나섰다면 무릎을 꿇는 대신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것 아닌가 말이다.

‘빌어먹을!’

이왕야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되며 파르르 떨렸다.

한편, 사대장군은 이왕야와 황제를 번갈아 돌아보았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면 구족이 몰살당할지도 모를 일.

‘아직 기회는 있다.’

병사들만 따진다면, 이왕야와 자신들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무림의 무인들이 문제이긴 하나, 황군들 속에 천황교에서 지원한 고수들이 다수 섞여 있었다.

숫자는 삼백여 명이지만 모두가 절정 경지 이상의 고수들이었다.

그들도 이대로 황제에게 눌려 패배를 당한 채 돌아가고 싶지는 않으리라.

눈짓으로 의견을 교환한 사대장군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조유량이 벌떡 일어나서 발악하듯이 외쳤다.

“모두 일어나라! 하늘을 대신하여! 나라를 어지럽히고 혼란에 빠트린 황제에게 죄를 물을 것이니라!”

뒤따라서 다른 세 장군도 자리에 일어서서 외쳤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폭군을 몰아내자!”

“황제의 목을 베는 자에게 삼공의 자리를 약속하겠노라!”

“어차피 너희들은 삼족을 멸하는 벌을 받을지 모른다! 차라리 저 능력 없는 황제를 몰아내는 일에 앞장서라!”

사대장군이 외쳐대자, 그의 휘하에 있던 자들 중 상당수가 합류했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공을 세울 기회를 얻는 게 나았다.

“황제를 죽여라!”

이를 악다문 장수들이 황제를 향해서 달려 나갔다.

특히 수백 명의 장수와 병사들은 일반 장수답지 않게 놀라운 경공술을 펼치며 몸을 날렸다.

황군들 속에 섞여 있던 천황교의 고수들이었다.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다.

황제 역시 눈을 치켜뜨고 몸이 굳었다.

그때, 청운이 황제의 앞으로 나서더니 발을 굴렀다.

“감히!!!”

콰아아앙!

우르르르릉!

청운의 강력한 진각에 땅거죽이 터져나가며, 달려드는 장수와 병사들을 향해 파도처럼 밀려갔다.

청운은 진각에서 그치지 않고, 쌍장을 뻗었다.

가공할 위력의 장력이 회오리치며 전면 사오 장을 휘감았다.

황제를 향해 달려가던 이들이 붕 뜨면서 뒤로 날아갔다.

무림의 고수들도 무기를 힘껏 움켜쥐고 몸을 날렸다.

“황제 폐하를 구하라!”

“역도들에게서 폐하를 보호하라!”

제갈신기는 사자후를 터트려서 적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구족이 멸문당하고 싶은 자는 계속 병장기를 들고 대항해도 된다! 허나 지금이라도 역도들을 공격한다면 황제 폐하께서 죄를 사하여 줄 것이니라!”

오왕야 역시 큰소리로 외쳤다.

“당장 저 역도를 처단하라!”

와아아아아!

오왕야를 따르는 병사들이 일제히 돌격했다.

이왕야 측의 병사들이 우왕좌왕했다. 눈치 빠른 장수들은 병장기를 돌리며 외쳤다.

“역적을 처단하라.”

“폐하를 보필하라.”

전쟁은 기세 싸움이다. 이왕야가 무릎 꿇는 순간 이미 결판이 난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왕야를 따르던 장수들마저 빠르게 돌아섰다.

한번 번지기 시작한 움직임은 들불처럼 삽시간에 전장을 휘감았다.

황군 속에 섞여 있던 천황교 고수들도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되자 공격을 망설이며 조금씩 물러섰다.

그들로서는 사대장군이나 다른 황군의 장수들처럼 개죽음을 택할 이유가 없었다.

“퇴각하라! 모두 물러서라!”

“놈들을 막아라!”

사대장군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악을 쓰며 뒤로 물러섰다.

곳곳에서 달려오고 있는 휘하 병력이 수십만이나 되었다.

자신들이 살고 그들과 합류할 수만 있다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때 청운이 비천무영신법을 극성으로 펼쳐서 수천 병사들 머리 위를 타 넘었다.

마치 제비가 하늘을 날아가는 듯했다.

장수들의 머리를 차고, 병사들의 창끝을 차며 도약한 그는 순식간에 이백여 장을 날아갔다.

조유량 등 사대장군은 자신들의 앞을 막아선 청운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또 네놈이냐?”

조유량이 비명처럼 외쳤다.

청운은 묵빛 검을 앞으로 내밀며 차갑게 소리쳤다.

“갈 때 가더라도 목은 놓고 가거라!”

“어림없다, 이놈!!!”

조유량이 악을 쓰며 달려 나갔다. 다른 세 장수도 전력을 다해서 달려들었다.

평생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자들이었다.

천황교를 통해 얻은 무공마저 익혀서 강호의 화경 고수들 이상으로 강했다.

하지만 청운의 적수가 되기에는 많은 것이 부족했다.

청운의 묵검에서 뻗어나간 강기는 단 오 초식 만에 그들을 염라대왕 앞으로 보냈다.

청운은 사대장군을 쓰러뜨리고 사자후를 터트렸다.

“사대장군이 모두 죽었다! 모두 병장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천둥 같은 목소리가 모두의 고막을 때렸다.

대다수는 병장기를 버리고 투항했다.

하지만 도주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황군의 복장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천황교 고수들이었다.

하지만 청운과 무림의 무사들은 그들의 정확한 정체를 모르는 상태여서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

* * *

황도 코앞에서 일대 격돌이 벌어진 지 이틀이 지났다.

전란의 혼란스러움도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그날, 건청궁을 떠받치고 있는 기단 위에서 황제가 용상에 오연하게 앉아 두 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건청궁의 뜰에 수백에 이르는 자들이 포박당한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개중에는 모든 것을 포기한 이왕야의 모습도 있었다.

불과 이삼 일 전만 해도 천하의 주인이 될 꿈으로 가득했던 그였다.

하지만 이제는 목이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죄인의 신분이 된 상태였다.

황제가 목에 힘을 주고 판결을 내렸다.

“남경왕부의 군권을 회수하고 역모에 가담한 자들을 모조리 추포하라!”

먼저 이왕야의 근간인 남경왕부를 정리했다.

“당분간 금의위로 하여금 군권을 관리하게 할 것이니라. 오군도독부에서 역모와 관련된 장수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황제는 더 이상 나약하게 망설이지 않았다.

미처 피하지 못한 귀비들이 처참하게 유린당했고 죽임을 당했다. 왕자와 공주 중에도 놈들의 손에 변을 당한 이도 있었다.

“이 일에 관련된 자들을 모두 엄히 다스릴 것이다.”

비록 임시지만, 황제는 모든 군권을 청운에게 건넸다.

청운은 오군도독부부터 정리했다.

여기저기서 잡음이 들려왔지만 황제가 전적으로 믿는 청운에게 대항하는 자는 없었다.

반항하는 자들은 금의위와 동창에 의해서 제거되었다. 그 일에 백가장 출신 장수들이 대거 동원되었다.

끝까지 대항하던 장수들은 그들에 의해 즉결처분되었다.

죽은 자들 중에는 억울한 자들도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정을 일일이 가리기에는 지난 며칠 동안에 흐른 피가 너무나 많았다.

군부만 박살 난 것이 아니었다. 관리들도 온전하지 못했다.

뇌옥에서 나온 정원 태감은 분노를 터트리듯이 황궁을 휘저었다.

이미 누가 역모에 가담했는지 알고 있었기에 빠르게 관리들을 잡아들였다.

그 와중에 자신의 정적들마저 제거했다.

관리들은 살기 위해서 이런저런 인맥을 동원하며 발버둥 쳤다.

특히 많은 관리들이 청운의 스승인 묘청선생 위진천에게 연줄을 놓으며 부탁했다.

위진천은 이미 잘잘못을 조사해 놓은 터였다.

부탁하는 자들 중에는 역모에 가담한 자들도 있었다.

문제는 그들 중 자신과 친한 자들도 다수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다는 말인가?’

마음 같아서는 충의를 저버린 자들을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류에 휩쓸리거나 가족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음에도 없는 일을 한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그들마저 모두 죽음으로 내몰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말이다.

더구나 인재라 할 수 있는 사람도 다수 있었다.

그들을 모두 죽인다면 나라에 너무나 큰 손해였다.

죄는 밉지만 대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죄가 없다고는 말을 못하지만…….”

위진천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대로 황제가 모두를 죽이게 놔둘 수는 없었다.

‘아까운 인재를 죽여서 화풀이로 사용하기보다 나라를 위해 쓸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위진천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며 청운을 만나기 위해 나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