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
242화
* * *
황궁 밖에서 난리가 났지만 대장군 하후경은 나설 수 없었다. 그는 팔황천군을 거느리고 입구를 드러낸 황궁무고로 갔다.
만일, 그가 황궁무고로 가지 않았다면 청운과 일대 격전을 벌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살고 싶다면 황제를 순순히 내놓아라.”
하후경은 황궁무고의 입구를 막고 서 있는 검은 복면인들에게 말했다.
복면인들은 황궁무고를 수호하는 비밀무사들이었다.
일명 황궁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 황궁무영사(皇宮無影使).
그들은 권력을 장악한 대장군을 앞에 두고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 모습에 하후경은 무엇이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죽이기에는 아까운 자들인데.’
그도 황궁무영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오직 황제의 명령만 따르며, 전조(前朝)부터 황궁무고를 지켰던 자들. 그들은 황궁무고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어서 무공 역시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다만 그들에게는 무언가 금제가 걸려 있다는 말이 있었다.
정확하게 아는 것은 없지만, 마교와 관련이 있다는 말만 은밀하게 나돌았다.
하후경은 황궁무영사 중 이마에 문양이 있는 자를 보며 말했다.
“그대들을 죽이고 싶지 않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황제를 내놓는다면 그대들에게 내려진 천형을 지워주고 자유를 주겠다.”
“…….”
“물론, 나에게 충성을 보여야 하겠지만.”
복면의 이마에 문양이 있는 자가 차가운 눈빛으로 하후경을 바라보았다.
둘 사이에 눈싸움이 시작되었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상대의 의지를 엿본 대장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싫은가 보군. 안타까운 일이야.”
시간만 넉넉하다면 말려 죽이며 설득하겠지만, 하후경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이미 오왕야가 나서면서 군이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이왕야가 나서서 오왕야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장수들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이곳으로 오기 전, 무림의 고수들이 황도에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다.
언제 놈들이 황궁으로 치고 들어올지 몰랐다.
“어쩔 수 없군.”
하후경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자신을 따르지 않겠다면 아무리 뛰어난 자라 할지라도 살려둘 수 없었다.
“그리도 죽고 싶다면 죽여주는 수밖에!”
하후경은 우장에 내공을 주입하고 일장을 휘둘렀다.
후우웅!
하후경의 장력이 황궁무영사를 향해서 날아갔다.
황궁무영사 둘이 장력으로 맞섰다.
콰과쾅!
“크윽.”
우당탕탕.
하후경의 장력에 맞서던 황궁무영사 둘이 바닥을 굴렀다.
그중 하나는 복면 아래로 피가 흘러나왔다. 아마도 심한 내상을 입은 듯했다.
황궁무영사들이 강하다 하나 현경에 오른 하후경과 정면대결을 펼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풋. 고작 그 실력으로 내 앞을 막았던 것이냐?”
하후경은 거침없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가 나아갈 때마다 황궁무영사도 주춤주춤 물러섰다.
조금씩 조여 오는 압박에 황궁무영사들은 이를 악물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이곳에서 죽더라도 대장군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
최후를 함께하는 수밖에.
하후경은 황궁무영사들의 의지를 읽고 이마를 찡그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충성을 다하는 그들이 욕심났다. 하지만 욕심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자들이었다.
“얻을 수 없다면 모두 제거해야겠지.”
우우웅!
하후경의 쌍장에 거대한 기가 모여들었다. 하후경은 차가운 눈으로 황궁무영사를 보며 쌍장을 뻗었다.
자칫하면 통로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장력이 미치는 범위를 최소한으로 했다.
대신 장력의 위력은 그만큼 더 강력했다.
황궁무영사들은 이를 악물고 맞섰다. 안 되겠다 싶으면 통로의 기관을 움직여서 무너뜨릴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희뿌연 그림자가 그들 사이를 통과해서 앞으로 튀어나왔다.
쾅! 콰과광!
연달아 폭음이 들리더니, 통로가 무너질 듯이 흔들리며 먼지가 피어올랐다.
순간적으로 통로의 빛이 뿌연 먼지에 가려졌다.
하후경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휘저었다.
흙먼지가 한쪽으로 밀려난 전면에 웬 젊은 사내가 태산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나? 운청.”
사내는 혈황이었다. 거대한 기운을 느낀 그는 황궁무영사로는 그 기운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달려 나와서 하후경의 장력을 막아낸 것이다.
이마를 찌푸린 하후경은 혈황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감탄사를 터트렸다.
“호오! 그 나이에 대단한 실력을 지녔군.”
하후경은 안으로 갈무리된 혈황의 거대한 잠력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닌 가공할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혈황 역시 대장군을 보며 긴장했다.
‘제길,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하잖아?’
본래의 힘을 완전히 되찾았다면 십초지적밖에 안 될 놈이었다.
하다못해 정 소감을 치료하면서 내공을 소모하지만 않았어도 자신보다 한 수 아래였다.
물론 황궁무고에 있는 영단을 복용하긴 했지만, 아직 약효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상태였다.
‘젠장 시간이 조금만 있었어도.’
영단의 약효만 모두 흡수한 상태였다면
혈황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 놈과 싸운다면 반 초 차이로 승패가 갈릴 것 같았다.
또 다른 문제는 장소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꽉 막힌 장소, 제대로 힘을 쓰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르는 지하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후경은 새롭게 나타난 혈황을 보며 황궁무영사에게 했던 제안을 다시 했다.
“곧 죽을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느니 내 수하가 되라. 그러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주마. 어떠냐?”
혈황은 인언지하에 거절했다.
중지를 세워서 앞으로 힘차게 내밀며.
“좆 까!”
“뭐?”
“귀에 말뚝 박았냐? 좆 까지 말라고.”
혈황은 흑도들이나 뱉을 말을 거침없이 뱉어냈다.
이럴 때는 젊은 게 나았다. 나이 먹은 모습으로 그런 욕을 하면 사람들이 한심하게 생각하며 혀를 찼을 것이다.
하지만 젊은 모습이다 보니, 그저 건방진 놈처럼 보일 뿐이었다.
혈황은 한심하게 보이는 것보다 건방지게 보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
하후경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하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이거 전장에서나 듣던 소리를 황궁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우르르릉.
통로가 몸살을 앓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격장지계(激將之計)가 판을 치는 전장에서는 상대 장수를 화나게 하기 위해서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오간다.
대장군 하후경도 전장에서 별의별 욕을 다 먹지 않았던가.
“정말 마음에 드는 놈이야. 그래도 일단은 욕을 한 것에 대해 벌부터 받아야 할 것 같구나!”
“까는 소리 그만하고, 덤벼 봐.”
“오냐, 이놈!”
하후경이 한 소리 내지르고 먼저 공격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혈황도 쌍장을 뻗으며 맞섰다.
둘의 기운이 충돌하자, 통로가 몸살을 앓으며 뒤흔들렸다. 우르릉거리며 천장에서 자잘한 돌조각이 떨어지는데,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둘은 아랑곳하지 않고 상대를 공격했다.
* * *
한편, 청운은 백청청과 함께 곤명호가 있는 인공호수로 이동했다.
처음에는 곳곳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마존령과 백야대를 도우려고 했다.
하지만 마존령과 백야대 대원들은 황군에게 당할 정도로 약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특히 백야대주는 천하에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진짜 고수였다.
아무리 대장군의 휘하 무사가 강하다 해도 그들을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반면 황제는 황궁무고에 들어가서 갇히다시피 한 상태로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한시라도 빨리 구해내야만 했다.
다만 백청청을 호위하는 백야대원들과 함께 백야대를 도우라고 돌려보냈는데, 그들까지 데리고 황궁무고에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백청청은 끝까지 따라가려고 했지만, 청운이 완강하게 고개를 젓자 할 수 없이 조심하라는 말만 수십 번 남기고 호위대와 함께 움직였다.
커다란 바위를 깎아서 만든 선체 위에 이 층으로 건물을 올린 석방이 보였다.
황궁무고로 향하는 비밀통로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대장군 쪽에서는 그 사실을 모르는지 그곳을 지키는 자가 많지 않았다.
그저 평상시처럼 병사 십여 명만이 근처를 순찰할 뿐.
청운과 백청청은 그들 속으로 뛰어들어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쓰러뜨렸다.
그러고는 서둘러서 석방 안으로 들어갔다.
청운은 네 번째 방으로 이동했다.
방에는 일곱 개의 구슬이 받치고 있는 거울이 존재했다.
청운은 거울 아래에 있는 일곱 개의 구슬 중 좌측에서 세 번째 구슬을 눌렀다.
거울이 걸린 벽이 ‘그그긍’ 작은 소리를 내며 옆으로 돌아갔다.
황궁무고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열린 것이다.
‘다행히 이곳에는 놈들의 마수가 뻗히지 않았군.’
청운은 안도하며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저 멀리 곤명산 정상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움직임을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통로로 들어간 청운은 자신이 앞장서서 거침없이 앞으로 나갔다.
통로 곳곳에 기관이 설치되어 있는데도 두 사람이 지나가는 동안 작동하지 않았다.
얼마나 갔을까, 흐릿한 그림자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황궁무고를 지키는 황궁무영사들이었다.
청운을 알아본 자가 인사를 건넸다.
“진무사, 오랜만이오.”
청운도 쇠를 갉아대듯 꺼칠한 그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황궁무고에서 폐관 수련할 때 몇 차례 마주했던 자였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좋지 않소. 기관을 조절하며 겨우 버텼소만, 조금 전에는 대장군까지 나타나서 밀리고 있는 중이오.”
“서두릅시다.”
다행히 늦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황궁무영사가 물었다.
“혹시 들어오면서 적을 보지 못하셨소?”
“무슨……?”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말이오.”
순간 청운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쿵!
청운의 심장이 격하게 요동칠 때, 그가 들어온 입구 쪽에서 싸우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쿠콰콰콰쾅!
통로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요동쳤다.
청운은 이를 악물었다.
‘놈들이 지켜보고 있었구나.’
조금만 조심했다면 놈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텐데…….
급하다는 이유로 조심하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입구로 나갈 수는 없었다.
“가십시다.”
청운은 냉정하게 돌아섰다.
이미 입구가 막혔다면 되돌아가 봐야 무너져 내린 잔해뿐일 것이다.
‘지금은 황제 폐하의 안위와 대장군을 물리치는 것이 급선무다.’
기우가 현실이 되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청운은 황궁무영사의 안내를 받으며 안쪽으로 이동했다.
* * *
콰콰쾅!
떠덩!
혈황과 하후경은 좁은 통로를 벗어나서 직경 십 장에 달하는 지하 광장에서 싸움을 벌였다.
경천동지할 무위를 지닌 둘에게는 십 장도 너무 좁았다.
두 사람의 싸움으로 언제 지하 광장이 무너져 내릴지 몰랐다.
그 바람에 둘은 광범위한 공격보다 직접 상대를 격살하는 공방을 주고받았다.
특히 혈황은 새롭게 변화시킨 혈황신공으로 맞섰다.
하지만 삼십여 초식의 공방을 벌이면서 조금씩 밀렸다.
그러다 끝내……
“큭.”
신음을 뱉으며 뒤로 물러섰다.
하후경의 기묘하게 꺾이는 검에 팔이 살짝 베인 것이다.
그런데 하후경의 검에는 강력한 기운이 서려 있어서 살짝 베였는데도 뼈까지 시렸다.
‘젠장, 변화시킨 혈황신공으로는 무리인가?’
새롭게 변화시킨 혈황신공은 아직 완벽하지 않았다. 아니, 몸에 익숙하지가 않았다.
더구나 혈황진기를 온전히 쓸 수 없어서 아무래도 본래의 위력보다 약했다.
‘그렇다고 본신의 혈황진기를 모두 끌어올리면 청운이가 역풍을 맞을 텐데.’
‘착하게 살걸.’ 그런 후회마저 들었다.
천하를 피로 물들였던 혈황의 무공을 지닌 자를 곁에 두고 있었다는 소문이 돌면 세인들이 청운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번쩍!
스가각!
대장군의 검이 가공할 기운을 품은 채 다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