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
238화
노룡회 총단의 입구 쪽에 도열해 있던 자들이 청운과 마존령 무사들을 발견했다.
“놈들이 우회해서 공격해 온다!”
“혈마대와 귀혼대가 놈들을 상대해!”
“알겠소이다! 혈마대는 나를 따라와라!”
“와하하하, 우리 귀혼대도 뒤질 수 없지! 가자!”
도열해 있던 무사들 중 이백여 명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청운이 선두에 서서 달리며 검을 빼들었다.
노룡회 무사들과의 거리가 십여 장으로 줄어들자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칠팔 장 허공으로 날아오른 청운은 시커멓게 달려드는 자들을 향해서 벼락 치듯이 일검을 날렸다.
‘환우파천일섬!’
처음부터 환우무상검을 펼쳤다.
가공할 검세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노룡회 무사들 머리 위로 쏟아졌다.
달려오던 노룡회 무사들이 기겁하며 좌우로 몸을 날려 피했다.
“피하지 말고 막아!”
“몇 놈 안 된다! 쳐라!”
혈마대와 귀혼대 간부로 보이는 자들이 악을 쓰며 무사들을 독려했다.
그사이 마존령 무사들이 해일처럼 밀려들며 그들을 덮쳤다.
청운과 혈황에게 백 일 수련을 받은 마존령 무사들은 전에 비해서 한 단계 이상 강해진 상태였다.
비명과 고함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며 노룡회 무사 수십 명이 일거에 무너졌다.
앞장섰던 무사들이 적을 치느라 멈칫한 사이, 뒤쪽에 있던 마존령 무사들이 몸을 날려서 앞으로 나섰다.
백야대원들도 유령처럼 노룡회 무사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시신과 공포만이 남았다.
“무, 물러서!”
“당황하지 말고 뭉쳐서 적을 상대해!”
혈마대와 귀혼대 간부들이 질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노룡회의 주 무력단체로 강호 무림을 휩쓸고 다녔다 하나 그들만의 힘으로는 마존령과 백야대를 막을 수 없었다.
잠깐 사이 백 수십 명이나 되는 혈마대와 귀혼대 무사들이 시신으로 변했다.
살아남은 오십여 명의 무사들이 공포에 질려서 후퇴했다.
청운은 그들을 쫓으며 달렸다.
“이대로 친다!”
그의 일갈이 분지를 뒤흔들었다.
전면에 도열해 있는 자들의 숫자는 일천여 명 정도로 보였다.
마존령과 백야대에 비하면 다섯 배나 되는 숫자였다. 아마 안쪽에도 그 정도 숫자의 무사들이 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 하나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도열해 있던 노룡회 무사들은 혈마대와 귀혼대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흔들리지 않았다.
적이 강하긴 하나 무사들의 숫자는 자신들이 몇 배나 많았다.
“합공을 해서 놈들을 쳐라!”
“대여섯 명씩 달라붙어!”
와아아아아!
“죽여라!”
노룡회 무사들이 마존령과 백야대 대원들을 향해 내달렸다.
청운은 달려오는 노룡회 무사들을 보고는 백야대주에게 말했다.
“어르신! 이곳을 부탁합니다.”
“걱정 마라! 너는 너 할 일이나 잘해!”
“오대사령은 계획한 대로 적을 상대하시오!”
청운의 명령이 떨어지자, 용천관을 비롯한 오대사령이 힘차게 대답했다.
“알겠소이다, 령주!”
청운은 그들을 놔둔 채 비천무영신법을 극성으로 펼쳤다.
그의 신형이 허공을 이십여 장이나 날아간 다음 다시 도약해서 노룡회 무사들 머리 위를 훌쩍 넘어갔다.
놀란 무사들이 고개를 쳐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청운이 내려서는 곳에 있던 자들은 반사적으로 칼을 휘두르며 청운을 공격했다.
하지만 청운은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다시 몸을 날려서 그들의 뒤쪽에 내려섰다.
두어 번의 도약으로 일천 무사들을 건너뛴 것이다.
그가 노리는 것은 노룡회의 핵심 간부들이었다.
땅에 내려선 그는 앞에 있는 거대한 전각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한 걸음에 삼사 장씩 죽죽 나아갔다.
전각의 문은 활짝 열려 있는 상태였다. 마치 들어올 테면 들어오라는 듯.
거침없이 나아간 청운은 활짝 열린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
거대한 기둥이 회랑처럼 양쪽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 사이에 족히 백 명은 될 법한 무사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전각의 저 안쪽 태사의에 노인이 오연하게 앉아 있었다. 노룡회 임시회주 노야였다.
청운이 검을 사선으로 늘어뜨린 채 전각 안으로 들어가자, 노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게. 자네가 이청운인가?”
청운이 냉랭하게 말을 받았다.
“항복할 생각이라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요.”
“호오, 항복하면 살려줄 생각인가?”
“그럴 리가.”
“하하하! 어린것의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노야는 청운의 대답에 호방하게 웃었다.
어차피 그에게는 다른 길이 없었다.
이곳을 버리고 도주하면 천황이 자신을 살려두지 않을 테니까.
눈앞의 건방진 애송이 놈을 죽이고, 이곳을 향해 밀려드는 정파의 무사들을 최대한 제거하는 것만이 자신이 살 수 있는 길이었다.
청운을 바라보던 노야가 냉랭히 명령을 내렸다.
“놈을 쳐라!”
좌우에 늘어서 있던 혈풍대가 일제히 청운을 공격했다.
청운은 피하지 않고 공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몸에서 묵황색 기운이 피어났다.
구두룡 중 흑마룡의 기운을 끌어올린 것이다.
“와라!”
후아아아악!
청운이 일갈을 하자 몸 주위를 너풀거리던 기운이 일제히 사방으로 폭사되었다.
무기를 빼든 혈풍대원들의 숫자는 모두 백열두 명. 개중에는 절정급 이상의 고수만 해도 열 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한 번에 한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인원은 일반적으로 여덟 명에서 열 명 정도가 최대치였다.
청운 역시 그 정도 인원만 상대하면 되었다.
강기가 서린 묵빛 검신이 광채를 발하며 사방으로 뻗어나갈 때마다 혈풍대원들의 시신이 늘어났다.
무기는 무기대로 부러지고, 육신도 잘려나갔다.
불과 십여 초식을 펼치는 사이, 오륙십 명이 죽어갔다.
전각의 바닥에는 핏물이 흥건하게 흘렀고,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시신이 사방에 널렸다.
두려움을 모르는 혈풍대원들의 눈에 서서히 공포가 싹트기 시작했다.
반면 살기를 일으킨 청운은 일말의 인정도 두지 않고 검을 펼쳤다.
흑마룡의 기운이 실린 검세는 주위 삼 장 일대를 휘감고 모든 것을 파괴했다.
마침내 혈풍대 무사들 중에서 뒤로 물러서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 눈치를 보며 물러섰다. 하지만 곧 십여 명이 공포에 질려서 뒤로 빠졌다.
그때 노성과 함께 노야가 몸을 날려 청운을 공격했다.
“이노오오옴!”
노야의 검에서 뻗어 나온 붉은 핏빛 검강이 청운을 향해 날아들었다. 일검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듯 전 공력이 실린 공격이었다.
청운은 묵검을 휘저어서 혈풍대 대원들을 물러서게 만들고는 노야를 향해 마주쳐 갔다.
그 역시 싸움을 오래 끌 생각이 없었기에 십성 공력을 끌어냈다.
묵황빛 검강이 휘돌던 묵검의 검첨에서 흑룡이 튀어나갔다.
콰우우우우!
콰과과광!
굉음이 대전을 뒤흔들었다.
날아들던 노야가 뒤로 튕겨나갔다.
본래 서 있던 자리에 내려선 그는 주르륵 뒤로 밀려난 뒤 겨우 중심을 잡았다.
울컥!
주르륵.
노야의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고, 몸은 곧 쓰러질 것처럼 가늘게 떨렸다.
“어, 어찌 네놈이 그분의 무공을……?”
노야가 청운의 무공을 아는 것처럼 말했다.
흑마룡을 알아본 것인지, 아니면 그 속에 내재된 혈황신공을 눈치챈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문제는 노야가 ‘그분의 무공’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청운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분? 혈황 님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자신이 펼친 무공과 비슷한 무공을 누군가가 익히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무공이 누구의 무공과 비슷하다는 거냐?”
청운이 노야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노야는 이미 심맥이 끊어져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그 와중에도 의혹의 표정을 지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분명… 그분의 무공과 비슷…….”
웩!
내장이 잘려져 나간 핏덩이를 토해낸 노야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청운은 죽어가는 노야를 바라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설마, 아니겠지.’
몰려오는 불안감을 뒤로하고 청운은 몸을 돌렸다.
노야마저 쓰러지자 살아남은 혈풍대 대원들도 모두 도망쳐서 대전은 텅 빈 상태였다.
한편, 백가장과의 싸움에서 밀린 혈살귀마대와 노룡회 무사들은 후퇴하던 중 총단이 공격받고 있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멈췄다.
더구나 노야가 청운이란 놈에게 당했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놈들이 양동작전을 펼쳤군.”
“어떻게 할 건가? 달려가서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야율천이 구양흥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구양흥은 자신들을 희생하면서까지 노룡회를 도울 마음이 없었다.
그가 혈살귀마대를 이끌고 이곳에 온 것은 노야 때문이었다.
노야와 그는 같은 사문에서 자란 사형제였다. 이번 기회에 노야와 함께 노룡회를 장악해서 못다 한 꿈을 펼쳐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노야는 죽었다 하고, 노룡회도 꼴을 보아하니 더 버티지 못할 듯했다.
슬쩍 분지 쪽을 바라본 구양흥은 신경질적으로 명령을 내리며 몸을 돌렸다.
“노룡회는 끝났어. 우린 산을 넘어서 이곳을 빠져나간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옆의 산 위로 몸을 날렸다.
혈살귀마대원들도 그를 따라서 산으로 올라갔다.
야율척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그로서도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우리도 일단 이곳을 벗어나자.”
그는 노룡회 무사 삼백여 명을 데리고 산 위로 올라갔다.
그때 산 위 능선에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황군을 피해 우회했던 무림맹과 사도맹 무사들이 도착한 것이다.
“어서 와라, 이놈들!”
“놈들을 쳐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사도맹주 용천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사도맹 무사들이 산사태라도 난 것처럼 밀려 내려갔다.
무림맹의 고수들 역시 뒤지지 않겠다는 듯 몸을 날렸다.
격렬한 싸움이 다시 벌어졌다.
하지만 혈살귀마대와 노룡회 무사들은 앞선 싸움에서 이미 공력 소모가 큰 상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뿔뿔이 흩어지며 도망치기 바빴다.
그 시각, 백가장과 남궁세가, 정파의 무사들이 총단 건물이 있는 분지로 들어섰다.
분지의 앞쪽에도, 총단 건물이 있는 안쪽에도 수많은 시신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마존령과 백야대 대원들이 몇 배나 되는 적과 싸우고 있었다.
백가장과 남궁세가, 정파 무사들이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안 그래도 노룡회 무사들은 마존령과 백야대를 상대하며 질린 마음이었다.
그런데 입구 쪽에서 수많은 적이 나타나자 더 싸울 마음이 달아나 버렸다.
“젠장! 혈살귀마대 놈들은 뭐한 거야?”
“도망쳐라!”
노룡회 무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몸을 날려서 도망쳤다.
* * *
싸움은 두 시진 만에 끝이 났다.
노룡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정사를 막론한 중원연합의 무사들은 전장을 정리했다.
시신만 해도 이천 구에 달했다. 부상자도 그 못지않게 많았다. 모든 것이 정리되려면 사흘은 걸려야 할 듯했다.
하지만 청운은 사흘 동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무사들이 전장을 정리하는 동안 대전에서는 중원연합의 수뇌부가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여러분의 노력 덕분에 노룡회를 물리쳤습니다. 허나 아직도 적의 배후세력인 천황교와 황궁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대장군이 남아 있습니다.”
제갈신기의 말이 이어지자, 승리의 감정에 들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엄청난 피해를 보면서 이겼거늘, 이제 경우 적의 선발 세력만 처리한 셈이었다.
백철군이 투덜댔다.
“젠장,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군.”
그때 청운이 일어서며 말했다.
“황궁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