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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233화 (233/257)

# 233

233화

한편, 천황교는 중원 무림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럼, 놈들이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말이지?”

“그러하옵니다.”

거만하게 앉아 있는 천황을 향해서 한 노인이 머리를 조아린 채 보고했다.

심기가 불편한지 천황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백가장을 치러간 아이들이 당했다고?”

“예.”

보고를 하던 군사 영위랑은 몸을 잘게 떨었다. 천황의 성정상 실패는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떤 일인지 천황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긴, 백가장이 그리 쉽게 당할 곳은 아니지.”

오래전 백가장을 공격한 적이 있었다. 아니 강서성에 들어서자마자 싸움이 벌어졌었다.

칠주야에 걸친 싸움이었다.

전대 백가장주를 상대로 악전고투를 벌였었다.

그 싸움으로 천황교 산하 무인들만 해도 천 명 이상 죽었다.

고작 한 가문을 상대로 말이다.

다행이라면 강서성 밖으로 후퇴하자 놈들은 더 이상 추격을 하지 않았다.

“옛일이 생각나는군. 정말 대단한 놈들이었어. 내가 소천주일 때 싸웠었으니 근 오십 년은 넘은 일이지.”

아련한 기억을 떠올린 천황은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이를 마주하고 있는 그의 부하들은 그 웃음을 보고 오히려 몸을 떨었다.

“다시 보내. 놈들의 주력이 빠져나왔다면 백가장에 남은 인원은 허접할 거 아니야.”

“알겠습니다. 곧바로 부대를 편성하겠습니다.”

어쩌면 다시없을 기회였다. 백가장에 남은 인원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천황교 산하에 퍼져 있는 단체 두세 곳이 몰려가면 충분히 밀어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천황은 지그시 아래를 내려다보며 부복하고 있는 영위랑에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놈들이 창암산으로 몰려가고 있단 말이지?”

“그러하옵니다. 이번에도 역시 이청운이라는 아이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놈들의 움직임은?”

“무림맹과 사도맹이 서쪽에서 넘어가고, 이청운이 이끄는 마존령과 백가장, 남궁세가가 남쪽과 동쪽에서 치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천황교의 눈과 귀는 이미 청운의 전략을 간파한 상태였다.

“노룡회의 힘만으로는 막아낼 수 있나?”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천황은 무언가 생각을 하더니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

“노룡회주는 누구지?”

“임시 회주였던 노야를 실각시키고 묘수선생을 임시 회주로 임명하셨습니다.”

이미 보고했던 내용이지만 천황은 기억하지 못했다.

오십 년 전 일은 잘도 기억하면서 며칠 전 일은 곧잘 잊어버리는 사람이 천황이었다.

기분에 따라 기억이 오락가락했다.

“묘수선생이라면 혈룡단을 만든 그자인가?”

“예, 지난번에 천황께옵서 그에게 노룡회주 자리를 내린다고 말씀하셨었습니다.”

“아, 맞아. 이제 기억나는군. 그놈이 만든 혈룡단이 제법 쓸 만했지. 그럼 이 기회에 그놈을 정식 회주로 임명해.”

“알겠사옵니다, 천황이시여. 노룡회에서도 은혜에 감읍할 것이옵니다.”

그들은 아직 노룡회에서 벌어진 일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황은 주저 없이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놀고 있는 혈귀들 좀 보내 줘.”

“혀, 혈귀라면 혈살귀마대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피에 굶주린 애들이니 가서 놈들의 피로 목욕이나 하라고 해.”

천황교의 대표적인 무력단체 중 하나인 혈살귀마대는 잔혹한 자들이다.

피에 굶주린 그들은 천황교 내에서도 통제가 잘 안 되기 때문에 혈살곡이라는 곳에서만 지낸다.

그들의 금제를 풀겠다는 말이었다.

세상에 내놓아서는 안 되는 피에 굶주린 자들이건만 영위랑은 반대하지 못했다.

‘반대했다가는 당장 내가 죽겠지.’

천황의 성정을 잘 알고 있기에 여위랑은 고개를 조아렸다.

“알겠사옵니다, 천황이시여.”

머리를 차디찬 대리석 바닥에 쿵 찧은 영위랑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차라리 그곳에서 동귀어진이나 해라.’

* * *

한 마리 흑응이 노룡회에 날아들었다.

머리에 금색 깃털이 왕관처럼 나 있는 전서응이었다.

천황교의 명령을 전하는 천황매의 등장에 회의를 하던 이들이 멈췄다.

전서를 읽은 노야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과 함께 입꼬리가 비틀려서 올라갔다.

“크크, 천황께옵서 때마침 지원대를 보냈다고 하는구려.”

회의에 모여 있던 자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황궁으로 물러서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 치욕을 영광으로 바꿀 기회가 찾아왔다.

노야는 그 말만 하고 전서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내용을 보여줄 수는 없지.’

전서에는 지원대를 보냈다는 말과 함께 묘수선생을 노룡회 정식 회주에 올린다는 명령이었다.

묘수선생이 도망을 쳐서 배신자가 되었지만, 명령서가 도착하기 전에 자신이 반란을 일으켰으니 잘못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이번 일은 이번 싸움이 끝난 후에 자신이 천황교에 알리면 된다. 물론, 자신의 잘못을 가리고 묘수선생의 배신을 부각시켜서 말이다.

노야는 이를 드러내며 명령을 내렸다.

“놈들이 몰려온다는데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알겠습니다.”

“애들을 밖으로 돌리지 말고 철저히 방어에 치중하게 해.”

“예, 회주.”

신혈교는 지나치게 무사들을 분산시켰다가 당했다.

그 전철을 밟을 수는 없었다.

대답하고 돌아서는 간부들의 무겁던 표정이 밝아졌다.

정사의 무림인들이 사방에서 포위하듯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독 안에 든 쥐 꼴이었다. 그런데 천황교에서 지원대를 보냈다 하니 조금만 버티면 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노파가 나가기 전에 질문했다.

“노야, 그런데 천황께오서 보내주신다는 지원대는 어떤 자들입니까? 어지간한 자들이 와서는 막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거야 오면 알겠지요. 설마 천황께서 아무나 보냈겠습니까?”

“그래요? 그럼 언제 도착하는 겁니까?”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오늘 안에는 도착할 거요.”

“흠, 그래요?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와야 할 텐데…….”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파는 사갈조차 치를 떤다는 봉선파파였다.

그런데 왠지 그녀의 얼굴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지원대가 어떤 자들인지 몰라도, 그들이 더해지는 정도로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반백 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했던 봉선파파는 누구보다 노야를 잘 아는 인물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저 늙은이의 힘없는 모습이 거짓이라는 것을 이놈들은 가끔 잊는단 말이야.’

노야는 겉모습과 달리 피에 미친 자였다. 적이라 생각되면 가차 없이 살수를 썼고 그들의 심장을 꺼내서 씹어 먹기를 주저하지 않는 잔혹한 자였다.

그런 그의 얼굴에 지원대를 말하면서 행복한 미소가 얼핏 비친 걸 봤다.

봉선파파는 그 미소를 본 순간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노야의 형제들이 오는 건 아니겠지?’

봉선파파의 얼굴 가득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녀는 누구도 모르는 노야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한때 지옥의 살귀라 불리며 중원을 피로 물들여서 공적으로 낙인찍힌 혈살곡의 주인이 바로 노야였다.

* * *

마존령과 백야대는 산맥을 따라서 이동했다.

덕분에 더 이상 황군과 마주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삼백 리를 북상한 그들은 창암산까지 한나절도 걸리지 않는 곳에서 멈춰 섰다.

청운은 그곳에서 백가장이 합류하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백철군과 남궁세가가 많은 무림인을 거느리고 달려왔다. 그런데 뜻밖의 인원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림인들과 다른 복장을 하고 있었다.

“저들을 왜 이곳에 데려온 것입니까?”

“아, 오면서 걸리적거리기에…….”

청운의 질문에 백철군은 아무렇지 않게 얼버무렸다.

청운은 한쪽에 서 있는 자들을 바라보았다.

‘군부의 장수들 아닌가?’

수십 명이 넘는 장수들이었다. 심지어 무장이 아닌 관복을 입은 자들마저 있었다. 개중에는 자신이 아는 얼굴도 있었고.

‘쯧쯧, 끌려왔군. 그나마 포박은 하지 않으셨네.’

그들 중 청운을 알아본 자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 진무사!”

“대인! 살려주십시오!”

금방이라도 얼굴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릴 기세였다.

청운은 그들에게 다가가서 안심시켰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도독대인.”

정삼품 우 부도어사인 독고운이었다. 지난번 자룡궁 문제로 만나서 인연을 맺은 인물인데 다시 만나게 되었다.

“대인,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무슨?”

청운의 고개가 슬며시 백철군에게 돌아갔다.

백철군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려서 청운의 시선을 외면했다.

독고운은 청운에게 하소연을 쏟아냈다.

“글쎄, 저희더러 창암산의 마귀들과 싸우는 데 앞장서라지 뭡니까.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다 들은 청운은 입을 쩍 벌렸다.

“무, 무슨 그런 황당한.”

청운의 고개가 다시 백철군에게 돌아갔지만 백철군은 이미 저만치 가서 백청청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청운이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역적들은 저희가 처리할 것입니다.”

“여, 역적이라고요?”

“잘 모르시겠지만, 지금 이 땅에는 하늘을 바꾸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한패거리인 거지요.”

“말을 삼가라!”

청운의 말에 덩치가 산만 한 장수가 도독을 뒤로 물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는 오군도독부 소속의 첨도어사 양산만이라는 장수였다.

“오군도독부 소속인가?”

“그렇다. 첨도어사 양만산이다. 네놈이 역적 이청운이더냐.”

사내는 기세를 올리며 청운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내가 이청운이다. 그러나 그 역적이라는 누명은 누가 씌운 것이냐? 황제 폐하시냐? 아니면 네놈이 모시는 대장군이더냐?”

“당연히 황제 폐하시다!”

그의 외침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강아지가 짖는 모습이었다. 마치 주위에 있는 자들이 자신의 소리를 듣고 도와주기를 바라는 모습이었다.

청운이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그러시더냐? 나보고 역적이라고?”

“이 역적 놈아! 내 두 눈과 이 두 귀로 직접 황제 폐하께서 내리는 명령을 듣고 보았느니라!”

“폐하를 억류하고 억압해서 내리게 한 가짜 명령 말이냐?”

“뭣이라! 이놈이 주…….”

퍽.

우당탕탕.

청운의 한 손이 허공을 가르자, 무형의 기운이 양산만을 강타했다. 양산만은 제법 무공이 뛰어났지만 청운의 일격을 받아 넘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청운이 게거품을 물고 쓰러진 양산만을 보며 냉랭히 말했다.

“치워라. 이놈은 대장군을 따르는 역적이다. 아니, 잠시만. 그냥 죽일까?”

청운은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말하고는 양산만을 내려다보았다. 그 모습에 강제로 잡혀온 이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청운이 도독첨사를 역적으로 몰아서 죽인다면 자신들 역시 같은 꼴이 될 것이다.

독고운이 자신의 발아래 뒹굴고 있는 양만산을 보며 크게 외쳤다.

“이 독고운! 역적, 대장군을 벌하는 데 앞장설 것이오!”

그에게는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더욱이 이곳까지 끌려오면서 백가장과 남궁세가의 실력도 보았지 않은가.

이들의 무력이라면 대장군파와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 * *

한편, 태행산을 넘은 후 합류한 무림맹과 사도맹은 원하지 않은 동행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곧장 조현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무림맹을 이끌고 있는 양조생은 문득 곁에서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제갈신기에게 말했다.

“놈들이 어떤 식으로든 앞을 막을 줄 알았는데 그림자도 보이지 않다니, 이상하군. 놈들이 우리의 움직임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군사 생각은 어떻소?”

“저도 그 때문에 고민 중입니다. 놈들이 황궁과 관련되었다면 황군을 이용해서 우리를 막으려 했을 겁니다. 하다못해 기습을 해서라도 피해를 입히려 했겠지요. 그런데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니, 무언가 이상합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제갈신기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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