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231화 (231/257)

# 231

231화

청운이 이끄는 마존령과 백야대, 거기에 개봉에서 합류한 일부 무림인들로 이루어진 일로(一路)는 하북의 감단(邯鄲)까지 곧장 북상했다.

그런데 평소에는 무림인들을 소 닭 보듯 하던 지휘사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앞을 막아섰다.

그저 몇십 명 정도가 아니었다. 사방에서 몰려오는데 족히 천 명이 넘을 듯했다.

청운은 그들을 보고 눈빛을 차갑게 빛냈다.

‘흐음, 역시 우리가 북상하는 것을 알고 황군을 움직였군.’

그때 커다란 아라사 백마를 타고 나타난 지휘사가 안광을 번뜩이며 병사들의 앞으로 나섰다.

“나는 감단 위지휘사 안철상이다! 네놈들은 무엇을 하는 자들이기에 병장기를 휴대하고 이리 몰려다니는 것이냐?”

그는 상대가 무림인임을 알 텐데도 모르는 척하며 호통 쳤다.

대쯤 튀어나온 욕설에 백야대주가 발끈하려는 것을 청운이 막고 먼저 나섰다.

그는 상대가 누군지, 자신들을 왜 막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먼저 나선 것이기도 했다.

“그런 지휘사께선 왜 우리 앞을 막으시는 거요?”

그러면서 강맹한 기운을 흘렸다.

자고로 장수들은 강맹함에 경외심을 갖는 게 본능이었다.

히히히힝.

거리가 삼 장이나 되는데도 백마가 기운을 느끼고 뒷걸음질 쳤다.

“워워워.”

안철상이 급히 고삐를 당기며 말을 진정시켰다.

그 역시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의 기운을 느꼈던 터라 청운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너, 너는 누구기에…….”

“대충 보니 일천 명쯤 될 것 같군요. 내 정체를 궁금해하기 전에 이 병사로 우리를 막을 수 있는지부터 생각해 보시오.”

“가, 감히 황군에게 칼을 들이대겠다는 거냐!”

안철상이 버럭 소리치자, 청운의 치켜뜬 눈이 더욱 차가워졌다.

“황군? 황제 폐하의 말을 듣지도 않는 자들이 황군이라 할 수 있소?”

“무슨 개소리냐! 이 안철상, 비록 일개 지휘사이긴 하나 황제 폐하께 충성을 맹세한 장수니라!”

“하하하하. 황제 폐하께 충성을 맹세했다고? 그런 분이 왜 황제 폐하를 연금하다시피 한 자들의 말을 듣는 거요?”

“뭐야?”

“설마 몰랐단 말이오? 아니면 알고 있는데 모른 척하는 거요?”

안철상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도 황궁의 사정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오군도독부의 권력이 금의위와 동창을 누를 정도로 강해졌다고만 들었을 뿐이다.

물론 황제와 관련된 대한 소문도 듣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설마 사실이랴 싶었다.

“흥! 거짓 소문을 진실로 알고 있나 보군.”

“거짓 소문? 와하하하, 그래서 천향서원이 천하의 유학자들에게 연통을 돌리고, 대학자들이 들고 일어났나 보군요.”

“…….”

“아! 장안의 오왕야께서 동쪽을 향해 절을 하며 눈물을 흘리신 것도 그럼 거짓 소문 때문이란 말이군!”

“무, 무슨 말이냐?”

청운은 품속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하나 꺼냈다.

그러고는 머리 위로 들어서 안철상 앞에 펼쳤다.

“오왕야 태친왕께서 그리 한스럽게 우시면서 써주신 거요! 보시오! 여기 찍힌 인장이 누구 것인지!”

태친왕과 만났을 때, 언젠가 쓸모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에게 받은 두루마리였다.

안철상은 두루마리를 뚫어지게 바라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태친왕의 인장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휘사 정도 되면 황제와 왕야들의 인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젊은 놈이 내민 두루마리에 찍힌 인장은 오왕야 태친왕의 것이 분명했다.

“그, 그럼 황제 폐하에 대한 소문이 거짓이 아니란 말이냐?”

“결정을 내리시오! 우린 국난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오. 그 일을 막는다면, 그대들을 모조리 도륙내고 지나갈 것이오. 그럼 그대들은 훗날 역도로 낙인찍힐 거요. 허나 그냥 보내준다면, 당장은 문책을 당할지 몰라도, 훗날 충신으로 기억될 거요.”

안철상이 창백해진 얼굴로 땀을 흘렸다.

그때 그의 옆에 있던 부장 둘이 검을 빼들었다.

“이놈! 역도 놈들이 말이 많구나!”

“장군! 명을 내려주십시오! 황제 폐하를 욕보이는 놈들입니다. 모조리 잡아들여야 합니다!”

순간, 청운이 그자를 향해서 손가락을 튕겼다.

피이잉!

터덩!

사 장 정도 떨어져 있던 두 부장의 투구가 허공으로 튀었다.

동시에 부장들의 몸뚱이가 붕 뜨더니 말 뒤로 떨어졌다.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막는다면 모두 죽이고 지나갈 거요. 죄 없는 병사들이 죽는 것은 안타깝지만, 황제 폐하와 나라를 구하기 위함이니 어쩌겠소.”

청운의 목소리에 공력이 실리면서 넓게 퍼져 나갔다.

이삼십 장 떨어져 있던 병사들조차 모두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곧 병사들 속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그리고 곧 오대사령이 청운의 좌우에 늘어서며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들에게서 강맹한 기운이 뿜어지자, 바닥에서 회오리바람이 일면서 먼지구름이 솟구쳤다.

안철상은 기가 질려서 입술을 터지도록 깨물었다.

그때 혈황이 짜증난 목소리로 말했다.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이천 명도 안 되는 거 같은데, 다 죽이고 지나가자고! 귀찮으면 말해, 내가 다 처리할 테니까.”

청운이 짐짓 꾸짖듯이 말했다.

“어허! 운청, 그런 말 마시오! 오군도독부가 역모를 꿈꾼다는 걸 미처 몰라서 저러시는 것뿐,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우리와 다를 바 없소.”

그 말에 안철상의 눈매가 순간적으로 서너 번은 꿈틀거렸다.

“정말…… 오군도독부가 역모를 꿈꾸고 있단 말인가?”

“잘 모르겠으면 오호대장군에게, 황제 폐하를 칭송하고 천황교라는 극악무도한 자들을 욕하는 서신을 보내 보시오. 그럼 바로 알 수 있을 테니.”

“천황교?”

“다만, 살고 싶으면 바로 도망을 가야 할 거요. 장군을 죽이려는 자들이 찾아올 거니까.”

“…….”

입을 꾹 닫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 안철상이 옆을 보며 소리쳤다.

“길을 터라!”

몇몇 사람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옆으로 물러섰다.

상대는 무림인들이었다. 게다가 창을 던져도 겨우 날아갈까 말까 한 거리에서 손가락을 튕겨 부장을 기절시킨 고수마저 있었다.

싸우면 상대가 안 된다는 걸 그들도 모르지 않았다.

청운은 결정을 내린 안철상에게 포권을 취했다.

“고맙소, 장군. 내 장군의 오늘 결정을 잊지 않을 것이오.”

그러고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청운이 십여 걸음 걸어갔을 때, 안철상이 문득 스치는 생각에 소리쳐 물었다.

“혹시 그대는 삼원이 아닌가!”

청운은 그대로 걸어가면서 고개만 살짝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중에 저 하늘에 물어보시구려!”

쪼르르, 뒤따라가는 백청청의 눈이 반쯤은 풀어졌다.

‘아, 우리 가가, 정말 멋져!’

물론 혈황은 불만이 많았지만.

‘자식이, 나에게는 악역만 시키고, 멋진 건 지가 다 하는군.’

* * *

청운이 이끄는 일로는 감단을 벗어나서 계속 길을 재촉했다.

대로를 따라서 곧장 올라간다면 며칠 안으로 석가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청운은 길을 틀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귀찮음을 피하기 위해서 영녕으로 올라가지 않고 무안으로 방향을 틀 것입니다.”

청운의 말에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황군과 싸우는 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룡회나 천황교 무사들이라면 또 몰라도.

그때쯤, 무림맹과 사도맹의 무사들 역시 창암산을 향해 전진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황군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철저히 관도를 피하고 산길을 이용했다.

시간은 훨씬 더 걸리겠지만 황군과 싸워서 피를 흘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사실 청운이 이끄는 일로도 처음부터 황군을 피해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정면으로 맞선 것은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황궁의 실상을 잘 모르고 있는 자들에게는 황궁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려주어야 했다.

검단의 위지휘사 안철상은 장수들 중에서 충성심이 강하고 친우가 많은 걸로 정평이 나 있었다.

아마 그와 친한 하북의 장수들도 며칠 사이 검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될 터. 일차적인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 * *

백가장과 남궁세가 무사들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다만 처리하는 방법이 조금 달랐을 뿐.

백가장은 본가의 출신이 황군의 무장으로 지내는 사람이 많았다. 개중에는 지휘사도 있었고.

남궁세가 역시 안휘성 합비에서 제왕처럼 군림하는 세가였다. 관에서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도 당연히 많을 수밖에.

그러니 황군을 만난다 해도 별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 관도를 이용해 이동했다.

처음에는 생각대로 황군과 마주쳐도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남을 앞에 두었을 때였다.

일반 황군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뛰어난 군병들이 앞을 막아섰다.

그들을 본 백가장 무사 중 한 사람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이런, 좌군도독부의 중앙군입니다.”

팔 척 창을 들고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검은 벽처럼 느껴졌다.

숫자는 근 일만 명에 이를 듯했다.

거기다 쇠뇌병과 방패병이 있고, 진세에 따라 늘어서 있었다.

황군이 무서운 것은 단순히 인원이 많아서가 아니다.

무공 실력만 따지면 일류 고수 혼자 어지간한 군병 백 명의 목을 칠 수 있다.

그러나 그 군병 백 명이 진세에 맞춰서 하나처럼 움직이며 공격하면 일류 고수 다섯으로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황군에서만 취급하는 쇠뇌 등과 같은 특별한 무기까지 갖추었다면 더 상대하기가 어렵다.

백가장과 남궁세가는 물론 정파의 무사들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황군에게 겁을 먹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황제 폐하의 명으로 병장기의 소지가 금지되었다! 모두 병장기를 내려놓고 뒤로 물러서라! 따르지 않으면 역도로 간주하고 삼족을 멸할 것이다!”

황군을 지휘하는 장수로 보이는 자가 목에 힘을 잔뜩 주고 소리쳤다.

그때였다.

“뭐야? 삼족이 뭐가 어째?!”

백철군이 소리치며 가볍게 바닥을 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허공을 미끄러져 간 그는 지휘관 앞에 사뿐히 내려섰다.

사람이 새처럼 날아오자, 지휘관은 사색이 되어서 더듬거렸다.

“너, 너는 누구냐? 가,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좌우의 군병들이 백철군을 향해 장창을 겨눴다. 일사불란한 자세만 봐도 그들이 정병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백철군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백철군.”

“누, 누구? 백철…… 설마… 배, 백가장?”

“알아보는구나. 내가 강서백가 가주 백철군이다.”

백철군이 네 명의 호위와 함께 황궁에 쳐들어 가서 황제를 겁박한 일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었다.

장수는 바짝 긴장했지만, 자신의 뒤에는 일만 정병이 있었다.

“가, 감히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드는 지휘첨사를 겁박하겠다는 거냐!”

“얘기 들은 줄 알았는데 못 들었나 보구나. 황제의 엉덩이도 걷어찰 수 있거늘…… 무장 나부랭이가 뭐라고?”

턱!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시간도 없었다. 백철군이 움직인다 싶은 순간, 백철군의 손에 지휘첨사의 목이 잡혀 있었다.

지휘첨사의 얼굴을 끌어당긴 백철군이 낮게 으르렁 걸렸다.

“황제도 못 한 일을 네놈이 하는구나. 어디 그 기개를 계속 살려서 대들어 봐라.”

후아아아아!

백철군의 몸에서 거대한 기가 폭발했다.

그 기세에 주변에 있던 자들이 폭풍을 만난 듯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졌다.

지휘첨사는 그대로 기절해버렸는데, 축 처진 지휘첨사의 다리 사이에서 누런 물이 줄줄 흘렀다.

“응? 말은 그럴듯하게 하더니…….”

백철군은 지휘첨사를 한쪽에 던져버리고는, 발을 들어서 땅을 굴렀다.

쿠웅!

천둥소리가 울리고, 대지가 출렁거렸다.

백철군을 향해 창을 겨누었던 병사 수백 명이 비틀거리더니 수십 명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나마 장수들 몇 명은 겨우 버티고 서 있었는데, 인간 같지 않은 백철군의 무위에 질려서 안색이 창백해졌다.

백철군이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비켜선다면 살 것이고, 막아선다면 죽을 것이다! 어디 백가장과 남궁세가를 상대할 자신이 있거든 나서라!”

0